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악!”
현식이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잠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현식이 재빠르게 일어나, 비명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흐갹!?”
“으앗!”
방금 전까지 기절해서 미동도 않던 규완이 벌떡 일어나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다른 쪽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현식이 깜짝 놀랐다.
“아, 놀래라. 쉿!”
현식이 손으로 규완의 입을 막았다.
“읍!? 여이아 어이죠? 제가 왜 여이에?”(여기가 어디죠? 제가 왜 여기에?)
“쉿! 잠깐만 조용히 하세요. 방금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에? 비명소이요!?”(네? 비명소리요!?)
“네, 지금은 안 들리지만 분명히 비명소리였어요.”
현식이 눈을 감은 채, 귀에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의 귀에는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 무슨 소리 들리나요?”
“아니요, 더 이상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손, 발은 어때요?”
“네? 손, 발이요? 그러고 보니... 괜찮네!”
규완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자유롭게 쥐었다, 폈다.
“다행이네요. 이제 동상은 크게 걱정 없는 것 같으니까 피부가 회복될 때까지 손 비비는 거만 신경 쓰시면 될 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규완이 현식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쉿! 아직 바깥 상황을 모르니 너무 크게 얘기하지는 마요. 그리고 전 회복사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요. 그나저나 아무래도 비명소리가 계속 거슬리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려나...”
현식이 잠깐 고민하더니 성현을 쳐다봤다.
“안 되겠다. 깨워야겠어. 이봐요, 일어나요.”
“찰싹! 찰싹!”
현식이 잠들어 있는 성현의 뺨과 쇄골을 손가락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규완이 현식의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현식을 말리지 못했다.
“zzz... zzz...”
“흠, 호흡하나 안 흐트러지네.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응? 왜요?”
현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규완을 발견했다.
“저, 저기 환자를 그렇게 때려도...”
“아, 물론 안 되죠. 근데 이러고 있다가 적에게 발각 되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별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고요.”
“아... 네.”
“규완 씨, 이렇게 된 거 우선 이 사람 좀 숨기게 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망 좀 봐주세요.”
“아, 네! 그런데 혹시 다른 분들은...?”
규완이 다른 사람들이 안 보이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혹은 자신들을 두고 떠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선장님이랑 성수라는 사람은 정찰을 하러 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음식을 구하러 갔어요.”
“아, 그렇구나.”
규완이 현식의 말에 안도했다.
“망 잘 봐요.”
“네.”
그동안 현식은 30cm 깊이로 성현이 딱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바닥을 팠다. 그리고 그 안에 성현을 넣은 후 모래로 성현의 몸을 덮었다. 얼굴은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와 풀을 이용해서 덮어 숨을 쉴 수 있게 했으며, 그 풀 앞에 커다란 바위를 두어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끝! 규완 씨, 무슨 소리 더 안 나던가요?”
“네, 아무 소리도 안 났어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럼 아까전의 비명소리는 뭐였던 거야?’
현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방금 난 비명소리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규완 씨, 혹시 정찰하실 수 있나요?”
“저, 정찰이요? 망은 잘 보는데 정찰은...”
“흠, 특성이 정찰 쪽은 아니란 말이죠? 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살짝 보고 올 테니 여기 계실래요?”
현식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네? 어, 어디 가시려고요?”
“요 앞에 살짝 보고 오려고요.”
혼자가 돼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규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괘, 괜찮으시겠어요?”
“글쎄요. 그래도 아직까지 딱히 별 소란이 없는걸 보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 되네요.”
“음... 그, 그럼 같이 가죠.”
현식이 규완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네! 그럼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규완이 떨리는 손을 꽉 쥐며, 자신에게 주문이라도 걸듯이 다짐을 했다.
‘성현님을 지켜야 돼!’
현식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규완의 행동에 조금 감탄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군.’
“그럼 갑시다. 조심해서 행동하셔야 해요. 정찰할 때, 기본 원칙은 알죠?”
“네.”
“좋아요. 가요”
잠시 후, 현식과 규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끄악!!”
“네, 네놈들은 뭐야!!”
“우당탕!”
“퍼퍽!”
“......”
“......”
하지만 출발한지 5분도 되지 않아, 규완과 현식의 비명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감고 있던 성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뿐, 성현이 눈을 뜨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zzz...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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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웅!”
적어도 2미터는 돼 보이는 큰 키에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의 근육이 꿈틀 거리는 근육을 가진 남자의 주먹이 두께 10cm는 돼 보이는 돌 벽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닿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다음 상황에 벽에는 흠집하나 나지 않고, 벽에 손이 닿은 사람이 자신의 주먹을 부여잡고 고통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니겠지만 그의 팔 두께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일반적인 성인의 허벅지 두께만큼 두꺼웠고, 주먹 크기는 얼굴이 작은 사람의 얼굴크기보다 컸다.
잠시 후, 그의 주먹이 닿은 벽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쾅!!”
그의 신체사이즈만큼이나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10cm나 되는 돌 벽이 그의 주먹이 닿자마자 가볍게 부서져 버리며 짙은 먼지를 휘날렸다.
보통의 사람이 봤다면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지만 남자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자신이 부숴버린 벽 앞에 멀뚱히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 대충 휘두르긴 했지만 내 주먹을 피해? 지나가는 똥개치곤 제법이군, 어디 이것도 피해보겠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다 만난 눈에 거슬리는 벌레를 쫓아내는 것처럼 대충이던 남자의 표정이 그 벌레에게서 무언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 것처럼 조금 더 진지하게 변했다.
