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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3장 : 악몽의 밤
작성일 : 16-08-29 15:35     조회 : 657     추천 : 2     분량 : 8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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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선은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학창 시절엔 통통했었던가. 떠올려보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뭣보다 이 녀석이랑 그렇게 친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연락까지 할 정도로.

 

 “네가 B구역에 있단 얘길 듣고 며칠 동안 계속 연락했었어, 건호야.”

 

 다 갈라져 가는 목소리로 병선이 말했다. 눈 밑에 깔린 그늘이 깊게 패인 구멍처럼 보였다.

 

 “B구역 내에서는 전파 안 터지는 거 알잖아?”

 

 “알아.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계속 했어. B구역 내에서도 외곽 지역에 있다면 전화가 될 수 있다고 누가 그랬거든. 그래서-”

 

 “그래서 내가 왔고.”

 

 그의 말에 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장의사 일을 하고 있다고 누가 얘기해줬어. 정말이야?”

 

 “아니.”

 

 그는 짧게 답하고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는 별로 입에 맞지 않았다.

 

 “그, 그래? 그럼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NOUN에서 일하고 있는 거야? 너 그 왜, 예전부터 총 잘 쏘고 했-”

 

 “아니라고.”

 

 그가 거칠게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일순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아, 미안해. 그냥 궁금해서…….”

 

 “그냥 궁금한 것뿐이면 그만 간다.”건호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아니야. 나는 그냥…….”

 

 병선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냥 의뢰를…, 의뢰를 하려고 했어. 네가 장의사라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말에 그렇게 매달리지 마.”

 

 “알아,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겠어. 그래도 제발……, 얘기 좀 들어줘.”

 

 울먹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병선이 애처롭게 매달렸다. 어렴풋하지만 학창 시절의 병선의 모습이 떠올랐다. 울보였지만 그래도 통통한 게 귀여웠던 소년.

 

 제길. 건호는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해지기 전까지는 구역 내로 들어가야 해. 용건만 빨리 말해.”

 

 “응, 고마워.”

 

 병선이 미소를 지었다.

 

 “기억나? 예전에도-”

 

 “용건만.”

 

 건호가 날카롭게 말을 자르자, 병선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

 

 “우리 엄마 알지?”

 

 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화려한 색감의 조명, 발랄한 음악들. B구역과 달리 A구역은 너무 밝았다. 자신이 그곳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지금 많이 편찮으셔. 원래는 많이 괜찮았는데 우리 형이 집에 안 들어오고 나서부터 계속 몸져누워계시고 있어.”

 

 “너희 집안 사정이랑 의뢰랑 도대체 뭔 상관인데?”

 

 건호가 턱을 괴며 물었다.

 

 “우리 형, 너 네 동네에서 살았거든. 운석 떨어지고 나서 연락이 끊겼어.”

 

 “형을 찾아 달라?”

 

 병선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사이를 뒀다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조 작업은 더 이상 안 한다고 했고, 그렇다고 엄마 그러고 계시는데 가만있을 수도 없고…….”

 

 속이 타는지 병선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근데-”

 

 “근데 장의사를 고용하기에는 돈이 많이 들지. 그래서 날 부른 거다, 이거지?”

 

 건호의 말에 병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에어컨 바람이 춥게 느껴졌다.

 

 “너, 장의사가 무슨 일 하는 지 알아?”

 

 식탁 위에 맺힌 물을 검지로 이리저리 찍어 움직이며 건호가 물었다.

 

 “B구역 내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거잖아.”

 

 유독 ‘구조’라는 단어에 힘이 빠져 있었다.

 

 “맞아, 구조야. 근데 왜 ‘장의사’인지 궁금한 적 없었냐? 구조대나 영웅이 아니라.”

 

 건호는 물 묻은 검지를 바지에 비비며 말했다.

 

 “한 번도 구해낸 적이 없어서야. 무능해서 못 구하는 게 아니야. 아무리 구하고 싶어도 시체 밖에 없거든.”

 

 그가 병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장의사’야. 가봤자 찾아내는 건 시체니까.”

