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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2.수상한 꽃다발
작성일 : 17-10-30 17:32     조회 : 38     추천 : 1     분량 :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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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는 대기실에 도착해 있는 꽃다발을 보고 멈칫 했다.

 

  '어떡해. 또 수국이잖아.'

 

 제자리인양 당당하게 화장대 위에 올려진 꽃다발은 제이에게 이상한 카드를 보낸 남자가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윤백룡 씨에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무슨 소리야, 아빠의 죽음에 대체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거지?

 

 카드에 적혀있는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자, 팔에 오도도 소름이 돋고 간담이 서늘해진 제이는 카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남자에게 받은 수국도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ㅡ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아름다운 수국에 베여있는 그의 향수 냄새가 얼른 공중에 사라지길 원한 제이는 꽃병에 꽃을 꽂아두는 대신 꽃다발을 벽에 거꾸로 매달아 놨다.

 

 공연하려면 화장도 예쁘게 해야 하고 머리도 깔끔하게 만져야 했지만,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 있는 꽃다발을 보고, 제이는 차마 꽃다발이 있는 화장대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마치 벌레를 먹는 다육 식물을 만지듯이 수국 꽃다발을 살짝 건드려 보았더니, 다행히도 꽃다발 안에 이상한 카드 같은 건 꽂혀있지 않았다.

 

  “……하아,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거울 속에 어제 만난 남자의 모습이 비치자, 제이는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선의 얼굴을 가진 남자는 오늘도 어제처럼 갑자기 제이를 찾아왔다.

 

 제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남자는 적당히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턱선이 돋보이는 굉장히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난 남자의 팔뚝은 두꺼웠고 어깨도 한강처럼 넓었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여자의 환호와 적극적인 대시를 받았을 것 같은 남자였지만, 제이는 그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무례한 남자는 딱 질색이었다.

 

 노크도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신의의 대기실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진짜 이상한 남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자 때문에 제이는 자꾸 심장이 떨렸다.

 

 기분 좋은 떨림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뒤를 쫓아다니던 검정 양복의 사내가 보이지 않은 걸 보아하니, 남자는 혼자 제이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 같았다.

 

 수상한 남자와 단둘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 있는 건

 

  ‘……어쩐지 너무 위험해.’

 

 대기실에 자신과 남자 단 둘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어쩌면 PD가 아니라, 스토커일지도 몰라.

 

  ‘스토커라니……!’

 

 제이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안 좋은 일은 왜 계속해서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원하지 않았던 제이는 그저 평범하게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서, 그와 꼭 닮은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한테 스토커가……!

 

  “여긴 웬일이시죠?”

 

 공연장 제일 구석에 있는 대기실에서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자각한 제이의 목소리에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경계하는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의 입술 사이로 허, 하는 바람 소리를 터져 나왔다.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럼요. 여긴 관계자 외에 출입 금지 구역이에요.”

 

  “문밖에 안 쓰여 있던데.”

 

  “문에 쓰여 있지 않더라도…….”

 

 제이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사실 제이의 대기실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공연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 제이는 공연 리허설 전에 미리 대기실에서 간단한 마술로 손을 풀거나, 팬들이나 지인들을 대기실로 불러서, 팬서비스로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눈앞에 있는 남자를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제이는 그와 함께 사진도 찍고 싶지 않았고 사인고 해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남자도 제이에게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이곳에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여긴 왜 온 거지?

 

  “‘환상의 마술’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네? ‘환상의 마술’이요?”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자신을 무슨 스토커 대하듯이 대하며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대기실엔 아무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 도도한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물론 제이는 고양이 같은 미인은 아니었고 굳이 동물로 비유한다면 동글동글 귀여운 다람쥐 같은 미인이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다가 웃으면 가로로 길게 휘어지는 눈매가 관능적이기보다는 귀여웠다.

