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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고백
작가 : 안비로움
작품등록일 : 2017.10.31

용의자들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되살려 체험할 수 있는 어느 이름없는 형사, 사건 미결로 정직을 당한 후 옛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복귀한다.

 
에피소드 1. 붉은 옷의 여인 (2)
작성일 : 17-11-03 18:34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3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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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걸은 걸까.

 

  그녀를 추억하는 새 걸음은 도심의 뒤편에서 멈춘다.

 

  나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지닌 빌딩 숲 사이에는 볕이 드는 시간보다 별이 뜨는 시간이 더 빛나는 곳, 진한 분홍빛 등불 아래 반라의 여인들이 행인을 유혹하는 향락의 거리로 들어선다.

 

 “오빠, 싸게 해줄게. 놀다가.”

 

 “몇 장만 추가하면 오늘 밤새도록 같이 있어줄게. 가지마.”

 

 “나만한 애 이쪽엔 더 이상 없을걸! 그러니까 이쪽으로 와.”

 

  밤에 뜨는 해를 연상케 하는 이곳의 낮은 언제든 나를 반긴다.

 

  친근한 이들은 옷깃을 잡고 그들 틈으로 날 끌어당긴다.

 

  머릿속에 죽은 정현이 수차레 떠오른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미친 사람처럼 여인들을 비켜 세운다.

 

  그렇게 걷다 홍등가 중심에 들어섰을 즈음 갈라진 콘크리트 벽과 ‘오월’이라고 쓰인 네온사인만 애처롭게 깜빡이는,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바 앞에 도착했다.

 

  헤진 널빤지 비슷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뒤편 장황하게 널려있는 수백 종의 술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반 정도의 빈 병이 아마 지난 3년 동안, 내가 이곳에서 비워 낸 술의 양일 것이다.

 

 “어서 와. 일찍 왔네.”

 

  술집 ‘오월’의 마담인 그녀는 붉은 색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둥글게 머리를 땋은 채, 누구에게나 동일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한다. 여인의 곁에서 오늘도 많은 남자들이 구애의 시선을 보낸다.

 

 “……가까우니까.”

 

 “뭐 좀 마실래?”

 

 “물 한 잔만 줘. 금방 다시 가봐야 돼.”

 

 “……알겠어.”

 

  건네준 유리잔의 물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결코 온순한 태도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볍게 내려놓은 빈 잔 너머로 나를 애처로이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비친다.

 

 “……부탁한 건 좀 알아 봤어?”

 

 “응. 물론이지. 그나저나…… 괜찮은 거야?”

 

 “……괜찮아.”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것 치곤 의외로 멀쩡하네.”

 

 “지난 일이니까.”

 

 “내가 죽어도 그럴 거야? 무신경한 건지, 억누르는 건지.”

 

  그녀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내 반응을 기다린다.

 

  하지만 정현을 누가 죽였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생각만 내 뇌를 훑고 지나간다.

 

 “……알아낸 걸 알려줘.”

 

 “……알겠어. 급하긴. 일단 김철환, 이 사람은 만난 적 있지? 당신이 3년 전에 담당했던 그 때 그 사건의 참고인으로 섰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로 딱 3주기네.”

 

  추리닝 차림을 한 낯이 익은 남자는 정현의 아버지가 실종 된 3년 전에도 나와 만난 적이 있었다.

 

  첫 번째 특이점을 메모해두기로 한다. 내가 슬퍼하는 자리마다 그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 그리고 조사 중에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몇 달 전인가? 정현이 회사 소유 연구소를 폐쇄하고 나서 사건 기록에 대한 보안 등급이 올라갔어. 1급 기밀로. 알고 있었어?”

 

 “……전혀.”

 

 “……당연히 몰랐겠지. 미안, 괜한 기억을 끄집어낸 것 같네.”

 

 “……다른 용의자는?”

 

 “한 명은 정현의 비서, 허선아야. 사내 기록에 따르면 다양한 무술 경력으로 대통령 경호까지 했던 사람이야. 고용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정현의 개인 비서가 됐어. 뭐, 표면적으론 일리 있어 보이지만 특별한 공통점 없이 이렇게 쉽고 빠르게 높은 자리를 꿰찰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긴 해.”

 

  정장 차림을 했던 정현의 비서는 과거 정현과의 만남 중에도 늘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레스토랑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심지어 나의 집 앞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무술에 특화된 개인 비서라면 둘이 함께 있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두 번째 특이점을 적어두기로 한다. 선아는 정현을 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다음으로는 국성기업의 연구원 조석기, 본래 의사였지만 진료 사고로 사직한 뒤 정현의 제의로 국성기업의 제약업 부분을 담당했었어. 연구가 종료 되고, 정현이 하반신 마비가 되고 나선 그 사람도 휴직계를 내고 정현에게 찾아가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했다고 해.”