 

 병선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녀석의 어깨가 더욱 좁아보였다. 더 이상 뭔가를 올려놓으면 곧바로 무너질 것 같다.

 

 “그래도 찾고 싶다면 찾아 줄게. 비용이야 네가 하자는 데로 해주지. 근데 괜찮겠냐? 너희 어머니 때문에 찾는 거라면서? 시체 사진 보면 너희 어머니, 이번엔 아예 못 일어나실 것 같은데?”

 

 그렇게 비아냥거려도 병선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커피 잔을 들었지만 싸늘하게 식은 커피는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았다. 더 이상 받아주기 힘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자마자 병선이 똑같이 일어서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급하게 일어선 탓에 녀석의 몸이 식탁에 부딪쳤다. 커피 잔이 엎어지고 커피가 쏟아졌다.

 

 미안해. 그래도 부탁할게.

 

 그 말에 약간 후회가 일었다. 그리고 조금은 부럽기도.

 

 싸늘하게 식은 커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눈을 떴다.

 

 주위는 아직 어두웠다. 새카만 창문 사이로 부스러기 같은 별이 박혀 있었다.

 

 또 같은 꿈을 꿨다. 항상 밤마다 꾸는 꿈.

 

 이미 예전에 잃어버린 아내와 아들이 나오는 꿈. 그리고 아내는 오늘밤도 시체가 되어 그를 물어뜯어 죽였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건호는 주머니에서 아버지가 줬던 기계식 시계를 꺼냈다. 전파가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물건이다.

 

 2시. 달빛에 비친 시계바늘은 그렇게 보였다.

 

 건호는 몸을 일으켜 침대 가에 앉았다. 피로는 느껴졌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달빛이 부드럽게 도시의 윤곽을 걷어내자 시체 울부짖는 소리가 온 거리로 울려 퍼진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그냥 눈을 감았지만 괜한 짓이었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는 아내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맴돌았다. 열린 창문으로 밤거리 어딘가에 있을 망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날 이후 계속되는 악몽. 과정이야 어쨌든 그 결말은 항상 똑같았다. 언제나 시체가 된 아내가 그를 죽였다. 그리고 고통에 겨워 간신히 깨어나면 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통에 미칠 듯한 죄책감이 다가들었다. 괴로웠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시체를 죽였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괴로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대체 얼마를 죽여야 이 지옥에서 해방될까. 아니 모조리 없애 버리고나서도 과연 편히 잘 수 있을까.

 

 냉기에 몸이 떨렸다. 어두웠지만 문이 열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문을 열어뒀던가.

 

 “거기 누구냐?”

 

 평소라면 총부터 들었지만, 문 너머로 누가 있는지 알아챈 그는 그렇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다소 위협적이었는지 상대는 아무 대꾸 없이,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문득 미안해졌다. 수개월동안의 습관일 뿐 딱히 위협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그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려 다시 상대를 불렀다.

 

 “괜찮아, 들어와도 돼.”

 

 또 다시 침묵. 그가 애써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자 그제야 방문이 열렸다. 민아가 잠옷 차림으로 문지방에 서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운지 몸만 베베 꼴 뿐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진 않았다.

 

 “무슨 일이니? 혹시 아저씨한테 할 말 있니?”

 

 다시 침묵. 그러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로써는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

 

 “아저씨가 한 번 맞춰볼까? 화장실?”

 

 소녀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럼 물 마시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역시 말은 없었다.

 

 “그래, 알겠어. 근데 왜 방 앞에 있었어?”

 

 또 다시 침묵.

 

 “괜찮아. 말해도 아저씨 화 안 내.”

 

 “정말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한참 고민해서 나온 소리가 너무 짧아 그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럼 정말.”

 

 “물 마시려고 나왔는데, 아저씨가 막 소리를 질러서……, 그래서…….”

 

 소녀는 더 말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소리 질렀었나. 무의식적으로 꿈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아내의 얼굴이 다시 스쳐지나간다. 사람 형태가 아니라 다 죽은 시체 형태로.