 

 하긴 아직 그녀는 성인이 된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은 20살이니, 섹시함이랑은 거리가 먼 게 당연했다.

 

 철수가 선호하는 여성상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섹시한 여자이라서, 아직 뽀송뽀송한 피부에 젖살이 빠지지 않은 제이를 여자로 볼 리가 만무했다.

 

 굳은 표정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제이를 보고, ‘나는 너를 여자로 보지 않으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철수는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행동에 숨겨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건지, 적당히 안전거리를 확보하자 굳어 있던 제이의 표정이 스르르 풀어졌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해봐요.”

 

 철수도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녀도 철수에게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누가 먼저 질문에 대답하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철수는 대기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편안하게 다리를 꼬아 조용히 그녀의 질문을 기다렸다.

 

  “어제 나한테 준 카드, 그게 뭐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제이의 질문에 철수의 입가에 살짝 비소가 걸렸다.

 

 그게 궁금했던 건가.

 

 제이가 잔뜩 털을 세운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면, 철수는 흔쾌히 대답해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죽음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독일에서 국민 마트라고 불리는 할인점 ‘말디’의 창업자이자 경영자이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는 돈도, 집도, 부모님도, 그리고 단 하나뿐인 동생 태오마저도 없었던 비루한 고등학생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직 홀로 세상에 버려져 있었다.

 

 양식장을 하시던 아버지가 태풍에 휩쓸려 돌아가시면서 비극이 시작되었고, 홀로 힘겹게 자식을 키우시던 어머니가 폐암으로 운명을 다하시면서, 어린 형제는 거친 세상에 내던져졌다.

 

 시설에 맡겨진 형제 중 어렸던 태오는 독일로 해외 입양을 갔고, 나이가 많은 철수는 한국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철수가 아주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윤백룡 이었다.

 

 하얀 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보육원에 마술쇼를 하러 온 백룡과 우연히 마주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인연인 것 같았다.

 

  ㅡ 너 마술 한번 해볼 생각 없니? 얼굴도 잘생겨서 여자 관객들이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ㅡ …….

 

 마술쇼를 보고 한 번에 마술 트릭을 간파했는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을 마술 제자로 캐스팅하려는 백룡이 조금 재미있어서 철수는 그저 웃기만 했다.

 

  ㅡ 이야, 봐 바. 손도 크네! 동전 마술 같은 거 연습하면 금방 잘 할 것 같은데. 아저씨 밑에서 제자로 들어올래?

 

  ㅡ …….

 

 어차피 2년 뒤에 성인이 되면, 500만 원을 들고 보육원에서 나가야 했다.

 

  ㅡ 우리 딸도 마술하는데, 우리 딸 되게 예뻐.

 

 예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철수가 백룡이 들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 눈을 돌렸다.

 

 이 아저씨가 장난하나.

 

 초등학교 앞에서 쭈쭈바를 물고 있을 것 같은 꼬마 아이가 핸드폰 화면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걸 보고 철수는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ㅡ 마술사 해보는 게 어때? 여자들한테도 엄청 인기 끌 수 있어.

 

 이번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ㅡ 왜? 뭔가 따로 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2년 후 시설을 나간 뒤, 준비한 나름의 계획이 있었던 철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보육원 원장에게도 말하지 않은 철수의 무모한 계획은 오직 석구만 알고 있었다.

 

  ㅡ 강철수, 너 그게 말이 되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미친놈아.

 

 석구가 비웃든지 말든지 철수는 신경 쓰지 않고 독일어 공부에 매진했다.

 

 500만 원으로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계획이라는 철수의 말을 들은 백룡이 한동안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ㅡ 왜 하필 독일로 가겠다는 건지 물어봐도 되니?

 

 아무 준비 없이 해외에 나가는 건 도박이라는 걸 철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는.

 

  ㅡ 태오. 내 동생 태오가 독일로 입양 갔어요.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왜냐면 태오는 내 동생이자 유일한 가족이니까.

