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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31, 정리
작성일 : 17-10-31 14:52     조회 : 437     추천 : 0     분량 : 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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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을 정리한다.

 어지러웠던 책상을 정리하고 침대와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행거에 걸어 놓는다.

 욕실로 들어가 온 서랍을 뒤져 구겨진 고무장갑 한 쌍을 찾아낸다.

 한 손엔 치약을 짠 솔을 들고 한 손에 물 새는 샤워기를 들고 욕실 바닥을 청소한다.

 부엌으로 가서는 라면 국물 튄 전기레인지 주변과 물 떼 묻은 싱크대를 물티슈로 박박 닦는다.

 걸레를 빨아와서 땅바닥에 엉겨 붙은 굳은 치킨 양념을 닦아내고 밥솥에 쌓인 먼지도 털어낸다.

 

 이 작은 자취방으로 이사온 지 반년 만의 대청소였다.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었다.

 

 "어휴."

 

 고무장갑을 벗어서 아까처럼 서랍에 구겨넣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욕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땀에 절은 얼굴. 콧잔등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

 씻고 나오면서 방바닥에 물기를 털어버리려다 아차,하고 바지에 슥슥 닦는다.

 

 처음 이사올 때처럼 깨끗해진 자취방.

 의자에 앉아 노트를 편다. Bucket list.

 

 

 *

 

 

 "너네 생각 좀 해봤어?"

 "잘 모르겠어."

 

 현채와 연우는 서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별 할 말이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은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야,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까워. 빨리 노트 꺼내서 쓰자."

 

 연우는 뭔가 생각이 들었는지 노트와 필기구를 꺼냈다. 하지만 뭘 쓰지는 못하고 계속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한 달 동안 뭘 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어."

 

 현채는 벌써 모든 걸 포기한 사람같았다. 시무룩한 표정과 축 쳐진 어깨. 무기력한 움직임과 생기없는 눈동자.

 나도 연우처럼 노트와 필기구를 얼른 꺼냈다.

 그리고 옆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현채에게 다가가 볼펜을 그녀의 손에 꼭 쥐어준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지만 나 역시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든 해야 해. 그러니까 어서 써."

 

 나는 공책 맨 앞에 'Bucket list'라고 썼다.

 

 아주 어렸을 때,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러 와서 지구가 멸망 위기에 놓이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정의롭고 힘도 쎄고 머리도 좋았기 때문에 침략하러 온 외계인을 용감하게 맞섰다.

 결국 악당 외계인은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리고 지구에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현실엔 외계인도 없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힘 없는 멍청이다.

 특별히 대의를 위해 싸울만한 정의로움도 없으며 지나가던 개만 봐도 흠칫 쪼는 쫄보다.

 

 다만, 딱 한 가지가 그 영화와 똑같아졌다.

 곧 지구가 멸망하는 위기에 놓였다는 것.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사실 꽤 오래 전, 그러니까 9개월 전에,

 연초부터 뉴스에서 떠들만큼 거의 기정사실화 된 일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우주에 찌꺼기들과 먼지들이 뭉쳐져 거의 작은 행성에 견줄만큼 커다란 덩어리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지구를 향해 일정한 가속도가 붙으며 날아오고 있다고 했다.

 현재 관측된 속도로 계산해 보면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30일 뒤면 멸망한다.

 

 처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난 전 세계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 모양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물론 실제로도 전 세계에 엄청난 혼돈이 불어닥쳤다.

 마치, 그 모습은 '태초의 카오스 상태라는 게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싶은 모양새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진해서 일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나버렸다.

 게다가 절도부터 시작해 각종 강력범죄에 이르기까지 온갖 나쁜 일들이 사회 도처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의 모든 업무가 마비되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아예 현대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차츰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강력범죄는 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죽이지 않았다.

 전 세계의 모든 업무는 그 어느 때보다 질서정연하고 분주하게 처리되었다.

 점점 디데이가 다가올 수록 사람들은 차분해졌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만 봐도 그랬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예전에는 책만 펴면 잠이 왔는데, 요즘은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이 삶의 낙이다.

 짜증이 줄었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갈수록 여유가 생기고 마음이 느긋해졌다.

 언제부턴가 걷는 것이 좋아졌다.

 

 그렇게 지구 멸망을 안 지 8개월이 흘렀다.

 처음에 호들갑을 떨었던 몇몇은 그래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기라도 한 모양인데,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8개월을 의미없이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뭐라도 할 걸.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아주 딱 맞다.

 얼마나 게으르면 저 죽는다는 데도 하고 싶은 걸 8개월이나 미뤄뒀다가 이제 할까?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같은 애가 두 명 더 있었다. 우리 과 동기 현채와 연우.

 나를 포함 해 우리 셋은 좋게 말하면 털털한 거고, 안 좋게 말하면 게으르고 둔했다.

 셋이 함께 다니면 선배들이 '곰 세마리'라고 불렀다. 어떤 짖궂은 남자 선배는 동요를 개사해서 놀리기도 했다.

 

 우리 셋은 한 달밖에 남지 않자 드디어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단톡방에서 가장 먼저 굳은 결의를 비춘 것은 연우였다. 남은 한달은 그래도 알차게 보내야겠지 않냐며 나와 현채를 자극했다.

