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헉, 살았...다. 살았어!”

　 “헤엑, 헤엑, 만세! 육지다.”

　 “도착했다아!!”

　 성현이 탄 소형선이 이브의 섬 모래사장에 부드럽게 정박했다. 성수와 회복사가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섬의 모래사장에 뛰어들었다. 섬의 고운 모래들이 성수와 회복사의 몸에 여기저기 달라붙었다.

　 “하아~ 육지 최고! 모래 최고!”

　 “하하. 부드러워! 따뜻해!”

　 성수와 회복사가 모래사장에 뒹구는 동안 선장이 느긋하게 소형선에서 내려 바닥의 모래를 한줌 움켜쥐었다.

　 “후우~ 정말 좋군.”

　 회복사가 선장을 보며 말했다.

　 “하하, 선장님 최고의 바다사나이도 육지가 좋나요?”

　 “장기간 항해하고 나면 육지가 좋아지긴 하지만 오늘은 특히나 좋군. 한동안은 바다 생각이 나지도 않을 것 같아!”

　 “하하, 저도요. 이제 바다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려고요.”

　 “하하하.”

　 “하아~ 편하다.”

　 회복사가 모래에 드러누워 모래의 따스한 온도를 느꼈다.

　 “......”

　 “근데 뭔가 빠진 것 같은데.”

　 “아, 배!”

　 “아!”

　 “아차!!”

　 선장과 성수, 회복사가 후다닥 소형선에 있는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아아~ 힘없어. 세상이 돈다.”

　 “으으! 손, 발이 따가워!”

　 “서, 선장님~”

　 “나도 내려 줘~”

　 “zzz... zzz...”

　 소형선 안에서는 온갖 환자들이 갖가지 신음 소리를 내며 먼저 내린 인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휴, 난리도 아니군. 이거 역쟁 인원들이 타고 온 소형선이 아니라 환자 집합소라고 해도 믿겠어.”

　 “공감입니다.”

　 “자,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도 없으니 우리가 이 불쌍한 친구들 구원 해주세나. 성수, 자네는 저기 숲 쪽에서 커다란 나뭇잎들 좀 떼서 가지고 와 주겠나? 오~ 좋은거 많네. 되도록 큰~ 거로 부탁하네. 그리고 자네는 나랑 저 친구들을 그늘로 옮기세.”

　 “네!”

　 세 명의 정상인(?)들이 각자의 임무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소형선 안에 있던 모든 인원들이 그늘 아래로 옮겨졌다.

　 “후~ 힘들구만.”

　 선장이 허리를 펴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헉, 헉, 선장님. 이 친구들보다 제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요?”

　 “하하, 그 친구 엄살은!”

　 선장이 방긋 웃으며 회복사의 등을 툭 쳤다. 하지만 회복사의 얼굴에서는 미소를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살 아닌데... 제 특기는 몸 쓰는 게 아니라고요.”

　 “알았네. 알았어~”

　 하지만 선장은 회복사의 투덜댐을 들은 채도 않았다.

　 “선장님~ 이 정도면 되나요?”

　 “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네. 아니, 충분하고도 넘쳐. 이리 가져다주게.”

　 “네.”

　 성수가 자신의 상체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큰 나뭇잎 여러 장을 양손 가득 들고 숲에서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휴, 쉴 시간이 없구만.”

　 선장이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팔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깊은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갑자기 땅은 왜 파세요?”

　 나뭇잎을 가지고 온 성수가 땅을 파고 있는 선장에게 물었다.

　 “아, 나뭇잎 옆에 내려놓고 나 좀 도와주게나. 지금부터 구덩이를 두 개 만들건데 너무 깊을 필요는 없지만 양 손, 양 발이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덩이여야 하네.”

　 “손, 발이 다 들어갈 정도의 큰 구덩이요?”

　 “그렇다네. 동상자들 치료에 쓸 거야.”

　 “아아~”

　 성수는 선장이 구덩이를 어떻게 쓸 지 몰랐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크기는 이쯤이면 됐고, 나뭇잎을 깔고, 여기에 물을 넣어서 햇볕에 조금만 데우면 아쉽지만 그런대로 동상자들 응급처치용 구덩이 완성!”

　 “오~ 임시방편치곤 좋은 생각인데요?”

