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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9, 뜻밖에도(1)
작성일 : 17-11-10 18:16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5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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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통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에 비치는 시각, 오전 6시 29분.

 고꾸라질듯 휘청이며 간신히 화장실로 들어가 먹은 것들을 토해낸다.

 세면대에서 대충 입가를 물로 씻은 후 다시 침대 위로 드러눕는다.

 여전히 어지럽다. 피곤하다.

 그러나 다시 잠이 오지는 않는다.

 

 핸드폰을 켠다. 6시 35분.

 부재중전화 6통.

 

 현채,연우,현채,연우,연우,연우.

 

 얘들 왜 이렇게 전화를 해댄거지?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본다.

 메시지 300+

 

 뭐야?

 왜 난리야?

 

 

 

 '아 도대체 장노을 어떻게 된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미치겠네' 03:31 손연우

 

 '설마, 집에 잘 들어갔겠지. 무슨 일 있겠어?' 03:32 성현채

 

 '진짜 장노을 제 정신이냐? 하루가 아까운 마당에 무슨 술을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셔?ㅡㅡ 버킷리스트 쓰면서 울던 거 다 까먹었지?' 03:32 손연우

 

 '어차피 지금 노을이 이거 읽지도 않아. 내일 얘기하자.. 화내지 말구.' 03:32 성현채

 

 '이거 읽으면 바로 전화해라. 진짜.' 03:33 손연우

 

 '그래. 노을아. 아무튼 너도 진짜 구제불능이다. 어휴..' 03:33 성현채

 

 

 아, 나 어제 술 많이 마셨지.

 근데 얘들이 나 술 마신 거 어떻게 아는 거야..?

 

 

 

 

 

 

 

 

 

 

 "흐어어엉- 우어어어엉-"

 

 눈물 망가진 눈 화장. 연주황색 블라우스에 군데군데 묻은 시뻘건 닭발 국물.

 그 와중에도 더듬더듬 거리며 용케 핸드폰을 찾아낸다.

 어설프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전화를 건다.

 이미 울음은 멎었고, 얼굴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오른다.

 

 

 "어, 야. 연우야? 연우야 고향가니까 어때? 좋아?"

 

 술잔에 술이 꼴꼴 넘친다.

 

 "어어어- 넘친다. 어떡해! 어떡하긴? 내가 마셔야지. 홀짝!"

 - 야, 장노을. 너 술 마셔?

 

 "응! 언니 술 마신다. 너는? 효도 잘 하고 있냐?"

 - 연락 못하는 사람한테 연락 한다더니. 왜 술을 마시고 이 난리야?

 

 "아, 지금까지 연락 못해서 미안합니다. 참이슬씨. 오랜만이지요? 오랜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 스무살 술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여전히 개같은 술버릇이네, 어휴.

 

 "넌 왜 내 말에 대답 안 해? 손연우 너 효도 잘 하고 있냐고오-!"

 - 너나 좀 잘 해. 이게 뭐야? 매일매일 후회없이 살기로 했잖아.

 

 "언제 그랬어? 기억안나. 에베베베. 잘하긴 뭘 잘해? 나는 잘할 부모가 없네요~"

 - 야. 그게 아니라.

 

 "나는 다아 글렀어. 다아-. 완전히 망했어!"

 - 왜? 오늘 만난다던 사람이랑 뭐가 잘 안 됐어?

 

 "응. 잘 안 됐어. 근데 나는 늘 잘 안 됐잖아. 그래서 이제 완전히 그런 불행에는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오늘 잘 안 된 것도 괜찮을 줄 알았거든? 그랬거든?...흐응..그랬는데..흐으으.."

 - 야, 울지마. 너 싫다는 놈한테 왜 목을 매고 그래? 그냥 다른 좋은 사람들 만나면서 남은 시간 보내.

 

 "다른 좋은 사람들 누구? 누가 있는데, 나한테."

 - 다른 동기들이나, 뭐 학교 사람들 만나거나. 고향 친구들이나..아니면 부모님..

 

 "나한테 동기들 너네 말고 누가 남아있어? 대학교에 친구 없어. 고향에도 친구 없고. 그 때 말 했잖아. 나 학교 다닐 때 친구 없었다고. 부모님도 안 계셔. 할머니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 야아.. 너 진짜.

 

 "나 진짜 불행하지? 불쌍하지? 어떻게 나처럼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 아아, 정말 신도 무심하시지. 오 마이 갓-. 아, 신을 탓할 게 아니구나?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놓쳐버린 건 나니까. 난 내가 내 복을 쳐 낸다, 쳐 내."