 그간 8개월 동안은 단톡방에서 의미 없는 '뭐 할거야?'와 '열심히 살거야!'로 시작해 결국 쓰잘데기 없는 잡담으로 끝났다.

 이로 얻은 교훈은 절대 휴대폰 자판이나 두들기면서는 뭔가 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낄낄거리다 보면 겨우 일어났던 의지도 달아나기 쉽상이었다.

 '내일부터 하지.'

 

 그래서 우리 셋은 나의 작은 자취방에 모여 둥글게 둘러 앉았다. 노트와 필기구를 들고.

 남은 한 달간의 계획을 알차게 세우는 것이 오늘 모인 이유였다.

 하지만 뭔가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에 한 달은 너무 짧았고, 그렇다고 시덥지 않은 일이나 하기엔 30일이 참 길고 아까웠다.

 

 먼저 모이자며 독려했던 연우 역시 볼펜을 끄적거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답답하기만 했다.

 현채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노트에 볼을 묻고 볼펜을 휘적거렸다.

 현채에게 볼펜을 쥐어준 나였지만, 나 역시 'Bucket list'만 폼나게 적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진짜, 뭘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

 

 현채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도 뭘 해야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연우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나와 현채는 연우의 다음 말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 돌덩어리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에, 나는 절대 지나간 내 인생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

 

 현채가 연우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전에, '그래도 꽤 괜찮은 인생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평소엔 가벼운 장난을 좋아하는 연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신의 진지한 말이 뒤늦게 어색했는지 연우는 애꿎은 입술을 달싹이며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아니, 뭐, 나는, 그렇다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래도 뭘 해야할지 좀 떠올라서...어."

 

 연우는 혼자 얼굴이 빨개져서 나와 현채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노트에 얼굴을 파묻고 뭔가 열심히 써내려갔다,

 현채도 시선을 노트로 돌렸다. 볼펜을 꼭 쥐고 뭔가 끄적대기 시작했다.

 

 방금, 연우는 돌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에 지나간 인생을 절대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맞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이게 남은 30일의 정답이다.

 30일'밖에' 남지 않은 게 아닐지도 몰라. 30일'이나' 남은 거야.

 

 스물 두 살.

 되돌아보면 내 22년 인생에는 수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니, 모든 후회들이 모여 내 인생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항상 오늘 내가 했던 실수나 쪽팔린 일들, 입밖으로 꺼낸 낯부끄러운 농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 기억 속엔 분명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비웃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어떡하니, 어떡해!' 비명을 지르며 죄 없는 베게와 이불에게 분풀이를 하곤 했다.

 

 자, 생각해보자.

 그 많은 후회들 중에 죽기 직전엔 뭘 가장 후회할 지.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연우가 후회, 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직감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마, 나는.

 내 자존심.

 내 자존심을 가장 후회할 거야.

 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을 가장 후회할거야.

 

 연우와 현채는 이미 '앞으로 해야할 일'을 쓰는 것에 푹 빠져 나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그래도 울어서는 안 된다.

 막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글을 쓰는 척 노트로 얼굴을 파묻었다.

 

 '난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거 잘 못해. 그런 거 서툴러.'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하면서 네 마음에 상처를 냈어.

 

 생각해보면 아주 쉬운 일들을 다 놓쳤어.

 

 고마운 너에게 고맙다고 하지 못했잖아.

 미안한 너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았잖아.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잖아.

 

 지금이라도 괜찮을까?

 

 괜찮다면, 난,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할 거야.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할 거야.

 

 너에게.

 

 너라니.

 

 아, 생각지도 못하게 너의 얼굴이 머리속에 커다랗게 떠올라버린다.

 베게랑 이불이 없어서 이불킥도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채 도리질해본다.

 

 하지만 점점 더 커지는 너의 얼굴.

 나는 가까워지는 너의 얼굴에 깜짝 놀라서 너무 크게 코를 훌쩍여버린다.

 방 안의 침묵이 깨진다.

 

 "뭐야, 너 울어?"

 

 연우의 잠긴 목소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연우와 현채 모두 옅게 눈이 부어올라있다. 물기 어린 볼. 발갛게 물든 코끝.

 

 "너,너네도 울어?"

 

 나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까지 더듬었다.

 

 "너무 후회되는 일들이 많더라고. 누가 보면 별 거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 난 진짜 후회 돼."

 

 현채는 여전히 곧 울 것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나도 그래."

 

 연우가 현채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나 그래도 노을이까지 울 줄은 몰랐다."

 

 "나도 장노을 우는 거, 처음 본다. 장노을 평소에 말도 잘 안 하잖아."

 

 연우는 평소에 내가 하고 있는 뚱한 표정을 따라했다.

 방금전까지 눈물을 닦던 현채가 까르르,웃었다.

 나도 연우 얼굴을 보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몰라. 쓰다보니까 좀..."

 

 나는 말끝을 흐렸다. 차마, 누가 생각났다느니 어쩌니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애들도 딱히 궁금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버킷리스트를 다 썼다.

 사실, 오늘 모인다고해도 별 소득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30일 동안 할 계획표를 짜다니.

 

 일단 오늘은 집 청소야. 애들 가고나면 집청소부터 해야지.

 

 

 

 

 - D-31. 자취방 깨끗하게 청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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