 

 가족은 꼭 함께 살아야 하는 거니까.

 

 가족은 같이 살아야지 의미가 있는 거니까.

 

 오랜만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니 가슴 한편이 짠해진 철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백룡은 독일에서 쓰라며 자신의 손에 500만 원을 쥐어주었다.

 

 그때 뭘 믿고 나한테 그렇게 큰돈을 주셨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나를 뭘 믿으시고.

 

 백룡에게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셨냐고.

 

 백룡은 무모한 도전을 향해 무작정 떠나는 탕아를 위해 따스한 격려도 건네주었다.

 

 만약 독일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백룡은 떠나는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면서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었지만 백룡의 진심은 고스란히 철수에게 전해졌다.

 

 결국, 철수는 백룡이 준 500만 원으로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백룡이 업었으면 철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꼭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그가 죽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산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자동차가 급발진하다니."

 

  "……."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문 제이는 문득 왜 철수가 아빠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했다.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무슨 숨겨진 이유갸 있길래 그는 우리 아빠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분명히 누군가가 선생님의 '환상의 마술' 트릭을 빼앗으려고 일부러 자동차를 고장 낸 것이 분명합니다."

 

 '환상의 마술' 트릭을 알아내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아빠를 일부러?

 

 에어컨이 켜져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한기가 돌아서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 제이는 얼른 두 손으로 자신의 팔뚝을 쓸어내렸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룡만 할 수 있는 전매특허 마술인 '환상의 마술' 덕분에 백룡은 세계적인 마술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 설마요.“

 

 하지만 제이는 고작 마술 트릭 하나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철수가 품속에 있던 호텔 카드키를 제이에게 내밀었다.

 

  "H 호텔 1605호.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합시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수상한 남자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

 

 

 

 제이는 리허설 시작 시각이 지났다고 알리러 온 지우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지우 언니, 어떡하죠?”

 

 수상한 남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지만 제이의 눈동자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심장은 아직도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왜 그래, 제이야. 무슨 일 있어?"

 

  "그게……."

 

 누군가가 아빠를 일부러 죽인 것 같다느니, 환상의 마술 트릭을 알고 있는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다느니, 그가 한 이상한 소리를 지우에게 전할 수 없었던 제이는 입을 여는 것을 잠시 망설였다.

 

 수상한 남자는 도통 알아듣지 못할 말만 하고 무심하게 떠나 버렸고, 그녀의 손에는 H 호텔 카드키가 쥐어져 있었다.

 

 제이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지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었다.

 

  "왜 그래, 제이야, 정말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니에요."

 

 이상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수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제이는 조용히 자신의 팔을 감싸 앉았다.

 

  "그런데 강 대표님하고 아는 사이야?"

 

  "……네?"

 

 별거 아닌 질문인데도 제이는 화들짝 놀라며 큰 목소리를 냈다. 자신이 낸 큰 목소리에 스스로 놀란 제이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강 대표님이라고요?"

 

  "응, 아까 제이 대기실에서 나온 사람 강 대표님 아니야? 복도에서 지나치면서 인사도 했는데."

 

  "그분이 대표님이세요?"

 

  "응? 그거 몰랐어? 방송국 사람들도 강 대표님한테 설설 기잖아."

 

 그냥 이상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우도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제이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 대표님, 제이 스폰서잖아."

 

  "네에? 제 스폰서요?"

 

  "응,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 말디’의 CEO 강철수 대표."

 

 

 

 ***

 

 

 

 딸랑.

 

 허름한 중국집과 어울리는 싸구려 종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종석은 고목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종을 보면서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한 약속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도 들여놓지 않았을 싸구려 중국집이었다.

 

  "어이, 오랜만이야."

 

 종석은 과장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태춘은 이미 제일 큰 사이즈의 탕수육을 시켜놓고, 대낮부터 고량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태춘의 눈꺼풀은 반쯤 감겨 있었다.

