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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순간을 위한 왈츠
작가 : 수리수리
작품등록일 : 2017.10.31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척,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춤을 춘다. 너를 살리기 위한, 그리고 시작과 함께 천천히 망가져갔던 우리를 위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위한 왈츠.
죽은 첫사랑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 한 여자의 이야기.

 
12. 자극하기
작성일 : 17-11-06 16:23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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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했던 대로, 화장품 CF는 물 건너갔다. 실장은 온갖 욕설을 해대었으나, 그 이상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CF는 강효주에게 돌아간 뒤였기 때문이었다. 현석이 가져다 준 약을 대충 삼키며, 나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오늘은 런웨이 쇼에 서는 당일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안 괜찮으면 빼주게?"

 

 

 현석이 침묵을 지켰다. 짜증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요즘 들어 자꾸 신경질적여진다. 소파에 머리를 파묻고 담요를 덮었다. 아직 더운 날씨인데, 자꾸 으슬으슬하고 추웠다. 그렇게 얼마간 쯤 짧은 잠에 들었을까,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대기실이 열렸다. 나는 한숨을 섞으며 눈을 떴다.

 

 

 "미아 씨, 의상이랑 메이크업 준비할게요!"

 

 

 현장 스태프의 말에,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무대 뒤 대기실로 이동해서,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덮어 그렸다.

 

 

 “오늘 참석자들 어마어마하더라.”

 

 “제대로 후원 받을 수 있는 기회야.”

 

 

 잔뜩 흥분한 모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나는 물끄러미 세팅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곧 1부가 시작되고, 윤이 무대에 섰기 때문에 승조도 도경도 참석했을 것이다.

 내가 이번 쇼에서 입을 의상은 총 두 가지였다. 발랄한 노란색 정장, 그리고 고결한 신부를 연상케 하는 흰색 드레스. 예술적이기 짝이 없는, 다시 말해 전혀 실용성 없는 천 조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먼저 입고 나가야 하는 노란 정장을 걸쳤을 때였다.

 

 

 "미아, 오늘 쇼 잘 부탁해. 정말 너무 예쁘네."

 

 "옷이 예쁜데요, 뭐."

 

 

 형식적인 칭찬에,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총괄 디자이너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윽고, 디자이너가 활짝 미소를 띠며 다른 모델인 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지는 나와 같은 소속사의 모델로 2년 선배였다. 이 중에 가장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이번 쇼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옆에 걸린, 쇄골이 드러나는 블랙 드레스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했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 다시금 눈 위로 가루들이 덮어지고 있었다.

 

 쇼가 시작되었다.

 

 

 

 *

 

 귀를 찢을 듯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 속에, 유명 모델들의 완벽한 워킹이 줄지어 이어졌다. 쏟아지는 환호와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음 속에서, 우리는 옷맵시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포즈를 취한다.

 

 잠시 후, 노래가 바뀐다. 미아 씨, 준비하시고, 나가세요- 하는 스태프의 목소리에 맞추어, 나는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지는 런웨이를 걷기 시작했다. 중간 지점에 멈춰서 포즈를 취하던 나는, 앞줄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아주 간만에 보는 듯한 도경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앉아 있고, 그 옆- 이미 앞선 1부에서 워킹을 마친 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나는 그를 보지 못한 척,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돌아서며, 나는 다시금 그를 보았다.

 

 쇼에 왔으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승조, 그리고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여자가 그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

 

 

 '밀어내지 좀 마라. 머리 아프다.'

 

 

 나쁜 자식.

 

 웃어야 하는데, 자꾸만 표정이 굳어졌다. 무사히 워킹을 마친 후에, 나는 대기실 거울 앞에 앉아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메이크업 수정해줘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잽싸게 도구를 준비했다. 의상에 맞게 메이크업도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그 사이, 나는 리무버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던 아이 메이크업을 지우며 말했다.

 

 

 "메인 섀도, 색 바꿀게요."

 

 

 메이크업 팔레트를 보며 신중하게 색을 골랐다. 검고 붉은, 버건디 계열로.

