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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소에 홀리다
작가 : 쪽달
작품등록일 : 2016.8.21

누구든 홀릴 수 있는 그 남자가 홀린 단 한 명의 여자.

서울남부지검 배속 3개월차 평검사 고미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너가 어떻게 여기에!"
"수석검사 전도솔입니다. 잘 해봅시다, 고미소 검사."

두 사람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3장 한 번 하자, 사랑 (1)
작성일 : 16-08-29 23:20     조회 : 357     추천 : 1     분량 : 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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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경기, 충청일대의 야산 등지에 버려진 컨테이너박스나 폐공장 등지에서 주로 횡행하던 불법 투견도박판이 서울 각지에서 음성적으로 자행되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경찰에서 잠입수사를 벌인 결과, 견주들을 포함해 9명을 구속할 수 있었습니다.”

 

 중대형 세미나실, 대형 프로젝터를 등지고 담당검사가 사건을 브리핑했다.

 

 맨 앞자리에는 서부지검장 인정미를 비롯해 서부지검의 중역들이 앉아 있었다. 그 뒤편으로 형사 3부의 사람들이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프로젝터 위로 검거 당시 현장 사진과 구속된 인물들의 얼굴이 떠 있었다.

 

 미소는 브리핑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 달 전, 경찰은 은평구 응암동의 아파트 단지 인근 야산에서 불법 투견 도박판이 벌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현장증거 확보를 위해 잠입수사를 벌인 끝에, 경찰은 증거를 손에 넣고 불법 투견 도박판을 벌인 일당 스물아홉 명을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거한 일당 중에는 판을 운영한 프로모터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없었습니다.”

 

 담당검사의 말에 형사 3부에 속한 검사들과 수사관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대개 도박판의 경우 판을 주관하는 프로모터 등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껴있기 마련이었다.

 

 도박판이 끝난 후도 아니고 진행 도중 기습검거를 했는데도 주요인물을 놓쳤다는 사실은 석연치 않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금번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검찰 측으로 이양한 거구나.’

 

 미소를 포함해 형사 3부서 사람들은 납득을 했다. 문득 미소는 도솔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은 나보고는 수사브리핑 잊지 말고 참석하라더니 자기는 어디 가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지?’

 

 의문을 품던 미소는 이내 실소를 빚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검사를 사칭하는 인간이 수사브리핑에 들어왔다가는 금방 들통 날 것이었다.

 

 ‘들어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들어온 거구나! 풋, 뻔뻔하게 굴더니 결국은!’

 

 남모르게 히죽거리던 미소는 문득 주위를 의식하고 표정관리를 했다.

 

 “검거된 스물아홉 명에 대해 심문을 했지만, 자백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 주요인물들의 몽타주를 작성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일대 조직폭력단의 가담흔적은 보이지 않았나?”

 

 채영환이 묻는 말에 담당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라소니파에 혐의를 두고 경찰 측에서 조사를 벌이는 중입니다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저벅, 저벅,

 

 그때 누군가 회의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수사 브리핑 도중에 갑자기 들어오다니,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있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걸어 들어오는 사람의 발걸음에서는 별 달리 다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 수석님?”

 

 허상국이 하는 말에 미소는 고개를 들었다. 도솔이 유유히 브리핑을 하고 있는 단상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수사브리핑 도중에 뭐하는 거야?’

 

 “오셨군요, 전 검사님.”

 

 뜻밖에 담당검사는 그를 반기며 단상에서 물러났다. 채영환 부장검사와 평범재 부부장검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별 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도솔은 목례를 하고는 단상에 올랐다.

 

 “다음 투견판이 벌어질 장소와 날짜를 알아냈습니다.”

 

 도솔의 한 마디에 회장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조금 전만 해도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다는 발표가 있었기에 도솔의 말은 더욱 파장이 컸다. 이어서 도솔은 스크린에 지도를 띄웠다.

 

 “견주들을 직접 심문한 결과, 다음 투견판이 열릴 장소는 홍은동 야산일대. 19일 21시라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예상 장소는 이곳과 이곳, 여기. 총 세 군데입니다.”

