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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2
작성일 : 17-11-10 01:25     조회 : 372     추천 : 0     분량 : 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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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까만 녀석의 눈동자는 어딘가 모르게 젖어있었다. 바람이 불어서 일까?

 

  그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마주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저 눈동자를 봤었지?

 

  나는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종이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현실로 끌어 당겼다. 종이 침과 동시에 밖으로 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본 후, 다시금 눈동자가 있을 그 곳을 쳐다봤을 땐, 아무도 없었다.

 

  녀석을 다시 본 것은 방과 후였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녀석은 흙바닥에 닿을락 말락하는 머리카락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흔들리고 있었다. 저러고 있으면 피 쏠릴텐데.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녀석을 바라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야자를 빠질 수 있는 이 황금 같은 날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었다. 물론 이대로 학원으로 직행해야하지만.

 

  “거기!”

 

  교문으로 가기위해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나는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 중에 이런 목소리는 없었다. 얇고 가늘며 높은 톤의 목소리. 쉽게 말해 여자목소리. 내가 아는 한 내 주변에 여자는 할머니뿐이었으므로 이런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는 없었다.

 

  “거기! 잠깐만!”

 

  살짝 돌아보자 철봉에 매달려 있던 녀석이 어느 새 내려와 있었다. 그래봤자 나와는 상관없는 일. 아마 기다리던 누군가가 나타난 모양이라며 나는 뻐근한 목을 두어 번 돌렸다. 우드득거리며 뼛소리가 무섭게 다가왔다. 이러다 목디스크 걸리는 건 아닌가 몰라.

 

  “스케치북 들고 가는 놈!”

 

  스케치북 들고 가는 놈?

 

  꽤나 상세한 설명에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원을 위해 하교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하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깐만. 그렇다는 말은...

 

  천천히 몸을 돌리니 녀석이 뜀걸음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는 녀석인가? 아니다. 모르는 녀석이었다. 태어나서 녀석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남녀공학이라고는 하지만 분반인데다가 중학교도 남중을 나온 내가 여자를 아는 것은 불가능 했다. 물론 그 중에 정환이처럼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는 능력자들도 있지만.

 

  “나?”

 

  숨을 헐떡이는 녀석을 향해 가볍게 물었다. 나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똑바로 달려온 것을 보니 내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사람 잘못 본 거 아냐?”

 

  숨이 차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인지 녀석은 고개만을 마구 저어대었다. 필사적으로 젓는 고갯짓에 녀석이 불러 세운 것이 나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어째서?

 

  “난 너를 오늘 처음 보는 데?”

 

  눈을 껌뻑이며 묻자 고개를 확 든 녀석의 얼굴이 바싹 다가왔다.

 

  “왁!”

 

  그 갑작스런 행동에 뒤로 두어걸음 물러난 나는 꽤나 볼썽사나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 맞지?”

 

  “뭐가?”

 

  “도서관!”

 

  도서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 내기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최근 도서관을 간 적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던 열람실에서 난 귀신을 봤었다. 하얀 원피스에 검은 생머리의... 어라?

 

  나는 녀석을 다시금 자세히 바라봤다. 옷은 너저분한 추리닝이라 잘 모르겠지만 머리길이가 얼추 그 도서관의 귀신 녀석과 비슷했다.

 

  “설마... 도서관 귀신?! 크억!”

 

  ‘귀신’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정강이에 어마어마한 킥이 선사됐다.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의 통뼈가 ‘똑’하고 부러질 것만 같은 킥이었다.

 

  “귀신이라니! 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설마, 그 날 귀신이라고 오해한 것 때문에 이렇게 찾아온 거야?”

 

  형광등이 껌뻑거리고 있어 열람실 안은 생각보다 꽤 어두웠었다. 번개가 열람실 내부를 비출 정도였으니까. 그 안에서 잠깐 얼굴을 본 나를 기억하고 쫓아왔다는 건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든가 어떤 겁 많은 녀석이 평범한 자신을 보고 놀라 혼비백산 하더라 라며 무용담으로 남기는 선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귀신이 아니라고 친히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를 찾은 거야 지금?

 

  “나처럼 예쁜 귀신 봤어? 완전 실례인거 알아?”

 

  세상은 넓고 돌아이는 많다고 어느 누가 그랬던가.

 

  세상이 넓은 지는 내가 다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돌아이가 생각 외로 많다는 것에는 극히 동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그 돌아이가 있으니까.

 

  “어... 미안해. 내가 겁이 많아서. 미안.”

 

  손목시계를 흘깃 보니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다. 얼른 학원에 가야만했다. 비싼 돈을 주고 입시 반에 들어갔으니 뽕은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사과했다.

 

  “뭐야, 그게 끝이야?”

 

  그럼 끝이지.

 

  녀석은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럼. 뭘 바라고 온 건데?”

 

  “너 나 몰라?”

 

  “도서관에서 귀신으로 착각한 사람.”

 

  울컥 짜증이 났다. 뭘 바라고 있는 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이거 봐도 돼?”

 

  녀석은 갑작스레 내 손에서 스케치북을 빼앗아갔다. 귀신이라고 오해했다며 실례라던 녀석이 멀쩡히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스케치북을 강탈해?

 

  내가 보라는 허락을 하지 않았음에도 뭐가 그리 당당한지 녀석은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와... 완전 못 그렸어.”

 

  “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녀석은 스케치북을 거칠게 닫더니 도로 나한테 내밀었다. 대뜸 남의 그림을 보더니 완전 못 그렸다고?

 

  “실례 찾던 녀석이 무슨 막말이야.”

 

  친구 놈이었다면 바로 주먹이 날아갔을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녀석은 태연했다. 보아하니 그림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칭찬 일색인 내 그림을 못 그렸다고 평가한 것은 태어나서 녀석이 처음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내 그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래에 유망한 화가가 되겠다는 말까지 들은 내 그림을 못 그렸다고 하다니.

 

  “귀신이야기는 핑계고 내 그림이 보고 싶어서 그랬다면 그냥 넘어갈게. 난 이제 학원 가봐야 해서 바빠.”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웬일로 여자가 말을 걸었다 했더니 이상한 녀석이 들러붙어 괜히 사람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한테 무슨 행운이 있다고.

 

  단호하면서도 기분이 팍 상했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말투에 녀석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살면서 만나지 않을 사람이다. 나도 걸으며 더 이상 녀석을 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게 학원에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일찍 가서 그림을 좀 빨리 완성시키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완성은 내일에나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여름! 내일 보자!”

 

  발걸음을 서두르는 데 갑작스레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몸을 휙 돌려 쳐다보니 녀석이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뭐야? 뭐야? 내일 보자고? 잠깐... 그 전에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갑자기 한기가 돌았다. 역시 녀석은 귀신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이름을 맞출 리가 없으니까. 나는 별안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쿵쿵 질주하기 시작했다.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를 쫓아다니는 녀석의 일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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