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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06. 데시벨
작성일 : 17-11-10 11:34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7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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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 데시벨

 

 

 2시 30분부터 비로소 취조가 시작됐다. 대략 4시간 정도 이어진 조사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수연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범인의 발목을 잡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수연은 제가 겪어온 수많은 사건들과는 달리 여전히 희뿌연 안갯속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흐릿한 형체만 보일 뿐, 명확한 실체가 보이지 않는 달까.

 

 수연이 가장 먼저 대면한 사람은 요코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연이 재차 묻는 말에 끝까지 함구할 뿐 조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어느 면으로 보나 용의자들 중 가장 제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이는 단연 요코였다. 하지만 수연은 어쩐 일인지 요코에 대한 적의를 가장 적게 두었다. 어쩌면, 유일하게 확실한 알리바이를 제시한 유정보다도.

 

 “계속 침묵하시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제가 아니라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수연은 조금이라도 저를 의심하자 독기를 품은 채 자신을 쏘아보던 요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누그러진 태도. 수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되물었다.

 

 “그럼 하숙집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페이 탐정과는 무슨 관계죠?”

 “신페이와는 그저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이입니다.”

 “걔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시키던가요? 자기와의 관계는 물론…살인 혐의에 관해서도.”

 

 수연이 재차 쏘아대자 요코는 수연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렸다. 불안정한 동공이 보였다. 한쪽 입술은 짓씹은 수연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요코를 내보냈다.

 

 도연이 데려온 일행이라는 점에서부터 요코는 혐의를 완전히 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렇게 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도연이 모를 리 없었다. 또한 저에게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갈 걸 뻔히 아는 데도 끝까지 함구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건 어쩌면 이번 사건보다 더 치명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도연과 관계된. 하지만 그걸 알아내는 건 나중 일이었다.

 

 요코의 다음 차례는 소은이었다.

 

 “소은 씨. 쇼고 씨의 방 문 앞에서 서성거렸던 이유는 뭐죠?”

 “말씀드렸잖아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유독 쇼고 씨의 방에서 빗물이 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구요. 제 방은 쇼고 씨의 방 바로 아래층이었으니까요!”

 

 수연의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대꾸한 소은은 침착함을 잃은 듯 보였다.

 

 “보청기를 끼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던데…그 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리나요? 쇼고 씨의 생사를 확인한 건 아니구요?”

 “저는 정말 아니에요!”

 

 급기야 소은은 눈시울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급기야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잠시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휴지를 건넨 수연은 심호흡을 하는 소은을 보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겁을 주듯 소은을 몰아세우긴 했지만 수연은 소은 또한 범인일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했다. 해림의 말대로 소은이 수상한 행동을 보인 것은 맞았다. 그에 대한 추궁 또한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은 있었다.

 

 하지만 소은이 정말 쇼고를 죽인 범인이라면, 누가 언제 자신을 발견할지 모르는 그런 대외적인 공간에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일 리 없었다. 쇼고를 죽인 트릭만 보아도 범인은 꽤나 치밀한 성격을 가진 것 같으니까.

 

 또한 만약 소은이 쇼고를 죽이고 나오는 길이었다면 애초부터 보청기를 끼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쇼고를 죽이기 위해 마음을 먹은 계획된 살인이었다면, 너무나 공개적인 곳에 위치한 쇼고의 방에서 하숙집에 있는 이들의 조그마한 소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었을 테니까.

 

 물론 이건, 수연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어디까지나.

 

 “무엇보다 저한텐 쇼고 씨를 죽일 동기가 없어요. 전 이 하숙집에 온 지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구요.”

 

 동기. 소은의 말이 맞았다. 알리바이가 드러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수연은 뾰족하게 의심을 설 만큼의 대상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수연이 맡았던 사건 안에서 수연의 촉은 대부분 적중해왔었다. 하지만 지금 수연은 마치 미로 속에 갇힌 채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동기였다.

 

 하숙집에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쇼고를 죽일 이유는 없었다.

 

 “사실 쇼고 씨를 죽일 만한 사람은 이곳에 단 한 사람밖에 없어요.”

 “…….”

 “그건 바로…히카예요.”

 

 결국 소은은 자신을 향한 의심을 거두기 위해 다른 이를 지목했다.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

 

 

 “쇼고 씨랑 꽤나 인연이 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담담하시네요.”

 

 수연이 비꼬듯 느긋하게 물었다. 수경은 시선을 둘 곳을 찾으며 방안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 이내 애꿎은 제 손만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네. 워낙 건강이 안 좋기도 했고. 나이도 많았으니까요. 늘 생각한 일이긴 했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는데. 그것도 살인이라는.”

 “…….”

 “조사해보니 수경 씨의 어머니가 하숙집을 처음 운영했을 때부터 쇼고 씨와 함께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분명 수경 씨도 어릴 때부터 쇼고 씨를 봤을 거고.”

 

 수연은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뒤적였다. 적막한 곳에선 큰 소음이 들릴수록 상대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 수연이 처음 용의자들을 조사했을 때 참고했던 팁이었다.