　 회복사가 선장이 만든 동상자용 구덩이를 보며 감탄했다.

　 “후후, 추운 지방에 항해하러 가면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일이 많이 생겨서 기본적인 응급처치 방법은 조금 알고 있지. 온도를 맞출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추위에 오래 노출된 게 아니니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 보네.”

　 회복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선장을 쳐다봤다.

　 “이야~ 처음에는 정말 선장님 있는 거랑 우리 여정의 이점이랑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는데 정말 생긴 거랑 다르게 박학다식하시네요. 정말 많이 배웁니다.”

　 “생긴 거랑 다르게? 허허, 내가 생긴 게 어때서 그러는가? 이래봬도 항구 술집에 가면 여자들이 나의 남자다운 외모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네! 보게, 이 남자답고 시원한 미소를.”

　 선장이 이를 악 문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광대를 억지로 끌어올려 억지 미소를 지었다.

　 ‘히익!’

　 회복사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응? 자네 왜 뒤로 가는가? 잘 보라니까. 나의 멋진 미소를!”

　 선장이 억지 미소를 풀지 않은 채, 회복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까만 피부, 커다랗고 쫙 째진 눈의 억지 눈웃음. 선장의 눈동자에서는 검은자보다 흰자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자 얼굴에 그늘까지 지면서 선장의 얼굴은 완벽하게 악당이 나쁜 짓을 하기 전에 짓는 표정이 되었다.

　 “사, 살려...아니, 그게 아니라... 어? 서, 선장님 저 친구들 빨리 치료해야...”

　 회복사가 차마 선장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규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필사적으로 그를 가리켰다.

　 선장이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규완을 쳐다봤다.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이~ 동상자들, 이리 와서 손, 발 넣게.”

　 ‘사, 살았다. 세 살 때, 삐에로 이후로 저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이야!’

　 선장이 규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회복사가 재빠르게 선장의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동상자들이 선장의 도움을 받아, 구덩이에 손과 발을 넣었다.

　 “아~ 따뜻해, 선장님, 너무 좋아요.”

　 규완이 물에 넣었던 손을 꺼내 엄지를 치켜들었다.

　 “30~40분은 담그고 있어야 되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게.”

　 “그렇게나 오래요? 벌써 많이 괜찮아 진거 같은데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게.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수도 있어.”

　 “후, 후유증이요? 어떤 후유증이요?”

　 “쉿! 그냥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게, 그럼 후유증이고 뭐고 다 해결되니까.”

　 선장이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규완에게 조용하라는 행동을 취했다.

　 “보자, 동상자들은 됐고, 탈진한 친구들은 뭐 좀 먹이고 쉬게 하면 되고, 음! 성현, 이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선장이 죽은 듯, 꼼짝도 않고 자는 성현을 보며 턱에 손을 괴었다.

　 “회복사 친구, 아니, 자네 언제 거기까지 갔나? 거기서 뭐하는 거야? 놀지 말고 이리 와서 이 친구 상태 좀 다시 봐주게.”

　 “......”

　 순식간에 50미터는 도망간, 회복사가 자신을 부르는 선장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어? 여보게~ 거기서 뭐하는 거야? 이리 와서 이 친구 좀 보라니까?”

　 “......”

　 회복사가 잠시 선장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성현에게로 다가갔다.

　 “선장님, 제가 이 친구 상태 볼 테니까. 이리오지 마십쇼!”

　 “어? 왜 그러는가? 나도 좀 같이 보세.”

　 선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성현에게 다가왔다.

　 “바, 방해돼서 그러니까 다가오지 마시라고요!!”

　 “허참, 알겠네. 그 사람 성격 참, 그게 뭐 그렇게 성질까지 내면서 말 할 일인가? 그럼 난 물 좀 떠오겠네.”

　 선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오던 걸음을 돌려 소형선 쪽으로 이동했다.

　 ‘으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표정이야.’

　 선장의 뒷모습을 보며 으슬으슬 떠는 회복사였다. 회복사가 또다시 성현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zzz... zzz...”

　 “보자, 어? 뭐야?”

　 한참을 둘러보던 회복사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왜 그러는가? 뭐 문제 있는가?”

　 소형선에서 수통을 들고 내린 선장이 회복사의 반응을 보며 물었다.

　 “이 사람이요.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요? 근육도 거의 가라앉았고, 얼핏 확인하기로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요.”