 - 부모 없으면 불쌍한 거야? 그리고 왜 니가 친구가 없어? 너 그렇게 살 거면 내일이라도 당장 나 있는 데로 와.

 

 "하, 끊자. 내가 거기 가면 너네 가족들 화목한 시간 보내는 데 방해밖에 더 하겠니? 아무튼, 넌 똑똑한데 진짜 눈치가 없어.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해버긋타임이다!"

 - 야, 장노을! 장노…

 

 

 전화를 끊고 다시 술을 따라 한입에 털어 넣는다. 젓가락을 집어 그릇 안을 휘적휘적 젓는다.

 젓가락으로 제대로 닭발이 잡히지 않자 포크처럼 닭발을 쿡 찔러 집는다. 입에 넣는다.

 닭발 국물이 입 밖으로 줄줄 흘러서 블라우스로 뚝뚝 떨어진다.

 

 핸드폰 불빛이 눈이 부신건지, 술을 많이 마신건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또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그러더니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현채야!"

 - 응? 장노을? 뭐야?

 

 "놀이공원 잘 갔다왔어? 그 분이랑?"

 - 헐. 너 술 마셨어?

 

 "넌 어떻게 그 사람 만났어? 어떻게 놀이공원까지 같이 간 거야? 너 진~짜 대단하다."

 - 뭐가 대단해? 약속 잡는 게 별 거야? 같이 가자, 그래, 이러면 가는 거지. 그리고 너 술은 또 왜 마셨어? 괜찮은 거야?

 

 "현채야. 나는 바보야. 멍청이야. 나는 그 별 거를 못 해. 그 쉽고 간단한 걸 못해."

 - 만난다더니 잘 안 된거야? 그래서 술 마셨어? 어휴. 그래도 왜 술을 마셔? 지금 술 마실 때 아니잖아. 너 설마 연우한테도 전화했어?

 

 "응! 근데 손연우 얘는 효도하러 고향가더니, 완전 나한테도 엄마처럼 구는 거 있지?"

 - 야, 진짜 못 살아. 너 혹시 전화해서 이렇게 효도 드립치고 그런 건 아니지?

 

 "가족들 보러 갔잖아, 연우. 근데 얘가 또 눈치없이 나보고 오라고 그러는 거 있지? 그래서 이 언니가 센스있게 가족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라고 했다!"

 - 야, 진-짜 눈치 없는 건 너야, 장노을. 연우가 비밀로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말 안했는데, 연우 부모님 안 계셔. 연우 시골에 있는 작은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고향 간다는 것도 아마 거기 봉사하러 간 걸 거야. 맨날 그걸로 고민하고 마음쓰고 그랬으니까.

 

 "으응, 뭐?"

 - 너만 어렵고 아프고 힘든 거 아니야. 시간 얼마 없어. 이렇게 술이나 마시면서 흥청망청 보낼 시간 없다고.

 

 "너나 연우나 왜 계속 똑같은 얘기 해? 시간 낭비? 그래. 아주 그냥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공기를 쳐 마시는 게 낭비지, 낭비. 공기 낭비."

 - 어우.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천하의 장노을이 말이 안 통하냐? 밖이야?

 

 "닭발이 쫀득쫀득-하다, 아주."

 - 집에 들어가, 얼른. 너 자취방 근처 닭발집이지? 그럼 학교 근처겠네. 내가 근처에 동기들이나 선배들 있으면 너 챙겨서 들여보내라고 연락해 볼테니까..

 

 "됐거든? 왜 너네 둘은 맨날 나한테 학교 친구들 많다고 자랑질이야? 진짜 웃겨. 너네 나 친구 없다고 무시하냐? 나 그 날 이후로 동기고 선배고 연락 다 끊었거든? 그래서 나 데릴러 올 친구 같은 거 없거든?"

 - 하여튼 자존심만 세 가지고. 빨리 집에나 들어가! 끊어.

 

 "야! 그래! 나 자존심 세다! 남은 건 자존심 밖에 없다! 어쩔래? 하, 그 놈도 나보고.. 어? 야! 어쭈? 뚜뚜뚜? 끊어? 우씨.."

 

 

 

 

 

 

 

 

 

 와, 기억난다. 내 기억력 칭찬해. 와, 대단해 대단해.

 ...차라리 기억나지 말지. 멀쩡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또 흑역사라니.

