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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달의 마리아
작가 : 해우Manatee
작품등록일 : 2017.11.3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 찰리 채플린

 
13화
작성일 : 17-11-09 11:22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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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폭아

 

 “지금 격리구역에 사는 목동들만 천 명이 넘습니다. 저희가 몇 달 동안이나 랜다 마야크에 있는 녀석들과 내통할만한 놈들을 들쑤셨는데 한 놈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건 이상합니다. 아무리 통제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처음 이곳을 장악했을 때 죽인 양이 수만 마리입니다. 그런데 저항하려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제 이웃을 팔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건 저놈들한테 원래부터 존재했던 조직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루안 노파는 지난날 수수주 한두 잔을 걸친 취기에 이야기를 털어놓던 한 장교의 말을 기억했다. 팔갑의 인생을 규실의 귀부인들 눈치에 살아온 늙은이의 촉은 벼려지고 벼려져 예민하다 못해 날카롭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풍기는 위험한 기류는 오늘 그녀의 불안함을 고조시켰다. 루안은 하루 종일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틸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베르체인들의 격리구역을 멋대로 오가는 틸리아를 수용자의 월벽으로 착각한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댔다 거두는 일이 매일 몇 번씩 일어났고, 그녀는 하루에 반절 이상을 울타리 안쪽에서 보냈다.

 

 “아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사람들이 지나가지 말라고 해놓은 건데 자꾸 넘어가면 거길 지키는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겠니.”

 

 루안은 틸리아가 함부로 경계구역을 오가다 군인들이 섣불리 쏘아버린 총에 맞는 것보다 그녀가 붉은 머리의 목동들에게 정도 이상의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게 더욱 불안했다. 태어나서 붉은 머리칼을 한 사람들을 처음 본 아이는 차별로 점철된 북부에서의 삶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그들과 애착관계를 만들려 노력했고 이를 지켜보는 노파는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군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게 두려웠다.

 

 “그치만 저 안쪽에는 강아지가 정말 많은 걸요. 또 한스라는 분은 우리나라 말도 할 줄 알아요. 그분이 내일 모레쯤 다시 왔을 때 지난번에 태어난 강아지들이 눈을 뜨면 한 마리 가져와도 된다고 했는걸요.”

 

 목동 한스, 루안은 오늘만도 벌써 열 번도 넘게 들은 그 이름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 군인들이 목동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마다 하나같이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권력관계가 있을 것이라 말했고 노파는 한스가 병사들이 찾는 그 무리에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평생을 산과 들을 오가며 살아온 양치기답지 않게 두 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그런 사람이라면 무리를 대표하거나 철저하게 숨어 지내기 마련이지만 갑자기 틸리아가 등장하자 전담이라도 하듯 그녀를 상대했다. 사실 틸리아는 특유의 광염과도 같은 붉은 머리칼에 비해 다른 부분의 외모는 거의 북부인에 가까웠기에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면 그저 붉은 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북부인처럼 보였고,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경계구역에 침입해 목동 행세를 하는 일은 군인들 뿐 아니라 목동들에게도 강렬한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이어졌던 불편한 침묵을 깨고 그녀에게 먼저 다가간 건 수용자들이 일년에 걸쳐 철저하게 존재를 숨긴 한스였다. 그는 대부분이 문맹이기 마련인 양치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북부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으며, 군인들이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정체가 묘연한 수를 두고 그의 무구한 부하들이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강아지 좋아하나 보구나. 그 아이들은 보더 콜리라고 양치기개 중에서는 제일 똑똑한 애들이란다.”

 

 남부에 온 후로 며칠 동안 경계구역 온갖 곳을 들쑤시고 돌아 다녔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지 못해 그저 강아지나 만지던 틸리아는 그녀 앞에 갑자기 나타나 태연스레 북부어로 말을 걸며 다가오는 한스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어, 아저씨 우리나라말 할 줄 알아요?”

 

 “네가 심심해 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친구들이 말해주더구나. 이곳 사람들 중에는 북쪽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거든.”

 

 남부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설렘이 그녀의 온 머리를 번득였다. 그녀가 그토록 닿고 싶어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살았었다는 전원적인 평화가 실체로 다가왔다. 남쪽의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오랬동안 준비했지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의 꼬리가 얽혀 정작 이젠 한마디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별로 점철된 유년기, 어디론가 사라진 아버지, 강제이주. 열 살짜리 아이가 버틸 수 있는 깊이를 한참 넘은 괴로움 속에 살아온 소녀는 목에서 간신히 쥐어짜낸 소리로 질문했고, 친절한 고향인은 몇시간이고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목동 코네는 매일같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던 혼혈 꼬마와 한스가 이야기 하는 걸 좋지 않은 징조라 생각했다. 그에게 한스는 문맹인 양치기들에게 폭리를 취한 돈으로 제 자리를 유지하는 악한이었고,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빨다 전쟁이 일어나자 호국열사처럼 행동하는 위선자였다. 한스의 수도에서의 취급은 일개 시골 거간꾼이었지만 고르돈 안에서는 그의 수족들의 눈이 온곳에 뻗어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자리를 잃고 쫓겨나기 일수였고, 경계구역 안에서의 질서 뒤에는 사고사를 가장한 그의 반발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코네는 머리를 휘휘 젓고는 얼마 안남은 양들에게 피리를 불어주는데 집중하려 했지만 순간 피리 소리가 그의 귀에도 닿지 않을만큼 큰 소음이 나 그를 방해했다. 땅을 향해 낮게 날아오는 수송기는 랜다 마야크의 상공에서 상자들을 떨어뜨렸고 수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상자의 모서리마다 낙하산이 펼쳐졌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코네는 양들을 달래러 언덕을 내려가다 하늘을 올려보았고 곧 그자리에 얼어버렸다. 그날의 창공에는 끝이 보이지 않도록 줄지은 폭격기가 활공했고 곧이어 쏟아지는 탄두의 비에 목동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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