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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고백
작가 : 안비로움
작품등록일 : 2017.10.31

용의자들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되살려 체험할 수 있는 어느 이름없는 형사, 사건 미결로 정직을 당한 후 옛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복귀한다.

 
Prologue. 밝은 밤
작성일 : 17-10-31 11:02     조회 : 364     추천 : 0     분량 : 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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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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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침묵을 잊은 듯 활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날, 내가 존재하던 공간에서의 시간은 도시의 그것과 달랐다.

 

  비는 전국적으로 쏟아졌고 땅을 밟는 모든 이들의 신발은 온통 진흙으로 물들었다.

 

  자만의 싹을 틔운 대가는 처절했다. 주변의 공허는 비벼지는 우비들의 소리와 간간히 터지는 플래시로 채워졌다.

 

  “……이만 철수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산을 손에 들었지만 이미 가슴팍까지 빗물에 젖어버린 양복차림의 사내는 내게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나는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누구의 것인지 모를 흔적만을 살폈다.

 

  “철수 같은 소리 하네. 얻다대고 명령이야! 다들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

 

  우산조차 쓰지 않은 가죽재킷의 남자는 물에 빠진 생쥐마냥 처참한 몰골로, 그러나 굽히지 않는 어투로 사내에게 응수했다.

 

  이내 흔적이 자취를 감춘 까닭에 더 이상 희망할 수 없었던 나는 웅덩이에 잠겨있던 코트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그만해요.”

 

  사내는 남자의 당당함에도 개의치 않고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역시 남자의 뜻에 맞춰줄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두 분 모두 내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니 더 이상 일 키우지 말고 서로 복귀하십시오.”

 

  남자는 사내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방법을 바꿔 그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자신감은 사라진 뒤였기에 그의 태도는 설득보다 구걸에 가까웠다.

 

 “좀만 더 찾읍시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서…….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이 모든 상황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다들 그만해요.”

 

  하지만 사내와 남자는 나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순간 내 속에 억눌려 있던 절망과 좌절의 기운은 분노로 바뀌었고, 자라다 만 자만의 싹 역시 때마침 굵은 빗방울에 유명을 달리했다.

 

 “되도 않는 말 집어 치우십시오. 이미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들였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한 사항이니 이 이상 막아서신다면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회장님 부친이잖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끝내는 겁니까?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어댈지 뻔히 알면서도!”

 

 “그만, 그만, 그만! 다 끝났어요! 그러니까 그만들 해요, 제발!”

 

 “제발, 다들 그만하라고! 헉, 헉…….”

 

 “왜 그래 오빠, 괜찮아? 악몽이라도 꾼 거야?”

 

  옆에서 벌거벗은 여인은 식은땀으로 젖은 나의 얼굴과 검게 변한 눈 밑을 번갈아 보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밤중의 비명소리에 대해 묻는다.

 

  그러나 쾌락을 위해 함께 하는 그녀와 밝히기 싫은 오래된 기억을 나눌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랑했던 이의 아버지, 실종된 그를 찾기 위해 만용을 부렸던 풋내기 형사에 관한 이야기를, 과연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는가.

 

 

  “……괜찮아, 미안한데 이만 가줬으면 해.”

 

  50kg 남짓한 몸, 속옷이 훤히 비치는 노란색 한 벌 드레스, 짙은 마스카라와 빨간색 립스틱을 몇 번이고 덧칠한 금발의 여인은 그깟 악몽에 왜 이렇게 소란이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며 검정 하이힐을 고쳐 신은 뒤 세차게 문을 나선다.

 

  너무나도 익숙한 반응에 나는 아랑곳 않고 거실로 들어서 침대 대신 널찍한 소파에 몸을 눕힌다. 옛 기억에 사로잡혀 밤잠을 설치는 것은 여인의 말대로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 평범한 일이다.

 

  그 평범함이 찾아왔을 때 대부분은 수면제를 삼키거나 양을 세며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잠에 들려는 시도를 한다. 원치 않는 꿈이 사람을 얼마나 여리게 만드는지 누구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몽 없는 나날을 위해 애쓰는 그들과 난 같으면서도 다르다.