 

 “쇼고 씨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지만…수경 씨의 반응은 이상할 정도로 의연했죠.”

 “…….”

 “마치…쇼고 씨가 죽을걸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떠 보기. 큰 의미가 담기지 않은 수연의 말에 수경은 곧바로 반응했다. 불안정한 눈으로 수연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어딘가 체념한 듯한 태도였다.

 

 “사실 전…줄곧 쇼고 씨가 죽길 바랐었어요.”

 

 수연은 절망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수경을 게슴츠레 한 눈으로 쏘아 보았다. 소은의 말이 맞았다. 다른 이에겐 없는 동기가, 수경에겐 존재했다. 유일하게.

 

 “우리 엄마를 죽이게 한 장본인이…바로 그 사람이거든요.”

 

 제 무릎에 가지런히 손을 올려다 놓은 수경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오랫동안 간직했던 고백을 하듯 담담하고도 서글픈 투였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아빠는 없었어요. 엄마는 아빠가 사고를 당했다고만 말하고 그 외에는 말을 아끼셨죠.”

 “…….”

 “저는 개의치 않았어요.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고, 누가 놀려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전 정말 엄마만 있어도 행복했어요. 물론…엄마는 저랑 같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과거를 회상하듯 수경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엄마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절실히. 그러던 중 하숙집을 오픈하면서 구인 광고를 냈고, 엄마는 쇼고 씨를 만나게 됐어요. 나이도 훨씬 많고 볼품없어 보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어요. 엄마는 그냥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예요. 기댈 수 있는.”

 “…….”

 “하지만 쇼고 씨는 달랐어요. 그의 목적은 하숙집을 빼앗는 거였고, 오직 그걸 위해 엄마와 관계를 지속시켰죠.”

 “…….”

 “그러다 엄마는 우연히 쇼고 씨가 다른 친구랑 하숙집을 앗아갈 계획에 대해 통화하는 걸 듣게 됐고…화가 난 나머지 쇼고 씨에게 달려드는 엄마를 그는 계단에서 밀어버렸어요.”

 

 담담하게 말하던 수경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분노를 넘어선 슬픔이 묻어나왔다. 어딘가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

 

 “경찰들은 사고라고 결론을 냈지만 전 알 수 있었어요. 쇼고 씨가 우리 엄마가 죽은 걸 내심 좋아하고 있다는걸요. 하숙집에서 낸 수익을 모조리 그가 가져갔으니까요.”

 “…….”

 “그 후 6개월간 하숙집은 문을 닫았고, 전 엄마가 몰래 모아 놓은 돈으로 그동안 열심히 학업을 끝마쳤어요. 그리고 제가 다시 하숙집을 운영하기로 했을 때…그가 찾아왔어요. 6개월이 지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모습으로.”

 “…….”

 “그는 저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어요. 병이 들어 아무 데서도 써주지 않는다고.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까 여기 머물 수 있게만 해달라고.”

 “…….”

 “저는 곧바로 승낙했어요. 그가 고작 병 때문에 죽는 건 싫었거든요. 그는…우리 엄마한테 한 짓을 평생 상기하면서 죽어야 했어요.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고요.”

 

 과연. 수연은 이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수경이 보였던 지나칠 정도로 의연한 모습들을. 수경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쇼고가 죽었으니 수경은 제 목적을 이룬 것이었다. 어쩌면, 내일의 의미를 상실한 채로.

 

 “제 알리바이가 불충분하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제가 한 일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죽은 건 그 사람이니까.”

 

 밝음 뒤엔 딱 그만큼의 그늘이 존재했다. 수경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앞으로의 제 안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경을 보며 수연은 수경 또한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스스로 범인이 되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경위님!”

 

 수경의 의사를 보다 확실히 물으려 할 때였다. 덜컥, 하고 문이 열린 채 서류 더미를 한가득 들고 온 서정이 단숨에 수연한테 뛰어왔다.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너….”

 

 수연은 잔뜩 열이 오른 표정으로 서정을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겠지만, 또 완전히 그럴 수만은 없었다. 서정이 들고 온 서류는 사건에 관한 자료였다. 그것도 자신이 지시한.

 

 “일단 가장 먼저 부탁하셨던 최유정 씨의 노트북 말인데요….”

 

 허둥대며 서류를 뒤적거리던 서정은 말끝을 흐리며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드문드문 수연의 눈치를 살폈다. 수연의 표정은 일관됐지만, 서정은 그 속에서 수연이 지금 저를 얼마나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여기 있다!”

 

 서정은 수연에게 종이 더미를 내밀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수연의 심기를 혹여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며 서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기사의 출처가 되는 IP는 MKK 언론사에서만 사용되는 고유 IP에요. 작성 또한 그 계정에서, 웹상에 송신하는 것 또한 그 계정에서만 이루어지죠.”

 “그리고.”

 “그리고…그 IP로 로그인할 수 있는 컴퓨터는 MKK에서 지급된 것만 사용할 수 있어요. 제가 가져갔던 최유정 씨의 노트북이 바로 그 유일한 컴퓨터구요.”

