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별똥별
작가 : 보장대밥수
작품등록일 : 2017.11.5

별똥별은 별 그 자신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별똥별-3
작성일 : 17-11-08 15:57     조회 : 364     추천 : 2     분량 : 4851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1.

 봄비가 흑단들소 우두머리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 목을 한참이나 꺾어 올려다본다. 그의 뿔과 털에 엉겨붙은 검붉은 피와 날벌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흑단들소 우두머리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는다.

 "봄단풍 씨의 일로 왔습니다."

 이번에는 인사조차 올리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만든 이유를 서둘러 듣고 싶은 탓이다.

 "그럴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아니면 얼굴조차 보기 힘들구나."

 "그저 쫓아낼 생각으로 그리 하셨습니까, 아니면 진정 죽이고자 그리 하셨습니까?"

 "쫓아낼 생각도, 죽일 생각도 없었다. 그저 허락없이 지은 집을 부수고 밭을 엎었을 뿐."

 "하지만 그들은 쫓겨나고, 죽었습니다."

 "우리에게 몽둥이와 창을 들이대더구나. 우리는 걸어오는 어떤 싸움도 피하지 않아. 죽은 아이들의 시신은 거두어갈 수 있게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저희가 고마워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고마워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슬퍼하거나 화낼 이유도 없고."

 봄비는 어처구니가 없다. 그의 머리로는 어르신들의 안에 무신경함과 자애로움이 공존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아이들... 정녕 우리들이 당신의 아이가 맞기는 합니까?"

 "너희들 모두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이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아이였으면 뿔로 들이받고 발굽으로 짓밟지는 않았을 겁니다."

 "내 아이들은 집을 짓지 않는다. 밭을 갈지도 않는다. 오만하게 대지를 자기 소유로 삼으려 들지도 않아."

 수십 번을 들어온 얘기다. 봄비는 서서히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하지만 저는 집을 짓고 삽니다! 밭도 갈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 땅도 갖고 있어요! 그럼 저도 이제 당신 자식이 아니게 됩니까?"

 미동도 없던 흑단들소가 번쩍 일어섰다. 봄비는 자신을 일순간 덮어버린 그림자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런 말로 나를 아프게 하지는 말아다오. 봄비야. 내 아이야. 우리들은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게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나중에 다 자라서 집이나, 밭 따위는 갖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단다."

 "그런 걸 바랬다면 우리를 이 나무그늘 밖으로 쫓아내지 말았어야지요! 나무그늘 너머가 어떤지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으십니까? 우리가 사는 땅에는 계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녕 탐욕 때문에 밭을 갈고 내 것과 남의 것을 가른 줄 아십니까? 여름에 밭을 갈고 집을 짓지 않으면 어둡고 추운 겨울에는 죽어야 합니다."

 봄비를 내려다보는 누런 눈동자가 젖는다.

 "우리 고조할아버지 때도 그랬습니다! 능소니 님이 계실 적에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너럭바우를 보내어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봄비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하지 않으려 억누르던 말들이 터져나와 서로를 상처입히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멋지게 자랐습니까? 더 나빠지고만 있잖습니까! 이미 별빛이 쇠잔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점점 짧아지고, 곧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될 겁니다! 이미 수많은 당신의 아이들이 굶어죽고, 얼어죽었습니다. 이번에는 너럭바우 대신 제가 직접 왔습니다. 이 말을 하려고!"

 그는 열변을 토하다 말고 필사적으로 마음을 추스르고자 했다. 결코 입 밖에 꺼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말까지 터져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며칠 전 제가 사는 마을에서... 두 부부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흑단들소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뒤이을 이야기를 짐작했을까? 봄비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자기 아이를 맞바꾸어 삶아먹었습니다..."

 

 12.

 꼿꼿하게 서있던 흑단들소는 그 말을 듣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깜짝 놀란 봄비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이 울 줄도 아는가? 하지만 이 말을 듣고도 항상 그랬듯이 흔들림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면 봄비는 어르신들에게 품고 있는 마지막 기대마저도 거두었을지 모른다. 둘 모두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앉아 콧물깨나 흘렸다. 먼저 냉정을 되찾은 쪽은 봄비였다.

