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④
그때까지 승희가 비명을 지른 이후부터 일어난 일들을 줄곧 지켜봐오고 있던 통로 입구 주변의 사람들은 다시금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은 처음엔 흘끔흘끔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일순간 다시 돌변하여 서로 먼저 나가겠다며 다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은 도로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동원은 승희를 막 흔들며 불렀다.
“승희야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오, 오, 오, 오빠…….”
승희는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동원은 급한 대로 손수건을 꺼내 승희의 얼굴이며 손이며 옷에 묻은 피들을 허겁지겁 닦아냈다. 승희는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쿵쿵’ 거리며 땅으로 떨어질 때마다 여전히 흠칫흠칫 놀라며 경기를 일으켰다. 보다 못한 동원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승희를 꼭 끌어안으며 등을 쓸어주었다.
“승희야 괜찮아. 진정해. 응?”
이어 승호를 보고도 소리쳤다.
“형, 우리도 빨리 나가!”
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동원이 승희와 함께 일어나 막 첫 발을 떼려던 찰나, 공중에서 웬 여자가 두 사람 앞으로 또 ‘쿵!’ 하고 떨어졌다. 둘은 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곧이어 승희는 경기를 일으키며 부들부들 떠는가 싶더니 끝내는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동원은 몸을 날려 쓰러지는 승희를 붙들었다.
“승희야!”
그러고는 축 늘어지는 승희를 품에 안은 채로 같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 얼핏 방금 떨어진 여자가 낯익은 차림새를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푸른 스웨터 차림의 그 여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복부 쪽에서 피와 함께 투명한 액체가 흥건히 배어나왔다.
그때 그녀의 옆구리 쪽에서 앙상하게 생긴 무언가가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눈여겨보던 동원은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다 자라지 못한 태아의 한쪽 손이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조금 전 동원의 도움을 받아 통로 안으로 들어갔었던 임신부였다.
동원은 눈이 저절로 꽃님에게로 향했다. 꽃님은 줄곧 한결같은 표정으로 동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동원은 그런 꽃님의 얼굴이 곧이곧대로 보이질 않았다. 조금 전 사람들이 떨어져 죽을 것을 암시하는 듯한 ‘무너지는 탑’ 카드를 건네줬던 것도 그렇고, 굳이 푸른 스웨터의 임신부를 눈앞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 것도 뭔가 자신을 일부러 노리고 그러는 것만 같았다. 동원은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왜 …… 왜 이러는 거야 …….”
그러자 꽃님은 마치 그에 대한 답변이라도 하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동원은 덩달아 아래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대번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임신부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서 수십 갈래로 흩어져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마치 퍼즐을 맞추듯 순식간에 어떤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원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동원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던 피는 순간 도로 사방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가지런히 모여들며 순식간에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번엔 가면을 쓰고 있는 천명의 얼굴이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던 동원은 당혹감에 꽃님을 쳐다봤다. 그러자 동원과 눈이 마주친 꽃님은 다시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했다. 동원은 설마 설마 하며 눈을 도로 밑으로 천천히 내리깔았다. 천명의 얼굴 그림은 어느 새 민철의 얼굴 그림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동원은 다시 고개를 들어 꽃님을 쳐다봤다. 그 순간 꽃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원을 향해 스르륵 미끄러져왔다. 동원은 흠칫 놀라며 뒤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으헉!’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던 나머지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승희를 안고서 다리만 버둥거렸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꽃님은 어느 새 코앞까지 다가와 동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동원은 순간 숨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흐으으 …….’
그때 꽃님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동원 앞에 두 손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국회 지하 예배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동원이 줬었던 바로 그 무지개떡이었다.
동원은 당혹스러웠다. 그저 안 돼 보이는 마음에 줬던 것일 뿐인데 왜 이제 와 이걸 새삼 들이미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에 혹시나 뭔가 다른 말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싶어 꽃님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꽃님 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줄곧 한결같은 표정으로 동원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동원이 끝내 아무 반응이 없자, 꽃님은 내밀고 있던 손을 도로 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동원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동원은 얼떨떨했다. 하지만 곧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닫고는 기절해 있던 승희를 흔들어 깨웠다.
“승희야! 일어나! 정신 차려!”
다행히 승희는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으음…….”
동원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 상황이 끝나야 그들도 살고 승희도 다시 까무러치는 일이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형, 승희 좀 잠깐 봐줘.”
동원은 그런 다음 곧장 통로 쪽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멈추세요! 거기로 들어가면 안돼요!”
