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했다.

　 “슈슈슉!”

　 “슉!”

　 준영의 얼굴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준영이 엎드리며 화살을 피했다. 그리고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네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준영이 서서 달릴 때 보다 지금이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준영에게 화살세례가 집중됐다.

　 “사악!”

　 “크으!!”

　 준영의 팔과 몸, 얼굴 곳곳에 화살이 스쳐지나가며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준영은 멈추지 않고, 화살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풀숲에서 당황한 듯,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이 거리에서 피하다니!!”

　 “하여튼 ‘네이처’ 괴물 자식들!”

　 “당황하지마라. 둘째, 넷째는 계속 공격하고, 나머지는 저놈에게 공격을 집중한다. 쏴!”

　 세 곳의 풀숲에서 준영을 향해 동시에 화살이 날아왔다.

　 “슈슈슈슈슉!”

　 “퍽!”

　 “크악!”

　 그러던 중 준영의 어깨에 화살이 한 대 박혔다. 준영이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다.

　 “맞췄다!!”

　 “좋았어. 마무리 해!”

　 “엇! 형님, 저 장전된 화살이 다 떨어졌어요.”

　 “저도요!”

　 “뭐!?”

　 풀숲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준영이 다시 일어나 풀숲 쪽으로 달려들었다.

　 “크아아!!”

　 “뭐, 뭐야? 석궁을 맞고도 저렇게 움직여?”

　 준영이 화살이 날아오던 풀숲 중 가장 앞쪽에 위치한 풀숲에 도착했다.

　 “형님, 도망가세요!!”

　 “나는 아직 한 발 남았다! 죽어라!”

　 “촥!!”

　 풀숲 속 괴인의 고함과 함께 준영이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크악!!”

　 “뻑!”

　 “크아악!”

　 “죽어!”

　 “빠각!”

　 “......”

　 잠시간의 소란 후, 풀숲이 조용해졌다.

　 “혀, 형님?”

　 “촥!!”

　 “크아악!”

　 준영이 우거진 풀숲을 가르고 나타났다. 그가 감정 없는 눈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의 풀숲을 쳐다봤다.

　 “혀, 형님은!?”

　 “크르르...”

　 “이런! 형님, 큰 형님이 당한 것 같습니다!”

　 “뭐!?”

　 준영의 일행에게 계속 활을 쏘고 있던 풀숲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모두 저놈을 집중 공격한다!”

　 준영의 정면 네 방향에서 동시에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던 화살이 준영에게 모이자, 화살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슈슈슉! 슈슈슉! 슈슈슈슉!”

　 준영이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화살이 준영에게 닿을 쯤, 준영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로 화살을 막았다.

　 “퍽! 퍼퍼퍽!”

　 “헉! 형님!!”

　 준영이 화살받이가 된 무언가의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냉정하게 탐색했다.

　 “이... 이 개x식!! 감히 우리 형님을 방패로 쓰다니!”

　 “크아아!!”

　 준영이 다음 타깃을 정했는지 가장 오른쪽 풀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앞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쏴!”

　 “하, 하지만 큰 형님이 있어서 쏠 수가 없어요!”

　 “다리! 다리를 노려!”

　 “네!”

　 “슉!”

　 “슈슉!”

　 준영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왼쪽과 뒤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준영의 왼쪽과 뒤쪽에서 곧바로 화살이 날아왔다. 준영의 정면에서는 준영의 다리 쪽으로 화살이 날아왔다. 준영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퍽!”

　 “퍼퍽!”

　 “이, x자식!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도저히 피하기 힘들 것 같지만 준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뿐히 피하거나,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막아내며 계속 전진했다. 준영과 그에게 화살을 쏘던 풀숲 중 하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 안 돼!!”

　 “젠장! 형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넷째까지 당하기 전에 쏴라! 셋째! 다섯째! ‘물고 늘어지기’로 간다!”

　 “네!”

　 “촥!”

　 준영의 근처 풀숲에서 석궁을 든, 3명의 사람들이 뛰어 나와 준영을 사방에서 둘러쌌다. 준영이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그들을 노려봤다.