 "제 손으로 네 사람을 죽였습니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봄단풍 씨를 들이받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흑단들소는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어보였지만 입이라도 열라치면 히끅거리는 소리가 멎지를 않아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직 남은 별들도 언제 빛을 잃을지 모릅니다. 별의 그늘 아래 사는 모두가 죽고 말 겁니다. 하지만 제가 무서운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을 죽이고 삶아먹게 될까요?"

 봄비가 흑단들소와 눈을 맞추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당신들의 자녀가 아닌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르신들이 싫어하실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어요."

 나뭇가지에 피어있는 꽃들이 봉오리지기 시작한다.

 "'고기먹는 자'들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고기와 뼈와 가죽을 내어주더군요. 사람들이 기운을 추스리면 그들에게 보내어 사냥을 가르칠 겁니다. 이제 농사조차 지을 수 없으니, 말 못하는 짐승들을 잡아먹을 겁니다."

 흑단들소가 울기를 멈추었다.

 "왜 우리들을 나무그늘로 들이지 않으려는지 잘 압니다. 밭을 갈고 땅을 착취해야 할 정도로 수가 많아졌으니까요. 우리는 무분별하게 아이를 낳습니다. 이대로 나무그늘로 들어가봐야 먹고 살 만해지면 이 땅마저 좁아터지도록 아이를 낳을 겁니다. 결국에는 가족들을 부양할 땅을 놓고 다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두 함께 망하고 말 겁니다."

 "..."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죽는 게 아닙니다."

 흑단들소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래. 하지만, 봄비야. 잊지 말거라. 세상의 여름이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듯이..."

 봄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겨울이 오는 것도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기 위함은 아니란다."

 완연한 밤이 되었다. 봄비는 하늘을 수놓은 빛들을 올려다본다. 그는 어르신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13.

 나무그늘을 벗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따뜻했는데, 얼마 걷고 나니 금새 싸늘해지고 다시 걷고 나니 발에는 눈이 밟힌다. 봄비가 마을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벌써부터 고깃국 내음을 맡을 수 있다. 다른 짐승들도 마찬가지겠지.

 

 14.

 여전히 봄비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국물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남아있어서가 아니다.

  봄비에게는 육식이 어르신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듯 하다. 겨우 말 못하는 짐승의 고기로 그 단절을 기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르신들과 봄단풍 씨족 간의 일에 대해 마무리짓고 왔습니다."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함부로 나무그늘에 침범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을 묻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게 다요."

 그 말을 듣고도 사람들은 국그릇에 머리를 쳐박고 있다. 이제 어떻게 되어도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봄비 씨. 이 고기는 이번에 제가 직접 잡은 겁니다. 창을 만들고 던지는 방법을 배워왔거든요."

 "순록 한 마리 뿐이지만 이 정도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겁니다."

 그 중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건 너럭바우 뿐이다.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그는 여기저기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너럭바우야. 고기가 입에 맞지 않으냐?"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그 날 삶아진 아기들이 떠올라서 그럽니다."

 

 15.

 밤 사이 세 개의 별이 빛을 잃었다. 사냥을 시작한 봄비의 씨족에는 곳곳에서 실향민들이 의탁해왔다. 마지막까지 고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 일로 다시 씨족 회의가 열렸다. 봄비는 이번 회의를 목놓아 기다려왔다.

 "아직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마을은 몇 곳이 남아있습니까?"

 고작 여섯 사람이 손을 들었다.

 "충분한 소출이 나오는 곳은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점 좁은 곳에 모여들고 있다. 어르신들께 배운 대로는 살 수가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 마을은 있습니까?"

 동백꽃 씨만이 손을 들었다. 봄비는 씨족 우두머리들에게 흑단들소와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나바재 씨가 이야기를 듣더니 그에게 질문한다. 나바재 씨는 이미 멋들어진 가죽옷과 수많은 뼈 장신구를 두르고 있다.

 "고기를 먹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냥하는 순록들은 풀과 이끼를 먹고 자라니까요. 별들이 다 죽고 나면 풀도 이끼도 없어질 테고, 순록도 언젠가는 씨가 마를 겁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별을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소이다. "

 능소니가 반드시 돌아와 새 별을 띄워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동백꽃 씨도 이제는 마음이 급해보인다.

