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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희망의 키워드
작가 : 르뽀라이터
작품등록일 : 201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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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죽었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제도 혼자였고 오늘도 혼자다.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며 홀로 우주를 누빈다.
늘 마음 한 켠이 허공에 붕 떠 있다.

퍽퍽하고 건조한 일상에 빛처럼 다가온 동아리 선배 김유현.
위태위태한 삶과 부서진 시간들이 그로 인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벚꽃이 만개한 스무살의 계절에 시작된 알쏭달쏭 담백한 연애담

※ 캠퍼스/달달/잔잔/치유/힐링성장물 ※

 
바닐라 라떼.
작성일 : 17-11-10 10:36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9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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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없이 우울해지는 밤이 있다. 오늘 같은 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빠는 나를 싫어하고 나는 아빠를 불편해한다. 그게 자꾸만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모르는 일반 전화기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이런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누군지 확인하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했다. 아빠였다.

 

 주말에 있을 결혼식 얘기였다. 그때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는 뭐 그런, 별 내용 없이 전화는 끊겼다. 목소리만 들어도 슬펐다. 딱히 눈물이 날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이불 속에서 끙끙거리며 울었다. 집안에 나뿐이라 아무 데서나 펑펑 울어도 될 일이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세상 어디에도 그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이불 속에서 혼자 울었다.

 

 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늘 아껴야 한다고 했다. 살아계실 땐 정말 지긋지긋해서 불쾌할 정도로 듣기 싫었다. 혼자 살게 되면 기필코 불도 마음대로 켜고 살고 물도 콸콸 쓰며 생활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러고 살고 있다. 불필요한 전기는 절대 쓰면 안 되고 물도 꼭 필요할 때만 틀어서 썼다. 그런 게 몸에 배어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방에 있을 땐 밤에도 웬만해선 불을 끄고 생활했다. 그런 내가 싫으면서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그걸 느낄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 아빠는 모를 것이다. 아빠는 나의 초중고 입학식은 물론이고 졸업식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고모가 아빠와 통화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었다. 고모는 격앙된 어조로 그래도 이만큼이나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잘 컸다고 말했다. 듣지 않아도 아빠는 별말 없이 그래, 라고 짧게 말했을 것이다. 고모만 쉴 새 없이 말하다가 전화를 끊었으니 그쯤이야 짐작할 수 있다.

 

 엄마는 나를 가진 걸 알게 되면서 암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그리고 치료를 받지 않는 대신 나를 택했다. 그토록 나를 사랑했던 엄마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목소리는 어떤지 어떤 말투로 말하는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얼마나 따스한지 정말 궁금하지만 평생 모르는 채로 그리워만 하며 살아야 한다. 그 흔한 사진 한 장 보지 못했다.

 

 나에게 엄마는 금기였다. 알면 안 되고 알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엄마를 싫어했다. 할머니가 엄마를 욕하면 그게 그냥 듣기 싫었다. 하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러면 내가 버려질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다. 그래서 착한 아이가 되려고 어지간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일곱 살 때 처음 본 아빠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자다 일어나 방문 틈으로 몰래 지켜봤다. 어쩐지 내가 보고 있다는 걸 두 사람이 알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주로 할머니 혼자 화를 내셨고 아빠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난 그때 아빨 처음 봤다. 낯선 사람이었지만 아빠를 만나 기뻤다. 늘 거짓으로 상상한 아빠를 말해왔다. 나도 이젠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당당히, 아빠에 대해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깜깜한 밤이니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다음 날 아침도 아빠는 없었다.

 

 엄마는 아빠보다 9살이 많았다. 결혼할 때부터 할머니와 고모는 그 점을 못 마땅해했다. 외가에서도 아빠를, 아빠 없이 자란 가난한 남자라서 싫어했다.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나로 인해 망가져 버렸지만 말이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모두 다 불쌍하다.

 

 외가에선 내가 태어난 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점이 독하다고 욕을 했다. 내 딸년 죽인 년 보기도 싫다고, 앙앙 우는 신생아였던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오늘을 저주할 거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 집안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그럴 때면 항상 나와 눈을 맞추고 울먹이며 말했다.

 

 “내 새끼 불쌍해 어떻게. 우리 애기 불쌍해서.”

