14.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⑤
지인이 승호에게 말했다.
“오빠, 여긴 바닥이 차. 승희를 안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
“그렇겠지? 동원아, 승희 좀 업게 도와줘.”
승호는 그러면서 승희 앞에 쭈그려 앉아 등을 내밀었다. 하지만 동원은 극구 사양하며 말했다.
“아니야, 형. 내가 업을게.”
“괜찮겠어? 너도 많이 지쳐 보이는데.”
“괜찮아. 형은 민철 씨나 부축해줘.”
“그래, 그럼 니가 업어 봐.”
동원은 승호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승희를 업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승호도 민철을 부축하기 위해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통로 입구 주변에서 낙담한 채 주저앉아 있던 중년의 한 남자가 민철을 발견하고 다가와 슬쩍 말을 걸었다.
“이봐요…….”
넋을 놓고 앉아 있던 민철은 누가 부르나 싶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남자가 물었다.
“당신 혹시 아까 로텐더 홀에서 귀신한테 홀렸던 사람 아니오?”
“에?”
난데없는 물음에 민철은 어리둥절해하며 남자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러자 민철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남자가 대뜸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사람 맞네! 맞죠?”
민철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요……. 근데 왜 ……?”
그 즈음 멀찍이서 이 둘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둘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그러는 것뿐이었지만, 정작 민철은 그들이 마치 자신에게 뭔가 따지러 오는 것처럼 보여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는 사이 동원과 승호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얼떨결에 민철과 멀찍이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민철은 어느 새 혼자 덩그러니 남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남자가 계속 물었다.
“아까 보니까 귀신한테서 풀려난 뒤에도 뭔가 본 것처럼 중얼거리던데, 혹 뭐 아는 거라도 있소?”
그러나 민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 가득 잔뜩 불안한 기색뿐이었다.
그때 남자 옆에 있던 웬 여자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이 사람 아까 도대체 자기가 뭘 불러낸 거냐니 어쩌니 하면서 막 중얼거렸어요.”
그러자 잠자코 있던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치며 가세했다.
“맞아! 나도 들었어!”
“그래, 나도 생각나.”
그때 방금 전의 남자가 불쑥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며 민철을 추궁했다.
“설마 그 귀신들 당신이 불러낸 거요?”
민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민철의 그런 행동은 당연히 사람들의 의심을 샀다.
“뭐야? 왜 말을 못해? 진짜야?”
“대답을 못하는 거 보니까 맞네. 그치?”
민철은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
그러나 이내 앞의 남자에게 멱살을 잡혀버렸다.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이 자식,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민철은 하얗게 질려 버벅거렸다.
“그, 그게 …….”
울컥한 사람들은 민철을 막 몰아쳐댔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알아?
“이 자식, 죽여 버리겠어!”
“죽여! 죽여 버려!”
다급해진 민철은 허둥거리며 외쳤다.
“자, 잠깐! 방법이 있어요!”
사람들은 멈칫했다.
“뭐?”
“진짜야?”
민철을 당장에 찢어죽일 것 같던 분위기는 단번에 확 누그러졌다. 하지만 의구심이 다 가신 것은 아니었다.
“거짓말했다간 그땐 정말 죽는다? 알았어? 그럼 어디 말해봐. 그 방법이란 걸.”
사람들은 숨죽이고 민철이 얘기하길 기다렸다. 민철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아까 귀신한테 홀렸을 때 무의식중에 어떤 장면을 봤었는데…….”
“봤었는데?”
“거기서 귀신들하고 똑같이 생긴 아이랑 여자들이 살해당했었어요. 그리고 그걸 사주한 건 왕비로 보이는 여자였고요.”
“왕비? 그 여자가 왜?”
“그게 산 제물을 바치면 역모를 막을 수 있다는 무당을 말을 듣고서 …….”
그때 웬 성질 급하게 생긴 남자가 중간에 버럭 하며 끼어들었다.
“거 쓸데없는 소린 그만 하고, 얼른 그 방법이란 거나 말해 봐!”
민철은 바짝 얼어 버리며 남자를 쳐다봤다.
“예? 그, 그러니까 그 방법이 …….”
하지만 선뜻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의 남자는 인상을 팍 쓰며 민철을 몰아세웠다.
“뭐야? 왜 말을 못해? 설마 뻥 친 거야?”
민철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알아요! 아는데 …….”