 

  정현이 불구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나를 원망하기 전, 무뚝뚝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던 흰 가운의 남자를 의심해본다.

 

  국내 제일의 의료진에게 도시민 전체의 진료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맡겼던 사람이다.

 

  나는 묵묵히 세 번째 특이점을 적어둔다. 석기는 정현과 특별한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저택 CCTV 기록도 찾아봤는데 최근 들어 평소보다 더 자주 방문한 정황이 발견됐어. 이 둘 사이에도 역시 업무 외적으로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 결국 종합해보면 세 명 다 정현의 최측근이자 접근성이 주변인 이상으로 높다는 얘기지.”

 

 “단순히 재산만을 노리고 그녀를 죽인건 아니란 뜻이겠지.”

 

 “그렇지. 오래 쉬어도 감은 그대로네.”

 

 “……고마워.”

 

 “이 정도면 되려나? 혹시 몰라서 내용은 모두 당신 메일로 보내놨어. 기억 안 나면 천천히 읽어봐.”

 

 “대가는?”

 

 “오늘은 안 받을게. 대신.”

 

  그녀의 볼이 나의 뺨과 마주 닿는다.

 

  값싼 적색 드레스 사이를 비집고 나온 팔들이 흡사 가지에 매달린 열매처럼 나를 둥글게 휘감는다.

 

  난 아직 덜 익은 과일처럼 가지를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다.

 

  두 갈래 나뭇가지마냥 얇은 손은 그런 나를 아는지 그녀의 어깨에 바싹 끌어안는다.

 

 “다 끝나면 술 한 잔 하러와. 그때는 돈 내고 마셔.”

 

  가벼운 웃음을 남기고 텅 빈 컵엔 나의 온기를 남겨둔 채 문을 나선다.

 

  밤이 되어야만 볼 수 있는 붉은 등의 거리를 빠져나와 뒤편 달동네, 잠들지 않는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콘크리트 언덕에 올라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메아리로 번져놓는다.

 

  이 도시 전체에 머물러 있는, 그녀 곁에 맴돌던 바닐라 향, 그리고 나와 떠나간 E의 자취, 거대한 메아리는 온 도시를 가득 메울 것이다.

 

  오늘만큼은 누구도 그 무엇도 메아리로 퍼지는 그녀의 이름을 잊지 말아주길 바라본다.

 

  되돌아올지 모르는 메아리를 기다리고 싶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사건 현장을 마주해야 했다.

 

  언덕을 내려와 곧바로 택시에 올라타곤 행선지를 밝힌다. 기사는 소식을 들었냐며 살해당한 정현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서 창밖만 바라본다. 간혹 구시렁대는 그의 혼잣말이 들렸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차는 저택 앞에 도착한다. 차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얼굴의 순경이 다시 나를 반긴다.

 

 “충성! 오셨습니까!”

 

 “현장 정리는 얼마나 됐죠?”

 

 “현재 범행 도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같이 복귀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요. 피의자들은 구금 중인가요?”

 

 “네! 서 내의 구치소에 구금 중입니다! 반장님께서 형사님의 지시 전까지는 아무 조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괜찮다면 바로 복귀해요.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 하겠습니다!”

 

  부쩍 힘이 들어간 그를 먼저 앞장세우고 난 잠시 저택 쪽으로 몸을 돌린다.

 

  작별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최후에 그녀를 죽인 범인에게 수갑을 채울 때, 쇠창살에 가두고 살인자의 마지막을 지켜볼 때 정식으로 인사하리라.

 

  나는 핏빛 웅덩이에 조용히 묵념하곤 순경을 따라 그의 차로 향한다.

 

  차문을 열고, 닫고, 시동을 걸고, 페달을 밟고. 사이드 미러 너머로 저택이 작아져가고 그녀가 멀어져 간다.

 

  건물들이 즐비한 사거리에 들어서고 나서야 시선을 주변으로 돌린다.

 

  나를 이끌고 서로 향하는 신입 순경은 전방을 바라보며 어디선가 주워들은 내 과장된 무용담을 꺼내보려 한다.

 

  그에게 나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사람인 까닭이다. 마지못해 끄덕이는 내게 그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헌데 그가 보내는 미소는 그의 의도와 다르게 그녀를 잃은 날 조롱하는 것만 같아서 괜한 쓴 웃음밖에는 돌려줄 수가 없다.

 

  이럴 바엔 차라리 잠깐의 시간동안 꿈을 꾸리라.

 

  환상 속에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죽음을 피하려 발버둥 치던 그녀의 온갖 몸부림을 끌어안고 모습이 사라지기 전까지 한참동안 울어야지.

 

  이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면 서서히, 초점을 잃었던 정현의 눈동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옅은 갈색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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