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적인 로사 때문에 파랑은 정신마저 혼미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당하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발목이 아파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몰라도...어쨌든 그녀는 그야말로 낮은 몰라도 확실히 밤에는 이기는 여자였다. 로사가 그의 자켓을 벗겼다. 이 여자는 팔이 한 8개쯤 되는 것 같았다. 그의 옷이 하나 둘 몸에서 슉슉 떨어져나갔다. 그러다 그녀의 긴 손톱에 가슴과 등이 마구 긁혔다. 상반신이 그녀가 연주하는 오선지가 될 줄이야.
"아, 아..."
"노노, 벌써 그렇게 흥분할 일은 아닌데..."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그가 몹시 느끼는 줄 알고 착각하고 있었다. 네일에 박힌 큐빅이 빠지면서 손톱이 포크마냥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는 걸 알리 없었다.
"샘, 그게 아니고..."
그렇다고 손톱 따위에 약한 모습 보여줄 수 없는 파랑이었다. 일단 참기로 했다. 어느덧 상의를 모두 탈의 당한 그였다.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로사는 어느새 자신의 겉옷을 던져 버렸다. 아까 클럽에서 봤던 끈 탑이 드러났다. 하얀 호빵 두 개를 얹어놓은 듯한 반가운 가슴이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손을 넣어 만지고 싶었지만 기다렸다. 역시나 그녀가 손을 뒤로 올리더니 브래지어 버클을 풀었다. 옥죄어 있던 가슴이 펑 하고 탑 속에서 풀어졌다. 아까보다 더 커진 가슴은 자연스러운 실루엣으로 옷 안에서 춤췄다. 그는 정말이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어서 빨리 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 이런...술, 맞다, 내가 술 산다고 했죠?"
이 순간 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달아오르게 해놓고 왠 술타령.
"아, 양주! 양주가 필요해. 발 다쳤잖아요. 안 아프게 해준다고 약속했었죠?"
"괘,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자, 보세요!"
그는 그렇게 그녀가 보는 앞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에이...그래도 예의가 아니지. 나 한 번 말한 건 꼭 지키는 여자에요."
‘아...그런 예의 필요없다고...’
그냥 이대로 안고 침대로 뛰어들까 싶었지만 조금 참아봤다.
"아, 여기 룸서비스..."
그러면서 휘청대며 테이블 위를 뒤적거렸다. 외곽 모텔따위에 양주 룸서비스가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면서 허리를 숙여 종이 조각을 뒤지는데 온통 보이는 건 치킨 전단지뿐이었다. 그러면서 옆 지퍼를 내리는데 자연스럽게 그녀의 미니스커트가 쑥 하고 내려갔다. 뭉치면 한줌도 안 될 것 까만 티 팬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팬티 양 옆으로 잘 익은 복숭아같은 둥그런 엉덩이 두 짝이 쑥 올라왔다. 그는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저기...여기 그런 건 없어요. 호텔은 아니거든요."
엉덩이에 대고 그가 얘기했다. 어느새 파블로브의 개처럼 입에 침이 잔뜩 고이는 그였다. 이대로 더 두면 개가 되어 핥거나 물어버릴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아, 맞다. 그렇구나. 그럼 어떡하지?"
"우리 내일 먹을까요? 오늘은 이미 지났으니..."
"음, 안 돼, 안 돼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아니되지용."
이 여자가 정말 술에 취해서 이런 걸까? 아니면 자신을 시험하는 건가? 이도 저도 아니면 이게 술주사인가? 그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 파랑씨가 나가서 사오면 되겠다. 마침 요기 1층에 편의점이 있네요?"
테이블 너머로 창 아래 편의점이 보였다.
'아니, 다리 아프다고 술을 진통제로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더러 나가서 술을 사오라니?!'
하지만 최고 셰프의 맛있는 정찬을 먹기 위해서는 몇 달전 예약도 하는 세상이니 기다릴 수 있었다. 충분히 이 여자는 기다려서 만질 수 있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시켰다.