“그런데? 알면 그냥 말하면 되지, 왜 뜸을 들이고 난리야?”
“하, 할게요. 하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 의원을 …… 자정까지 …… 11명 …….”
그러나 민철은 거기서 또 말을 더듬거리며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남자가 다시 버럭 짜증을 내며 민철의 말을 가로챘다.
“그러니까 의원을 11명만 남기고 다 죽이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뭐야? 그런 거야?”
민철은 마치 정곡을 찔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얼떨떨했다.
“뭐야? 그 얼굴은. 설마 진짜 …… 야?”
민철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잔뜩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번에 얼굴이 싹 굳어졌다. 그때 남자 옆에 있던 여자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귀신이 그렇게 하라고 딱 집어서 말한 건 아니잖아? 그런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자 민철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건 …… 제가 무당이니까요 …….”
“뭐?”
사람들은 술렁였다.
“하긴 그러니까 귀신을 불러낼 수 있었겠지.”
“그 여자애 귀신도 저 녀석하고 뭔가 통하니까 홀렸던 거 아니겠어?”
“그치만 왜 굳이 의원들을 …….”
민철은 바로 대답했다.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은 보통 한을 품고 있어요. 그리고 그 한이 풀려야만 비로소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요.”
“그 말은 걔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돼서 죽었으니 정치인들한테 똑같이 복수를 하려는 거다, 뭐 그런 건가?”
그때 한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사람들 틈에서 튀어나와 민철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새끼야! 천한 무당 놈 따위가 감히 말이면 단 줄 알아?”
사람들은 곧 그가 왜 버럭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양복 재킷 옷깃엔 금빛의 무궁화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는 신성영 의원이었다. 신성영은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된 채로 민철을 쏘아붙였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 감히 되도 않는 소리로 국회의원을 모함해? 그러고도 니 놈이 무사할 것 같아?”
길길이 날뛰며 불같이 성을 내는 신성영의 모습에 민철은 대번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내, 내가 뭘?”
신성영은 민철을 계속 몰아쳤다.
“뭐라니? 너 이게 무슨 죈 줄 알아? 살인교사야, 살인교사!”
민철은 덜컥 겁이 났다.
“사, 살인교사라니? 이, 이게 왜 살인교사야? 난 그저 사람들이 방법을 물어봐서 …….”
“시끄러, 이 자식아! 너 밖에 나가기만 해 봐! 바로 감옥에 쳐 넣어버릴 테니까! 알았어?”
당황한 민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의기양양해진 신성영은 한술 더 떠서 민철을 비아냥거렸다.
“아, 가만. 그러고 보니 저기 저 사람들도 다 니가 불러낸 귀신들 때문에 죽은 거잖아? 이 새끼 이거 완전 살인마네, 살인마.”
그러더니 곧장 전경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 얼른 안 잡아가고 뭐 해? 니들 경찰이잖 …….”
그 순간 난데없이 민철이 괴성을 내지르며 신성영의 목을 콱 졸랐다.
“우아악!”
“……컥!”
신성영은 엉겁결에 중심을 잃고 민철과 함께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억!”
민철은 신성영의 몸에 올라탄 채로 계속 목을 졸랐다.
“왜 나한테 그래?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숨이 막힌 신성영은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놔, 이 미친놈아 …… 커억 …….”
그러나 분을 이기지 못한 민철은 오히려 조르고 있던 신성영의 목을 막 흔들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으아아아아!”
신성영은 대번에 뒤통수가 터져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하지만 민철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난데없는 소동에 주변은 한순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때 조금 전 동원을 도와 무전기 사이렌을 울려줬던 바로 그 전경대 소대장이 정적을 깨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야 뭐해! 의원 죽잖아! 저 새끼 잡아!”
그의 외침과 동시에 전경 네 명이 곧장 대열에서 튀어나와 민철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민철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어나 도망쳤다. 그러나 곧 엉겁결에 발이 꼬이면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전경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나는 작은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그 형상은 비록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어 정수리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양쪽으로 곱게 빗어 땋은 댕기 머리에 눈에 익은 한복, 무엇보다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달빛처럼 어스름한 광(光)이 꽃님이 분명했다. 전경들은 일제히 멈칫했다. 그 와중에 한 명은 너무 급하게 멈춰 서려고 했던 나머지 그만 바닥에 철퍼덕 미끄러지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