 

 “괜찮아, 이리 와봐.”

 

 그는 가만히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겼다.

 

 아직 경계하는 강아지처럼 소녀가 머뭇머뭇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녀를 침대 위에 올렸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는 천천히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냥 조금 무서운 꿈 꿔서 그렇게 소리 지른 것 같아.”

 

 “정말요?”화들짝 놀란 목소리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정말로. 괴물이 나오는 꿈이었어.”

 

 어둠 속에서도 소녀의 눈이 커지는 게 확연히 보였다. 그렇게나 충격적이었을까?

 

 “정말요? 아저씨도 무서운 꿈 꿨어요?”

 

 그게 놀란 부분이구나.

 

 “그래, 정말이라니까. 아저씬 매일 꿔. 괴물들이 아저씰 잡아먹으려고 계속 쫓아오는데 무서워서, 어휴. 너도 무서운 꿈 꿨니?”

 

 “네.”

 

 “무서웠겠다.”

 

 “무서운 거 보다 슬펐어요.”

 

 “왜?”

 

 “엄마 아빠가 밖에 있는 괴물로 나와서요.”

 

 웃음이 멈췄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다른 부모와 어울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얘기한 게 생각났다. 아이들은 너무 무섭다고, 지나치게 솔직해서.

 

 “괴물들 본 적 있니?”

 

 “TV로만요. 옛날에 TV에 나왔을 때 잠깐 봤어요. 아빠는 유령들이라고 했어요. 근데 오빠가 저는 그런 거 보면 안 된다고 다른 것만 틀어서 제대로 못 봤어요.”

 

 오빠 된 사람이라면 당연한 선택이다.

 

 “신기하네, 아저씨도 그런 꿈이었는데.”

 

 “아저씨 엄마 아빠도 괴물로 나와요?”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바스러진 기억보다 소녀의 순진무구한 눈동자가 그를 아프게 했다.

 

 “비슷해. 그 사람들도 아저씨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이니까. 근데 둘 다 괴물이 되진 않아. 한 명만 괴물이 되고 다른 한 명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누군데요?”

 

 “한 명은 어른, 한 명은 아이야.”

 

 그가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 너 만한 아이였는데, 사라졌어.”

 

 “어디로요?”

 

 “그 얘긴 그만하면 안 될까? 계속해서 무서운 얘기만 하니까 이러다가 정말 한 숨도 못자겠다. 아저씨도 잠 안 오는데, 우리 잠 올 때까지 뭐라도 할래? 책이라도 읽어 줄까?”

 

 “오빠가 밤에는 딴 짓하지 말고 자야 된 데요…….”

 

 좀 전의 솔직함은 어디가고 소녀는 말끝을 흐렸다.

 

 “오빠가 무서워?”

 

 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절 싫어해요.”

 

 “에이, 그런 오빠가 세상에 어딨어?”

 

 “진짜에요. 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제가 너무 오빠 말도 안 듣고 나쁘다고 싫어해요. 아까 아저씨가 절 봤을 때도 저 때문에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막 화내면서 때리려고 했어요.”

 

 “오빠가 때리니?”

 

 “가끔씩요. 정말 제가 잘못하면 그래요.”

 

 가슴이 철렁했다. 한 손으로도 감싸 쥘 수 있는 아이의 머리가 더욱 작게 느껴졌다. 그는 민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아저씨가-”

 

 뭘 할 건데? 불현듯 스치는 질문.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나그네다.

 

 “오빠한테 잘 말해줄게. 자, 책 읽으러 가자.”

 

 얼버무리듯 민아를 안고서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팔에 안긴 채 소녀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민아가 가져 온 책은 ‘은혜 갚은 까치’였다. 모서리가 헤지고 얇은 쪽수에도 책등에서 금세라도 페이지가 모조리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잠깐 동안 겉표지를 쓰다듬었을 뿐인데도 갑갑함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는 다르다. 이 아이는 얼마나 긴 어둠 속에 있었던 걸까.

 

 “이거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야? 딴 건 없어?”

 

 “이게 여기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재밌어요.”

