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재야, 저거 실화냐?”
“......”
성현이 덩치를 쓰러뜨린 곳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가로, 세로 3미터 크기의 바위 뒤에, 성현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 두 사람이 성현을 보며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딱 봐도 우리 또랜데, 이브의 섬에서 가장 강한 ‘5인의 강자’ 중 한 명인 ‘골’을 저렇게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저게 말이 되나? 덩치도 별로 안 큰데? 오늘 골 아픈가?”
병재라 불린 친구가, 아무 말도 않고 성현을 보며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병재야, 내 말 듣고 있어?”
“조용히 해봐, 멍청아!”
‘골이 저렇게 쉽게 쓰러지다니 저놈의 정체는 뭘까? 골이 컨디션이 나빴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으로도 저 자의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 특성이 단순히 속도 쪽이라고 하기에는 골을 이 격 만에 쓰러뜨린 게 말이 안 돼.’
“짝!”
골똘히 생각하던 병재의 이마에 혁수의 손바닥이 날아와 부딪혔다.
“?”
병재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야, 친구한테 멍청이라니!”
“...혁수야, 죽고 싶냐?”
병재가 혁수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아니!”
하지만 혁수는 병재의 이런 행동을 자주 접해봤는지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다.
“......”
“쓸데없이 분위기 잡지 말고, 저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되니까 저기서 저러고 있겠지.”
“믿어져?”
“믿고 자시고 간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제 어떻게 할래?”
“뭘?”
“뭐? 뭘? 너 진짜 뇌는 있냐? 생각이라는 건 하고 사는 거야?”
병재가 혁수의 얼굴에다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왜, 왜 그래?”
“후~ 혁수야~ 혁수야~ 우리 여기 왜 왔냐?”
“왜 오기는? 골 팀에 합류 하려고... 왔는데? 어라?”
“내 말이 그 말이다! 이제 상황이 이해가 되냐?”
사실 이들은 이브의 섬 떠돌이 2인조로, 5인의 강자 중 하나인 골의 팀에 합류하기 위해 골을 만나러 온 자들인데 우연히 골과 성현이 결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골이 이길 거라 예상해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자. 그들의 상황도 이상해진 것이었다.
“뭡니까?”
“하아... 뭐가 ‘뭡니까?’야. 혁수야,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아직도 ‘뭡니까’ 라는 말이 나오냐?”
병재가 손으로 머리를 지압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벼, 병재야 그거 내가 한 말 아니야...!”
“뭐?”
혁수에게 잔소리를 하던 병재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방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그러고 보니 방금 소리가 났던 방향이... 그리고 이놈은 나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아.’
병재가 소리가 났다고 추정되는 방향인 바위 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병재의 눈에 방금 전, 5인의 강자 중 한 명인 골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성현이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헉!!”
“우왓!?”
병재와 혁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위에서 재빠르게 떨어졌다. 병재가 갑자기 나타난 성현을 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렸다.
‘@#$@!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성현은 10미터밖에 있었다. 그들이 성현에게서 눈을 뗀 것은 길어야 3초, 성현은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10미터를 이동하여 이 돌 위로 올라온 것이라는 말이 됐다.
“저 사람의 부하입니까?”
성현이 감정의 편린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말투로 물었다. 병재와 혁수가 놀란 토끼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말 잘못하면 골로 간다.’
‘둘이 덤비면 이길 수 있을까?’
병재가 아까 성현이 골과 싸울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들과의 차이를 가늠해봤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싸움은 무슨!’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라고도 하죠.”
성현이 간단히 한마디 한 후, 멍청히 서있는 혁수에게 점프했다.
“어? 어?”
혁수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퍼억!!”
“크윽!!”
혁수가 양팔을 교차해 성현의 발차기를 막아내며,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성현은 그런 혁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병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앗!’
병재는 동체시력이 매우 좋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까는 보이지 않던 성현의 모습이 지금은 뚜렷하게 보였다.
‘아까는 멀어서 그랬나? 생각보다 잘 보인다. 이 정도면 할 만 하겠어!’
생각보다 성현이 느리다고 판단한 병재가 성현과 맞서기 위해서 자세를 낮췄다. 순간, 병재와 성현의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병재는 성현이 씨익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지? 뭔가 불길하다!’
