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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별똥별
작가 : 보장대밥수
작품등록일 : 2017.11.5

별똥별은 별 그 자신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별똥별-2
작성일 : 17-11-07 05:17     조회 : 315     추천 : 3     분량 : 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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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덕 너머에서 장정들이 온갖 먹을 것들로 가득찬 광주리를 등에 짊어지고 오는 중이다. 봄비는 너럭바우와 함께 마중을 나갔다. 이번 광주리들이 텅 빌 때까지 며칠이나 걸릴까? 정말 이렇게 어르신들에게 받아먹기만 해도 긴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땅에 누워 배 꺼질까 걱정하는 삶으로도 가치가 있을까?

 "너럭바우야. 차라리 너라도 나무그늘로 건너가 사는 건 어떻겠니?"

 말도 안되는 제안인 줄은 알지만 봄비는 다 같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 싶다. 그 완고하신 어르신들도 유독 이 아이만큼은 귀엽게 여기지 않는가.

 "저 한 사람으로 끝날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농사짓는 사람 하나를 받아주려면 뒤따라 들어올 수백의 씨족을 감당해야 한다. 나무그늘에 빈 땅이 많다고 한들 수백의 수백 사람들이 밭을 갈 정도로 넓을리야 있겠는가.

 "그렇겠지. 미안하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젊은이들이 이고 온 광주리에는 온갖 진귀한 열매와 풀들이 있다. 어르신들께서는 신경쓴답시고 이것저것 담아주었겠지만 벌레들이 열매를 파먹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나보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벌레를 꺼리지 않고 먹게 되어 다행이다. 과일보다는 벌레를 먹는 쪽이 더 배가 부르니까. 그럼 벌레보다는. 벌레보다는.

 "너럭바우야. 챙겨먹고 나서 네가 다녀올 곳이 있다."

 

 7.

 봄비와 마을 사람들은 지난 번의 고깃국과 같은 냄새를 맡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너럭바우가 가죽옷을 두른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기 때문이다. 겨울양과 순록, 승냥이의 고기는 봄비에게도 몹시 생소한 재료다. 하지만 이런 냄새라면 얼마든지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는 스스로를 질책하려던 차에 순록 머리뼈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있는 잿빛양털 씨가 인사를 청해왔다. 허리춤에는 뼈를 갈아 만든 칼, 몸에는 순록의 털가죽, 봄비는 몸을 시체로 둘러싼 모습에 오싹해졌다.

 "봄비 씨. 우리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직 나무그늘 근처에 사는 몇몇 부족들은 우리를 거부하고 있어 걱정이오."

 두 사람이 가볍게 서로 껴안는다.

 "그들의 별은 아직 지지 않았으니까요. 먼 옛날에 능소니 님께서 하신 것처럼 별을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그 쪽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런 허튼 수작이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거요. 그들과 같이 옛날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고, 차라리 불을 뿜는 법이나 사냥하는 법을 배워보시오. 얼마든지 가르쳐줄테니."

 봄비는 잿빛양털 씨가 혹시 발에도 순록 발굽을 달지 않았을까 싶어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본다.

 "조만간 마을 사람들이 몸을 추스르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 쪽으로 보내겠습니다."

 덮수룩한 수염에 가려진 잿빛양털 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있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소. 땔감이 더 많이 필요해질 테니까. 어서 드십시다."

 그가 국물을 담은 그릇을 오래 굶주려 기가 허해진 노인들에게 나누어준다. 너럭바우는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봄비가 그릇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그릇에는 잘게 썰어놓은 살코기가 그득하다.

 "괜찮습니다. 급하게 먹었다가는 탈이 날지도 모르니 좀 식으면 천천히 먹겠소."

 봄비가 움집을 나선다. 너럭바우도 같은 이유로 자리를 뜬 것 같아 걱정이다.

 

 8.

 너럭바우는 한참을 말 없이 앉아있다 입을 떼었다.

 "왜 어르신들은 짐승들을 잡아먹지 말라고 하신 걸까요?"

 봄비가 씨족장 회의에서 가죽옷 두른 이들이 항변하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왜 벌레는 먹으면서 짐승은 먹지 않는가? 벌레는 살아숨쉬지 않으니까? 그런 대답이야말로 기만이다. 벌레 따위 살아숨쉬던지 말던지 먹어치워도 되는 거라면 순록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 순록의 고기를 먹어도 된다면, 두 부부가 서로 맞바꾼 아기들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봄비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설명을 찾아야 했다.

 "어르신들은 항상 말 못하는 것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오셨어. 내 선조들께서도 그분들께 처음으로 말을 배웠고.