 

 여기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알게 되면 더 갑갑해질 것 같아 묻질 못했다. 그는 말없이 겉표지를 넘겼다.

 

 “옛날 옛날에…….”

 

 사포 같은 거친 목소리.

 

 “아, 잠깐만.”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만 사용했던 입에서는 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어흠, 아, 아. 목소리가 잘 안 나오네.”

 

 계속 헛기침하는 그를 보며 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냥 읽어줘요.”

 

 “그럼 목소리 이상하다고 뭐라 하면 안 돼.”

 

 그도 소녀에게 마주 웃어 보이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그는 뭔가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다. 뻑뻑한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말투는 차츰 부드럽게 변해갔다. 그의 입에서 그가 잊었던 목소리가 한줄 한줄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에게 이런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니 있었던 게 아니라 잊었던 것뿐이다. 옛날 옛날에 아내는 항상 그의 목소리가 곰 같다고 했었다. 그가 장난스레 섹시하냐고 물으면 그녀는 느끼하다며 웃어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아내는 그를 사랑해주었다. 이제는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됐지만.

 

 “선비는 까치를 잘 묻어주었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났다. 그는 책을 덮었다. 소녀가 답례로 환한 미소를 보여준다.

 

 “재밌었니?”

 

 “네.”

 

 민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다운 귀여운 움직임이다.

 

 “아저씨도 재밌었어요?”

 

 “음… 재밌긴 한데 아저씨는 별로 이 얘기 안 좋아해.”

 

 “왜요?”

 

 외계인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글세, 왜일까……. 아저씨 생각에는…….”

 

 전혀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해피엔딩은 식상한 결말이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세상사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원해도 인생은 결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을 수 없다. 해피엔딩은 정작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비는 까치를 묻어주었을 뿐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몇 번을 읽어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해지지 못한다. 결국 그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결말.

 

 “그냥 마음에 안 들어.”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이었다. 민아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민아는 왜 이게 재밌는데?”

 

 “음…….”

 

 금방이라도 자신 있게 대답할 것 같았던 소녀는 입을 앙 다문 채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순수함에 이유는 없다.

 

 “저도 그냥요.”

 

 “그래, 알았어. 아직 잠 안 오면 또 한권 읽을까? 이번에는 민아가 읽어줄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다른 책을 펼쳤다.

 

 그 때 창틀 너머로 다시금 시체가 우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몸을 약간 떨었다.

 

 “무섭니?”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빠가 그랬는데, 유령은 나쁜 게 아니래요.”

 

 소녀가 말했다.

 

 “뭐?”

 

 “유령은 억울해서 그냥 떠돌아다니는 것뿐이래요. 그래서 사람을 해치지 않는데요.”

 

 소녀의 두 눈이 그를 들여다본다. 아내의 눈이다. 필사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었던, 그 때의 눈이다.

 

 “진짜에요?”

 

 “잘 모르겠지만, 저 애들은…….”

 

 굳이 진실을 알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을 거라면, 그렇다면…….

 

 “맞아, 안 해쳐. 괜찮아.”

 

 그 말에 소녀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아빠도 저기 있을까요?”

 

 “글쎄,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자. 지금은-”

 

 “아빠가 저 못 알아보고 때리면 어떡해요?”

 

 소녀의 눈동자에 공포가 서린다.

 

 “괜찮아, 아저씨가 있잖아.”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온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그런 눈을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가 막아줄게.”

 

 “그럼 아저씨 계속 있을 거예요?”

 

 “어?”

 

 생각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아저씨?”

 

 “…….”

 

 대신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양, 시체 우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소녀가 다시 몸을 떨었다.

 

 “자, 빨리 책 읽자.”

 

 그가 다시 웃어 보였다. 소녀의 눈동자에 그의 미소가 불안하게 비춰진다.

 

 “괜찮아, 지금은 아저씨가 있잖아.”

 

 그 대답에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비명이 점점 커져간다. 약간 머뭇거리다가, 그는 가만히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투박한 손에 어울리지 않는 소녀의 머리가 절벽위의 꽃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졸리다. 잠이 온다.