 

 

 "…저, 미아 씨. 의상하고 안 맞을 것 같은데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원래의 내 메이크업은 의상에 맞게 전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그걸 무시한 채, 화려한 메이크업을 요구하고 있는 거였다.

 

 

 "그냥 해줬으면 좋겠는데."

 

 "…저, 그럼 일단 의상부터 입으시고 메이크업 할게요."

 

 

 의상 담당이 순백의 드레스를 들어 보였다. 귀찮은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순간이었다.

 무대 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의 스태프들이 대기실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사고예요! 선지 씨가 넘어졌어요."

 

 

 선지가 화장이 다 번지도록 울면서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아 들어오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도 발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혼란스러운 틈 사이로, 총괄 디자이너가 다급하게 나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의 피날레 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미아 씨, 선지 대신 피날레해줄 수 있을까?"

 

 

 나는 그제야 입 꼬리를 올리며, 멍청히 팔레트를 들고 선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 의상하고 맞네요."

 

 

 

 * 순간을 위한 왈츠 *

 

 

 

 "미아, 왜 안 나오지? 이제 곧 피날레 아냐?"

 

 순백의 흰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나오자, 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승조가 런웨이에는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 옆에 있던 아이돌 출신의 여자 연예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상당히 기분이 저조한 상태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이상한 여자였다. 그에게 푹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상처 받은 얼굴로 밀어낸다. 그녀가 밀어내는 데에는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모델이 들어간 뒤, 드디어, 피날레였다. 이제까지 나오던 경쾌한 음악이 멈추고, 느리고 세련된 왈츠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쇼가 시작하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던 박수 소리가 멈추었다.

 

 그 반응에, 승조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묘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무대 위에 서 있었다. 피날레다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몸의 선을 그대로 타고 흐르는 검은 드레스가, 아무 표정도 없는 흰 얼굴이, 유혹적이면서도 슬펐다. 발걸음 하나를 내딛을 때마다, 모두가 숨을 죽여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 공간의 그 누구보다도 매혹적이었다.

 

 그녀가 들어가고 난 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잔뜩 흥분한 윤의 코멘트 속에서, 승조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잠깐, 숨을 쉬는 걸 잊었었다.

 

 

 

 *

 

 

 코가 빨개진 디자이너가 악수를 청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악수를 받았고, 수많은 박수와 함성, 그리고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런웨이를 돌아 걸어 들어가기 전에 내가 입은 의상이 전부 팔렸고,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나의 기사가 걸렸다. 나는, 완벽하게 그 쇼의 주인공이었다.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뒤풀이 장소에 가기 전, 립스틱을 덧바르며 중얼거렸다.

 

 

 "뒤풀이는 가고 싶지 않은데."

 

 "가야죠. 언니가 주인공인데."

 

 

 내심 기분이 좋은 듯 스타일리스트인 다경이 원피스 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됐어? 이대로 가면 돼?"

 

 "응. 잘 놀고 와.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현석에게 살짝 웃어준 뒤, 뒤풀이 장소인 호텔 홀에 들어섰다. 걸어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한껏 차려 입은 모델 후배들이 선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너무 멋있었어요.”

 

 

 한껏 취해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축하 인사에 적당히 답하며, 내가 낄 만한 자리를 빠르게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윤이 칵테일 잔을 내밀었다.

 

 

 "멋있었어. 피날레."

 

 "아. 고마워요. 아까 봤어요, 윤 씨 무대도-"

 

 "미아 씨! 오늘 정말 너무 예쁘던데요."

 

 

 이야기할 틈이 없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말에, 적당히 대꾸하며 웃었다. 얼핏 피곤한 표정이 보였는지 윤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정신없지. 저쪽으로 갈래?"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윤이 가자며 내 칵테일 잔을 드는 바람에, 그를 따라 이동했다. 그는 분수 옆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어. 피날레."

 

 앉아 있던 도경이 살짝 웃으며 잔을 들었다. 나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분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승조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그래. 너넨 늘 세트였지.