병재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성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병재의 시야가 무언가에 의해 가려졌다.
‘뭐, 뭐지?’
병재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앞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내기 위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이상했다. 이런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기분은 너무나 편안했다. 마치 주변의 시간이 정지하고 자신의 뇌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자, 자으암까으안만요오! 오해에에요오!”
‘후훗, 저 멍청한 놈은 말을 왜 저렇게 바보같이 하는 거야?’
혁수의 목소리가 늘어진 테이프처럼 천천히 들렸다.
‘근데 뭔데 이렇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 진거지? 어? 몸은 또 왜 이렇게 천천히 움직여? 이거 뭐 시간이 정지라도 한 것 같네. 하하’
“콰아아!”
병재의 얼굴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병재의 볼 살과 머리카락들이 뒤로 강하게 밀려났다.
병재는 얼굴에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병재의 얼굴이 우습게 밀려났다.
옆에서 혁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무 놀라서 말 못한 거예요. 절대 저 사람 부하 아니에요. 그러니까 잠시만 멈춰주세요!”
‘어? 이젠 똑바로 말하네.’
동시에 멈춰있다고 느껴졌던 병재의 시간이 다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재는 무엇이 지금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지도 볼 수 있었다.
“히끅!”
성현의 주먹이 정확히 병재의 눈앞 3cm 거리에서 멈춰있었다. 병재는 성현의 주먹을 맞지도 않았건만 자신도 모르게 성현의 주먹에 맞은 장면을 상상하며 이미 머리가 떨어져 나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털썩!”
병재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헉! 헉!”
“벼, 병재야 괜찮아?”
‘뭐, 뭐야 이 기분은...!!’
멍하게 있던 병재가 자신의 목과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부, 붙어있어!’
“주륵!”
“응?”
병재가 코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무언가를 손으로 훔쳤다.
‘피?’
맞지도 않았건만 병재의 코에서 쌍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습니다. 부하가 아니라면 정체가 뭡니까?”
성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병재를 내려다봤다. 병재는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혁수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우... 우리는 저 사람의 부하가 아닙니다.”
“그럼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왜 여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거죠?”
“그, 그게...”
병재가 성현의 질문에 당황하며 웅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성현이 또다시 움직이려하자, 저 멀리 굴러가 있던 혁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자, 잠깐만요! 제가 말할게요!”
성현이 고개를 들어 혁수를 쳐다봤다.
“말하세요.”
“우리는 1대륙 출신 역쟁인원들로 골과 동료가 되기 위해 찾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당신과 골이 전투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거고요.”
성현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 혁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워, 원래라면 골이 실력도 좋고, 이곳에서의 영향력도 강해서 동료가 되려고 왔는데 당신이 골을 이겨버려서... 사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병재가 혁수를 쳐다봤다.
‘이, 이런 멍청한! 이 자의 정체도 모르는데 그렇게 다 이야기했다가 적이면 어쩌려고...!’
성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으로 혁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병재가 혁수를 나무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혁수는 병재의 그런 눈빛을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말 안 해도 죽어! 그렇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이곳에 들어온 지는 2개월째에요. 섬에 들어 올 때, 원래 팀과는 맞지 않아서 헤어지고 더 좋은 팀을 찾기 위해서 섬을 돌아다니는 중이었어요.”
“2개월이나 됐는데 어째서 요새에 합류하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죠?”
“그게... 설명하자면 긴데...”
혁수가 성현의 눈을 무심코 쳐다봤다. 혁수와 성현의 눈이 마주쳤다. 혁수는 깊디깊은 성현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속마음이 낱낱이 읽혀지는 듯한, 무언가 껄끄럽고, 불편한 기분을 받았다.
‘거짓말은 불가능!’
이번에는 주저앉아 있던, 병재 쪽에서 답이 나왔다.
‘혁수의 말을 믿지 않고 있어. 최악의 상황은 이 자가 우리를 펙터라고 의심하는 거다!’
