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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은 없다
작가 : 류밍
작품등록일 : 2017.10.30

삶은 귀찮고, 체력은 바닥을 찍은 컴퓨터 러버 세현, 낮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장례식장의 시체가 되어 있었다!
이어 그에게 닥치는 것은 다른 세계의 자신이 넘기고 간 귀찮기 그지없는 임무.

-안해, 난 건강쓰레기라 발로 뛰는 건 못 한다고!

과연 세현의 운명은?

 
00. 사람이 배고프면 솜도 씹어 먹는다
작성일 : 17-10-30 01:31     조회 : 413     추천 : 0     분량 : 5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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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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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박, 깜박.

 

 

  눈앞은 온통 흰 빛이었다. 빛이 곧바로 눈에 들어와서 그렇겠거니 하며 눈을 꾹 감았다. 잠들기 전 깜박 잊고 불을 끄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기세 아깝게. 왠지 입맛이 썼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팔을 움직이려 해도 도무지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팔 뿐만이 아니다.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았다. 잠이 확 달아났다.

 

 

  나 인신매매라도 당하고 있는 것 아냐?

 

 

  그러고 보니 눈이 부셔서 눈앞이 하얀 것이 아니었다. 흰 천에 가로막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고 있는 새에 누군가가 들어와 나를 묶고 여기까지 데려온 모양이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훔쳐 갔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간도 크다.

 

 

  '자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녀석.'

 

 

  언젠가 형이 그렇게 말했을 때─날 놀리며 했던 말이었기에─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대꾸했었는데. 아무래도 놀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다.

 

 

  정말 누가 업어가도록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네. 아무리 며칠 정도 밤을 새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잠들 수가 있나? 좋게 보자면 푹 잔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그 덕에 지금 목숨이 위험하다.

 

 

  살면 귀찮은 일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고로 난 이 낯선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파악해야겠지?’

 

 

  간간히 사람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한데 귓구멍도 무엇인가로 막혀 있는지 조금 아득하다. 보통 납치할 때 귀까지 막지는 않던데.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그런데 실제로 납치할 땐 이렇게 어깨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다 묶는구나. 몸 위에 천도 덮어놓고. 게다가 손목과 엄지손가락에 닿는 느낌으로 보아 밧줄도 테이프도 아닌 것 같은데 끊거나 풀어낼 힘이 없었다.

 

 

  배가 고파서. 앞으로는 귀찮다고 넘기지 말고 열심히 밥을 먹어야겠다. 벌써부터 들리는 위장의 절규에 나는 무심코 입 안의 것을 씹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틀어둔 건지 천 너머로 스며드는 공기가 찼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렸다는 건 어떻게 알고 천까지 덮어 뒀대? 배려는 좋은데 슬슬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홑이불이라도 머리끝까지 덮어 놓았으니 곧 더워질 것이다.

 

 

  …그보다 입 안의 이건 뭐람. 씹다가 깨달았다. 이것의 정체가 밥이 아니라는 것을.

 

 

  손장난을 치듯 혀로 휘적휘적 저어 보자 씁쓰레한 맛이 났다. 혀에 자꾸 달라붙는 가느다란 섬유질의 느낌으로 봐서는 솜인 것 같았다. 종이를 씹는 것과 비슷한 맛이라 계속 씹고 있다간 정말로 먹어버릴 것 같아서 혀로 솜을 꾸역꾸역 밀어냈다.

 

 

  그나저나 정말로 젠장맞을 것들이다. 납치할거면 입 안에 솜 말고 사탕을 넣어주던가. 치과에서 치료받은 후에도 먹으라고 사탕을 주는데.

 

 

  이런 짓이나 하는 사람은 길가다 개똥 밟고 미끄러져서 전봇대에 머리나 박아라. 전봇대 전선 줄 위에 있던 새들이 그 순간 새똥을 갈기며 날아가면 금상첨화겠다. 기분 정말 좋겠네.

