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되면, 재미로서 수능 공부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
고3에게 있어서 수능 공부라는 존재는, 때로 목숨까지 걸 정도로 간절한 그 어떤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절실한 심정으로 현재 나는, 국어 문제들을 풀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국어 지문들의 내용이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저 한 문제라도 더 맞춰야지. 아니, 수능 만점을 받아야지! 정도의 생각이 들 뿐이다.
그나저나 되도록, 아니, 아예 주위를 흘끗거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하면 부정 수능 응시자로서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고개와 목을 거북이처럼 구부려야 한다.
그래서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요령껏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 듯싶다.
그러면서도 문제를 풀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무찔렀을 경우와 같은 일종의 쾌감, 짜릿함.
그렇다. 문제를 풀다 보면, 일명 승리자의 기분이 가끔 든다.
죽은 적군이 불쌍하거나 가엾다는 생각 따위의 뇌 내 망상은 아니 된다.
특히 언어 영역 또는 국어 문제를 풀 경우에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이것이다.
내가 승리자일 경우에 적군은 누구일까 같은 종류의 상상!
그러한 과대망상적인 상상에 대해서는, 적어도 수능 문제를 풀 경우에는, 더 확대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문득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온 몸 전체로 찌르르한 전율 비슷한 것이 스쳐 지나간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죽은 적군의 입장이 떠오른다.
그렇다. 즉, 5지선다형 답안 찾기에서, 나에게 저격당해서 죽은 정답 측의 입장이 연상된다.
여기에서 자신이 섬세하다고 말하는 종류의 급우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어째서 정답으로 선택된 번호는, 5명 중에 하나로서 선택되어서 죽어야 했을까?’
아마도 이것이 급우들의 입장이리라.
나도 이 느낌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알고 있다.
‘상대방을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
이것이 나의 입장이다.
문제를 풀면서 다시금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간절히 수능 문제 풀기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실 의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을 살리면서 덤으로 돈도 많이 번다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렇다. 의사가 된다는 것, 꿩 먹고 알 먹기이다.
수술하던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냐고 질문하는 급우들이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생각은 환청 같기도 하다.
에잇, 귀찮아. 수술실 환자의 죽음?!
그딴 거 몰라. 지금은 수능 시험 중이라고!
내가 알 게 뭐야. 일단 의대부터 붙은 다음에 생각하면 되지.
의사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문득 내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금 거칠게 답안지 마킹을 한다. 마치 의사가 메스를 휘두르는 것처럼, 진하게 컴퓨터 사인펜으로 마킹을 한다.
그나저나 이거, 국어 문제는 아무리 봐도 심리학 문제들 같기만 하다. 아니, 기업에서 치른다는 인적성 검사에 가까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