 

 근데 어떻게 집에 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보세요?"

 - 얼씨구.

 

 "하하. 그 음.. 저, 연우야, 어제는…"

 - 미안하시겠죠~ 새벽 늦게 전화해서 아주 생쇼를 했는데.

 

 "진짜 미안하다. 나도 너무 속상해서... 혹시 뭐 기분나빴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

 - 됐고. 너 나 있는 데로 와.

 

 "야, 아니야."

 - 어제 현채한테 전화했으면 대충 눈치챘을 거 아냐?

 

 "아, 너 봉사활동 한다는 거..?"

 - 응. 여기 보육원이야. 오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아. 좀 구석에 있어서 그렇지 여기도 경기도거든.

 

 "경기도? 너 포항에서 태어났다며?"

 - 거기서 태어났다고 그랬지 자랐다곤 안 했다.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서울말 잘 하겠냐?

 

 "그래도 내가 거기가면, 네가 조금 기분이.. 좀 그럴까봐."

 - 그렇긴 뭐가 그래? 내가 너 보면 제일 답답한 게 뭔지 알아? 아직도 70년은 더 살 것처럼 군다는 거야. 난 너 매일 뉴스 보는 거 추천한다. 뉴스에 운석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는지 보여주거든. 너도 그거 보면 지금보단 확실히 와 닿을거야. 그렇게 계산하고, 따지고, 남 눈치보고, 신경쓰고, 복잡하게 사는 게 얼마나 사치스럽고 부질없는 짓인지.

 

 주소 톡으로 보낼테니까, 하루라도 있다가 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연우는 끊어버렸다.

 

 

 

 

 

 

 

 

 시골은 시골이다.

 이런 곳에서 자랐구나, 연우가.

 

 

 "연우야."

 

 

 평소의 연우는 '시크하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오늘은 전혀 시크하지 않았다.

 따뜻한 색깔의 츄리닝과 화장기 없는 수수한 맨 얼굴.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웃으면서 슬리퍼를 끌고 나오는 연우는 오랜만에 만난 친언니 같았다.

 

 "이틀만에 보는 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냐?"

 

 연우는 내 어깨에 팔을 걸며 어깨동무를 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연우와 발을 맞췄다.

 

 

 "연우, 너,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는 거야?"

 "응. 안 그래도 침대 두 개인 방 혼자 쓰느라 불편해 죽을 뻔 했어."

 "2인실 혼자 쓰면 좋은 거지."

 "안 좋아. 2인실이면 둘이 써야지. 너 근데 짐이 좀 간소하다?"

 "오래 못 있어. 이틀 정도. 이후엔 다시 올라가야지."

 

 "왜 그것밖에 못 있어? 너 또 올라가면 할 일도 없이 술이나 퍼 마실 거 아냐?"

 "야, 아냐! 그 날은 진짜 너무 속상해서 그런 거고. 이제 술 절대 안 마셔. 나 오늘도 인터넷 뉴스로 위성 사진 보고 왔어. 정신 차렸어."

 

 연우는 내 말에 큭큭 웃으며 잘했다, 짧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니가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말야. 나 뭐 해야 해?"

 "너 전에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지?"

 

 나는 대답 대신 연우를 빤히 쳐다봤다.

 

 

 "애들 글 좀 가르쳐 줄래? 애들이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인데 아직도 글을 잘 몰라서. 아, 우선 짐부터 방에 갖다놓자. 그리고 원장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가자."

 "야, 나 공부한지 오래 됐는데."

 "겸손 떨기는. 신서울대 국문과가 유치원생 가나다 가르치는 데 따로 공부해야 되냐?"

 

 

 

 '이 곳에 처음왔습니다'라고 광고라도 하듯,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며 보육원으로 들어섰다.

 2인실인 방도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대충 캐리어만 갖다놓고 연우와 함께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선생님, 저번에 말씀드렸던 친구 왔어요."

 

 

 연우는 노크를 한 후 문을 빼꼼 열어 원장선생님을 불렀다.

 연우가 뒤돌아 내게 눈짓을 했다. 뻣뻣한 나를 연우가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장노을이라고 합니다."

 

 "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앉으세요."

 

 보육원 원장선생님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으시거나 수녀님같은 분위기 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련된 분위기의 생각보다 젊은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옥색 정장에서 정갈한 기품이 느껴졌다. 우아하고 온화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악수를 청해오는 원장. 엉거주춤 손을 잡는 나.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에 굳은 어깨가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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