 

 탁.

 

 태춘이 술잔을 앞에 내려놓자 종석은 슬쩍 손목에 차여진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종석에게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 잔을 주고받으며 고량주 한 병을 비웠고, 점점 취기가 오르면서 종석의 얼굴도 태춘처럼 빨개졌다.

 

 우걱우걱.

 

 말없이 탕수육을 씹어 먹던 종석이 슬며시 말문을 열었다.

 

  "죽일 필요는 없었지."

 

  "……."

 

  "결국 마술 트릭은 못 알아 낸 거지?"

 

 따라주는 술만 마시던 종석이 고량주를 가져와서 자신의 술잔에 따랐다.

 

 종석과 태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같은 고등학교가 아니었다면, 종석은 살면서 태춘과 어떠한 교차점도 없었을 사이였다. 태춘은 꿀 먹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뭐,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겠나."

 

 공중파 인기 프로그램 PD였던 종석은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연예인과 수입을 비교하며 허탈해하던 중, 어느 유명 마술사가 연 3억을 번다는 기사를 읽었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은 종석은 마술을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자신이 마술사로 출연했고,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죽이라고 그런 거 아니었어? 처리하라며."

 

 취한 줄 알았던 태춘은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지."

 

 텅 빈 술잔을 바라보며 종석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회사를 그만두고 마술사로 전향한 종석은 마술사로 승승장구하면서 16살 어린 애인까지 생겼다.

 

  "한 잔 더 하지?“

 

 손을 들어 거절한 종석은 안쪽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종석의 입에서 뿌연 연기가 길게 꼬리를 물고 흘러나왔다. 불륜으로 인해 아내가 자살하면서 종석도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젠장, 죽어도 그렇게 죽으면 어떡해.

 

 한국에 있는 모든 여성 잡지들이 종석의 불륜으로 자살한 아내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다루면서,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마술 공연을 보러오던 유부녀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다시 재기하려면 마술사로서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증명해야 했다.

 

  "‘환상의 마술’ 그게 제일 중요한데."

 

  "그냥 좀 욱했어."

 

  "……."

 

 종석은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두목 대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와서, 소일거리 없이 백수로 지내던 태춘을 우연히 사우나에서 만났다.

 

 마침 재기를 노리고 있던 종석은 그에게 백룡의 ‘환상의 마술’ 트릭을 알아내달라고 부탁했다.

 

 ‘환상의 마술’ 트릭을 알아내달라고 했을 뿐인데.

 

 태춘은 무식하게 자동차 고압 펌프를 일부러 망가트려서 백룡을 죽여 버린 모양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종업원을 불러 고량주 한 병을 더 시킨 종석이 술잔에 채워진 술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겼다.

 

  ㅡ 당신이 내 마술 트릭을 안다고 해서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나? 자신이 있다면 어디 한 번 해보게. 10번이든 20번이든. 당신이 관객에게 제대로 된 마술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당신에게 마술 트릭을 알려주겠네.

 

 건방진 새끼, 마술 조금 잘한다고 너무 건방지게 구는 인간이었다.

 

 백룡은 종석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마술사들이 고안한 마술 트릭을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방송에서 보여준 것에 대해서도 크게 역정을 냈다.

 

 오지랖도 적당히 부려야지.

 생각해보면 태춘이 백룡을 죽인 것도 일정 부분 이해가 갔다.

 

 무명 마술사 대신 유명한 자신이 TV에 나와서 마술을 보여준 게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래, 다 지나간 일이야.”

 

 이미 지나간 머나먼 과거라고 덮어두면서 태춘의 악행을 묵인 한 종석은 그의 술잔에 고량주를 넘칠 정도로 따라주었다.

 

 태춘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종석은 ‘환상의 마술’ 트릭을 알아낼 또 다른 음흉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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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이브 17-12-24 13:48
 
오! 뭔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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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8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81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43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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