  순록도 언젠가 서로 이야기나누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너는 잡아먹을 수 있니? 어르신들께서 짐승을 잡아먹지 말라고 하신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그럼, 벌레들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잡아먹어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너럭바우가 잠시 뜸을 들인다.

 "우리가 벌레들한테 말을 가르칠만큼 충분히 똑똑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9.

 밤이 되기 전에 잿빛양털 씨의 일행은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어둠이 완전히 내릴 즈음에는 크게 다친 사람들이 마을로 찾아왔다. 우두머리는 스스로를 봄단풍 씨의 장자라고 소개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무그늘로 들어가 밭을 갈려 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봄단풍 씨족은 흑단들소 어르신들의 영역을 침범했고, 우두머리의 뿔에 받혀 태반이 죽거나 다치고 겨우 도망쳐나온 것이다. 봄비는 이 일로 늦은 밤 급하게 회의를 소집하였다.

 "흑단들소 어르신들은 넓은 땅을 고작 풀 뜯는 데에만 쓰고 있습니다. 차라리 밭을 갈고 소출을 내는 쪽이 나으니 그리 한 것인데,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쫓아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르신 말씀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행동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 둘 정도 죽은 것도 아니고 안 다친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에요. 실수로 그랬다고 볼 수가 없는 수준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어르신들이 자기 아이를 대하는 방식입니까?"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싸우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말하는 것 좀 보게! 길러준 은혜를 그런 식으로 갚는 법도 있는가?"

 동백꽃 씨는 여전히 완고하고, 젊은 봄단풍 씨는 그나마 성한 왼쪽 팔을 휘두르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길러준 은혜요? 나무그늘 바깥으로 쫓아내고 열매 쪼가리 좀 던져주는 게 길러준 은혜입니까? 우리 씨족은, 앞으로 어르신들과 연을 끊고 살겠습니다!"

 봄비가 그 말을 듣더니 들고 있던 물병을 부수며 화를 낸다.

 "다시 한 번 그 따위 말을 지껄이면 너도 네 아비를 따라갈 줄 알아라!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는 것도 죽음으로 다스리는 것이 법이야! 어르신들 말씀을 어기고 함부로 그 곳에 들어갔으면 살아나온 걸 감사히 여겨야지! 뭘 잘한 일이 있다고 사람들 앞에서 투정을 부리고 있어!"

 회의장이 싸늘해졌다. 항상 싸움을 중재하고 이야기를 원만하게 풀어가던 이가 한 번 발톱을 드러내니 모두 잠시 얼이 빠져있다. 그러나 봄비는 이내 구겼던 미간을 펴고 빳빳하게 세운 허리를 다시 굽힌다.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 마시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어르신들을 찾아가 사과드릴테니, 허튼 짓일랑 말고 근신하고 있으라."

 봄비가 회의를 마무리짓고 우두머리들을 돌려보냈다. 젊은 봄단풍 씨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간호했으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의식을 잃더니 상처가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다음 날 봄비는 나무그늘로 넘어갔다. 너럭바우는 데려가지 않았다.

 

 10.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봄비가 어르신들께 고개를 숙이고 큰 절을 올렸다.

 "얼굴을 본 지도 꽤 오래 되었지, 너는 주름이 많이 늘었구나?"

 "안부나 나누자고 온 것은 아닙니다. 흑단들소 어르신들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다들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봄비의 시선을 피한다. 그 와중에 긴팔원숭이 한 분만이 그를 응시한다.

 "그들은 자기 영역을 곧잘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직접 찾아가보렴."

 "그래야겠지요. 이번 일로 화가 많이 나셨을테니."

 나무의 밑둥이 이렇게나 거대했던가 싶다. 가지와 잎사귀를 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산이라고 여겼으리라. 봄비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들을 보니 피어난 꽃에서 눈부신 온기가 내려온다. 그는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젖어 넋을 잃을 것만 같다. 이 꽃들은 가지에 붙어있으니 시들고 지더라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우리의 별들은 왜 가지도 없는 하늘에 수놓였는가?

 토끼 어르신들이 계시는 풀밭을 지나니 금새 풀들이 자라난 것처럼 무릎을 스친다. 움집 두 채는 이어붙인 듯 덩치가 크고 터럭이 새까만 어르신들이 봄비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은 누런 눈동자를 번득이는 채로 봄비를 노려보고 있다. 농기구나 종자를 지녔다면 그 역시 뿔에 받히는 신세가 될 것이다. 봄비가 털이 드문드문 센 어르신의 앞에 멈추어 서서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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