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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만이 널 가질 수 있다
작가 : Lido
작품등록일 : 2017.11.6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다시 만났다. 앞으로 나의 운명은?

 
4화
작성일 : 17-11-06 22:54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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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말이 지나고 나쁜 소식이 들렸다. 김 태선 할아버지께서 결국 상을 치르게 되었다는 급전갈이였다. 그날이 지나고 이틀 만에 하늘로 가셨다는 소식에 마음은 무겁고 착잡했다. 가실 걸 이미 아셨나, 그날 유독 편안해 보이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장 성혁 선생님이 커피를 건네며 다가왔다. 어떻게 옥상에 있는걸 알았는지 여분의 커피를 들고 올라왔다. 얼얼했던 손이 따듯한 종이컵의 온기에 녹아갔다. 그러자 가라앉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네."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래서인지 달짝지근한 커피가 오늘따라 유난히 썼다. 겨울이라 옥상은 추웠지만 쌀쌀한 바깥바람을 맞는 것이 좋았다. 회의 열리기 30분전. 매주 월, 목 아침 9시에 하기로 했지만 오늘까지 저녁 6시에 모이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기다리던 참에 산책이라도 할 겸 옥상으로 올라갔다.

 

 

 "몸은 괜찮으세요?"

 

 "아.. 물론요."

 

 

 그날을 말하나보다. 결국 도망치듯 빠져나와 장 선생님께 간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집으로 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불편하고 메스꺼웠다. 그 녀석 방안의 체취가 아직도 내 몸에서 나는 것만 같았다. 요새 자꾸 꿈에서 녀석이 나와 잠을 설쳤다. 아직도 아른거리는 강 여운의 모습에 괴로웠다.

 

 

 "근데 아직도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그의 손이 내 얼굴에 가까이 다가오자 흠칫 놀란 난 몸을 뒤로 내뺐다. 그런 내 모습에 오히려 장 선생님이 당황했는지 말을 버벅거렸다.

 

 

 "아..그냥 아니에요."

 

 

 뭐가 아니라는 거지. 그의 말을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는지 그가 내 앞에서 조잘대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강 여운의 이름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혼란스러워. 앞으로 강 여운과 마주치며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지내야할지. 멍 때리고 있던 것이 미안해 장 선생님을 향해 한번 미소를 보이고선 다시 먼 풍경을 쳐다보았다. 정리할 시간이 아직도 모자라다.

 

 

 "그때 꼭 공 슬혜 선생님께서 강 여운선생님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셔서 설마 했어요."

 

 "네? 아.."

 

 

 그때의 이야기를 꼭 꺼내야하나.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방해받게 되자 신경이 거슬렸다. 하지만 나를 걱정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 그의 관심이 고마웠다.

 

 

 "분위기가 되게 이상했거든요."

 

 

 잠시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가 낮았다. 장 선생님이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매우 공허해 보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닌가?"

 

 

 그가 이제는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봤다.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한다. 분위기가 어땠나요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결국 묻지 못하고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뭔가를 알면서 나와 심리전을 펼치는 사람처럼 그는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 것은 내 착각이었나. 어색한 웃음을 띠며 그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뭐 묻었어요?"

 

 

 뭐라 말해야지. 절 유도하는 것만 같아서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순간 입에서 튀어나온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참 잘생겼다 싶어서요."

 

 "네? 아 왜 그러세요!"

 

 

 분위기 전환용으로 띄운 말인데 얼굴까지 벌게진다. 내 쪽을 쳐다보지 못하고 쌕쌕 거리며 먼 곳을 응시한다. 어떻게 보면 내 동생같이 귀여울 때도 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저보다 한 살 어리신거 알아요?"

 

 "아, 물론이죠."

 

 "근데 참 듬직해 보인단 말이에요."

 

 

 내동생도 성혁 선생님과 같은 나이였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뭐, 칭찬이면 감사히 받죠."

 

 

 후훗, 역시나 또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이 귀엽다. 곧게 뻗은 콧날이 참 야무지게 생겼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젠틀한 그의 매너는 항상 내게 안락함을 주었다. 이러니 내가 겨우 적응한 이 직장을 좋아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그만둘까도 싶었다. 홧김에 때려칠까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자리 잡은 직장인데. 자신을 괴롭혔던 강 여운 때문에 내가 직장을 옮기는 것이 과연 옳은걸까. 그럴 생각도 있었지만 차마 또다시 내가 쫓겨 살고 싶지 않았다.

