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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정상인 병동
작가 : 쉐리
작품등록일 : 2017.10.30

대한민국 청소년이 가장 많이 자살하는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바로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시기이다.
한명, 두명씩 사라지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유서'를 남긴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그저 '자/실사건'으로 취급한다. 자살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자/실사건에 설화의 친구 다은이 휘말리게 되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설화는 의외의 장소에서 다은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그들이 마주친 곳은..?

인간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

 
9화
작성일 : 17-10-30 14:25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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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살짜리 남자애에게서 보통은 들을 수 없는 아주 슬픈 목소리였다. 설화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설화는 아이에게 웃으면서 ‘잠깐만’이라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 유 원장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눈동자만 설화에게로 돌렸다.

  “상담할 게 뭐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나이인 마흔 살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설화는 그녀의 앞에 서서 굳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해인이는 집에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들은 것처럼 유 원장은 등을 곧게 세우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설화는 약간 겁이 났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돌려보내줘야 하지 않나요? 지금 해인이는 엄마를 보고 싶어 해요. 그런 아이를 이곳에 가둬놓는 건 범죄행위예요.”

  “설화야.”

  “저희들은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여기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만, 저 애는 아직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애잖아요. 아직 엄마가 필요할 나이잖아요, 원장님.”

  유 원장은 설화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설화의 마음속을 뚫어보는 것 같아 설화는 두려움에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너, 여기 있는 애들이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알기나 해?”

  “네?”

  유 원장은 입 꼬리를 한쪽만 올리며 마녀같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고통을 안고 온 애들이야. 그걸 네가 알기나 해?”

  설화는 점점 유 원장이 무서워졌다. 더 이상 그녀가 알던 착한 병원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에 제일 처음 온 종혁이를 비롯해 지윤이, 세희, 태훈이, 경옥이, 우진이, 해인이, 윤서, 그리고 다은이까지 그 애들 전부 세상이 싫어서 떠나온 애들이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그곳이 싫어서 여기로 온 애들을 돌려보내라고? 제정신이니? 너 똑똑한 줄 알았더니 아주 멍청하구나. 사리판단이 그렇게 안 돼?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해인이도 어려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다 적응하게 돼 있어. 내가 억지로 데려온 줄 아니? 당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제 3자가 나서면 안 돼지. 얌전히 지내, 김설화.”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고 냉랭하게 말했다. 충격을 심하게 받은 설화는 그대로 서 있다간 쓰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해인이가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면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저, 마리아님. 설화누나랑….”

  해인이는 안색이 창백한 설화를 보고 놀라서 말을 잊었다. 유 원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활짝 웃어 보이며 해인이에게 말했다.

  “설화 누나가 몸이 좀 좋지 않대. 그보다 해인아, 누나랑 뭐?”

  “밑에서 성탄절파티 한다고 해서 같이 가려고요.”

  아이는 설화를 힐끔 힐끔 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고 싶니?”

  “예. 가고 싶어요.”

  유 원장은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고 싶다면 가야지. 누나랑 같이 내려가도록 해. 과식하지 말고, 놀다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알았지?”

  “네, 마리아님.”

  허락이 떨어지자, 해인이는 환하게 웃었다.

  “설화야. 해인이 잘 챙겨. 아직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까. 난 할 일이 있어서 못 내려갈 것 같아. 애들한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전해줘.”

  소름끼치도록 연기를 잘하는 그녀의 모습에 설화는 경악했지만, 해인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마음을 숨겼다.

  “예.”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설화는 해인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서 방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자마자 해인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누나,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아니야, 괜찮아. 어서 가자.”

  설화는 현기증이 밀려왔지만 애써 웃으며 해인이와 모두가 있는 위층으로 올라왔다. 모두에게 해인이가 반겨지는 틈을 타, 설화는 방으로 들어왔다.

  “어, 왔어? 해인이는?”

  “밖에 있어.”

  “그래?”

  다은이는 앞치마를 벗어놓고 거실로 나갔다. 설화는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설화의 오른 손에는 아직도 열쇠가 있었다. 다시 가져다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설화는 열쇠를 바지 주머니 깊숙이 넣어놓았다.

  “설화야, 나가자. 해인이도 왔으니 진짜 파티 시작이야.”

  방으로 돌아온 다은이는 케이크를 두 손 위에 들고 먼저 거실로 나갔다. 설화는 도저히 파티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지만,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은을 따라 나섰다.

  거실은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긴 탁자를 거실 중앙에 놓고 그 위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본 적이 없는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탄절을 즐겼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먹으면서 종혁의 연주와 경옥의 노래로 이루어진 멋진 캐럴 음악을 들었다. 이렇게 둘러앉아 같이 기념일을 즐기니까 꼭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화도 그들의 기분에 동화되려 노력하며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다들 배가 불러오자, 탁자를 치우고 거실에 불을 껐다. 그리고는 향이 나는 촛불을 켜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은이가 만든 케이크를 먹었다. 트리를 감싼 꼬마전구의 불빛과 촛불이 반짝거리며 조화를 이뤘다. 그들은 따뜻한 지금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있잖아, 전에 설화가 했던 말 듣고 깨달았는데 말이야. 우리들 너무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 같지 않아?”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세희가 말했다.