　 “크르르!!”

　 “뭐야, 이놈! 진짜 짐승이냐? 쏴!”

　 “슈슉!”

　 “슉!”

　 “슉!”

　 사방에서 준영을 향해 동시에 화살이 날아들었다.

　 “슝~”

　 “슈슉!”

　 “퍽!”

　 “저 자식이 또...!”

　 하지만 준영은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린 시체를 등에 대며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역시 막아냈다.

　 “개x식! 아무리 그래봤자 네놈은 짐승일 수밖에 없어! 다른 곳도 마저 구멍을 내주마!”

　 유일하게 피하지 못하고 맞은, 준영의 왼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크악!”

　 “어? 어?”

　 준영이 손에 들고 있던 시체를 왼쪽에서 명령을 내리던 석궁사에게 던졌다. 분명히 한 손으로 던진 것이건만 인간의 육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할 정도로 가볍게 날아갔다.

　 “억!!”

　 “둘째 형님!!”

　 둘째라 불린 남자가 준영이 던진 시체와 뒤엉켜 넘어졌다. 그 사이, 준영이 둘째가 있는 왼쪽 풀숲을 향해 달려갔다. 준영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모두가 당황했다.

　 “두, 둘째 형님에게 못 가게 막아!”

　 “슉!!”

　 “슈슉!”

　 방금까지 준영이 노리고 있던 풀숲에서 한 명의 석궁사가 뛰어나오며 준영의 정면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또다시 화살세례가 퍼부어졌다. 준영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활을 피했다.

　 ‘빠르다! 이 거리에서 맞출 수 없다니...!’

　 “더 이상 형님에게 다가가게 둬서는 안 돼! 막아!”

　 사방에서 준영을 감싸고 있던, 석궁사들이 준영과의 거리를 더 좁히기 위해 준영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며 화살의 정확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화살들이 준영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크악!”

　 “헉!?”

　 갑자기 높아진 화살의 정확도에 정면으로의 돌진이 어려워진 준영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자신의 뒤쪽으로 쫓아오는 석궁사를 향해 돌진했다. 달려오던 석궁사가 급히 멈추려고 했지만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던 터라 방향을 바꾸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른 석궁사들 역시 준영과 엇갈리며 둘째 쪽으로의 발걸음을 억지로 돌리고 있었다.

　 ‘안 돼!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셋째 형님이 위험하다!”

　 “이 괴물아! 죽어!”

　 셋째는 준영의 움직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방향을 바꾸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어찌 보면 1~2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면에서 짐승같이 빠른 움직임으로 달려드는 준영을 보고 있는 셋째에게는 그 시간이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같은 시간이건만 셋째는 느리고 준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셋째는 그 시간 속에서 준영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빠르다. 내 움직임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어. 피할 수 없다면, 죽기 전에 죽이겠다!’

　 셋째가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준영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준영이 1미터 앞까지 다가오자, 셋째가 석궁을 들어 정면에서 다가오는 준영을 조준했다. 몸은 느렸지만 석궁이 준영을 조준하고 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뽑아 쏘기.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퉁!”

　 석궁에서 준영의 얼굴을 향해 화살 하나가 발사됐다. 피하기에는 셋째와 준영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잡았다!’

　 셋째의 눈이 빛났다.

　 “칵!”

　 준영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좋았어!”

　 “역시 셋째 형님!”

　 주변에서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살에 꿰뚫렸을거라 여겼던 준영이 얼굴을 기점으로 몸을 한 바퀴 크게 회전시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마치 고양이가 덤블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크...”

　 준영의 입에 셋째의 화살이 물려 있었다. 준영이 다시 셋째에게 달려들었다. 준영과 셋째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셋째가 이를 악 물었다.

　 ‘아직 멀었다면 죽을 때까지 쏴주마!’

　 셋째의 손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준영의 머리와 가슴을 조준했다.

　 “죽어!”

　 “퉁! 퉁!”