 

 수연은 서정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서정의 품에 있는 서류를 멋대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한바탕 잔뜩 늘어놓더니, 어느 한 지점을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쇼고의 시체 사진이 찍힌 사진이었다.

 

 “경위님. 그럼…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제력을 잃은 듯 보이는 급작스러운 수연의 태도에 서정은 수경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반면 수연은 서정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사진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수연은 쇼고의 목에 남겨진 자국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낚싯줄에 의해 생긴 가는 선. 발목과 함께 빨갛게 이어진 선. 만약 수연의 추리가 맞는다면 범인은 분명….

 

 “경…경위님?”

 “스미레.”

 

 쇼고 사진 위에 손을 올린 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서정을 쏘아보았다. 수연의 눈엔, 결연한 의지와도 같은 것이 보였다.

 

 “모두 다 돌려보내. 밖에 있는 해림 씨도, 여기 있는 수경 씨도.”

 “네? 그럼 취조는….”

 “더 지켜볼 시간이 필요해.”

 “…네?”

 

 수연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확한 실체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범인의 실체는 보다 짙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모두를 다시 거실에 모이게 해 줘. 사건은…다시 원점이니까.”

 

 수연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서정을 보았다. 그리고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경에게 눈을 돌렸다. 유일하게 범인의 실체와 가까웠다고 여긴 수경의 허물이 완전히 벗겨지고 있었다. 수연의 생각대로라면 모두가 동일한 선상 위에 서 있었다. 어쩌면, 유정까지도.

 

 “강소은은…틀렸어.”

 

 소은은 동기의 유무를 지적하며 수경을 가리켰다. 사실상 가장 이 사건에서 그럴싸한 범인 역은 수경이 유일했다. 하지만 수연은 그런 고전적인 접근법으론 절대 범인의 실체를 쫓지 못할 걸 깨달았다. 그리고 수연은 확신했다.

 

 쇼고를 죽인 범인에겐…동기 따윈 없었다. 절대.

 

 

 *

 

 

 소리가 나지 않게끔 소은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단시간에 온몸에 있던 기운이 전부 빠져나간 것 같았다. 짙은 한숨을 쉬며 소은은 앞을 보았다. 눈앞엔 서정이 있었다. 갖은 서류를 잔뜩 들고 있는 채였다.

 

 “고생하셨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서정은 소은에게 서슴없이 말을 건넸다. 마치 평범한 안부를 묻는 듯 쾌활한 감정이 묻어 나오기까지 했다. 그 쓸데없는 밝음에, 소은은 무언가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경위님 스타일이 좀 빡세서…조사받으시는 분들이 애 좀 먹곤 하죠. 그래도 그만큼 추리력도 뛰어난 분이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무슨 걱정을 하지 말라는 건지. 범인이 잡히지 않을 걱정? 혹은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걱정? 소은은 의아했다. 서정은 지금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의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나온 저에게 격려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마치 소은이 결백하다고 굳게 있고 있는 듯한.

 

 “그동안 저희 경위님이 해결하신 사건들만 해도….”

 “저, 형사님.”

 

 한껏 밝은 표정으로 재잘대던 서정의 말을 끊은 채 소은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소은은 순간적으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할 말이 있는데요.”

 

 …모든 것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네? 경위님이 아니라 저한테요? 무슨….”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궁금한 표정을 짓는 서정에게 소은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둘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은밀한 대화가 오갔다.

 

 “전 태어날 때부터 귀에 장애를 갖고 살아왔어요. 아예 들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너무나 희미하게 들리죠.”

 “…네. 그래서 보청기를….”

 “공부를 할 땐 일부러 보청기를 끼지 않아요. 그 편이 훨씬 더 조용하니까요.”

 

 어딘가 절박하게 들리는 소은의 말에 서정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역시나 보청기를 끼지 않은 상태였지만, 쇼고 씨의 방 바로 아래층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어떤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 바로 계단을 올라갔어요.”

 “…….”

 “부정확하게 들렸던 그 소리는 분명 제 기억으로는….”

 

 소은은 이어서 말했고, 서정은 또렷하게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서정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소은의 말이 정말이라면, 범인의 실체는 명확히 드러난다.

 

 “경위님한텐 말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제 귀는 불안정한 상태였고, 또 그 사람은….”

 “네. 앞으로도 말하지 마세요.”

 “…네?”

 “믿지 않으실 거니까.”

 

 어딘가 서투르고 모자라게만 보였던 서정이 목소리 톤을 바꾼 채 엄중한 투로 말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서정은 낯선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이 일은… 우리끼리 만의 비밀로 하죠.”

 

 소은의 말을 전하면 정말 수연이 믿어주지 않을까. 아니다. 어쩌면 그 증언 하나에 수연은 수사의 방향을 전혀 달리할 수도 있다. 수연은 거짓일지도 모르는 작은 단서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서정은 이 비밀을 얼마간 간직한 채, 조금 더 수연을 지켜보고 싶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그 편이 더,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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