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 갑자기 정지하자, 주변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고조되었다. 그 중 한 남자가 준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뭔가 있습니까?’

　 ‘피 냄새.’

　 준영의 뒤에 있던 남자가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거렸다.

　 ‘피 냄새 확인.’

　 준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폈다, 접으며 신호를 보냈다.

　 ‘세 명씩 한 조로 산개. 천천히 전진.’

　 뒤에서 지켜보던 광호가 준영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뭔가 발견했나보군. 우리 멀대 씨, 실력 한 번 볼까?’

　 광호의 옆에 있던 충재 역시 준영의 움직임을 보고 광호에게 말했다.

　 “광호 님, 정찰대가 뭔가를 발견 했나 본데요?”

　 “그래. 여러분, 정찰대에서 뭔가 발견했나 봅니다. 주변경계 강화하고, 전투 준비하세요. 신호수들은 후발대에 신호 보내주시고요.”

　 “네!”

　 본대와 후발대 인원들이 광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편하게 느껴지던 숲이 괜히 음산해 보이고,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이 음침해보였다.

　 “젠장, 몰랐는데 생각보다 숲이 울창하군.”

　 “그러게 말이야. 길도 좁고, 이러다 진짜 펙터라도 만나는 거 아니야?”

　 “하, 무슨 걱정이냐? 우리가 누구랑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고갯짓으로 광호를 살짝 가리켰다.

　 “맞아. 광호 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저 여유 넘치는 얼굴을 봐. 무슨 일이 생겨도 대처할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어?”

　 “역시 대단하군. 이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난 긴장 돼 죽겠는데. 제발 별거 아니었으면 좋겠다.”

　 본대 인원들이 싱글싱글 웃고 있는 광호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

　 ‘숲에 들어오고 한참 동안 아무것도 안 나와서 심심했었는데, 잘됐군. 흐흐, 뭐가 나오려나?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올 거면 빨리 나와라!’

　 “광호님은 안 무서우신가요?”

　 “?”

　 옆에 있던 충재가 광호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뭘?”

　 “혹시 적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혹시 무섭냐고 이야기하면 광호의 기분이 상할까봐, 충재가 말끝을 살짝 흐렸다.

　 “아~ 적? 무서워해야 하나? 넌 무섭냐?”

　 광호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한다는 듯이, 충재를 쳐다봤다.

　 “아, 아닙니다.”

　 “그래, 만약 무서우면 내 옆에 딱 붙어 있어라. 여긴 안전하니까.”

　 ‘왜냐하면 내 주변에 고기방패들이 많이 있거든. 흐흐.’

　 “...네!”

　 광호를 보는 충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엄청난 자신감! 줄 잘 섰다. 꼭 붙어있어야지.’

　 충재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동안, 정찰대 쪽에서는 여러 개의 수신호가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전방 시체 발견!’

　 준영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몇 구?’

　 ‘현재 5구확인.’

　 ‘다른 건?’

　 ‘무’

　 ‘확인. 전진 멈추고, 주변 경계 바람.’

　 ‘어떻게 된 일이지? 이곳이 아무리 이브의 섬이라지만 이곳은 4요새의 구역 안일 텐데...?’

　 이브의 섬은 가장 중간에 위치한 이브의 재료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곳에 섬에서 가장 강한 4인이 요새를 쌓아 이브의 재료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4요새 구역으로 시체가 있다는 것은 이곳에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준영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를 시키고, 본대에 신호를 보냈다.

　 “전방에서 시체가 발견됐답니다.”

　 “시체요?”

　 광호가 새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어떻게 할까요?”

　 “글쎄요~ 우선은 정찰대 하는 걸 보고 움직이죠.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네.”

　 본대의 신호수가 다시 정찰대에게 신호를 보냈다. 준영의 곁에 있던 재운이라는 남자가 준영에게 물었다.

　 “저놈이 뭐랍니까?”

　 준영이 미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알아서 하라고 하네요.”

　 “저 개xx, 그러면 그렇지. 우리가 아주 지 소모품인 줄 알아.”

　 “어차피 잘 됐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따로 움직이기도 편하고, 우리가 우리 안전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우선 주변을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되면 그때, 시체를 확인하겠습니다.”

　 “네.”

　 준영과 정찰대의 움직임이 재빨라졌다. 그와 같이 본대와 후발대의 분위기도 조금이지만 소란스러워졌다.

　 “시체!? 여기 4요새 구역 아닌가?”

　 “그러게요. 여기 시체가 왜 있지?”

　 “길잡이가 마중 나오지 않는 것부터 불안했는데 4요새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여러분, 진정하세요. 어차피 이 정도는 예상하던 일 중 하나이니까요.”

