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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순간을 위한 왈츠
작가 : 수리수리
작품등록일 : 2017.10.31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척,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춤을 춘다. 너를 살리기 위한, 그리고 시작과 함께 천천히 망가져갔던 우리를 위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위한 왈츠.
죽은 첫사랑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온 한 여자의 이야기.

 
4. 서곡
작성일 : 17-11-01 16:48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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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윤승조는 매력적이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다. 옅은 쌍꺼풀이 진 눈매는 다정하고, 콧대는 그림처럼 높다.

 반면 웃을 때 한 쪽만 올라가는 입 꼬리는 더없이 짓궂다. 그에게는 더없이 금욕적일 것 같은 순진한 얼굴과 타락의 끝에 물든 듯 나쁜 얼굴이 동시에 공존했다. 타고난 배우였다.

 

 성격 또한 외향에 뒤지지 않는다. 장난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진지하고, 센스가 있다. 모든 것을 타고난 것 같지만 노력파이기도 하다.

 

 그래서, 윤승조는 여자가 많다. 밝게 빛나는 직업 아래 태생적인 그의 고독은 여자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 어떡하나. 스물셋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한 사람을 좋아해버리고 말았다고. 괜스레 머리를 쥐어박으며.

 대기실 TV에서는 어김없이 승조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에 담긴 그를 바라보다, 나는 잠시 바람이나 쐴 겸 옥상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턱,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멈춰 섰다. 네가 옥상에 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다갈색 머리, 정신없이 통조림을 먹는 작은 고양이를 무심히 내려다보는 시선.

 이윽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작게 흔들리는 너의 눈빛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너는 잠시 나를 보다가, 다시 고양이에게 시선을 내렸다.

 

 

 “그다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단 사람이 왜 고양이용 통조림까지 사서 챙겨주는 걸까. 필터를 거칠 틈도 없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먹이를 주세요?”

 

 “글쎄.”

 

 

 잠시 말끝을 흐리다, 그가 웃었다.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아닌, 어딘가 씁쓸한 미소였다.

 

 

 “…야 하니까.”

 

 “네?”

 

 “먹이는 주는데 안아주진 않아.”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은 그가 다시 웃었다.

 

 

 “그러면… 적어도 죽진 않을 테지.”

 

 

 나는 잠시 얼굴을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너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았다. 옅은 눈동자에 고스란히 내가 담겼다. 그 순간, 나는 다시금 느꼈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너를 좋아하길 잘했다고. 그렇게.

 

 

 

 

 * 순간을 위한 왈츠 *

 

 

 

 그 때, 일이 이렇게 바빴던가. 숨 가쁠 정도로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화제는 잠시지만, 그걸 이어가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소속사에서는 기껏 띄운 모델이 반짝 사라지기 전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려는 듯, 나를 돌려댔다. 한 마디로, 들어오는 일들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 이외에는 전부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아 씨, 피곤해보이네. 다음에 기회 되면 우리 프로그램 꼭 한번 나와 줘. 아, 이거 마시고!"

 

 

 부쩍 잘해주는 사람도 늘었다.

 웃으며 커피를 받아 든 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피곤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렇게 프로그램 꽂아달라고 해도 무시하더니. 역시 사람은 뜨고 봐야해."

 

 

 현석이 통쾌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픽 웃고는 물었다.

 

 

 "다음 스케줄은 뭐야?"

 

 "예능 촬영. 잠깐 시간 비니까 밥 먹자. 아, 너 R 브랜드 전속 계약 맺기로 했어. 알지?"

 

 

 밥보다는, 자고 싶은데. 그나저나 R 브랜드라면, 승조와 같이 화보를 찍었던 브랜드다. 이 역시, 과거와 같은 진행 방향이다.

 

 

 "원래는 한 번 찍고 말 거였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서 윤승조하고 같이 전속 계약하기로 했다네? 이번 달 중으로 일정 잡아서 촬영 갈 거 같아. 무려 해외로."

 

 "….."

 

 "..뭐야,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 별로 안 기뻐?"

 

 

 아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었다. 어쩐지 잠이 달아났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급작스런 텐션 저하에 현석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을 나와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잠시 머뭇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보는 계단이었다. 조금 낡은, 옥상으로 가는 계단.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너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그다지.’