‘유영술, 유영!’
“스슥~”
멀뚱히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자세를 낮추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덩치에 맞지 않게 매우 민첩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빙판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매끄러운 움직임 말이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얼추 봐도 2m는 되 보이는 키에 100kg이 넘는 덩치인데 그런 움직임이라니.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움직이는 그의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그가 이동하는 곳으로 먼지조차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그런 이상한 그의 눈앞에는 그의 주먹보다 작은 얼굴을 가진, 상대적으로 왜소한 남자가 비스듬한 자세로 서서 무표정하게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덩치는 끝까지 미동도 않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놀라서 몸이 굳었나 보군. 하긴, 내 덩치에 이런 속도와 부드러움을 가지기가 쉬운 건 아니지. 멍청한 놈, 상대를 봐가면서 덤볐어야지. 하필 5인의 강자 중 하나인 나를 못 알아보고 덤비다니. 어리석었어. 하지만 네놈이 아무리 보는 눈도 없고, 약한 녀석이라도 도전해 온 이상 절대 봐주지 않겠다. 사자는 다람쥐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 하는 법이니! 받아라! 유영술, 유격!’
덩치가 매끄럽게 다가 온 속도 그대로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덩치의 주먹이 엄청난 속도로 왜소한 남자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이번 역시 덩치의 신체 사이즈만 아니라면 그가 주먹을 뻗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주먹의 속도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은지 덩치의 주먹 앞으로 떨어지던 나뭇잎이 그의 주먹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의해 저 멀리 밀려났다.
“후웅~!”
“쾅!!”
“!?”
하지만 그런 빠른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덩치의 주먹은 또다시 애초의 목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가격해야했다. 이번에 그의 주먹이 가격한 것은 지름 50cm는 되 보이는 나무였는데 나무에 있던 모든 나뭇잎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덩치의 모습을 가렸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내리고 잠시 후, 덩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덩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나름 진지했는데 이것도 피해? 너 특성이 속도냐?”
“......”
덩치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왜소한 남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왜소한 남자는 덩치로부터 4미터 떨어진 채, 무표정한 얼굴로 덩치를 응시할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덩치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왜소한 남자가 계속해서 자기를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다.
“하~! 그래. 아직 여유 있다 이거지? 그 여유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유영술 파괴의 권, 격류! 지금까지는 네놈이 죽을까 싶어 부드러움과 방어가 기본이 되는 기술을 썼었지만 이번 것은 오직 공격과 파괴에만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어디 이것도 피하나 보자!’
덩치가 아까 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왜소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바닥에 엄청난 깊이의 발자국이 패이며 그의 걸음걸음마다 먼지폭풍이 일었다. 소리도 쿵쾅거리며 요란스러웠다. 그리고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4미터의 거리가 좁혀졌다.
왜소한 남자의 눈앞에 덩치의 어깨가 바짝 다가왔다.
‘잡았다.’
왜소한 남자가 다가오는 덩치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뭘 어쩌려고? 설마 막으려고? 하하하!”
왜소한 남자의 손이 덩치의 어깨에 닿으려는 찰나, 왜소한 남자의 행동을 비웃던 덩치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덩치가 몸통박치기를 하는 척 하며, 엄청난 속도로 몸을 회전시킨 것이었다. 그의 빠른 회전속도에 몸 주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의 모습이 다시 뚜렷해졌을 때, 그의 주먹은 왜소한 남자의 머리 바로 옆에 있었다.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얕보였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덩치의 눈에 살심이 스쳐 지나갔다. 왜소한 남자는 그런 덩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반응도 못하는가 보군. 잘 가라.’
덩치는 이 조그마한 상대가 피떡이 돼서 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아~ 저녁 고르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아. 정말 누군가 나에게 저녁 메뉴를 고를래? 100명과 싸울래? 라고 묻는다면 난 100명과 싸우겠어.’
“후웅~”
곧 끝날 전투를 생각하며 저녁 메뉴를 생각하던 덩치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생성됐다.
‘응? 후웅? 이건 무슨...’
저녁을 생각하던 덩치의 주먹이 왜소한 남자의 얼굴을 지나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퍽!!!!”
“크억!?”
그리고 오히려 덩치의 움직임에 반응도 못하는 거라 여겼던 왜소한 남자의 주먹이 덩치의 명치에 닿았다. 덩치의 몸이 기역자로 크게 꺾였다.
“쿵!!!”
덩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선 답답함과 강한 통증이 느껴지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보니 왜소한 남자의 주먹이 자신의 명치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허억... 허억...”
왜소한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무릎 꿇고 있는 그를 내려다봤다.
“이제야 눈높이가 맞네요. 제가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 저를 내려다보는 건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끅... 숨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끄...윽... 네놈은... 누구냐? 흐으...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제 이름은 성현입니다. 나머지는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알려드리죠. 우리는 대결을 했고, 당신은 진 겁니다.”
“그... 런...”
“휘잉~”
“빠악!!”
덩치는 기분 나쁜 바람이 자신의 얼굴로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강한 충격이 덩치의 관자놀이 부분에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성... 현...’
덩치의 몸이 옆으로 휙 하고 넘어갔다.
“쿵!”
자신보다 덩치가 1.5배는 더 커 보이는 남자를 이격 만에 쓰러뜨린 사람은 얼마 전까지 모래에 묻혀서 잠을 자고 있던 성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