그러나 이미 몸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던 사람들은 동원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동원이 그들을 닥치는 대로 통로 입구 밖으로 밀쳐내기 시작했다.
“이봐요! 내 말 못 들었어요? 저길 봐요! 저기서 떨어지고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여기로 들어갔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죄다 ‘에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동원을 쳐다볼 뿐이었다. 동원은 속이 터졌다.
“정말이라니까요! 아까 여기로 들어갔던 임신부도 저기서 떨어져 죽었다고요!”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씩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통로로 들어가는 것을 잠시 중단한 채 사람들이 떨어져 죽고 있는 쪽을 잠자코 지켜보기 시작했다. 동원의 말대로 그곳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뚝 멈춰버렸다. 통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지자 공중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은 망연자실해 하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에이 씨팔! 그럼 마냥 이대로 죽을 때만 기다려야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에는 동원도 딱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한편 뒤늦게 건물 밖으로 나오려했던 지인과 지혜는 갑자기 꽃님이 나타나고 사람들까지 눈앞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의사당 현관 안쪽에서 유리문을 통해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지인은 곤란을 겪고 있는 승호와 승희 곁으로 곧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무섭기도 하고 또 지혜의 강한 제지도 있어 선뜻 밖으로 나오질 못했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추락이 멈추자 그제야 방심한 지혜의 손을 뿌리치고 승호에게 달려갔다.
학현도 2층 소회의실에 혼자 있다가 갑작스런 비명 소리를 듣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저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승희의 모습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학현은 곧장 승희 쪽으로 달려갔다. 동원도 달려오는 학현을 발견하곤 부리나케 뛰어왔다. 먼저 도착한 지인과 학현이 걱정스런 얼굴로 승호에게 상태를 물었다.
“오빠, 괜찮아?”
“야, 승희가 왜 피투성이야? 어디 다친 거야?”
“난 괜찮아. 이건 다른 사람들 피야. 승희도 방금 정신을 차렸으니 괜찮을 거야.”
그때 뒤늦게 도착한 동원이 승희를 곁에서 살피던 학현을 밀치며 소리쳤다.
“저리 비켜요!”
마침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서 승희를 살피고 있던 학현은 그 바람에 그만 중심을 잃고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당한 것인 탓에 하마터면 바닥에서 구를 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던 학현은 바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동원을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동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씩씩대며 학현을 몰아붙였다.
“승희가 선배 보면 기겁하는 거 몰라요? 저리 가요!”
학현은 그제야 정신이 확 깼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 동원의 멱살을 와락 틀어쥐며 말했다.
“뭐 이 새꺄? 이게 이젠 아주 돌았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동원도 물러서지 않고 똑같이 학현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덤볐다.
“왜? 또 아까처럼 주먹이라도 날리시게? 쳐봐! 쳐보라고!”
학현은 격분하여 마치 당장에라도 때릴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동원도 지지 않고 주먹을 꽉 쥐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둘의 눈동자에선 순식간에 격렬한 불꽃이 튀었다. 그때 보다 못한 승호가 둘 사이로 끼어들며 그 둘을 서로 반대편으로 밀쳐냈다.
“야, 그만들 해! 아까 그렇게 소란을 피워놓고도 아직 정신 못 차렸어?”
지인도 거들었다.
“그래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요! 승희 저러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그 말에 동원의 눈길이 승희에게로 향했다. 승희는 여전히 찬 바닥 위에서 겁에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계속 타오르기만 할 것 같았던 동원의 분노도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러면서 불쑥 승희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겨났다. 동원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학현을 쏘아봤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멱살을 팍 밀쳐낸 다음 승희 곁으로 가버렸다.
학현은 항상 빌빌 거리던 동원이 자신한테 거듭 맞서며 나오자 빈정이 상해버렸다. 그래서 다시 본격적으로 싸울 요량으로 양 소매를 걷어붙이며 동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하여 재차 동원에게 덤벼들려던 찰나, 승호가 학현의 어깨를 붙들며 제지했다.
“야, 남학현! 니 기분은 알겠는데, 동원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잖아?”
“뭐야?”
울컥한 학현은 승호를 흘겨봤다. 하지만 승호는 단호했다.
“지금은 승희의 안정이 우선이야. 니가 정말로 승희를 아낀다면 이쯤에서 그만 해.”
학현은 할 말이 없었다. 분했지만 달리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못마땅한 표정으로 승희 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의사당 쪽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그러다 도중에 지인을 향해 오고 있는 지혜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한번 맞닿은 시선은 계속 유지되다가, 중간에서 서로 엇갈려 지나치고 나서야 다시 각자의 정면으로 되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