  “맞아, 말로만 가족이라고 하고 실제로는 이름밖에 아는 게 없었어.”

  지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동의했다.

  “그럼 우리 오늘 예전 일들 털어놓기로 할까? 온 순서대로 말하자. 그럼 종혁오빠 먼저!”

  세희의 지적이 뜻밖이라는 듯이 종혁은 놀라며 되물었다.

  “나부터?”

  “그래. 오빠는 여기 온지 3년이나 됐잖아.”

  얌전하게 생긴 종혁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는 할 말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난 원래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 좀 의외지?”

  여기저기서 ‘엥?’, ‘진짜?’ 하는 소리가 난무했다.

  “어렸을 때 내 꿈은 의사였거든.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공무원이셨던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큰 지지를 해주셨어.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반에서 상위권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상황이 달라졌어. 공부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거지. 등수는 자꾸만 떨어져갔고, 나는 학원이다 뭐다 닥치는 대로 다녔어.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것처럼 굴었지. 그래도 역부족이더라고. 수능 시험에서 괜찮은 성적을 얻기는 했지만, 의대에 가기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를 받았어.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지. 꼭 의사가 되려고 했고, 그 길 밖에 걸어오지 않은 나에게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던 거야. 부모님은 자신들처럼 공무원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셨지만, 의사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 아무 데도 지원하지 않았고, 재수를 준비했어. 또 다시 1년을 죽어라 공부에 파묻혀서 살았지. 그 덕분인지 그 다음해에는 합격을 거머쥐었어. 지방에 있는 의대였는데 집에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더라고. 그래도 상관없었어.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교를 다니다보니까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고등학교 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어려운 공부에 나는 적응을 못했고, 점점 지쳐갔어. 그제야 나는 깨달았어.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걸 말이야. 어떤 일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적성에 맞지 않거나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더라. 원하던 그 꿈 외에도 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있고 그 중에서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도 넌지시 깨닫고 있었는지도 몰라. 한 가지 꿈을 포기한다고 해서 나 자신이 못난 게 아니야.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거라고 생각해. 나처럼 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이것 하나만 알아주면 좋겠어. 후회 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러다가 만약 힘에 부치게 되면 더 이상 미련 갖지 말고 돌아서라고 말이야. 지나버린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해. 그 경험들이 자신에게 귀중한 보물로 남을 테니까. 도전해보지도 않으면서 헛된 꿈을 꾸는 것보다 실패와 마주하더라도 시도해본 사람이 훨씬 더 훌륭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던 내가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난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마리아님이 아니었더라면 난 나를 아주 기쁘게 해주는 기타와 행복한 음악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찾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정말 마리아님께 감사해.”

  그의 솔직한 고백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마음속에 깊이 담아왔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에는 정말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살아 숨 쉬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건지 나도 이곳에 와서 처음 느끼게 됐어.”

  지윤은 평소의 발랄한 모습과 판이한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정말 죽고 싶기만 했는데. 신이 날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니더라고. 정작 날 외롭게 만든 건 내 자신이었어. 2년 전, 난 못나게 살았어.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재혼한 아버지와 살면서 계속 비뚤어지기만 했어. 이혼할 거면서 왜 날 낳았냐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어. 새어머니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애정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지.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는 나를 무서워했으니까. 엄마처럼 보듬어주지 않더라고, 그 사람. 내가 바란 건 사랑이었는데 말이야.”

  허탈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설화는 마음이 아려왔다.

  “학교가 뭐하는 곳인지, 공부는 왜 하는 건지 모든 게 다 불만투성이였어.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어른들도 싫고 사는 것도 지겨웠지. 가출을 밥 먹듯이 하면서 좋지 않은 짓들을 하고 다녔어. 학원가는 어린 아이들의 돈을 빼앗고 그 돈으로 내 몸에 치장을 했어. 처음에는 양심에 찔려서 밤에 잠도 오지 않았는데 여러 번 하니까 그게 범죄인지도 모르겠더라고. 아주 악질이었지, 나. 하루는 구멍가게에 몰래 들어가서 먹을 것을 훔치는데, 경찰에 붙잡힌 거야. 주인이 의심하고 신고를 했나보더라. 그래서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부모님을 부른 거야. 아버지만 오셨어. 가게 주인과 합의를 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 아버지가 내 손에 만 원짜리 다섯 장을 쥐어주고는 하시는 말이 뭐였는지 알아? 집에 오지 말아달라는 거야. 새어머니가 임신을 했다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면서 말이지. 처음으로 내 동생이 생긴 거였는데 축하할 수도 없었던 거야. 어찌나 비참하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 친어머니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외삼촌에게 물어 집을 찾아갔는데…. 하하, 그 쪽은 이미 애를 낳았더라고.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까 왜 나는 저 아이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늘 혼자….”