　 광호가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역시 광호 씨! 이것까지 예상하고 계셨다니.”

　 “그래. 우리에게는 광호 씨가 있었지.”

　 “광호 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쉿!”

　 광호가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행동을 취했다.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신호수, 후발대는 뭐 특별한 거 없습니까?”

　 “네, 후발대는 조용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계속 경계하라고 하세요.”

　 “네.”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오지만 않는다면 뒤쪽 안전은 확보됐고.’

　 갑자기 정찰대쪽 인원들이 부산스러워졌다. 광호가 그 모습을 보고 신호수에게 물었다.

　 “앞에 왜 저럽니까?”

　 “글쎄요.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빨리 확인해보세요.”

　 광호가 새 장난감을 곧 손에 넣으려는 아이처럼 안달했다.

　 “아! 정찰대 쪽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앞은 안전하답니다.”

　 “네? 안전하다고요?”

　 알고 보니 새로 온 장난감이 공부를 위한 공책이었던 것처럼 광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네, 안전... 하다는데요?”

　 신호수가 광호를 이상하게 쳐다보자. 광호가 아차하며 표정을 금세 바꿨다.

　 “아니에요. 안전하면 좋죠. 야, 충재야, 나 먼저 갈 테니까 사람들이랑 주변 경계 하면서 천천히 따라와라. 내가 오라고 신호하면 바로 오고.”

　 “네!”

　 ‘쩝,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상하네... 가보면 알겠지’

　 광호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잠깐만요. 좀 지나갑시다.”

　 광호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앞으로 나왔다.

　 “500m, 얼마 안 되는군. 간다!”

　 광호가 앞으로 나오자마자 정찰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광호의 육중한 몸이 차츰차츰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엄청난 속도를 내며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정말 시체 말고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겠지? 제발 그건 아니길!’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광호의 뒷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화, 황소.’

　 ‘역시 광호 씨, 저런 덩치에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광호가 순식간에 정찰조에 도착해 준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이익!!”

　 광호가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기다란 발자국을 남기며, 준영의 뒤에 섰다.

　 “후~! 뭐 좀 알아낸 거 있습니까?”

　 “......”

　 준영이 말없이 광호를 노려봤다.

　 “응?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그러다 눈에서 빛이라도 발사 되겠네. 뭐 좀 알아낸 거 있냐고요.”

　 “...직접 보시죠.”

　 준영이 손으로 앞쪽의 풀숲을 가리켰다.

　 광호가 언짢은 듯, 입을 삐죽 내밀며 준영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준영이 그런 광호를 내려다봤다.

　 “킁! 그냥 말해주면 될 걸 가지고 뭘 또 직접 보라고. 뭔데요? 시체?”

　 “......”

　 준영이 아무 말 않고,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여기요?”

　 광호가, 눈앞에 우거진 풀을 손으로 치웠다.

　 “와...”

　 투덜대던 광호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준영이 혀를 찼다.

　 ‘저걸 보고 와우라니...미X놈’

　 광호의 눈앞에 수십 구의 시체와 그 시체의 일부였을 것들이 떨어져 나와 숲 여기저기에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광호가 싱긋 웃으며 무섭다는 듯, 과장된 몸짓을 했다.

　 “햐~ 으슬으슬 하구만!!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끄악!”

　 광호가 시체를 보며 한창 즐거워하던 그 순간, 갑자기 뒤쪽 방향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응? 무슨 소리야?”

　 광호가 뒤를 돌아봤다.

　 “광호님! 광호님!!”

　 충재가 급하게 뛰어오며 광호를 찾고 있었다.

　 “뭐야?”

　 “아! 광호님! 적입니다!”

　 “적? 갑자기?”

　 “네!”

　 “후발대는 어쩌고 적이 뒤에서 나와? 적의 수는?”

　 “풀숲에서 공격하는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

　 “킁! 알았다. 내가 간다!”

　 광호가 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본대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준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금이다!’

　 “정찰대 모이세요!”

　 주변에 있던 준영의 일행이 순식간에 준영 곁으로 모였다.

　 “준영 씨, 무슨 일입니까?”

　 “적이 나왔다는데 우리도 빨리 본대와 합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이대로 여기서 빠져나가겠습니다.”

　 “네!?”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준영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미치광이랑 더 있다가는 살 사람도 죽게 될 겁니다. 지금이 벗어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지금 저 미치광이 머릿속에는 저기 나타난 적들밖에 없으니까요.”

　 “나중에 우리를 찾으면 어쩌죠?”