 

 

 "곧 회의시간인데 여기서들 뭐하십니까."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목이 타 남은 커피를 입에 훌훌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번 주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로 나와 장 선생을 쳐다본다. 멍해있었나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니. 강 여운은 반듯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넉살이 좋은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장 선생은 웃었다. 장 선생을 바라보던 강 여운의 시선이 다시 내게 옮겨졌다. 여전히 마주칠 용기는 많지 않나보다. 어느새 시선을 회피한 내가 쳐다본 곳은 장 선생님의 손이였다.

 

 

 "성혁 선생님 이만 가요."

 

 "그렇게 하죠."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 이끌었다. 그 역시 마저 남은 커피를 입에 부어넣더니 내 뒤편으로 졸졸 뒤따라왔다. 긴장 탓인지 종이컵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 찌그러졌다. 멀찍이 서 있던 강 여운의 옆을 지나자 저번에 그의 방에서 맡았던 녀석의 향기가 풍겼다. 겨울에 맡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상쾌한 향기가 코끝을 시렸다.

 

 

 "저는 3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아, 그러세요."

 

 

 강 여운의 말에 장 선생님이 대충 대답을 건넨 뒤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시 강 여운의 시선과 부딪쳤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무미건조하다. 이제는 나를 신경 쓰지 않는걸까. 장 선생님이 내 등을 밀며 서둘러 계단을 향했다. 하지만 내 혼은 여전히 옥상에 두고 온 것만 같았다. 자꾸 시선이 옥상으로 향했지만 자제했다. 예전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 조금은 더 차가워진 마스크? 장난기 가득 차 보였던 그 앳된 모습은 더 이상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 막바지때도 저랬지만 지금은 냉기를 몸에 품은 사람 같았다.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맨 앞쪽 데스크에 의자를 뱅 둘러놓았다. 행정과 과장님은 더 이상 참여안하는 건지 강 여운을 제외한 나머지 선생님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번에 참석하지 못했던 재활과 닥터 이 선생님도 자리해 있었다. 회의시간이 다 되자 강 여운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재활치료에 중점을 두기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까요."

 

 

 조간호사님이 먼저 화제를 꺼냈다.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주위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아무래도 각자의 능력을 백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죠."

 

 "그렇다면 시너지 효과가 가도록 팀을 짜죠."

 

 

 장 선생님의 말을 받아친 조 간호사님이 우리의 눈을 한 번씩 훑어보며 말했다.

 

 

 "사고로 인한 장애는 장 성혁 선생님 쪽이죠?"

 

 "수술했던 사람들을 추후 재활로 관리해주는 거죠. 다만 신체적인 장애에서일 뿐이죠. 인지 쪽은 공 슬혜 선생님이 담당하시구요."

 

 

 조 선생님의 물음에 장 선생님이 대답했다. 강 여운은 그들의 대화를 듣는건지 볼펜을 이리저리 굴리며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다들 그가 쓰는 종이로 시선이 간다. 물론 나도였고, 모두들 그의 입에서 뭔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뭐 결정 났네요."

 

 "어떻게요?"

 

 

 재활과 닥터 이 장선 선생님이 탁자를 치며 말하고 강 여운이 물었다. 몇 마디 나눈 것도 없이 결정났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모두들 이 장선 선생님을 쳐다봤다.

 

 

 "총 한사람 당 환자 케이스를 2명 두죠. 일단 강 선생님과 공 선생님이 작업하시고 공 선생님 장 선생님 두 분이 작업하시고, 장 선생님과 저, 저와 조 선생님, 조 선생님과 강 선생님, 이렇게 하면 괜찮을 듯하네요."

 

 

 재활 전문의 이 선생님이 차근차근 이름을 나열하며 주장을 펼쳤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인지쪽을 전문으로 하는 내가 뇌 전문의인 강 여운과 연계해서 맡고, 재활치료인 장 선생과 내가 수술후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지 쪽의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차원으로 연계하는 것으로. 장 선생님과 이 선생님은 환자의 신체적 재활로 기능을 중점으로 보고, 이 선생님은 조간호사님과 환자의 추후관리를 맡기로 했다. 더하여 조 간호사님은 병동에서 그들을 살펴 개선된 점을 강 선생에게 보고하는 걸로 하기로 했다.

 

 

 흡족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장 선생님과의 일은 매우 기대됐지만 강 여운과 엮일 생각을 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사적인 관계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살며시 반대편 대각선에 앉아있는 강 여운을 쳐다보자 종이에만 눈이 가 있는 녀석이 보였다. 나와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는지 매우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그럴수록 내가 더욱 초조해졌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각자 환자 몇 명 맡을까요?"