 

  악성 종양으로 썩어가던 몸을 가까스로 치료했지만,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으로 나는 내 곁을 떠나간 그녀의 가녀린 손처럼, 목덜미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새벽의 냄새와 함께 고장 난 시간을 살게 됐다.

 

  멍하니 흘려보내던 어둠의 중심에서 기억을 환상으로 되살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도무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과 3년 째 밤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 내가 여느 때처럼 내 옆의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아 보는 두 번째 악몽은 거대한 저택 앞에서 나를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꾸준히 반복해 보는 것이다.

 

 “……찾지 못했어. 결국 아무것도 찾질 못했어. 미안해.”

 

  나는 실종된 그녀의 아버지를 찾지 못한 죄책감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그걸로 만족해.”

 

  그녀는 조심스레 나를 일으켜 세우며 평상시의 상냥함이 가신 목소리로 위로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나 오만이 한 풀 꺾인 나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저 흐느껴 울며 같은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당신은 날 사랑해?”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자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인했다. 나는 그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지만 곧 언제나와 같이 답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표현도 못할 만큼.”

 

  그러나 그녀의 옅은 입술은 감정 잃은 모양을 하고 계속해서 내게 질문했다.

 

 “그럼 만약에,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어떨 것 같아?”

 

  나는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에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뻔한 말로 대신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렇게 당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데.”

 

  그녀의 말대로 함께한 모든 일이 환상이라면, 나의 세계는 벌써 무너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내가 모두 거짓이라도, 그때도 날 사랑할 수 있어?”

 

 “물론이야, 내 전부를 걸고 약속 할게.”

 

 “말뿐이라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하지만 이제 우리, 헤어졌으면 해.”

 

 “대체 왜, 조금만 시간을 줘. 혼자서라도 반드시……!”

 

 “당신 잘못이 아냐. 이제 당신은 수술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수술이 끝나면, 두 번 다시 날 찾아오지 마.”

 

 “……이렇게 끝내는 거야? 다 떠나보내고 이제 우리 관계도 끝내려는 거야?”

 

 “응. 이제 모두 정리할 생각이야.“

 

 “당신 마음이 돌아설 가능성은 없는 거야? 이유를, 이유를 들어야겠어.”

 

 “……미안해, 지금은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어.”

 

 “이렇게 끝낼 거라면, 알아야겠어.”

 

 “……좋아, 그렇다면 잘 들어. 내가 당신을 떠나는 이유는…….”

 

  이별이 빚어낸 옛 연인에 대한 환상이 늘 나를 붙들었다 놓는다. 항상 동일한 행동과 대사뿐임에도 하루에 몇 번이고 맞이하는 그녀의 핑크빛 작은 입술, 내 모습이 들여다보이는 황갈색 눈동자, 약간 살이 붙은 하얀 피부와 검고 긴 생머리는, 아직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체온을 슬며시 머금은 소파를 뒤로하고 베란다로 나선다. 철창 너머 10층 높이에서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사는, 실연으로 괴로워하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 사랑했으나 이제는 떠나간 사람이 다시 곁으로 돌아오는 기적 혹은 망상에 가까운 꿈을 그려대며 저마다 미소를 띤다. 실연과 불면으로 예민해진 나는 언제쯤 그들 틈에 날 끼워 넣을 수 있게 될까.

 

  외로움 가득한 좌절 뒤 나는 습관처럼 텅 빈 방에 들어가 처방받은 수면제를 변기통에 집어넣곤 망설임 없이 물을 내린다.

 

  약을 빌어 잠에 들었다간 방금처럼 그녀가 등장하지 않는 괴로운 기억의 환상이 나타나 지나치게 나를 흔들어 놓을 것 같기 때문이다.

 

  거실로 돌아온 뒤에는 낡은 침대와 책꽂이, 옷장 구석구석 떠나간 그녀의 흔적을 살핀다.

 

  심지마저 모두 타버린 바닐라 향초, 색 바랜 나와 그녀의 사진, 옷가지들에 깊게 패인 그녀의 체취를, 일종의 의식인 것처럼 맴돈다. 홀로 만끽하는 3년 째 밤도 변함없이 환상 속 그녀와 검은 하늘, 나와 검은 잠옷, 불 꺼진 검은 방, 검은 세상, 검은 담배 연기와 함께다.

