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숲 근처에 있습니다. 숲의 근방은 둔덕 같은 느낌이라 집들은 대부분 숲에서 떨어진 평지 부근에 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내 등굣길과 하굣길은 매우 깁니다.
“진주야, 내일 봐.”
“... 응. 내일 봐.”
겨울이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을 신경 쓰지 않는지 지함이는 인사하며 교실을 벗어납니다. 가방을 다 쌀 때까지 지함이를 제외한 다른 누구도 내게 인사하지 않습니다. 익숙한 일입니다.
생각해보니 집으로 곧장 가기 전 들려야 할 곳이 있었습니다. 번화가를 벗어나 철쭉이 가득한 길목에 들어섭니다. 모두 꽃길이라 부르는 길입니다. 사계절 내내 각종 꽃이 피는 길이죠. 겨울에는 빨간 동백이 탐스럽습니다.
꽃길을 지나다 보면 커다란 흰색 건물이 보입니다. 이 섬 최대의 병원입니다. 수술 및 큰 질병은 여기서 치료받지요. 그것을 제외하면 모두 가까운 한의원에서 진찰받습니다. 병원을 지나면 마당 가득 나리꽃이 폈습니다. 다홍빛이 선명해서 아름답습니다.
“저 왔어요.”
마당을 지나 집 문에서 소리쳐 부릅니다. 반응이 없네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개나리 이모. 심부름 왔어요.”
방에 들어서자 노란 눈에 다홍빛 비녀를 이용해 흰 머리를 틀어 올린 이모와 낯선 중년남성이 보입니다. 회색빛 눈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어디서 본 외모였습니다.
“손님이 계셨네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가씨가 오기 전에 딱 이야기가 끝났어요.”
“알려준 것 잊지 말어. 내일 시간 맞춰 오도록 하고.”
“네, 무당님.”
손님의 한 손에는 닭 모양의 빨간 문패가 들려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떠나갔습니다. 그 얼굴은 지함이와 똑 닮았습니다. 기시감을 느낀 것도 당연해요. 손님은 지함이의 아버지겠죠.
“그래서 넌 무슨 일이냐.”
“심부름이에요.”
가방에서 각종 반찬이 담긴 통을 꺼냅니다.
“미역국은 안 했냐?”
“그건 저희 집에 오면 드릴게요.”
“네 엄마가 싫어할 게야.”
“오셔서 자꾸 무당이 되라는 이야기를 하니까 싸우시는 거예요.”
“넌 언니와 같은 평탄한 길을 절대 못가. 언니는 그걸 몰라. 자질도 자질이며 무당이 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게야.”
“후후. 저는 무당의 재목이 아니에요.”
뚱한 표정으로 보는 이모님 얼굴에 토라졌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어머니가 바라는 길을 가고 싶으니까요.”
“언니는 어쩌자고. 어휴.”
한숨을 쉬는 사이 냉장고에 반찬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습니다.
“내일 일이니까 나와서 도와라. 일 값은 주마.”
“무슨 일인데요?”
“방금 온 양반이 이번에 이사 온 사람인데 서낭당 등이 궁금하다더구나.”
“저희 반에도 전학생이 왔어요. 아버지 직업이 고고학자라고 했어요.”
“고고학자건 뭐건 이 마을엔 성가시지. 몇 년 전 일이 또 일어나지 않길 원할 뿐이야.”
“이모님이 잘 설명하실 거잖아요. 걱정 안 해요. 전 이만 가볼게요.”
“언니에게 안부 전해주고. 내일 잊지 마라.”
“네, 내일 봬요.”
높이 쌓인 서낭당을 지나 저 멀리 집이 보입니다. 그리고 집 앞에 세 개의 점이 있었습니다. 다가갈수록 커진 점 둘은 부모님이었고, 남은 한 명은 지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