 

 "팀당 1명을 두고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한 사람당 2명을 맡겠죠. 아직 시도하는 단계이니깐요."

 

 

 조간호사님의 호응에 다물고 듣기만 했던 녀석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강 여운의 의견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분씩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이걸 어쩌나, 나도 동의해야하나?

 

 

 "공 선생님 괜찮은 거 같죠?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안 잡혔는데 이거라면 괜찮네요."

 

 

 조 간호사님은 말이 없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직접적으로 내 이름을 꼬집어 부르며 의견을 물었다. 일단 내가 생각해기에도 좋은 의견이지만.. 그래도 머뭇거리는걸 보면 어쩔 수 없었나보다. 같이 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서로 따로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취한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자리를 마련해서 종합적인 성과를 내보이죠."

 

 

 입을 열려던 찰나 대화를 가로챈 강 여운이 마지막 결론을 낸 듯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장 성혁 선생님이 그의 말에 반박했다.

 

 

 "일주일만에 치료 되는게 어디 있습니까."

 

 "개선되는 점에 피드백을 받자는 말입니다."

 

 

 강 여운의 눈빛이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장 선생님도 만만치 않았다. 금세 가라앉은 분위기에 옆에 앉아있던 내가 장 선생님의 팔을 툭툭 조심스레 치자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이만 해산하죠. 그럼."

 

 

 잘못하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는 미묘한 기류에 다들 놀란 눈치지만 장 선생님 덕분에 기분 좋게 회의가 끝났다. 서로 개별 연락이라니. 괜찮다. 11년이라는 시간동안 물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썩어빠진 건 아니었으니깐. 나도 그때보다 더 성숙되고 발전되었단 말이다. 자리에 일어나는 강 여운이 여유롭게 펜을 앞주머니에 꽂았다. 그러고보니 회의 마치고 문상하러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찍 끝난 덕분에 느긋하게 출발해도 좋았다.

 

 

 "아, 공 슬혜 선생님 오늘 김 태선 환자 문상 가실건가요?"

 

 "네. 가려고요."

 

 "역시, 그렇군요."

 

 

 장 성혁 선생님이 일어선 나를 향해 물었다. 기분 상했을 그를 염두해 미소를 띠우며 대답했다. 정 팀장님처럼 생긋한 미소를 띄우려했는데 오히려 역효과였는지 어색한 미소만이 흐른 것 같았다. 멋쩍은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데 난데없이 강 여운의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가려했는데 같이 가죠, 그럼."

 

 "아, 저 차가 있어서 말에요."

 

 "그럼 제가 오늘 얻어 타죠. 어차피 안 가져가려 했습니다."

 

 

 강 여운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에 금방 넘어가버렸다. 어영부영 대처하다보니 결국 내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대강 파일 정리하고 온다며 기다려달라는 그의 말에 알겠다며 나는 운전대 앞에 앉았다. 그나저나 내 차에 타면 뭐라 그럴까. 내 오래되고 낡은 차를 비웃을지도.

 

 

 '똑똑'

 

 

 온 건가. 그럼 타지 왜 내 자리 창문에 노크를 하는지. 창문을 내리자 강 여운이 아닌 장 선생님이 서 있었다. 뜻밖이었다.

 

 

 "웬일이세요?"

 

 "선생님 차가 마침 제 옆 차에 주차해 놓으셨더라고요. 인사라도 하게, 잘 갔다 오시라고요."

 

 "아.."

 

 "강 선생님은요?"

 

 

 장 선생님이 내 옆 좌석을 힐긋 쳐다보며 물었다.

 

 

 "정리하고 돌아오신데요. 어차피 시간이 많아서 천천히 가도 되요."

 

 "아.. 그래요. 그럼 내일 봬요. 가서 잘 보내드리고 오세요. 그리고 집에서 푹 자고 오시구요."

 

 

 아쉬운 표정인지 모르지만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그의 느낌을 받으면서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고보니 내 차 옆에 주차하셨구나. 지금까지 장 선생님의 차도 모르고 직장을 다녔다니. 무심함에 혀를 찼다. 그렇게 차에 앉아서 대기탄지 5분이 돼서야 달칵- 예고 없이 차문이 열렸다.

 

 

 "가자 그럼."

 

 

 역시나. 말없이 알아서 문을 열고 익숙하게 차에 타는 강 여운을 보라.