 

 도솔은 레이저포인터로 지도 위의 세 지점을 가리키며, 세 장소에서 투견판이 열릴만한 요건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근거를 제시했다.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도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입니다.”

 

 도솔이 말을 마치자 채영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관할서에 요청해 홍은동 야산일대에 인력배치하고, 전 수석 자네가 직접 현장지휘를 맡게.”

 

 “맡겨주십시오.”

 

 도솔이 브리핑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왔다.

 

 “과연, 전 검사군.”

 

 “역시 전 수석님이야.”

 

 감탄하는 형사 3부서 사람들 사이에서 미소는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이 사람, 프로야.’

 

 평검사로서 이력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보기에도 도솔의 수사브리핑은 완벽에 가까웠다. 짧은 시간에 급작스럽게 준비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미소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도솔을 인정하고 말았다.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미소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 부장검사님. 수사를 보조해줄 검사 한 명을 대동해도 괜찮겠습니까?”

 

 “원활한 수사를 위해서 라면야 얼마든지.”

 

 채영환이 짐짓 너그럽게 말했다. 이윽고 도솔이 좌중을 돌아보자 모든 평검사들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도솔의 시선이 미소가 앉은 곳에서 멈췄다.

 

 “고미소 평검사와 함께 가겠습니다.”

 

 추욱 늘어져 있던 미소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뭐어어어?’

 

 

 

 

 

 ***

 

 

 

 

 

 미소는 뚱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녀의 앞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건 현장 가는데 표정이 영 아닌데.”

 

 “글쎄요, 왜 일까요.”

 

 미소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딱딱하게 대답했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나야.’

 

 도솔이 미소를 지목한 이래로 허상국뿐만 아니라 양정운까지도 은근히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달갑지도 않은 상황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게다가 차 안에 단 둘이 있다는 것이 괜히 의식되기도 했다.

 

 ‘아냐, 직접 덜미를 잡을 수 있는 기회야.’

 

 미소는 애써 스스로를 독려했다. 노란색 등이 꺼지고 파란색 등에 불이 들어왔다. 도솔은 피식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핸들을 돌렸다.

 

 “홍은동 가려면 직진해야 하는데요.”

 

 의아해 하는 미소에도 아랑곳 않고 도솔은 오른쪽으로 꺾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알림이 괜히 미소의 걱정을 키웠다.

 

 도솔은 이어서 한적한 주택가 부근에 차를 세웠다.

 

 ‘어이씨, 뒤캐려다가 뒤 구린 일 당하는 거 아냐?’

 

 “엄한 짓 안하니 걱정 마. 정 안심되지 않으면 가방에 든 펜 꺼내도 돼.”

 

 ‘에에엥? 어떻게 그걸?’

 

 미소는 흠칫 놀랐다.

 

 가방 안에는 미리 구비해둔 펜 모양의 카메라겸 녹음기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가방 속에서 꺼낸 적이 없었다. 사실 사서 넣어두고 그녀도 깜빡 잊고 있었다.

 

 ‘귀신같은 추리력을 자랑하는 대전의 셜록홈즈, 패트릭 제인!’

 

 허상국과 양정운, 박성하가 늘어놓던 도솔의 자랑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뇌리에 스쳤다.

 

 하필 지금 그 바보 같은 자랑들이 떠오르는 걸까?

 

 “궁금해?”

 

 도솔의 얼굴이 다가오자 미소는 움츠러들었다. 점차 다가오는 해사한 얼굴에 미소는 고개를 있는 힘껏 뒤로 뺐다.

 

 ‘서, 설마 또?’

 

 다시 키스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미소는 고개를 확 젖히며 외쳤다.

 

 “아, 아아아안 돼!”

 

 “요력.”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미소는 거의 90도 각도로 젖히고 있던 고개를 스르르 원위치 시켰다.

 

 “…네?”

 

 “요력이야.”

 

 도솔이 싱긋 눈을 휘고는 얼굴을 뗐다.

 

 “요력이란 말씀이십니까.”

 

 미소가 되묻자 도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이 없던 미소의 얼굴이 이내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풉, 푸하하하하!”