 "어르신들 중에서도 능소니 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소. 자네 힘만으로는 힘들 것이네."

 봄비가 좌중을 진정시키고 본론을 꺼낸다.

 "어르신들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죽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다치지는 않을까, 가르친 대로 잘 살고 있을까 항상 걱정하고 계십니다. 이번에 나무그늘에서 그것을 똑똑히 확인하고 왔습니다."

 한 때 그들과 척을 지겠다고 발악하던 봄단풍 씨족의 사람들이 잠시 숙연해졌다. 봄비가 그들을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모두 얼어죽는 한이 있어도 돕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도, 똑똑히 알게 되었소."

 모두 봄비의 말을 듣고 놀랐다. 동백꽃 씨마저 입을 다물고 있다.

 "별을 대신할 수 있는 빛을 찾지 못하면, 우리 모두 죽을 겁니다. 하지만 능소니 님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들도 새로 별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오."

 여태껏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잿빛양털 씨가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소. 하지만, 그러지는 마시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테니."

 봄비는 여전히 수염 너머로 그가 미소짓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봄비가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하다. 하지만 나바재 씨는 팔짱을 낀 채로 여유만만하다. 봄비가 한참 주위를 둘러보다 말한다.

 "나무그늘의 땅을 어르신들에게서 빼앗아야 합니다."

 
작가의 말
 

 악 4천자 초과해버렸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과하객 17-11-08 18:32
 
제1화에서 어설픈 평을 쓴 것 사과드립니다.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소재의 소설이네요. '바람계곡의 나오시카'정도.... 다음 회 뜨면 계속 보겠습니다. 결말이 어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보장대밥수 17-11-08 23:55
 
지속적인 관심 감사드립니다 :)
결말까지 읽을 수 있게 연중없이 꾸준히 찾아뵙겠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별똥별-알림판 2017 / 11 / 6 613 3 -
29 별똥별-29 (1) 2018 / 1 / 11 379 1 3406   
28 별똥별-28 (1) 2018 / 1 / 6 321 1 3644   
27 별똥별-27 (1) 2018 / 1 / 3 353 1 4728   
26 별똥별-26 (1) 2018 / 1 / 2 325 1 4099   
25 별똥별-25 2017 / 12 / 18 292 1 3886   
24 별똥별-24 (2) 2017 / 12 / 17 310 1 3831   
23 별똥별-23 2017 / 12 / 14 314 1 3454   
22 별똥별-22 (1) 2017 / 12 / 13 331 1 3974   
21 별똥별-21 2017 / 12 / 9 298 1 3590   
20 별똥별-20 (1) 2017 / 12 / 7 340 1 4364   
19 별똥별-19 2017 / 12 / 6 302 1 4612   
18 별똥별-18 (1) 2017 / 12 / 4 319 1 3972   
17 별똥별-17 (1) 2017 / 12 / 2 336 1 4274   
16 별똥별-16 (1) 2017 / 11 / 25 349 1 2095   
15 별똥별-15 2017 / 11 / 23 301 1 3659   
14 별똥별-14 (1) 2017 / 11 / 21 322 1 3660   
13 별똥별-13 2017 / 11 / 20 304 1 3899   
12 별똥별-12 (2) 2017 / 11 / 19 342 2 3461   
11 별똥별-11 (1) 2017 / 11 / 16 294 1 4133   
10 별똥별-10 (2) 2017 / 11 / 15 333 2 3592   
9 별똥별-9 2017 / 11 / 14 284 2 3894   
8 별똥별-8 2017 / 11 / 12 297 2 4626   
7 별똥별-7 (2) 2017 / 11 / 11 338 2 4356   
6 별똥별-6 2017 / 11 / 10 287 2 4985   
5 별똥별-5 2017 / 11 / 9 274 1 5033   
4 별똥별-4 2017 / 11 / 8 299 2 3952   
3 별똥별-3 (2) 2017 / 11 / 8 365 2 4851   
2 별똥별-2 2017 / 11 / 7 316 3 4051   
1 별똥별-1 (4) 2017 / 11 / 6 619 2 408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