 

 

  나를 이렇게 만든 이들을 향해 가벼운 저주를 퍼부어주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후련한 기분으로 상황을 최대한 파악해보기로 했다.

 

 

  상황 분석에서 가장 큰 문제는 흰 천이었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불완전했다. 하기야, 현실에서의 간단한 방법은 대체로 불완전한 법이다. 프로그래밍에서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야를 막고 있는 천이 얇은 홑이불이었고 근처의 천장에 형광등이 달려있었기에, 나는 천 너머로 비쳐 오는 흐릿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천 너머로 봐서 그런지 흐릿했지만, 형태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양 옆으로는 벽이 있었다. 한 쪽은 평범한 흰 벽인 것 같은데 반대쪽의 형태가 어째 묘하다. 그림자라기에는 묘할 정도로 색이 짙고, 거대한 골판지 마냥 들쭉날쭉해 보인다. 마치, 그래. 할아버지 댁에서나 보던 병풍 같다. ……잠깐만. 병풍?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한껏 눈을 내리 뜨고 나를 살폈다.

 

 

  내 시야를 가로막는 천 말고도 새하얀 천이 하나 더 몸 위에 덮여 있었다. 크기는 딱 몸의 윗부분을 가릴 정도. 천 위로 두 군데 정도를 흰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이 보였다. 시야가 닿는 범위 내에 두 군데를 묶어 놓았으니, 닿지 않는 곳에 더 묶어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손목 뿐만 아니라 엄지손가락도 무언가로 묶여있는 것 같았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자신이 납치한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묶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엄지손가락은 넘긴다.

 

 

  이 쯤 되니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것 인지에 대한 옅은 확신이 섰다.

 

 

  조금 전, 천 너머로 봤던 벽이 실제 병풍일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입에는 솜이 들어있으며, 내 위에는 흰 천이 올려져

  있다. 온 몸은 정자세로 묶여 있다. 엄지손가락마저.

 

 

  즉, 난 장례식의 시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있는데도!

 

 

  순간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1. 이 장례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체가 손실되거나 사라졌다.

 2. 외부인은 시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3. 시체가 없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납치해 시체 대신 이곳에 놓아두었다.

 

 

  시체를 닦거나 염해야 하는 가족, 장의사 등의 내부인은 내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니, 내부인이 나의 존재를 모를 것이란 가설은 기각하면. 혀로 마른 입술을 훑었다.

 

 

  최악이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사실이라면 이 장례식은 여론이 개입할 수 있을 정도의 공식적인 자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순간 장례식의 주인공과 내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면 난 시체를 유기한 운세현 납치범의 공범으로 몰리거나, 최악의 경우 범인은 알려지지 않은 채 내가 전부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설령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시체가 사라진 탓에 생사람을 납치해 올 정도라면 내가 어쩔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일이란 것이니까. 권력이든, 돈이든, 혹은 정말로 물리적인 힘이든 내가 단신으로 당해낼 수 없는 이들이다.

 

 

  게다가 난 지금 온 몸이 애벌레처럼 묶여있지 않은가. 크게 움직인다면 소리가 나 들킬 것이 분명했다.

 

 

  세상 무너지는 기분. 음식이 아닌 절망과 무기력이 배고픈 위장을 채웠다. 아아, 나도 든든한 빽을 가진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현 상황에 있어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형이 분명 신고를 했을 것이란 점이었다. 아니, 신고한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찾고 있겠지. 어릴 적,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 강도가 들어 내가 크게 다친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형은 내가 다치는 것에 유독 예민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종이에 살짝 베인 상처에도 덜덜 떨며 어디선가 구급상자를 가져왔었다. 일일이 왜 저러는 거래? 그것이 성가셨던 내가 엄마에게 가서 투덜거리자 내게 해 주신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며. 3살일 적의 일이라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제 일상적이고 가벼운 상처는 보고 넘긴다지만, 아무래도 이번 건은 무려 실종이다. 신고만 하고 얌전히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형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부디 형이 충격을 받길, 그래서 경찰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개인적으로 날 찾아주길 바랐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경찰 정도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경찰이 찾지 못하는 것을 형이 무슨 수로 찾겠냐 싶다만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듯 난 허황된 망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망상은 망상일 뿐이다. 나는 위기상황에서까지 넋 놓고 헛된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참을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장례를 치를 때 시체를 묶어두는 것은 한지, 질겨 봤자 천일 것이다. 힘만 있다면야 전부 풀어버릴 수 있겠지.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누가 그랬던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생물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뛰어넘는 힘을 짜 낸다고. 한계를 넘으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지만, 넘지 못하면 무조건 죽으므로 그들은 마침내 한계를 넘어선다.