　 이번에는 두 대의 화살이 준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준영이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머리를 흔들어, 화살 한 대를 피하고 한 대를 손을 들어 막았다.

　 “퍽!”

　 “!?”

　 셋째가 화살을 팔로 막는 준영을 보며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셋째의 석궁에서 화살이 또다시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준영의 뒤쪽에서도 또 다른 화살 두 대가 더 날아들었다. 준영이 돌아보지도 않고, 자세를 납작 엎드리며 화살들을 피했다.

　 “좋았어!”

　 셋째가 잠시 시간을 벌었다는 듯, 급히 뒤 돌아 달렸다.

　 “됐어!”

　 “크악!”

　 “어?”

　 “빠각!”

　 하지만 엎드려있던 준영이 순식간에 튀어 오르며 뒤돌아선 셋째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준영의 투박한 손이 석궁사의 목에 닿자마자, 석궁사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털썩!”

　 “형님!!”

　 “크아악!”

　 “이 자식! 이번에는 셋째 형님마저!”

　 “끄악!!”

　 그 순간, 뒤에서 또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둘째 형님!?”

　 준영의 양쪽에 있던 석궁사가 비명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자, 둘째의 가슴팍에 자신들이 쓰던 활이 가슴을 뚫고 나온 모습이 보였다. 부들부들 떨던 둘째의 고개가 땅으로 뚝 떨어졌다.

　 “어, 어떻게?”

　 “우리가 모두 죽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둘째의 등 뒤에서 누군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이젠 너희 차례다.”

　 준영의 왼쪽에 있던 석궁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맞은편의 석궁사를 쳐다봤다.

　 “...막내야! 분하지만 우리 둘로는 무리다. 우선은 흩어지고 ‘둥지’에서 보자!”

　 “하, 하지만... 크흑! 알겠습니다! 꼭 ‘둥지’에서 뵙겠습니다!”

　 석궁사들이 준영과 둘 째 뒤의 남자에게 동시에 화살을 날리고, 서로의 반대방향으로 있는 힘껏 달아났다.

　 “놓아줄 것 같으냐!?”

　 “크아아!!”

　 준영과 남자가 석궁을 피하며 양쪽으로 도망간 석궁사를 각각 쫓아갔다.

　 “슉!”

　 막내라 불린 석궁사의 뒤에서 석궁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퍽!”

　 “윽!! 석궁!?”

　 막내의 오른쪽 어깨에 석궁 화살이 깊숙이 박혔다. 깜짝 놀란 막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둘째를 죽였던 준영의 동료가 석궁으로 막내를 겨누고 있었다.

　 ‘네이처가 석궁을...!?’

　 “피슉!”

　 “윽!”

　 “이런, 맞추기가 쉽지 않군.”

　 막내를 겨누고 있던 석궁에서 또다시 화살이 발사됐지만 이번에는 화살이 막내와 1미터는 떨어진 곳을 지나쳐 날아갔다.

　 “죽어!”

　 “슉!”

　 악에 받친 듯, 막내 역시 준영의 동료에게 석궁을 발사했다.

　 “큭!”

　 준영의 동료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막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놓치다니... 젠장!!”

　 “끄악! 이 괴물 자식!!!”

　 준영이 달려간 방향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 준영 씨!”

　 준영의 동료가 준영이 갔던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듯, 쩔뚝쩔뚝 걸었다.

　 탈출에 성공한 막내가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넷째 형님 비명소리... 흐흑! 형님들, 제가 꼭 형님들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넷째와 막내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신체 능력으로는 저들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 정도로 준영, 그러니까 네이처와 펙터들의 신체 능력 차이는 엄청 났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였던 ‘둥지’ 역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실제 비밀 아지트였고, 다른 하나는 죽었을 때, 그들의 영혼이 가게 될 장소였다. 사실 그들은 그 짧은 순간, 작별인사를 한 것이었다.

　 ‘준영... 분명히 준영이라고 그랬어! 네놈들이 어째서 날 살려 둔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울고 있는 막내의 입술에서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