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 왜 그러나!?”

　 성현은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선장이 재빨리 성현의 상태를 살폈다.

　 ‘체온이 조금 높다. 하지만 위험한 정도는 아니야. 입술도 촉촉하고 호흡도 맥박도 정상... 그럼 왜 쓰러진 거지? 안개 벼룩? 아니야, 그것들이 만약 지금까지 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멀쩡할 리 없지.’

　 선장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푸우 ...푸우 ...푸우”

　 ‘응? 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편안해 보이는 거지?’

　 선장의 걱정과는 다르게 성현의 표정은 매우 편안해보였다.

　 “...푸우 ...푸우 ...푸우”

　 ‘이 상황에 설마...’

　 “...푸우 ...푸우 ...푸우”

　 ‘하지만 이 숨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장의 얼굴이 점점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선장이 회복사에게 말했다.

　 “이보게, 혹시 이 친구 상태 좀 봐주겠나?”

　 “후우~ 잠깐만요.”

　 회복사가 비틀대며 성현에게 다가갔다.

　 “음...”

　 회복사가 성현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성현의 반응을 살폈다.

　 “음!?”

　 “왜, 왜 그러는가?”

　 “이 사람... 자는 것 같은데요?”

　 “...정말인가?”

　 “그것도 아주 깊게요.”

　 “하하...하하하.”

　 선장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 선장님, 괜찮으세요?”

　 “아, 괜찮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게.”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제가 보기엔 이 사람 전체적으로 근육이 과열돼 있는 것 빼고는 저보다 더 멀쩡해 보여요.”

　 “그, 그래? 하하.”

　 선장이 다시 소형선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 정말 재미있는 친구야.”

　 “그러게요. 이 상황에 잠이라니, 갑자기 긴장이 팍 풀리네. 하하...”

　 회복사 역시 성현 옆 자리에 편하게 기대앉았다. 그렇게 대부분의 인원이 소형선에 물이 차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편안히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혼자 노를 저으려고 버둥대는 성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큰일이다. 저 사람이 쓰러져버려서 이제 정말 노를 저을 사람이 없는데... 이 회복사라는 사람과 선장은 있으나 마나고.’

　 “추워...”

　 “으... 너무 힘들어...”

　 탈진했던 인원 중 한 명이 비틀대며 일어나 소형선의 선미로 다가갔다. 하지만 모두 제각각 자신만의 생각을 다루느라 그의 행동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우선 쉬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쉬고 가자. 쉬고 죽은 귀신이 얼굴색도 곱다고.’

　 성현을 보며 자신도 한숨 잘까 고심하던 선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다가 소형선의 선미에 서 있는 인원을 봤다.

　 “어?”

　 분명히 이상한 장면이었지만 심하게 긴장이 풀린 선장의 뇌는 그 장면을 인식하는데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뭐야... 다 왔네... 이제 내리면 되나...?”

　 탈진남은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친구는 누군데 저기 서 있는 거지?’

　 선장이 소형선 내부를 둘러봤다. 성현, 성수, 회복사, 환자 하나, 둘, 셋

　 ‘셋?’

　 “풍덩!”

　 “뭐야!!”

　 선장이 환자들의 수를 확인한 순간 소형선의 선미에서 누군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에 깜짝 놀라 긴장의 끈이 확 잡힌 선장이 벌떡 일어났다. 쉬고 있던 다른 인원들 역시 물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뭐야? 뭔가 물에 빠진 소린데?”

　 “사람이 물에 빠졌다!”

　 “네!?”

　 선장이 배의 선미로 급하게 다가갔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빨리 찾아보게! 조금만 늦어도 그 친구 얼어 죽어! 수통, 자네는 노 가지고 이리 오게!”

　 “네!”

　 성현을 제외한 소형선의 모든 인원들이 물에 빠진 탈진남을 찾기 위해 소형선 옆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젠장, 어디로 간 거야!?”

　 “배 밑으로 흘러갔나? 수통, 난 오른쪽으로 가면서 볼 테니. 자네는 왼쪽으로 따라가면서 찾아보게.”

　 “네.”

　 “서, 선장님, 여기 있어요!”