 

 

  그러니까 운세현, 한계를 넘어보자! 비록 너의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은 것이 분명하지만 넌 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양 손과 엄지손가락을 꿈지럭대며 난 생각했다. 파리라도 된 것 마냥 열심히 손목을 비벼댔더니 매듭이 좀 더 느슨해진 것도 같았다. 매듭을 짓지 않은 것인지 잡아당길 때 마다 끈은 점점 더 느슨해졌다.

 

 

  ‘됐다……!’

 

 

  헐거워진 끈 사이로 양 손을 빼낸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손만 풀린다면 나머지는 쉬웠다. 양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천 위로 팔을 묶고 있는 끈 사이로 빼내었다. 상체에 묶여 있는 끈들을 차례로 풀어나가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풀어내는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걸 전부 풀어낸 다음은? 난 과연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웅웅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귀에 밟혔다.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한다 해도 들키지 않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았다.

 

 

  무사하기 위해서는 천운이 필요하다. 실은 무교지만,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종교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신님들, 부디 저를 굽어 살피사 죽지 않게 좀 해주세요. 지금 죽어버리면 신님을 만나서 영원히 귀찮게 들러붙겠습니다. 이렇게 징글징글한 놈은 만나기도 싫으실 것 아닙니까. 저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면 좀 더 살아있게 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저에게는 아직 완결나지 않은 웹툰과 보내지 않은 과제 파일이 있다구요. 과제 제출이 오늘 자정 까지라 얼른 교수님 메일로 보내야 한단 말입니다.

 

 

  상체가 자유로워지자마자 나는 귀를 막고 있던 솜을 빼내고 시야를 가리고 있던 하얀 천을 걷어냈다. 예상이 맞았다. 내 왼쪽에 있는 벽은 병풍이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며 나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최대한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다리를 묶고 있는 끈들을 천천히 풀어냈다. 주변이 이상하게 소란스러웠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으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병풍 뒤를 보고 있는 사람도,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별 일 아니겠지. 지금으로서는 탈출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손을 들어 목 뒤를 몇 번 쓸고는 하던 일에 집중하려 다시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부스럭대는 소리가 귀에 잡혔다.

 

 

  조용히 한다고 한 건데, 소리가 들렸나? 그래서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었나? 쿵, 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홑이불을 잡은 손이 얕게 떨렸다. 최대한 조용히 누워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쓴 순간,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는 것을 보며 나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끝이다, 끝.

 

 

  흰 천이 천천히 들어 올려지고, 따가운 시선이 나를 여러 차례 훑었다. 닫힌 눈꺼풀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시선은 따가웠다.

 

 

  그래요, 뭐, 다 풀려 있으니 놀라울 만도 한데, 그렇게 보면 제가 좀 부끄럽거든요.

 

 

  한참을 자포자기하듯 그대로 누워 있었으나 나를 다시 묶는 등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 그저 노려보는 듯한 시선만이 와 닿았을 뿐이다.

 

 

  사람 민망하게 계속 보지만 말고 뭔가 좀 하라고요. 기껏 죽은 척 해 주고 있는데. 속으로 짜증을 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이쯤 되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다면 봐야지. 나는 번쩍 하고 눈을 떴고,

 

 

  “으뜨허악!”

 

 

  괴상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리 위쪽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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