“개인적으로 저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절대 펙터는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무심해 보이던 성현의 몸에서 갑자기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성현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지만 병재와 혁수는 순간적으로 온 몸의 털이 곤두서며, 이 살벌한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설마 펙터였던 건가? 그럴리가! 펙터가 맨몸으로 섬의 5인 중 하나인 골을 이겼다고!? 말이 안 돼!!’
“혁수야, 이 자식 펙터다. 도망쳐!”
병재가 앉은 자세 그대로 성현의 발목을 발로 찼다. 성현이 병재의 발차기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퍽!”
“......”
발로 찬 병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큭! 다리에 뭔가를 차고 있나?’
성현이 맞은 발을 그대로 들어 병재의 얼굴이 있는 부분을 내리찍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에 병재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을 줄이야... 이런 개 같은 인생. 씨x! 그래 어차피 죽는 거 친구라도 살리자. 혁수야, 너라도 살아라!!’
“흐압!!”
눈을 감고 있던 병재가 다시 눈을 부릅뜨며 다가오는 성현의 발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순간, 병재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젠장, 부모님 말 좀 잘 들을걸. 망할 인생! 혁수야! 너라도 꼭 살아서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아라!”
“쿵!!”
병재의 손에 성현의 다리 감촉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병재가 자신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눈을 편하게 감았다.
“병재야!!”
‘잡았다! 죽더라도 절대 놓치지 않겠어!!’
병재가 성현의 발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이상하게도 고통은 없었다.
‘목이 부러지면서 신경이 마비 된 건가?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네. 아프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죽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그냥 잠드는 것처럼 의식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도 할 수 있고, 손에 힘도 들어가는 것 같은 게 신기하네. 손에는 감각도 느껴져. 하하.’
“퍽!!”
“아윽!”
“쿠당탕!”
‘혁수 목소리? 이 자식, 내가 기껏 목숨 걸고 붙잡아놨더니 도망 안가고 뭐하는 짓이야!’
“이제 됐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리 좀 놔 주시겠습니까?”
‘나한테 말하는 건가? 무슨 죽은 사람한테 말을 걸어? 심지어 자기가 죽여 놓고는! 이거 진짜 미x놈이네. 아니면 뭐 특성이 귀신을 보는 그런 건가? 뭐가 어찌 됐든 난 죽어도 못 놓지만!!’
병재의 손가락이 새빨개지며, 성현의 발목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흐음...”
성현이 바닥에 누워있는 병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으으... 네놈이 병재를!! 으아아!!”
혁수가 다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는 그의 특성을 살린 몸통박치기를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저 자식은 왜 도망 안가고 자꾸 달려드는 거야? 이러다가 괜히 나만 개죽음 당하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런 느린 몸통박치기가 이 미x놈한테 통하겠냐? 이 멍청아!!’
“퍼억!”
“우당탕탕!”
‘응?’
성현의 발이 병재의 손에서 빠져나가며 넘어지는 느낌이 났다.
‘혁수가 설마... 해낸 건가? 그래, 이 자식이 아무리 강해도 개싸움이라면... 가능성 있다!’
병재는 평소 혁수의 전투 방식을 떠올렸다. 남보다 뛰어난 체력과 맷집, 빠른 회복력을 바탕으로 상대방과 진흙탕 싸움을 만들어 서로의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전투법. 아무리 빠르고 힘이 강한 사람이라도 우선 혁수와 같이 넘어지면 절대로 혁수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혁수야, 힘내라! 넌 그 영역에선 최강이야!’
“어, 어라?”
다만, 병재가 생각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혁수였다.
평소대로라면 혁수가 성현에게 몸통박치기를 하며, 동시에 테클을 걸었을 텐데. 지금의 혁수는 성현이 당연히 맞지 않을 거라 여기고, 단순히 몸통박치기만 해버린 것이었다. 한참을 당황하던 혁수가 넘어진 성현을 보며 다시 전의를 불태웠다.
‘이, 이길 수 있다!!’
“야이, 병재의 원수!! 용서하지 않겠다!!”
혁수가 넘어진 성현에게 급히 달려들었다.
‘붙잡기만 하면!’
“퍼억!!”
“커헉?”
혁수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라게 한 거, 맞아드렸으니 이제 더 이상 빚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