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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3
작성일 : 17-11-12 01:37     조회 : 322     추천 : 0     분량 : 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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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너 때문이야.”

 

  녀석은 질책하는 내 말에도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시원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또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저 상태로 오래있으면 꽤나 머리에 피가 쏠려서 벌떡 일어나야 정상인데 녀석은 용케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명해졌으니 좋지.”

 

  “안 좋아!”

 

  운동장에서 대화를 나눈 그 날 이후, 녀석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학생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한 것인지 쉬는 시간에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당당하게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 나를 친구들에게서 납치하기도 했다. 그 뿐이랴 저녁을 먹고 나서도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기를 일주일. 나는 결국 포기했다. 녀석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완전 놀림감이라고.”

 

  나는 투덜거렸다. 짜증이 확 올라온 나는 무릎에 대고 끄적거리던 연습지에 과감한 터치를 해나갔다. 부드럽고 얇게 그리고 있던 선들이 단숨에 거칠고 두껍게 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디에 제출할 것도 아닌데.

 

  “오! 과감한 터치! 드디어 꽤 쓸 만한 작품이 나오는 거야?”

 

  “작품이라니. 그냥 낙서야.”

 

  녀석은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며 벌떡 일어나 철봉에서 내려왔다. 오래도록 그러고 있던 탓에 살짝 어지러웠는지 넘어질 뻔했지만 나는 녀석을 잡아주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자업자득. 머리에 잔뜩 피가 쏠린 탓에 순간적인 어지러움이 와서 넘어진다면 그건 본인이 자초한 결과다. 내가 굳이 잡아줄 필요가 없다.

 

  “그런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가?”

 

  반짝거리는 저 눈빛을 보니 갑작스레 불안감에 소름이 돋았다.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과도 같은 그 반짝거림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장난스럽게 다가온 녀석은 갑작스레 내 옆에 철푸덕 앉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당황한 나는 녀석이 물은 것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뭐라고?”

 

  다시금 물은 나를 본 녀석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금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알아. 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쫓아다니면 엄청나게 싫을 것도 알고. 그런데 왜 어울려 주는 거야?”

 

  “오. 본인이 이산한 걸 알고 있었어!”

 

  “나 진지하거든?!”

 

  순수하게 감탄하던 나는 녀석의 박치기에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녀석이 자신의 행동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것이 뭐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녀석의 철퇴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왜 어울려 주는 거야?”

 

  끈질기게 묻는 녀석의 눈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단순한 내 착각이라 생각했다. 나는 혹이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가득담긴 손길로 정성스레 내 머리를 문지르며 답했다.

 

  “허구한 날 쫓아다니면서 어울려달라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 도망가도 따라오잖아.”

 

  “교무실에 말한다던지 그래도 정말 싫으면 경찰한테 신고하던지 하면 되잖아. 그런데 왜 안 그렇게 하는 거야?”

 

  소름이 돋았다. 절대로 정상적인 말을 내뱉지 않을 것만 같은 녀석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오히려 무서웠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건가?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소설 속 어느 이야기처럼 갑작스레 판타지 세계에 떨어지는 일이라도 생기는 건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녀석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겁에 떨었다. 나중에 생각하면 이불킥을 날릴만한 생각들을 하며 녀석을 흘깃 바라보니 꽤나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런 방법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닌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경찰이나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 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거든.”

 

  “왜?”

 

  “그냥.”

 

  녀석이 나를 따라다닌다고 해서 해가 되는 것은 없었다. 물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줄었을지는 모르지만 논다고 하더라도 잡담을 하면서 나는 지금처럼 연습장에 낙서를 끄적거리는 것만 해왔기 때문에 그다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녀석이 나를 찾아오는 시간은 수업시간이나 야자시간이 아니었다. 또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무작정 들이밀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주로 혼자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에 녀석은 나타났다. 일정이 있다고 하면 보내줬다. 그 때문에 수업시간이나 야자시간, 학원 강습시간에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지킬 선은 지키잖아. 처음에는 물론 엄청 짜증났지만.”