 

 그때마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런 거 아니에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상처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울적하고 슬펐다.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가, 나를 싫어하는 외가와 아빠가, 나를 위해 죽은 엄마가 슬펐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아빠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걱정스럽기만 했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김유현에게 전화가 왔다. 어차피 집 근처이기도 하고 차를 가지고 갈 것이니 결혼식이 있는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호텔 앞에 도착해 웨딩홀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유현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벅찼다. 식은 12시 10분 시작이었다.

 

 나는 고모가 사준 원피스에 얇은 봄 코트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미용실도 다녀왔다. 평소엔 잘 신지 않는 힐까지 신었다.

 

 이런 모습을 동아리 사람들한테 보인다는 게 어색하고 창피했다. 집에 들렀다가 옷을 갈아입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김유현이 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오지 말라고 문자를 보낼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미 그러라고 약속을 했는데 그걸 취소하고 번복할 자신이 없었다.

 

 오빠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거울을 보고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오자 식이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 고모 옆에서 인사를 하는 아빠가 보였다. 고2 겨울방학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봤을 때와 지금 만난 아빠는 표정부터 달랐다.

 

 그땐 너무 정신없고 앞이 깜깜해서 아빠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할머니 산소로 올라가면서 아빠는 처음으로 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그때 나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손수건으로 코를 훔쳤다. 마음 같아선 양손으로 코를 팽 풀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지만 잡은 손을 놓으면 아빠가 너무 머쓱해 할 것 같아 놓지 못했다.

 

 아빠는 식장 안의 그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책을 읽었다.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한쪽 다리는 꼬았다. 문득 아빠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고모가 나를 봤고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아빠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꼭 남한테 하는 인사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어색했다. 내가 본 아빠 얼굴 중 오늘이 제일 밝았다. 그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빠의 피부는 반들거릴 정도로 좋고 머리카락은 윤기가 났고 입은 양복은 각이 지어 있어 중후한 신사 같아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빠는 내게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니?”

 

 나는 이렇게 답했다.

 

 “잘 지내셨어요?”

 

 딱 그만큼의 간격이 우리의 관계를 말해줬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랬고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서먹하고 어색했다.

 

 문득 내가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아빠도 내 손을 잡고 식장을 걸어가게 될까. 오늘 저 언니처럼 나도 아빠의 손을 놓으며 눈물을 훔칠까. 돌아서며 눈물을 훔치는 신부 아버님을 보니 갑자기 뭉클해졌다. 나는 나의 결혼식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다.

 

 식이 끝났다고 문자를 하자 김유현에게 지금 출발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너무 어색해서 차라리 전화기를 만지며 문자를 보내는 마음이 편했다. 그런 게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평소에 그러지 않았지만, 오늘은 유독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며 주절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식이 끝나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아빠와 얘기를 나눴다. 호텔 직원들은 다음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바쁜 손으로 달그락거리며 식기를 정리하고 있었고 신랑 신부의 친인척들은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빨리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거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아빠는 누구보다 여유롭고 느긋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당황한 나를 또렷이 보며 말을 이었다.

 

 “프랑스 여자야.”

 “프랑스 사람이요?”

 “사랑하는 사람이 프랑스 사람인 것뿐이야.”

 

 결혼한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자세히 묻지도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만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저 아빠의 코끝만 지켜봤다. 말할 때마다 살짝살짝 움직이는 코끝을 말이다. 그때부터 내 머리는 무언의 중력상태였다. 머릿속이 우주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굉장히 밝고 외향적인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 아빠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축하드려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며 웃었다. 가슴 속이 쓰라리고 따끔거렸다. 나는 입꼬리에 계속 힘을 주어 웃는 모양을 했고 눈에서 힘을 풀려고 애썼다. 나는 상냥한 사람이라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너도 성인이고 나이를 먹었으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니?”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이미 일곱 살 때부터 아빠를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를 이해했고 그게 내 운명인 것 같다.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들을 가감 없이 토해내고 싶었다.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았다.

 

 적어도 아빠의 사랑을 존중했다. 나를 미워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아빠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한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아빠라는 중심축이 내 안에서 무너져버리는 고통이었다.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극심한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그저 나라서, 나라는 이유로 버려졌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래도 아빠가 그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은 고마웠다. 그래도 나를 딸로서,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고독한 마음은 감출 길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또다시 아빠를 이해해야만 한다.

 

 세상에 사랑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세상에 사랑은 있고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문을 걸듯 속으로 읊조렸다. 순애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본 적도, 느낀 적도 없으니 그저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한다.