　 소형선의 왼쪽 뒷부분에서 규완이 선장을 불렀다. 선장과 성수가 급하게 규완의 옆으로 이동했다.

　 “첨벙!”

　 “앗, 차거!”

　 급하게 이동하던 성수가 소형선에 찬 물로 넘어졌다.

　 “빨리 일어나!”

　 선장이 급히 성수를 일으켜 줬다.

　 “가, 감사합니다. 으, 차가워!”

　 “대충 털게! 지금은 저기가 더 급해!”

　 “네!”

　 성수가 젖은 몸을 대충 털어내고, 소형선의 후미로 이동했다. 선장이 소형선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쳐다보자, 소형선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채, 등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탈진남이 보였다.

　 “여기 있다! 어이 정신 차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성수와 선장이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탈진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설마 벌써 얼어 죽은 건 아니겠지?’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성수가 탈진남을 향해 노를 뻗었다.

　 “으... 닿을 듯, 말 듯하네.”

　 선장이 성수에게서 노를 뺐었다.

　 “줘보게. 내가 해보겠네.”

　 선장이 노를 한 손에 쥐고 뻗었다. 그러자 아까는 아슬아슬하던 노가 단번에 탈진남의 몸에 닿았다.

　 “다, 닿았다! 선장님, 당겨요!”

　 “흡!”

　 선장이 탈진남을 소형선 쪽으로 당기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큭!’

　 그와 동시에 선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선장의 팔이 잠깐의 휴식으로 괜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 더 이상 바다에 빠져 죽는 건 볼 수 없어!!”

　 선장이 마비된 상태로 5선을 잃을 때 느꼈던 지독히도 슬프고, 분한 기억을 떠올리며 들어가지 않는 손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그러자 탈진남의 몸이 천천히 소형선 쪽으로 끌려오기 시작했다.

　 “됐다!”

　 “당겨!”

　 “으랏차!”

　 선장과 성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회복사가 탈진남의 몸을 붙잡고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촤아악!”

　 탈진남의 몸에 있는 물들이 흘러내리며, 탈진남이 순식간에 소형선으로 끌어올려졌다.

　 “쿠당탕!”

　 “첨벙!”

　 “아윽, 젠장!”

　 “앗, 차거!”

　 어찌나 세게 당겼는지 반동으로 회복사가 소형선 안의 물에 나자빠졌다. 선장과 성수가 재빠르게 회복사를 일으켜주었다.

　 “괜찮나?”

　 “크... 조금 시원한 것 말고는 괜찮습니다!”

　 회복사가 엄지를 치켜들고 씨익 웃었다.

　 ‘이 와중에 농이라니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군.’

　 “그래. 어서 옷을 벗고, 물기를 닦아 내게.”

　 “저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사람부터 봐주세요.”

　 회복사가 방금 물에서 건진 탈진남을 손으로 가리켰다. 선장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후, 탈진남에게 다가가 그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맥박은 괜찮지만 숨을 안 쉰다.’

　 선장이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바다사람답게 매우 재빠르고 안정적인 움직임이었다.

　 “쿨럭! 쿨럭!”

　 선장이 심폐소생술을 실행한지, 30초도 되지 않아 탈진남이 물을 뱉어냈다.

　 “됐다! 살았어! 이봐, 정신 차리게!”

　 “으으... 추워...”

　 “옷! 옷!”

　 선장이 성수와 회복사를 쳐다봤다.

　 “제, 제건 다 젖었는데.”

　 “저도요.”

　 “여, 여기요.”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규완이 자신의 옷을 벗어 선장에게 건네주었다.

　 “고맙네.”

　 선장이 탈진남의 몸에 있는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 규완의 옷으로 몸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탈진남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선장의 온기가 탈진남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으으...”

　 “정신 차리게. 절대 죽으면 안 돼!”

　 “꿀꺽, 꿀꺽,”

　 “그, 그거 마시면 안 돼요!”

　 “?”

　 선장이 소형선 안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형선 후미에 있던 또 다른 탈진 남이 어느새 일어나 소형선에 찬 물을 마시고 있었다.

　옆에서는 회복사와 성수가 그를 말리고 있었다.

　 “뭐하는 건가? 못 먹게 떼어내!”

　 “네!”