 

 ‘그런데 왜 먹이를 주세요?’

 

 

 무거운 철제 문 너머, 결 좋게 흐트러지던 너의 다갈색 머리.

 

 

 ‘…글쎄.’

 

 

 나는 이윽고 옥상에 도착했다.

 클럽에서의 뜻밖의 조우가 없었다면, 이곳이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 있을 곳이었다. 그곳엔 네가 없는 대신,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낯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양이 통조림을 따서 내밀었다.

 

 

 ‘먹이는 주는데 안아주진 않아.‘

 

 

 생각해보면 성격 참 지독해. 먹이도 줬으면서 안아주지 않을 건 뭐야. 고양이가 통조림을 반쯤 비웠을 무렵, 나는 몸을 일으켰다. 옥상 문을 막 나섰을 때였다.

 

 아. 나는 어쩐지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계단을 오르던 승조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걸음을 멈춘 채 나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한 뒤, 그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한 층을 내려갔을 때, 나는 그의 모습이 사선으로 비치는 계단 위를 힐끔 보았다. 멈춘 채로 잠시 서 있던 그가 이내 발걸음을 옮겨 옥상으로 들어간다.

 

 말을 거는 일 따윈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걸 것도 아니었다. 뭐가 문제지. 잠시 눈썹을 찌푸렸던 난, 이내 나직히 탄성을 뱉으며 그가 가고 없는 그 자리를 응시했다.

 

 

  *

 

 

 "미래-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CF을 찍던 중이었다. 화장을 고치다가 문득 내뱉은 질문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현석이 웃었다.

 

 

 "뭐,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노력한 만큼 바뀌는 게 당연한 거 아냐?"

 

 "…."

 

 "네가 항상 하던 소리잖아."

 

 

 그랬나. 쉽게 뜨지 않는 무명 기간을 전전하며, 아마 내가 했을 말들이었을 터다.

 5년 전, 나는 화보에서 웃었고, 이번엔 울었다. 그런데 화보는 똑같이 흥행했다.

 촬영이 끝난 뒤 나는 승조의 대기실을 찾아갔었고, 이번엔 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나를 찾아왔다.

 

 

 "순간의 노력과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고."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도경을 만났다. 무려 몇 달이나 이른 만남이었다.

 거기다, 승조에게 적대감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행동은 옥상에서의 만남을 없는 일로 만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맞잡았다.

 

 

 “그러니까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그랬었잖아?”

 

 

 만약 내가 촬영을 거부했다면? 그래도 화보가 화제가 되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촬영에 섰을 수도, 나쁜 의미로 화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나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머릿속부터 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다시금 손을 힘주어 쥐었다.

 

 

 *

 

 스케줄이 끝나고, 과거 혼자 자주 가던 조용한 바에 들어섰다. 바 이름은 ‘Valse Triste’, 슬픈 왈츠라는 의미였다. 고급스러운 클래식이 흐를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이곳은 지독히 낡았지만 더럽지 않고, 어두컴컴하지만 따뜻한 곳이었다. 비장하면서 평온한 이곳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닮았다.

 

 과거, 승조가 없어진 이후의 내 모든 슬픔은, 이곳에서 들이켜지고 뱉어지고 삼켜졌다. 나는 이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뒤, 술 하나를 시켰다.

 

 이것은 내가 이 바에서 마시는 첫 잔. 다시, 시작이다. 오래된 만큼 지독하기 짝이 없는 술을 마시면서도 정신이 또렷했다.

 

 

 

 가설 하나.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바꾸고 싶은 미래는? 당연히 승조다.

 그와의 사랑. 그리고 그의 죽음.

 

 

 말수가 없는 주인에게 종이를 하나 받아, 나는 왼쪽 단락에 기억나는 대로의 일들을 전부 끄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아야, 바꿀 수 있다. 앞으로 내가 할 선택들에 너와 나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리고 이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더 이상 멍청하게 굴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슬픈 왈츠(Valse Triste)'가 흐른다.

 

 우연찮게도 이 바의 이름과 같다. 아, 왜일까. 한 번도 이 곡을 들으며 슬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느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지웠다. 쓸데없이 비장한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앞으로 시작될 우리의 극에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이건 오로지 너를 위해 추는 나의 독무. 시작과 함께 천천히 망가져갔던 우리를 위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위한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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