　 “뭐? 정말인가? 아직도 못 일어나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게요? 어쨌든 몸 상태는 정말 좋습니다. 어디 부러지거나 다친 데도 없고, 잘은 모르겠지만 기면증 그런 거 아닐까 싶네요.”

　 “기면증? 그게 뭔가?”

　 “음... 신경 질환의 하난데요. 생활하다가 갑자기 시체처럼 잠드는 뭐, 그런 병이 있어요.”

　 “갑자기 잠든다고? 뭐 그런 병이 다 있어? 어디 다쳤는데 자네가 못 찾는 건 아니고?”

　 선장이 회복사를 의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봤다.

　 “어? 선장님, 지금 저 의심하시는 거예요? 제가 이래봬도 우리 동네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배움의였어요. 저 만나려고 사람들이 집 앞에 줄도 서 있고, 만나 달라고 맛있는 것도 사오고, 어? 그랬다고요. 에헴!”

　 회복사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하늘높이 빳빳이 들었다.

　 “언제는 5급이고 마사지 말고는 잘 모른다고...”

　 “흠흠! 아무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분 상태가 선장님보다 좋을 겁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현식입니다. 이제부터 ‘자네’, ‘회복사’ 대신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어? 나보다 좋다고? 에이~ 나보다 상태가 좋은 사람이 왜 저러고 있어? 허허, 자네도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나.”

　 선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네 아니라 현식이라고요! 제 말 못 믿겠으면 선장님이 상태보고 치료하고 다 하세요! 저는 마사지밖에 모르니까 마사지나 하고 쉬면 되겠네!”

　 현식이 팔짱을 낀 채, 몸을 훽 돌려 그늘로 걸어갔다.

　 “아? 잠깐! 잠깐! 처음 보는 증상이라 신기해서 그런 거지~ 다른 뜻은 없었네. 자네, 아니지 현식. 자네 같은 똑똑한 친구가 하는 말인데 당연히 맞겠지! 원래 자네 같은 똑똑한 친구들이랑 나 같은 아저씨는 생각하는 게 다르잖나? 하하, 이해 좀 해주게나. 그럼 이 친구는 그냥 놔두면 되나?”

　 ‘똑똑...’

　 현식의 발걸음이 멈췄다.

　 “헤헤, 제가 좀 그렇긴 하죠.”

　 현식이 헤벌쭉 웃으며 다시 성현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허허, 단순한 친구라 다행이군.’

　 “지금 당장은 딱히 조치 취할 게 없다고 봐요. 그냥 편히 잘 수 있게 놔두죠.”

　 “그렇군,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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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영이 눈앞을 가리고 있는 울창한 나뭇잎을 살며시 치웠다. 그리고 고개를 내민 채, 눈을 감았다. 준영의 귀가 평소보다 예민해지며 주변의 오만가지 소리를 다 받아들였다.

　 “끼루끼루!”

　 “바스락! 바스락!”

　 “...휴”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한, 준영의 눈 옆으로 땀이 한 방울 주르륵 흘러내렸다. 준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것도 없다.’

　 준영이 정면을 응시한 채, 손을 들어 뒤에 있는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진.’

　 현재 준영은 1대륙의 기지인 4요새를 찾아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원래 이브의 섬은 그 자체로는 크게 위험한 곳이 아니었지만 이브의 재료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온 대륙으로 퍼지며, 온 대륙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 지역이 돼버렸기에 까딱 방심하면 목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장소가 돼있었다.

　 “저기요~ 형씨, 우리 속도 조금만 더 높입시다. 예!? 너무 느려요. 이러다 해 지겠네!!”

　 준영의 한참 뒤에서 광호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영과 같이 정찰을 하던 팀원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저 XX끼가!!”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 목숨만 신경 씁시다.”

　 “하지만 저 자식이 저렇게 떠들어대면 우리만 위험해지잖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살려면 빨리 저놈에게서 벗어나거나 요새에 도착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놈이 어떤 놈인지 다들 아시잖아요.”

　 “후... X같네.”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아직까지 4요새 길잡이들과 만나지 못 한 거지? 우리가 아무리 다른 곳에 떨어졌다고 해도 벌써 만났어야 해.’

　 “음!?”

　 준영이 자세를 급히 낮추며 주먹을 들었다.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