"나...파랑씨 오면 깜짝 놀라게 해줄게요. 알았죠?"
그는 깜짝 놀라게 해줄 일이라면, 현관에서 알몸으로 서프라이즈하며 반겨줄 거란 뜻인가? 아니면 타이타닉처럼 목걸이 하나만 하고 침대에 누워 누드 모델되어 기다려줄 거란 말인가. 그는 다시 가슴이 뛰었다. 그녀가 손수 자켓을 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늦으면 안 되요. 불에 타버리기 전에 와야해요."
그렇게 귀에 대고 속삭이며 볼에 뽀뽀했다. 그는 불 타는 밤을 만들기 위해 번개처럼 신발을 신고 바람같이 편의점으로 갔다. 그런데 자켓만 입고 나왔더니 바람이 카라와 목 틈으로 들어와 오한이 들었다. 가슴팍 솜털까지 오소소 올라섰다.
"으...추워. 이게 뭐하는 짓이람? 게다가 사준다더니 내 돈으로 술을 사고 있고...나도 참 말 잘 듣는 멍뭉이다. 혹시 꽃뱀인가? 아, 아니지. 거리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학원 샘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 지갑도 갖고 나왔고 귀중품 따위는 애당초 없었으니..."
그는 중얼거리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첫날밤의 필수품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저래 들어온 게 잘 한 일이라 여기며 필수품까지 챙겼다. 양주는 물론 없었다. 그러므로 샴페인과 맥주를 챙겼다.
"그래, 내가 너무 맨정신이라 지금 이런 고생을 하는 거야. 나도 취했으면 바로 지금쯤 한창 중이었을 텐데...내가 너무 정신이 똑바른 거지. 그래, 샘하고 보조를 맞춰주자."
그러면서 그가 맥주캔을 따 벌컥벌컥 마셨다. 추워서 그런가 정신이 말짱했다. 또 한 캔를 따 한번에 털어넣었다. 알딸딸하니 취기가 얼추 올라왔다.
"아, 그래. 이거지, 이렇게 눈앞에 뵈는 게 없어 원나잇을 하지."
콧노래까지 흘렀다. 이제 정말 쇼타임인 것이다.
"내가 아주 천국을 보여주겠어. 다신 날 못 잊게 해줄 거란 말이지. 내가 얼마나 얼마나 훌륭한 남자인지...절대 각인되게 해줄 거라고, 암, 암! 흐흐흐."
그러면서 그가 다시 방이 있는 층으로 왔다. 이제 정말 봐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떤 핑계를 대도 직진이었다. 설마 씻어야한다고 해도 혼자 씻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 확 들어가 일을 벌여놓을 거라 굳게 결심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아까 저돌적인 그녀라면 분명 그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준비해뒀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벗고 춤이라도 춰 노트북을 따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분명 스트립쇼 이상의 어떤 일을 몰래 꾸몄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자신을 밖으로 내돌리는 게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든 좋았다. 어차피 오늘은 골이 들어가는 날이니까.
"짠! 이걸 어쩌나? 양주는 없는데, 나 발이 하나도 안 아프..."
그런데 반응도, 움직임도 없었다. 딱 한 가지 그를 반기는 소리라면 공기를 진동시키는 그녀의 코골이뿐이었다. 그녀는 대자로 누워 골아떨어져있었다. 그야말로 누가 실어가도 모를 지경으로 떡실신한 채.
"헐...로, 로사샘..."
그가 살짝 건드려봤지만 이미 실신 상태였다.
"자요? 그냥 자는 거에요?"
"..."
"와...진짜...와...이런...와...정말...내가...이럴려고."
그는 말이 안 나왔다.
"아, 이건 약속이랑 다르잖아요!"
"드르렁, 드르렁."
그의 공허한 외침에 경쾌한 코골이 소리만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