 

 차 안이 떠나가라 웃던 미소는 금세 웃음을 뚝 그치고 정색했다.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전도솔 수석검사님. 다시 출발하시죠.”

 

 ‘요력? 말이 말 같아야 들어주든 말든 하지. 주폭이 심신미약 주장하는 것 같은 소릴 하고 있어. 하, 또 키스하는 줄 알고 쫄았잖아.’

 

 “왜, 키스라도 할 줄 알았어?”

 

 도솔이 날씬한 눈매에는 장난기를 가득 담으며 물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미소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어릴 적 유행하던 모 미륵을 자처하는 인물의 유명한 대사가 번쩍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옴마니 반매홈.’

 

 미소는 얼른 머릿속에서 애꾸눈 남자를 날려 보냈다.

 

 “아닌데요. 무슨 근거로 단정 지으시죠? 증거 가져오시죠.”

 

 미소는 빠르게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고미소 검사.”

 

 나직한 목소리가 미소의 귀에 닿았다.

 

 “나랑 한 번 하자.”

 

 ‘뭐?’

 

 미소의 눈이 황당함에 땡그랗게 뜨였다.

 

 [검찰 내 만연한 성희롱, 직급 이용한 성추행!]

 

 남부지검 근무시절 선배 여검사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과, 수백 장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기소장이 그녀의 눈앞에 파라락 날아갔다.

 

 ‘두고 보자 하니까, 사람을 뭘로 보고? 오늘 저 낯짝 내가 까부숴놓는다.’

 

 생전 안면도 없던 사람에게 첫 키스를 잃은 것도 모자라, 증거 불충분이지만, 성희롱 발언까지 듣고 있으려니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유효한 증거가 나왔건만 분노한 그녀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도솔의 잘난 얼굴에 주먹을 꽂을 생각밖에 없었다.

 

 “야, 내가 우스워?”

 

 미소가 주먹을 쳐들어 뻗는 순간, 도솔이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윽고 그는 미소에게 몸을 기울였다.

 

 “사랑.”

 

 도솔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흑요석처럼 새까맣고 투명한 눈이 미소를 비췄다.

 

 “나랑 사랑 한 번 하자.”

 

 “…….”

 

 ‘사…랑?’

 

 미소의 얼굴에는 조금 전 불타오르던 투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그녀의 뇌내에 구수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사아랑 사아랑 사아랑 내 사아랑이야하. 얼쑤.

 

 몽룡과 춘향이 어부바를 하며 닭살을 떠는 모습 위에 도솔과 그녀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미소는 오도독 닭살이 오른 팔뚝을 긁었다.

 

 ‘연애도 아니고 사랑…. 무슨 쌍팔년도 멘트를.’

 

 “쌍팔년도 멘트라니.”

 

 낮은 음성에 팔뚝을 긁던 미소는 움찔 놀랐다.

 

 ‘아무튼. 그러니까, 지금 이거… 그건가? 소위 고백이라고 하는 그런 거?’

 

 미소는 지금 상황을 머리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미소의 상식에서 보통 연애라고 하면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고, 호감을 쌓은 뒤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이었다. 다짜고짜 키스부터 하고, 역시 증거불충분이지만, 사랑 한 번 하자 한 마디로 시작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무슨 짜장면 내기도 아니고 진짜… 혹시 날 놀리는 거 아냐?’

 

 미소는 한순간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솔은 그녀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홱 도솔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미소는 짐짓 사근사근한 웃음을 띠었다.

 

 “저기요, 전 검사님. 솔직히 우리 잘 모르잖습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사랑타령을 해놓으시면, 제가 춘향이라도 되어야 하나요?”

 

 “춘향에 비교하다니 가상한데.”

 

 도솔이 은근히 비웃는 기색을 비치자 미소는 괜히 머쓱해져 입을 다물었다.

 

 “요는 모른다는 게 걸린다는 거군.”

 

 운전대에 팔을 걸치고 있던 도솔이 몸을 일으켰다.

 

 “내 눈을 봐.”

 

 ‘댁의 눈을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소는 순순히 고개를 돌렸다. 내심 도솔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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