 

 변하는 마음은 있더라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한다. 엄마를 향했던 아빠의 사랑. 그런 엄마를 잊게 하는 그 사람, 얼굴도 모르는 프랑스 여자도 사랑일 것이다.

 

 아빠와 나 사이의 사랑은, 잘 모르겠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껴졌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생각을 해봤자 나만 아팠다.

 

 뾰족한 칼끝으로 내가 나를 헤집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한심한 생각이란 걸 알지만 자꾸만 삐져나오는 감정은 누르기가 힘들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어쩌면 아빠가 차라리 프랑스 여자를 만나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와는 거리가 아주 멀고 생각도,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어를 배워볼까 생각했다. 서로 무슨 언어로 대화할지 궁금했다. 영어일까, 불어일까. 아빠는 파리에서 살고 있었다. 아니, 실은 정확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불어를 곧잘 할 거란 생각을 했다.

 

 불어를 하는 아빠의 모습이 궁금했다. 꽤 멋지고 중후한 느낌이 풍길 것 같다. 나는 아빠가 이왕이면 멋지고 폼 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인생과는 아무 상관 없어도 좋으니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아빠의 딸인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시름 놓이는 기분이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좀 더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말도 하면서 그러면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착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좀 더 나를 생각하며 살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이건 언제나 그래왔다. 마치 이전엔 그러지 못했다는 듯 자꾸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이리도 답답한 걸까.

 

 가슴이 꽉 막혀 답답했다.

 

 -10분 후 도착해.

 

 김유현에게 메시지가 왔다. 반가웠다. 둘러댈 이유가 생겼다. 나는 전화기를 슬쩍 만지며 아빠에게 친구가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호텔 정문에서 아빠가 내게 말했다. 나는 괜히 지나가는 차를 보고 있었다. 그런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다음에 셋이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 여자가 너를 보고 싶어 해.”

 

 나는 그 말이 싫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벌써 미워하고 있었다. 나는 배제된 것처럼 들렸다.

 

 “네, 그렇게 해요.”

 “다음엔 좀 더 길게 대화를 나누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대화마저 어색하고 신경 쓰여 서로에게 눈치를 봤다. 전화가 울렸다.

 

 “받으렴.”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편히 받아.”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 모양을 가리며 받았다.

 

 [나 도착했는데, 혹시 너야?]

 “네?”

 “소영아!”

 

 앞에 세워진 차에서 김유현이 내려 이리로 걸어온다. 내 뒤를 보고는 갑자기 바쁘게 뛴다. 전화는 이미 끊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유현이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 선배입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며 아빠와 악수를 했다. 내게 이런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아주 어설프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저희 아빠고요, 학교 선배예요.”

 

 김유현은 달랐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오늘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빠는 꽤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 영화 재미있게 봐. 전화할게.”

 

 아마 남들이 보기엔 꽤 다정한 부녀 사이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적어도 김유현의 눈에는 그리 비쳤을 것이다. 이상하게 뿌듯했다.

 

 아직 우리를 보고 있는 아빠 때문인지 김유현은 굉장히 신사답고 정중하게 나를 대했다. 물론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유독 더 그렇게 느껴졌다. 차 문을 열어 줬다. 내가 올라타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빠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아빠는 손을 흔들었다. 꽤 근사한 풍경이었다.

 

 “오늘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어색해하는 날 위해서 하는 말임을 안다.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웃는 거 봐.”

 

 웃는 나를 놀렸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좋은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좋았다. 뒷좌석에서 담요를 가져와 내게 줬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편히 앉을 수 있었다.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김유현은 핸들을 다시 한번 고쳐 잡으며 말했다.

 

 “밥은 먹었으니까 차 마시러 갈까?”

 

 김유현의 운전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승차감이 좋은 차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주 편했다.

 

 “너무 조용한가?”

 

 차 안에 노래를 틀었다. 운전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굉장히 능숙하게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콩깍지가 씌었는지 별것이 다 멋있었다.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손은 창문에 기댔다.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왼손으로 이마를 만지기도 하고 코끝을 문지르기도 했다.

 

 오늘은 날씨도 끝내주게 좋았다. 햇빛은 나른하고 바람은 차가운, 내가 딱 좋아하는 날씨였다. 이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하면서도 졸렸다. 졸린 건 졸린 거고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생각보다 거리는 꽤 가까웠다.