  울컥하며 지윤은 눈물을 보였다. 세희가 그녀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설화는 그들에게 섣불리 위로를 할 수 없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이 가진 아픔이 너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진정이 된 지윤은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처럼 머쓱해하며 말을 이었다.

  “옛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약해졌나봐. 나도 이렇게 여린 여자라고! 하하, 어쨌든 그렇게 계속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가 결국 여기에 오게 된 거지.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다음은, 세희!”

  얼떨결에 순서를 넘겨받은 세희는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원래부터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했어. 내 여동생이 몸이 좀 아프거든. 나랑 두 살 차이인데 나보다 아주 쪼금 더 예쁘게 생겼어. 성격이 똑같이 불같아서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형제가 우리 둘 뿐이라 늘 의지하는 존재였지.”

  세희의 과거형 말투가 설화는 신경 쓰였다. 그녀의 ‘존재였다’ 라는 말이 너무 쓸쓸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동생을 아직도 의지하고 있다는 건 그녀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픈 건 중학교 때부터였어. 그냥 머리가 자주 어지럽다고 해서 빈혈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악성 뇌종양이래. 커다란 암 덩어리가 머릿속에 있다는 거야. 하, 어이가 없었지. 멀쩡하던 아이가 암이라니 말이 돼? 어느 누가 그걸 쉽게 믿겠어? 우리도 믿지 않았지.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해봤는데 다 말이 똑같더라고. 무엇보다도 진단을 받은 내 동생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야.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고 하고, 몸에 힘을 주지를 못해서 몇 번씩 길거리에서 쓰러지기도 했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바로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하고 그 과정을 계속 반복했어. 그런데 이놈의 암세포가 자꾸 번식을 해가는 거야. 쉽게 없어지질 않고 말이야. 그 아이 뇌 속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지. 내 동생은 점점 지쳐갔어. 잘 웃던 애가 웃지도 않고 표정이 없어졌어.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는데 울지도 않고, 그냥 아무 표정 없이 있는 거야. 미치겠더라고. 우리 집 상황도 동생 표정만큼이나 어두워져 갔어. 엄청난 수술비를 대느라 전셋집도 월세로 옮겨야 했지.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일을 하셨고, 동생 곁에는 내가 있었어.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나는 진로를 결정해야 했어. 나는 당연히 대학을 포기하고 동생 곁에 있겠다고 말했지만 동생이 강하게 거부했어. 자기 때문에 언니 인생 희생하는 건 너무 싫다고 하더라.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부탁이니까 대학교에 가 달라는 거야. 그 아이한테는 알았다고 했어. 하지만 실제로 그럴 마음은 없었지. 나대신 어머니께서 동생 간호를 하셨고 난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어. 음식점에서 서빙 하는 거였는데 다행히 고등학생도 써주고 돈도 꽤 돼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어. 그렇게 지내다가 수능 날이 다가왔고, 난 물론 시험을 보지 않았지. 그 날은 특별히 오전부터 일을 했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병원으로 갔는데 동생이 중환자실로 옮겨져 있는 거야. 놀라서 달려갔더니 어머니가 나오셔서 말해주시더라. 동생이 내가 시험 본다고 거짓말한 학교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거야. 끝날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 몰래 병원을 빠져나갔던 모양이야. 한참을 밖에 서서 기다렸는데 내가 나오지 않더래. 학교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대로 서있었는데 내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는 거야. 결국 사라진 동생의 행방을 찾던 부모님이 우두커니 서있는 그 애를 발견하셨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몸이 아주 차가워져있었다고 하셨어. 동생은 부모님을 보자마자 내 행방을 묻고, 계속 기다렸다는 말을 하더래.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병원에 옮겨졌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 상태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야. 무언가 스트레스를 극심히 받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 스트레스는 암의 가장 큰 적인데 말이지. 나는 죄책감에 휩싸였어. 동생은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와서 반겨주는데 나만 혼자 쓸쓸할까 봐 마중 나온 거였어. 아픈 몸을 이끌고…. 그런데 나는 그 애한테 오히려 상처를 줬어. 그 때 처음으로 꿈 없이 살았던 내 인생을 반성했어. 차라리 내가 되고 싶은 길이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면 동생에게도 떳떳할 수 있었을 거고, 바보 같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난 멍청했던 거야. 동생을 위해 산다는 게 그 애한테는 얼마나 부담스러웠을 지 짐작도 못한 거였다고.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어. 이대로 동생이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봐 너무 두려웠어. 그 아이가 죽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 견딜 수 없었지.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라고 신께 호소했어.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내가 죽을 테니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세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꿋꿋하게 울음을 참아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슬프게 보였다. 세희의 마음을 설화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가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설화는 다은이를 잃었을 때, 정말로 괴로웠다.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알기에 설화는 세희가 가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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