 

 

 "그래."

 

 "운전도 할 줄 알고. 의외네."

 

 

 의외라니. 내 나이 올해 30이라고. 날 대체 어떻게 생각 하는거니.

 

 

 

 "네가 김 태선 환자도 알아?"

 

 

 혹시나 문상을 가려는 이유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나를 어떻게 하면 힘들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상 집에서 엿 먹이기위해 동행한건 아닌지. 이제 나이가 서른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철이 안 들었을리가 없지. 나쁜 생각을 지우고 주차된 차를 빼는데 녀석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응. 마지막에는 내 환자였으니깐."

 

 

 그렇구나. 고개를 돌려 유리창에 비친 녀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세월이 긴만큼 금방 잊혀질 것만 같던 악몽들은 여전히 그대로 나의 맘 깊숙이 묻어있었다.

 

 

 "너 좋아 보이더라."

 

 “...”

 

 

 적막이 흐르던 차에 들린 그의 보이스가 차 안에 퍼졌다. 좋아보인다라. 너가 오기전에는 더 좋았던 것 같은데, 너는 어디서 어떤 내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걸까. 나 지금도 히터도 안 틀은 이 차 안에서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데. 운전대 잡은 내 손은 물에 흥건하듯 땀범벅이야. 네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신경이 곤두서있어.

 

 

 "매우. 그게 달갑지 않을 정도로."

 

 

 저돌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부드럽지도 않은 딱딱한 어조에 내 몸이 더욱 굳어졌다. 달갑지 않다니 또 무슨 소리야. 도대체 강 여운의 의중을 모르겠어. 이리저리 너에게 휘둘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찝찝하다. 너만 있으면 정신적 소모가 커.

 

 

 "좋아 보인다면 나야 고마워."

 

 

 제대로 대답한게 맞으려나. 나는 말을 끝내면서도 단어 사이사이마다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앞만 보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녀석을 보며 불안해하고 초조해있었다.

 

 아직도 트라우마인가. 쩔쩔매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한심스러웠다. 봐봐, 강 여운 이제는 좀 네가 달라진 것 같아 보여. 못돼먹은 아이 같지만은 않잖아. 그래 너도 이제 사회인이야. 철딱서니처럼 굴었던 고등학교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나는 그렇게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녀석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를 수 있다고 염두하고 있었다.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미 몸이, 머리가 녀석에게 맞춰 그런 식으로밖에 돌아가질 않았다.

 

 

 "고맙긴 뭘. "

 

 

 그는 겉치레 웃어주며 다시 창가에 시선을 두었다. 팔을 괴는 버릇은 여전한가보다. 먼 곳을 응시하는 녀석의 옆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무엇 때문에 자꾸 녀석에게 시선을 가는지 당체 모르는 나로선 자꾸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강 여운에게서 고등학교 시절 그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러고 있었다.

 

 

 "피곤하다, 도착하면 깨워줘."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오갔다. 아니 어색하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악연에 모자라 나의 공포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녀석과 한 차안에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더하여 내게 잔다며 도착해서 깨워달라는 녀석의 무신경한 말도 말이다.

 

 저번의 미안한 감정이 있다는 그 한마디로 용서를 치뤘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역시 강 여운이다. 저 녀석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렇게 내 앞에 뻔뻔히 있을 녀석은 없다. 그 한마디로 내가 용서 해줬을거라고 확신할 사람이 있을거란 생각도 안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단한마디 못 꺼내는 내가 더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내 의견을 말하려하는데 오히려 내 입에서는 예상 밖 단어가 흘러나왔다. 녀석을 쳐다보는게 아니였어. 녀석의 얼굴이 비추는 창가를 보는게 아니였어.

 

 

 "으응."

 

 

 알면서도 모른척한다. 그게 어렸을 때부터 일삼던 행동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바보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도 현재의 안정에 안주하기 위해서 꺼내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이렇게 군다. 나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잡으며 방금한 말을 철회하고 싶었지만 벙어리마냥 입 뻥긋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창가에 비추는 녀석의 웃음기 머금은 미소를 보고서도 모른척한 뿐.

 

 

 "도, 도착하면 깨워줄게."

 

 

 그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녀석에게 나는 진심이 아닌 가식으로 대답했다. 너의 웃음을 나는 제일 싫어하거든. 내게 뭔가의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그 미소를 제일 싫어하거든. 어쩔 수 없어. 모르는척하는게 최선의 방법이야. 진심으로 나는 머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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