 

  매주 찾는 병원에서 주치의는 이와 같은 나의 ‘증상’을 다음으로 정의했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원인 모를 죄책감으로 불면하는 가면성 우울증과, 무의식 중 담당 사건 피해자와 용의자들의 진술을 구별된 인격으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약간의 해리성 인격 장애를 보임.’

 

  과연 나는 그의 진단대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터널처럼 길고 긴 밤의 끝에는 빛이 있을까.

 

  아무도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녀를 추억하는 모든 절차가 끝나면 언제나처럼 텅 빈 밤을 채우는, 환희에 찬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들지 않는 도시는 언제나 날 초대 하지 않은 채, 축제와도 같은 밤을 즐긴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간직하고픈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피곤함에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을 수 없다.

 

  만약을 대비해 한 두 알정도 남겨 둔 주황색 통 안의 수면제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시 참아보기로 한다.

 

  대신 담배를 입에 물고 마치 사랑을 나누듯, 다른 이가 보기 역겨울 정도로 빨아먹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터까지 그을린 꽁초를 나는 재떨이에 무참히 짓이긴다.

 

  그리곤 긴 시간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아 활짝 냉장고를 열어젖힌다. 하지만 안엔 말라비틀어진 과일과 조미료뿐이다. 모자란 것을 사야했다.

 

  무척 짧은 외출이지만 곤두선 신경 탓에 타인의 시선을 절대 무시 하지 못하는 터라, 가장 멀끔한 검은 양복과 트렌치코트로 갈아입곤 옷매무새를 몇 번이나 점검한 뒤 집을 나선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찬 기운을 뿜어대는 대리석 복도를 지나 로비 입구에 자리한 편의점으로 들어서면, 매번 냉장고가 빌 때마다 찾는 그곳의 직원이 급하게 침을 닦곤 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

 

 “응, 오랜만이야.”

 

  앳된 얼굴이지만 늘 우수에 찬 눈을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은 언젠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연인의 치료비로 든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고 말했다.

 

 “계산할게.”

 

 “육포 하나, 라면 네 봉지, 냉동 햄버거 두개……. 또 술이에요? 어차피 마셔도 잠 못 자면서.”

 

 “별 수 없잖아. 이 시간엔 할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럼 오늘은 저랑 한 잔 할래요? 한 세 시간 정도는 손님도 없고…….”

 

  전화기에선 흥겨운 멜로디가 들려오지만 화면을 가득 메운 발신자는 결코 반갑지 않은 이름이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다. 무지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물어봐야 같은 답일 거 알잖아요.”

 

 ‘……밖이야?’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잠깐 나왔어요.”

 

 ‘……잘됐네. 정직, 오늘부로 끝난 거 알지? 끝나자마자 이렇게 불러서 미안한데. 나 지금 1번가야. 네가 와줬으면 한다.’

 

 “무슨 일이죠?”

 

 ‘……살인 사건이야. 일단 와서 얘기하자.’

 

 “……바로 갈게요.”

 

 ‘……그래. 서둘러 와줘. 기다릴게.’

 

 “네. 끊어요.”

 

  노곤한 듯 멍한 표정으로 내 의중을 살피는 그에게 아쉬운 소식 밖에 전할 수 없어 유감이다.

 

 “……가야돼요?”

 

 “응. 미안해, 술은 다음에 마셔야 할 것 같아. 산 건 나중에 들고 갈게.”

 

 “괜찮아요, 전 매일 여기에 있으니까.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잘 다녀오세요!”

 

  미소로 배웅하는 그에게 웃음으로 화답한 뒤, 여유로이 밤길을 걸어본다.

 

  요란하게 밤을 채우는 노랫소리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에, 불면에 한탄하는 나의 얘기도 끼워 넣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지금 시간까지 깨어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행복한 표정만 가득하다. 나와 같은 기분을 공유하고자 무언의 대화를 청해도, 칙칙한 아우라를 내뿜는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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