 

 “너 아빠 닮았구나.”

 “그래요? 닮았어요?”

 “코가 똑같아. 딸은 아빠 닮으면 잘 산대.”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그런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김유현이 그런 말을 해주니까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우리는 별 대화 없이 극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1층에 있는 커피숍을 향했다.

 

 김유현은 내게 먼저 들어가라며 출입문을 열어줬다. 그 배려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물었다.

 

 “너는 내가 불편해?”

 

 대체 무슨 의도로 한 질문인지 당황스러웠다. 솔직하게 그렇다고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라고 둘러대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얼굴이 이렇게 가까워지니 꽤 곤란했다.

 

 “대답도 못 할 정도야?”

 “그거야, 뭐, 당연히, 당연한 거 아닌가.”

 “말 더듬는 거 봐.”

 “말을 더듬는 게 아니라,”

 “아니라. 뭐? 그래서 뭐 마실 건데?”

 “아이스 바닐라 라떼요.”

 “추우니까 뜨뜻한 거 먹자.”

 

 그리고 김유현은 아이스라는 내 말은 무시하고 따뜻한 바닐라 라떼 두 개를 주문했다. 진동 벨을 가져오는 발걸음이 껄렁껄렁 깡패가 따로 없었다. 코끝을 찡긋거리면서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 불편해? 안 불편해?”

 

 털썩 앉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점점 편해지고 있어요.”

 “진짜?”

 “가짜.”

 

 내 말에 김유현은 어쭈, 하더니 껄껄거리고 웃었다.

 

 “왜요?”

 “그냥, 그런 농담하는 게 신기해서.”

 

 나는 눈썹을 구부렸다.

 

 “신기해요?”

 “아니, 그러니까 귀엽다고.”

 

 김유현은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빤히 아는데! 그래도 설렜다.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결혼식은 어땠어?”

 “슬펐어요.”

 “슬퍼? 울었어?”

 “그냥 좀 우울하기도 했고 결혼식 보니까 뭉클하기도 하고.”

 “왜? 사촌오빠랑 엄청 친했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모르겠어요.”

 “아이고, 슬펐구나. 이유도 없이 그랬구나.”

 

 입술을 오물거리며 어린아이처럼 귀여운 말투로 말했다. 잠자는 아이 토닥이듯이 내 팔을 두 번 토닥였다. 나는 한숨 쉬듯 웃었다. 마침 진동벨이 울렸고 김유현은 일어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다정할까. 이런 게 몸에 밴 걸까.

 

 김유현은 바닐라 라떼와 쿠키, 그리고 치즈 케이크를 가져왔다.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는 나를 보며 말했다.

 

 “따뜻한 거 시키길 잘했지?”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기엔 아직 뜨거워 호호 불고 있었다. 거품이 촤르르 앞으로 밀렸다가 돌아오며 커피가 보일락 말락 했다. 김유현은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맛있다. 먹어 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눈빛이 그랬나, 아니면 말투가 그랬나. 어쨌든 나는 그 말이 참 다정하게 들렸다. 뭐 대단히 맛있는 거라도 된다고, 참. 나는 몇 번 더 호호 불고 그가 시킨 대로 커피를 따라 마셨다.

 

 “말 잘 듣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김유현은 그런 나를 힐끔 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새치름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포크로 케이크 앞 꽁지를 잘라 찍었다.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해서 한번 까닥하며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포크를 쥐고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달았다.

 

 “기분 좀 나아졌어?”

 

 생뚱맞은 질문에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김유현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의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결혼식, 우울하고 뭉클했다며.”

 

 의외로 섬세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 써줄 지는 몰랐다. 처음엔 솔직히 거짓말처럼 여겼다. 호감이랑은 별개 문제였다. 내가 지어낸 환상 속의 인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유현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속이 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나는 새삼스럽게 계속 반했다.

 

 “뭐야, 사람 민망하게, 반응도 안 해주고.”

 

 김유현은 테이블에 털썩 엎드렸다. 그 상태로 두 번째 손가락으로 컵을 톡톡 소리가 나게 몇 번 두드리더니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고마워요.”

 “뭐가?”

 

 그 말에 뭉클했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멋졌다. 진짜 배려처럼 느껴졌다.

 

 김유현은 왼손으로 턱을 받치고 볼을 비비적거렸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생각보다 애교가 있었다. 철없어 보이기도 하고 생각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애교라. 김유현이 애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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