 

 아빠는요? 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는 힘겹게 대답했다.

 

 아빠는 여기 있어. 아빠 여깄어.

 

 ***

 

 다 잘 될 거야, 여보.

 

 두꺼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서 그는 힘겹게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내는 마지못해 웃었다. 지극히 뻔한 촌극 같은 대사를 차마 비웃기는 힘들었기 때문이겠지. 이미 희망이 없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색이 왠지 멍처럼 보여 그는 서글퍼졌다.

 

 금세 부서질 듯 조그만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길. 청량하게 우는 풀벌레 소리 사이로 아이는 즐거운 듯 흥얼거렸다. 한바탕 소나기가 끝나고 맑게 갠 밤하늘 위로 떨어지는 별들. 그것들이 뭘 가져올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은 마냥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별들은 소원을 제대로 빌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행복하게. 그저 그뿐이었는데…….

 

 그의 손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는 면회실에 멀뚱히 서있었다. 귀에 거슬리는 비명 소리. 유리창 너머로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의 탈을 쓴 또 다른 무언갈일 뿐, 더 이상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시체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유리창을 손으로 두들겼다. 살얼음처럼 유리판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그 위에 살점과 핏자국이 흩뿌려졌다. 시체의 손은 뼈가 드러나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쾅. 힘줄이 끊어졌는지 손들이 고장 난 것처럼 흔들거린다. 시체가 다시 한 번 덤벼들자 유리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비명을 내지르며 아내가 그를 덮친다. 아내의 눈, 시체의 눈, 그의 눈.

 

 “털보 아저씨.”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모든 게 사라졌다.

 

 “아저씨, 빨리요.”

 

 승재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뭐, 뭐냐?”

 

 “아저씨, 큰일 났어요.”

 

 “큰일?”

 

 건호는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현듯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민아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있어야 할 민아가 보이질 않는다.

 

 “민아는 할머니 방으로 보냈어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승재는 그렇게 말하곤 바로 거실 뒤 베란다 쪽으로 뛰어갔다. 전날 민아가 서있던 곳이다.

 

 “대체 뭔데 그러냐?”

 

 건호는 눈을 비비며 승재에게 다가갔다.

 

 길게 뻗어있는 베란다 창가에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보랏빛으로 점점 옅어져가는 구름 밑으로 붉은색의 긴 띠가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일출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마음도, 일출을 기다릴 여유도 없었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건물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개미떼 같은 수많은 점들이 아파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옥도가 그들의 시야에 펼쳐졌다.

 

 시체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알천 16-10-26 00:50
 
즐감하고 갑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MrNerd 16-10-26 14:45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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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부 : 낙조> - 12장 : B구역을 싫어하는 지… (4) 2016 / 10 / 6 37 1 8706   
11 <1부 : 낙조> - 11장 : 유년기의 끝 2016 / 10 / 4 523 0 7944   
10 <1부 : 낙조> - 10장 : 죄와 벌 2016 / 9 / 15 552 1 6904   
9 <1부 : 낙조> - 9장 : 네 멋대로 해라 2016 / 9 / 14 441 0 5286   
8 <1부 : 낙조> - 8장 : 어린 양 (2) 2016 / 9 / 12 514 0 7772   
7 <1부 : 낙조> - 7장 : 저울 2016 / 9 / 9 449 2 7919   
6 <1부 : 낙조> - 6장 : 혐오 (3) 2016 / 9 / 6 541 1 10175   
5 <1부 : 낙조> - 5장 : 검 2016 / 9 / 5 434 2 7616   
4 <1부 : 낙조> - 4장 : 활 (3) 2016 / 8 / 31 498 3 7687   
3 <1부 : 낙조>-3장 : 악몽의 밤 (2) 2016 / 8 / 29 658 2 8690   
2 <1부 : 낙조> - 2장:미지와의 조우 (2) 2016 / 8 / 24 542 3 7764   
1 <1부 : 낙조> - 1장 : 용서받지 못한 자 (8) 2016 / 8 / 22 1136 4 7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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