 딱딱하게 굳어진 입 꼬리를 내리며, 나는 승조를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옆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가 내게 잘 봤다며 수백 번도 더 들은 인사를 건넸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그래. 유나였던가 하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이다. 종목도 다양하지. 나는 입만 살짝 웃어 보인 다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승조는 나를 본 체 만 체 하고 있었다. 조금씩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다리 아플 것 같아서."

 

 

 윤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윤을 돌아보았다. 윤이 의자를 빼주고 있었다. 의자가 있는 테이블은 이 곳 뿐인 듯 했다. 고마운 배려였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되었다.

 오늘 런웨이의 컨셉에서부터 선지의 부상까지, 이야깃거리는 다양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눌 무렵이었다. 도경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뇌물을 먹였는데, 답이 없네."

 

 "아."

 

 

 그 말에, 나는 픽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쪽 프로그램은 절대 안 나갈 거다.

 

 

 "나도 사왔는데. 뇌물은 아니고, 선물."

 

 "어- 진짜? 도경이 거?"

 

 

 윤이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도경이 진짜냐며 놀란 얼굴을 했다. 어쩐지 승조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으나,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고마운 일도 있어서. 별 건 아니고, 향수예요."

 

 "아. 그 향수?"

 

 

 막 도경이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목소리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그거 내가 골랐어."

 

 

 어딘지 뚱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보았다.

 

 

 "같이 쇼핑 한 거야? 많이 친해졌나 보네."

 

 "어, 그렇지."

 

 "아뇨. 그닥."

 

 

 나와 승조는 동시에 정반대의 대답을 말한 뒤, 서로를 노려보았다. 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친해진 거야, 아니야?"

 

 

 짜증스럽게 눈썹을 모은 승조가 대답하지 않고 칵테일을 마셨다. 나 역시 칵테일 잔을 비웠다.

 

 그와의 사소한 말다툼도 지칠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술을 마시자마자 띵하게 어지러웠다. 머리가 아파 이마를 잡고 있는데, 아까부터 내 얼굴을 빤히 보던 도경이 입을 열었다.

 

 

 "피곤해? 얼굴이 안 좋네."

 

 "아, 그냥 감기예요."

 

 "요즘 감기가 유행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경이 덧붙였다.

 

 

 "승조도 감기거든. 아니면 이탈리아가 좀 고됐나."

 

 

 고되었다. 다른 의미로.

 

 그 말에, 나는 승조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안색이 좋지 않다. 이 순간에도 그가 걱정되는 걸 보면, 나도 고질병이다. 그 때, 윤이 일어나며 물었다.

 

 

 "나 먹을 거 가져 올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아, 제가 가져 올게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양하는 윤의 접시를 받아 음식이 놓인 곳으로 가던 나는, 잠시 현기증이 일어 접시를 놓쳤다.

 

 쨍그랑, 유리 접시가 대리석 바닥과 부딪히며 나는 요란한 소리에 순식간에 시선이 모였으나, 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직원들이 접시를 치우는 틈을 타, 빠르게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이번 일 끝나면 휴식, 입원 비슷한 거라도 해야겠다. 이왕이면 오래. 찬물로 손을 대충 씻고 거울을 보고 있을 때였다. 늘씬한 모델 세 명이 왁자지껄하게 화장실로 들어오다 나를 보고는 멈춰 섰다.

 

 

 "이게 누구야. 미아?"

 

 

 오늘은 이만저만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짤막히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 깔았다. 평소에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델들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피날레 때문에 상당히 심기가 꼬인 듯 했다. 나는 그녀의 부름을 못 들은 척, 립스틱을 꺼내어 덧발랐다.

 

 

 "너 인사 똑바로 안 해?"

 

 "얘 진짜 건방지네."

 

 

 김선지와 친한 모델 하나가 그녀의 말에 덧붙이듯 한 마디 했다.

 

 

 "선지가 다쳤는데, 왜 네가 피날레로 나오는 거야?"

 

 "너보다 내가 잘 나가니까 내가 피날레지."

