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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너무나 특별한 소녀
작가 : 최윤슬
작품등록일 : 2017.11.5

'이대로 아무런 일도 없이 삶이 끝날지도 몰라.'
만사가 무기력한 열여덟 수연에게 너무나 특별한 찬별이 다가온다.
그들의 친구 프랑소와까지, 세 사람의 너무나 특별한 성장담.

 
-7화- 칵테일 파티 1
작성일 : 17-11-07 16:36     조회 : 311     추천 : 1     분량 :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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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칵테일 파티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아.’

 

  수연은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뱃속까지 울렁거렸다. 수연은 찬별과 함께 찬별의 남자친구 심재연의 집에서 여는 파티에 초대되었다. 찬별에게 그 소식을 카톡으로 받았을 때 수연은 누가 볼까봐 읽은 즉시 나가기 버튼을 눌러 대화 내용을 지웠다. 낯선 곳, 파티. 난생 처음 집을 속이고 경험하는 일탈.

 

  “머리를, 좀 묶어보자.”

 

  수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찬별이 그렇게 말했다.

 

  “아, 나 묶으면 완전 찐따 같아.”

  “가만히 있어봐.”

 

  찬별은 수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태도로 수연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그리고 아주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수연의 머리를 묶어놓았는데, 수연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자신의 모습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찬별의 손길을 거친 수연의 묶음 머리는 뭐랄까, 굉장히 자연스럽고 느슨하면서도 결코 쉽게 풀어지지는 않는, 매력적인 형태였다. 드라마나 CF에서 여배우들이 집에 있는 장면을 연출할 때 하는 그런 머리 모양이었다.

 

  “헐 너 금손이네.”

 

  수연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찬별은 허리를 흔들며 까맣고 반들대는 파우치를 열어젖혔다.

 

  “좋아, 좋아, 이제 얼굴에 색칠 좀 해볼까나.”

 

  찬별은 수연의 누르죽죽한 얼굴에 보라색 메이크업 베이스를 쭉쭉 짰다.

 

  “신데렐라한테 찾아온 요정 할머니가 된 기분인데!”

 

  파우더 냄새가 향긋했다. 찬별은 수연의 듬성듬성한 눈썹에 브라운 아이쉐도우를 부드럽게 채워주었다. 속 쌍꺼풀이 연하게 잡힌 눈두덩에는 크림색 셰도우를 발라줬고 젤 아이라이너로 속눈썹 사이사이를 꼼꼼히 채워주었다.

 

  “아, 눈 좀 뜨지 말아봐.”

 

  찬별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수연은 점차 변해가는 자신의 얼굴이 궁금해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찬별이 립글로즈를 발라주는 느낌이 간지러워 수연은 키득거렸다.

 

  “자꾸 그러면 확 뽀뽀해버린다.”

  “알았어, 미안.”

 

  수연은 잠자코 찬별의 손길에 얼굴을 맡겨두었다.

 

  ‘얘는 대체 언제 이렇게 고급 화장 기술을 익힌 거야?’

 

  전교에서 3, 4등을 놓치지 않는 박찬별이 이토록 화려한 화장술을 지니고 있다는 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수연은 자신과 찬별은 같은 17년을 살았지만 그 시간을 채운 각자의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자, 눈 떠봐!”

 

  수연의 눈앞에 커다란 거울이 와 빛을 반사했다. 수연은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송보송한 피부에 또렷해진 눈, 윤기어린 입술이 굉장히 어색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찬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 역시 고등학생보다는 아가씨에 가까웠다!

 

  “나...... 왜 이렇게 청순함?”

 

  수연은 찬별의 코디대로 작은 도트 무늬가 수놓인 민트 색 원피스를 입고 박시한 크림색 카디건을 걸쳤다. 늘 스키니진에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것이 익숙했는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으니 대학생이 된 것만 같았다.

 

  “어쩌냐. 겉옷은 입는 것마다 팔이 짧으니.”

 

  문제는 외투였다. 찬별의 외투 중에서는 수연의 몸에 맞는 것을 고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외투 같은 경우 사는 족족 팔을 늘려야 하는 수연이었다.

 

  “그냥 내 코트 입지, 뭐.”

 

  찬별은 수연의 너무나도 학생스러운 블랙 코트를 보며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가서 곧장 벗으면 되니까.”

 

  찬별은 머리에 말아두었던 스펀지 컬을 풀고 입술에 버건디 빛깔의 립스틱을 톡톡 찍어 발랐다. 구불구불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에 꼭 어울리는 색이었다. 찬별의 아슬아슬한 아이라인을 보며 수연은 감탄했다.

 

  “너도 뿌릴래?”

 

  옷을 갈아입은 찬별이 작은 유리병에 담긴 향수를 찰랑찰랑 흔들어보였다.

 

  “넌 도대체 안 가지고 다니는 게 뭐야?”

  “변신 도구는 다 이 안에 들어있어.”

  “도라에몽인 줄.”

 

  찬별은 파우치를 들고 웃었다. 수연은 찬별에게 손목을 내밀었다. 찬별은 향수를 수연의 손목에 살짝 뿌려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양쪽 귀 뒤에도 조심스럽게 향수를 뿌렸다. 은은하고 달콤한 과일 향기가 방 안에 퍼졌다.