　 성수가 두 번째 탈진남을 물에서 떼놓기 위해 그의 어깻죽지에 손을 넣어 억지로 뒤로 당겼다.

　 “으으, 놔! 물! 꿀꺽, 꿀꺽.”

　 탈진남이 갑자기 발악하며 성수의 손에서 팔을 빼내 성수를 뒤로 밀었다.

　 “으악!”

　 성수가 뒤로 휘청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섰다.

　 “이봐, 수통, 괜찮나?”

　 “......”

　 성수의 인중이 찌그러졌다.

　 “꿀꺽, 꿀꺽.”

　 “이보게, 괜찮으면 빨리 저 친구 좀 말려보게.”

　성수가 자신을 민 탈진남을 보며 짜증난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 그냥 내버려둬요. 조금 있으면 뱉어내겠죠.”

　 선장이 짜증을 내는 성수를 보며, 살짝 놀랐다.

　 “그건 그렇지만...”

　 선장이 성수를 설득하려다 포기하고 물을 마시는 탈진남을 쳐다봤다.

　 “꼴깍! 꼴깍!”

　 “...뭐야? 이 친구 어떻게 계속 마시는 거야? 짜지도 않나? 차갑기도 엄청 차가울 건데.”

　 선장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탈진남은 소형선 속의 물을 한참은 더 마신 후에야 마시는 것을 멈췄다.

　 “하아~ 이제 좀 살겠다...”

　 물을 실컷 마신 두 번째 탈진남이 비틀대며 소형선 후미로 걸어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시원하다고? 뭐야, 도대체? 이 친구는 도대체 뭐하는 친군데 이런 공포스러울 정도로 시린 바닷물을 먹고도 괜찮은 거지?’

　 “여보게, 자네 괜찮나?”

　 “컥!”

　 “!?”

　 “꺽!”

　 두 번째 탈진남이 거하게 트림을 했다.

　 ‘...사람이 바닷물을 마실 수 있다고?’

　 “혹시!?”

　 선장이 자신이 안고 있는 탈진남을 다시 쳐다봤다. 그의 안색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물을 찾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물을 찾지 않았어!’

　 “회복사 친구, 이 친구 좀 안고 있게.”

　 “네.”

　 선장이 탈진남을 회복사에게 넘겨주고 다급히 배속에 있는 물에 손을 살짝 넣어봤다. 그리고는 손에 묻은 물을 혀에 살짝 갖다 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분히 진지하던 선장의 표정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물어졌다.

　 “하하...”

　 선장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선장님, 왜 그러세요?”

　 회복사가 선장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보게들, 자네들 아까 물에 젖었을 때, 어땠나?”

　 “네? 그거야 아주 차가웠...”

　 “아주?”

　 “네?”

　 성수와 회복사가 다시 한 번 자신이 빠졌을 때의 일을 떠올려봤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이요? 지금이야 완전히... 아니? 춥지 않잖아?”

　 선장이 그들을 보며 허탈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벗어 난 겁니까!?”

　 “허허, 그래. 어느 순간인가 벗어났군. 여기 물도 차갑지도 않고, 날씨도 춥지 않아. 물이 차갑다고 느낀 건 우리 공포심이 만들어 낸 두려움 때문이었어! 그거 아나? 심지어 여기는 민물이라네. 하하.”

　 성수가 선장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배 안에 있는 물에 손을 집어넣었다.

　 “꼴깍!”

　 ‘진짜잖아!’

　 “이런 씨! 물이 차갑지 않다면 무서울 것도 없지. 그전에!”

　 “꿀꺽, 꿀꺽.”

　 성수가 소형선의 물을 있는 힘껏 마시기 시작했다.

　 “나, 나도!”

　 그걸 지켜보던 회복사도 달려들어 미친 듯이 물을 마셨다.

　 “꿀꺽, 꿀꺽.”

　 “키야! 좋다!”

　 “나도 도와주겠네!”

　 “꿀꺽, 꿀꺽.”

　 선장 역시도 물 쪽으로 다가와 소형선의 물을 마셨다. 잠시 후, 성현과 두 번째 탈진남을 제외한 모두가 소형선의 구멍 난 부분으로 다가와 물을 마셨다.

　 분명히 단순한 물이었건만, 그들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