 

 

 립스틱 뚜껑을 닫으며 입을 열자,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이 번졌다. 곧바로, 파열음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입 안이 터진 것 같다. 나는 화끈거리는 볼에 인상을 쓴 채 열등감에 휩싸인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너 요즘 스폰 하나 제대로 물었나 보다? 어쩌자고 이렇게 막 나오실까. 우리 후배님."

 

 "말은 바로 하자."

 

 

 나는 비웃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네가 많은데, 선배는 나지."

 

 "…하, 이게 진짜!"

 

 

 그녀에게 머리채를 잡힌 순간, 나는 이를 악물고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러나 나는 반격할 틈도 없이 곧바로 넘어졌다. 사정없이 머리며 배를 밟는 발길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였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꺄악!!!!"

 

 "야, 안 닥쳐?"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비명을 질렀다. 한 사람이 거침없이 내 머리칼을 쥐고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화장실 문이 열렸다. 희게 질린 얼굴의 도경이, 서 있었다.

 

 

 "지금, 이게 뭐,"

 

 "어머, 뭐야? 싸움이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한 번 쳐다 본 도경이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화장실 안으로 들 어와 문을 닫았다.

 화장실 밖으로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든다. 몸을 굽히고 앉은 도경이 나직하게 물었다.

 

 

 "괜찮아?"

 

 "…김도경 씨,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한데 저희도 사정이,"

 

 "사정이 있으면 손부터 날아가는 게 모델들 사이 룰인가 봐."

 

 

 한 명이 발 빠르게 변명하려 했으나, 이 사람에겐 통하지 않았다. 싸늘하게 그들을 본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기 기자도 많은데."

 

 

 세 사람이 동시에 흠칫했다. 기자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 못할 만큼 짜증이 났겠지. 그러니 머리채를 잡았겠지. 물론 나도 도발했으니 딱히 할 말은 없다.

 

 

 "기삿거리 되고 싶지 않으면, 먼저 나가지."

 

 

 눈치를 보던 여자들이, 결국 화장실을 먼저 나갔다. 무슨 일이냐며 물어 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얼버무리는 소리도 들렸다. 잠시 싸한 정적이 흘렀다.

 

 

 "처음엔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더니, 지금은 맞아서 몸을 못 가누네."

 

 "…."

 

 "두 손 두 발 멀쩡히 만나기는 힘들어?"

 

 

 비꼬는 걸 보니, 단단히 화가 났다, 이 사람. 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고맙다고 중얼거렸을 때였다.

 

 화장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아까보다는 훨씬 줄어들고 없었으나 여전히 잔재해 있는 사람들 틈 사이에,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듯한 승조와 윤이 서 있었다.

 

 

 "무슨 싸웠다는 얘기가 있던데, 헉."

 

 

 윤이 입을 떡 벌렸다. 놀랄 만큼 내 꼴이 말이 아닌가 보다.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한 윤이, 웅성거리며 안을 엿보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둘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온 승조가 내 턱 끝을 잡았다. 왼쪽 뺨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싸하게 굳어 있었다. 이윽고 그가 앉아 있던 내 팔을 잡았다.

 

 "일어나."

 

 그의 뒤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여자가 보였다. 오늘 그와 내내 착 붙어 있던 아이돌이었다. 열도 나고 온 몸이 아팠기에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못된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승조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고 도경을 바라보았다.

 

 

 "김도경 씨, 저 좀 부축해줄래요?"

 

 

 잠시 승조를 쳐다 본 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막 내 팔을 잡고 일으켰을 때였다. 막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승조가 내 반대편 팔을 잡았다. 그가 참고 있다는 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짜증나게 하지마."

 

 "뭐가?"

 

 "자꾸 이딴 식으로 자극하지 말란 소리야."

 

 "… 너. 내 애인이야? 뭔데 애인처럼 굴어?"

 

 

 날카로운 내 목소리에, 승조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럼, 도경이가 네 애인이야?"

 

 "응."

 

 

 팽팽한 말싸움을 주고받던 나와 승조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여전히 나를 부축하고 있던 도경이 속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응, 내가 미아 애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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