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지만 제 1교시는, 국어 듣기로 시작된다.
국어 듣기가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쉽던 안 쉽던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수능에 대해서 이러니저러니 쉽게 말한다.
그러나 단 한 방이다. 수능 시험이라는 팩트 폭격 단 한 방으로, 나의 19년 인생 행방이 결정되는 법이다.
학원 선생님이 가르쳐 준 스킬 시전을 위해, 서둘러 안구 운동을 한다.
재빠르게 나의 시선은, 국어 듣기 문제의, 보기 문항 읽기로 향했다.
아직 국어 듣기는 준비 방송 중이다.
‘뭐지? 이 병 맛 같은 보기들은... ...’
빠르게 수능 시험지를 눈으로 스캔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생각의 스톱워치를 눌렀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 용어를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도 단단히 차려야 한다.
내 사전에 있어서, 단 한 문제라도 수능의 정답들을 놓칠 수는 없다.
눈을 부릅뜨고 나는, 국어 듣기의 보기 문항들을 휘익 속독했다.
한 눈에 봐도 정답으로 추정되는 보기 문항이 한두 개 보인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기 검토를 마치자, 곧 이어서 국어 듣기가 시작된다. 그 순간이었다.
국어 듣기 방송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일상의 사소한 대화 내용들이 문득 뇌리에 스쳐지나간다. 당황하지 않고 나는 살짝 앉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십중팔구 전파 공격이다. 일명 마인드컨트롤 전파 공격인 것이다.
앉은 자세를 조금씩 교정해가면서 나는,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제갈량의 팔진도 전법... ...’
지금 나는 국어 듣기를 하고 있다.
진중히 듣기의 어조를 이해하려고 하며, 듣기 문제와 교신을 시도하고 있다.
가끔 중요 키워드 또는 단어가 있으면 메모를 해나간다.
3교시인 영어 영역 시험에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습관이다.
습관을 넘어서, 듣기 시험 중에 중요 키워드 메모는, 아예 체득화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풍랑 속에서 거칠게 항해를 하듯이, 방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문제를 풀어 재낀다.
이제 첫 번째 듣기가 종료되었다.
다섯 개의 보기 중에서 하나를 간택해야 한다.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는 보기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험 출제자의 의도를 꿰뚫는 것, 그것도 훤히 내다보는 것이 그 이상으로 중대한 일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하나를 골라서 마킹했다.
사실 시험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한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업무’는 아니다.
물론 ‘업무’라는 단어 대신, ‘작업’이라는 단어를 가벼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수능 시험 출제자 분들이 고심이 깊은지를 안다.
그렇다. 우연히 선생님들의 고민 토로를 간접적으로 접했기에,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그래서 문제를 풀 때는 나도, 가능한 시험 출제자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마인드컨트롤 시험일지도 모른다.
사실 국어 시험, 또는 수능의 언어 영역은, 처음의 듣기부터 대략 난감하다.
다섯 개의 보기 중에서는, 꼭 두 개가 동시에 정답같이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서 대개, 반반 확률로 찍기를 하게 된다.
일명 복불복 게임, 러시안 룰렛 시스템이다.
참고로 수능 문제 찍기의 성공 가능성을 엄밀하게 계산하려면, 확률과 통계 영역 공부가 별도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어 영역 시간에, 국어 듣기를 하면서, 거기까지 계산해 볼만큼의 시간 여유는 없다.
그렇다.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한가로운 수능 응시생은, 매우 드문 법이다.
두 개의 듣기 보기 중에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아리송하다. 이에 그 다음에 적용해 볼, 나 나름대로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것이 더, 맥락적인 초점 또는 관점에 가까운가 하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서 이러하다. 듣기 내용이 토론이라고 가정한다.
대체로 토론 내용 등등이 정상적인 토론이었다면, 정답은 십중팔구 정상인의 성격에 가까울 것이다.
반대로 히스테리 성격의 토론 맥락이라면, 정답은 아마도 히스테리 성격에 가까울 것이라 보인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임상 심리학과 성격 심리학 관련 서적을 대여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왜일까. 수능 국어, 일명 언어 영역이 실제로는, 내가 대학교에 가서 수강하게 될 서적 중에 하나인, 심리학 서적처럼 여겨지는 것은 말이다.
물론 나도 나의 이 리트머스 시험지 기준이 맞는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그러나 확률과 통계 상,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나는 국어 듣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슬슬 듣기를 마치고, 국어의 독해에 정식 진입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