　 “그때는 쫓아가다 적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도망갔다고 하면 됩니다. 그럼 전 먼저 가겠습니다. 또 시간을 끌다가 저 미치광이에게 붙잡히고 싶진 않거든요. 저랑 생각이 같으신 분들은 따라 오시고, 아닌 분들은 알아서 하십쇼. 그럼 이만.”

　 준영이 그 큰 키만큼 큰 보폭으로 광호의 반대 방향을 향해 성큼 성큼 달려갔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요. 저놈 아까 시체보고 감탄하는 거 못 봤어요?”

　 “전 처음부터 준영 씨 보고 이리로 온 거지, 저 사람 보고 온 게 아니라서 생각할 필요도 없네요. 저도 이만.”

　 “저도요.”

　 “저도.”

　 “음... 같이 갑시다.”

　 준영과 같이 정찰을 하던 인원 모두의 의견이 순식간에 일치하며 모두가 광호의 반대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준영 씨, 같이 갑시다!”

　 준영이 뒤를 돌아봤다.

　 “키는 큰 양반이 다리는 생각보다 느리네.”

　 “하핫, 그러게 말이에요. 벌써 따라 잡았네.”

　 “아니면 기다려 준건가?”

　 “......”

　 적어도 5초는 먼저 달려 간 준영의 뒤로 정찰대 인원들이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같이 갑시다. 우리 계속 한 배를 탔던 사이 아니요?”

　 “한 배는 안 탔었지만 저는 준영 씨의 눈을 믿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된 거 다들, 다시 한 번 잘 부탁합니다.”

　 “네, 저도요.”

　 “그나저나 준영 씨, 좀 더 빨리 가죠? 발목이 얇으면 잘 뛴다던데 준영 씨는 도대체 얼마나 굵은 겁니까?”

　 “하하, 그 말이 사실이면 준영 씨 발목은 코끼리보다 굵을 것 같네요.”

　 “하하하”

　 준영이 어느 샌가 따라와 자신의 발목을 가지고 농담하는 사람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준영 씨, 근데 위치는 파악했습니까?”

　 “네, 아까 대충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이제 저들에게서 벗어났으니 4요새로 곧장 갈 겁니... 위험해!!”

　 “퍽!!”

　 “어, 어라...?”

　 준영의 눈을 믿는다고 했던 사람이 가슴에 화살을 꼽은 채, 달리던 속도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우당탕탕!”

　 “슉!!”

　 “슈슉!”

　 사람들이 그의 상태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준영의 앞쪽에서 무수한 화살비가 쏟아져 날아오기 시작했다.

　 “화살! 펙터다! 흩어져!!”

　 “슈슈슉!!”

　 “퍼퍽!!”

　 “으윽!!”

　 준영과 같은 소형선을 타고 오고, 계속 준영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재운의 얼굴에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준영이 재빠르게 그를 데리고 옆으로 숨었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이럴 수가... 재운 씨?”

　 준영이 재운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준영의 힘에 흔들릴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크윽! 준영 씨, 그 사람, 이미 죽었습니다.”

　 오른쪽 팔과 복부에 각각 한 대 씩 화살이 꼽힌, 남자가 피를 흘리며 준영에게 다가왔다.

　 “준영 씨는 괜찮습니까?”

　 “재, 재운 씨가...”

　 아무리 전투에 익숙하고, 미치도록 험한 훈련을 받은 그라 할지라도, 방금 전까지 옆에서 떠들던 동료가 죽는 모습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에 역쟁에 지원했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위험한 곳이었고, 이미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이라 들었기에 각오도 했었다.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그래서 아까 숲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봤을 때도 놀라기는 했지만 충격이 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동료가 죽는 것은 달랐다. 상상 속에서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과 실제로 피를 흘리며 옆에 쓰러져 있는 것은 감각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다.

　 소름끼치도록 따뜻하고 끈적한 피, 비릿한 냄새, 힘없이 늘어진 육체.

　 “아... 아... ”

　 “준영 씨, 정신 차려요!!”

　 화살을 맞은 인원이 상체를 낮게 숙인 채, 준영을 다그쳤다.

　 “준영 씨!”

　 “슈슉!”

　 “끄악!”

　 준영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에도 준영을 따라 온 동료들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화살에 공격 당하고 있었다.

　 “슉!”

　 “준영 씨! 안 돼!”

　 멍하니 앉아 있는 준영의 등으로 화살이 날아왔다.

　 “컥!”

　 “털썩!”

　 준영에게로 날아온 화살을 옆에 있던 남자가 몸을 날려 대신 맞아주었다.

　 “정신... 차려요...!”

　 준영과 같은 소형선을 타고 온 인원이었다. 집에 어린 동생들과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었다.

　 “으으... 크아악!!”

　 준영이 갑자기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곧장 화살이 날아 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