 

  설마 이건 녀석에게 길들여지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조금 전에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지? 어디서? 어디서 본 것 같아?”

 

  “여기 동네 사는 거 아니야? 그럼 한 번쯤은 지나가다 어디선가 봤겠지.”

 

  내 대답에 녀석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지난 일주일동안 녀석을 관찰해 본 결과 나는 저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알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저 얼굴을 하고 내 머리를 향해 박치기를 날렸으니까.

 

  “자... 잠깐만! 내 머리 아직 아픈데! 으악!!!!!!!”

 

  아팠다. 정말 아팠다. 두개골이 아려왔다.

 

  나는 이번에는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큰 혹이 날 것이라 울먹거리며 머리를 문질렀다. 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수험생의 머리에 이 무슨 횡포냐며 소리를 질렀지만 어차피 머리를 맞아도 뇌세포는 죽지 않는다며 한 대 더 때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녀석의 패기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줘.”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이 항상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낙서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연습장을 넘겨주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지난 일주일간 왜 나를 쫓아다니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녀석은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았다. 나중에 알려준다고만 하기도 하고 몰라도 된다고 하기도 하며 말을 계속해서 돌려대었다.

 

  “왜 나랑 놀자고 계속 그러는 거야? 친구 없어?”

 

  “너는 내가 학교에 다니는 걸로 보여?”

 

  “아니.”

 

  물론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는 걸로 봐서 녀석은 시간에 대해 굉장히 자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자퇴를 하고 홈스쿨링을 하는 모양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친구를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표정을 살폈다. 녀석은 답하지 않고 그저 내 연습장을 신중하게 뚫어져라 보았다.

 

  “친구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만난 나를 보고 친구하자고 쫓아온 거야?”

 

  대강 정리한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오자 녀석이 퍼뜩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내가 말한 것이 정답이라는 듯.

 

  “어떻게 알았어? 도서관에서 내가 귀신인줄 알고 겁먹어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저 호구라면 내 친구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거든!”

 

  고개를 푹 숙였다. 쪽팔렸다. 쉽게 말해서 만만하게 보이니 와서 잡았다는 이야기다. 하기사 만만하게 보이니 계속 쫓아다니고 이렇게 막 대하는 거겠지.

 

  다시금 내 그림에 열중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혼신을 담아 학원에서 배운대로 열심히 그려낸 스케치북의 그림들을 보면 항상 못 그렸다면서 핀잔을 주는 주제에 연습장에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그려놓은 것은 뭐가 그리도 좋은 것인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너도 노트를 가져왔네?”

 

  항상 빈손으로 오던 녀석이 오늘은 웬 노트를 하나 끼고 있었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으면서 저 두꺼운 스프링노트가 왜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홈스쿨링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건가?

 

  “너도 그림 그려?”

 

  “아~니~”

 

  말꼬리를 늘리며 녀석이 갑자기 흥분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궁금해? 궁금한 거지?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 지 궁금한 거지?’라며 마구 팔을 휘둘렀다. 그런 녀석의 반응에 갑작스레 노트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팍 식어버렸다. 어째서인지 저 노트를 열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만화에서 보았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노트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설마하니 존재하지는 않을 테지만 녀석이라면 갖고 있는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녀석은 가볍게 발을 두세 번 구르더니 나에게 스프링노트를 내밀었다.

 

  “너한테 보여주려고 가져온 거야.”

 

  조심스러운 손으로 노트를 받아든 내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심지어 손에 땀까지 났다. 단순히 노트를 열어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부들거리는 손가락을 재촉하며 나는 용감하게 노트를 펼쳤다.

 

  “이건...”

 

  빼곡한 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빽빽이를 쓴 것처럼 새하얀 노트에 그어져있는 줄들을 따라 검은 볼펜으로 쓴 글씨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탑 안에 갇힌 소녀와 소녀를 구하는 왕자님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 안에 잠들어 있는 공주를 구해낸 이야기 역시 단골 이야기다.」

 

  노트 한가득 쓰여 있는 것은 소설이었다.

 

  두어 문장을 읽은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보았다. 당찬 웃음을 지어보이며 녀석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작가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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