 

  찬별은 몸에 딱 달라붙는 베이지색 니트 원피스에 블랙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었다. 빈티지한 가죽 라이더 재킷을 걸치는 것으로 찬별의 코디는 끝이 났다.

 

  “변신 완료!”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도는 찬별을 보며 수연은 깔깔 웃었다.

 

  찬별은 재연에게 친구를 보여주는 일이 처음이었다. 언젠가 친구를 보여주자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게 수연이 될 줄이야.

 

  ‘친구......!’

 

  하기야 그동안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누가 되었든 두루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지 못한 채 깊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비밀이 발각된 게 편안하다는 생각을 찬별은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수연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진짜 모습?’

 

  찬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모습이란 게 뭘까. 이것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그렇다면 학교에서의 모습, 엄마 앞에서의 모습은 가짜 모습인 걸까? 가짜 모습......

 

  “떨린다. 네 남자친구가 날 별로 안 좋아하면 어쩌지?”

  “그럴 리 없어, 넌 내 친군데.”

 

  ‘진짜’와 ‘가짜’에 대해 생각하면 찬별은 머리가 아파졌다. 고작 17년 정도를 살았지만 살면서 너무 많은 비밀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때엔 엄마와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찬별은 재연에게도 비밀을 갖고 있었다.

 

  “절대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돼, 알았지?”

 

  찬별은 수연에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설명한 약속을 다시 한 번 주입시켰다.

 

  “걱정 마! 너랑 난 지금 스물 셋!”

 

  찬별은 재연을 처음 만났던 클럽에서 나이를 스물셋이라고 알려주었다. 때문에 재연은 찬별을 두 살 연하의 20대 여자로 알고 있었다.

 

  재연의 집은 신림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빌라의 지하방이었다. 작은 방이 두 개, 부엌이 하나, 화장실이 하나 딸린 어둡고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예술가의 작업실처럼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수연은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친구(프랑소와를 비롯한)의 집, 친척의 집 말고 남의 집에 들어선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그것도 낯선 어른 남자의 집에!

 

  “오느라 고생했네.”

 

  재연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수연과 찬별을 맞았다. 수연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드는 것으로 쑥스러운 첫 인사를 마쳤다.

 

  찬별이 라이더 재킷을 벗는 타이밍에 수연 역시 잽싸게 검정색 학생 코트를 벗었다. 재연이 그것을 걸어두라며 의자를 가리켰을 때엔 약간의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스물셋. 스물셋. 틀림없는 스물셋!’ 마음속으로 그런 주문이나 외우고 있었다.

 

  “뭐 좀 도와줄까?”

 

  후라이팬을 불에 달구는 재연을 보며 찬별이 물었다. 재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수연에게 방 구경을 시켜주라고 일렀다.

 

  아직 집에는 재연과 수연과 찬별 셋뿐이었다. 이번 파티의 멤버는 재연과 함께 산다는 남동생 두 명 중 막내 동생과, 그가 데려온다는 친구까지 다섯이었다.

 

  “어때?”

 

  찬별이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인지 몰라서 수연은 그냥 배시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면 어떻겠는가. 낯선 곳에 낯선 모습으로 온 이상 이 낯선 기분에 적응을 하는 수밖에.

 

  찬별은 재연의 파랑색 침대에 대자로 눕더니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토했다. 수연은 방 끄트머리에 어색하게 서서 선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재연의 선반에는 피규어가 가득했다. 수연이 그토록 잊고 싶은 징그러운 코스프레의 추억을 안겨주었던 만화 원피스의 피규어들부터 시작해서 디즈니, 픽사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피규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수연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찬별의 남자친구 재연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을 느꼈다.

 

  찬별을 통해 그와의 만남이 홍대의 한 클럽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진작 들었다. 클럽이라니. 수민을 통해서만 들어본 적 있던 미지의 공간이다. 시끄럽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에 달떠있다는 어두운 지하 세계.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찬별과 재연은 서로를 알아본 걸까? 낯모르던 사람과 얼굴을 트고 곧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게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찬별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방 되게 독특하지?”

 

  찬별의 시선을 따라 수연도 천장과 벽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천장에는 카키색 비행기 모양의 풍선이 둥실 떠있었다. 만지면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벽에는 어디에서 저 많은 걸 구했을까 싶은 엽서와 포스터, 사진, 그림 등이 나름의 질서에 의해 붙어있었다.

 

  “재연오빠, 스페인에 갈 거래.”

 

  찬별이 한 사진 앞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수연은 사진 속 공간이 스페인이려니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이민.”

  “아예?”

 

  수연을 눈을 동그랗게 뜨자 찬별은 눈을 찡그렸다.

 

  “언제 갑자기 떠나게 될지 알 수가 없어.”

 

  찬별의 목소리가 슬프게 느껴져서 수연도 덩달아 슬픈 기분을 느꼈다.

 

  “가서 핫도그 가게를 열 거라나.”

  “핫도그......? 김치 핫도그 같은 거라도 만들 건가?”

 

  수연의 실없는 말에 찬별이 푸하,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언제가 됐든, 재연오빠 떠날 때 나도 같이 갈 거야.”

  “캐리어 안에 숨어서?”

 

  찬별이 깔깔 웃었다.

 

  “좋네,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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