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라니?”

　 “팔 근육을 이렇게까지 쥐어짜서 사용했는데 근육이 파열 안된 게 신기한 상태예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보통 이 정도면 더 이상 노를 젓는 건 힘들죠.”

　 선장이 회복사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멱살을 잡은 선장의 힘이 얼마나 센지 회복사의 얼굴이 금세 새빨갛게 변했다.

　 “켁, 켁, 자, 잠깐만요. 이거 좀... 놔 봐요.”

　 회복사가 선장의 손등을 탁탁 쳤다.

　 “선장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현이 선장을 불렀다.

　선장이 회복사의 멱살을 잡은 자신의 손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손을 놨다.

　 “아! 미안하네.”

　 회복사가 자신의 목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켁! 켁! 아, 진짜! 선장님 미쳤어요? 누구 죽일 일 있습니까?”

　 “미, 미안하네. 너무 흥분해서 그만...”

　 “후~ 됐어요!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저기요, 팔 좀 다시 볼게요.”

　 회복사가 성현의 팔을 보며 손을 뻗었다.

　 선장이 회복사의 행동을 보며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진짜 대단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성현이 자신의 팔을 만지는 회복사를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근육의 회복력이 엄청나요.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근육이 파열되거나, 팔을 못 썼을 건데 당신 팔은 지금도 조금만 손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진짜인가!?”

　 선장이 반색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복사가 선장을 째려봤다.

　 “네.”

　 “이보게, 그럼 빨리 어떻게 좀 해보게. 지금 우리는 시간이 없어. 배에 차오른 물을 보게. 지금 바로 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이렇게 뜸들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선장이 회복사의 손을 잡았다.

　 “아, 알겠어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거 좀 놔 봐요.”

　 회복사가 선장의 손을 뿌리쳤다.

　 “저기요. 팔 주세요. 힘 빼시고요.”

　 ‘쩝, 안 된다고 했다가 멋지게 딱 치료하려고 했는데, 괜히 목만 졸렸네.’

　 “후~ 후~”

　 회복사가 자신의 손바닥에 입김을 불더니 손바닥을 비볐다. 회복사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뭉쳐졌다.

　 “자, 시작합니다.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

　 회복사의 손이 성현의 팔을 부드럽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윽!”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나요.”

　 회복사가 느리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성현의 팔 여기저기를 주무르며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의 근육을 접해봤지만 이런 근육은 처음이다.’

　 “조금 더 빨리 할 수는 없나?”

　 회복사가 성현의 근육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선장이 배에 차오르는 물을 보며 안달했다. 회복사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세요. 제가 뭐 신입니까? 손만 대면 뚝딱하고 낫게!?괜히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 알겠네.”

　 선장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후~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주먹 쥐었다 펴 보세요.”

　 성현이 천천히 손을 쥐었다, 폈다.

　 “어떠신가요?”

　 “훨씬 괜찮아졌습니다.”

　 “좋아요.”

　 회복사가 찢어진 옷에 물을 살짝 묻혀 성현의 팔에 얹었다.

　 “자, 마무리 냉찜질까지 끝!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취는 취했어요.”

　 “오오~”

　 선장이 회복사를 보며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일시적으로 나아진 거라 무리하면 금방 또 경련이 올 거예요.”

　 “얼마나 쓸 수 있습니까?”

　 성현이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글쎄요. 해봐야 5분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선장님, 바로 가시죠. 적어도 이 지역이라도 벗어나야합니다.”

　 “괜찮겠나?”

　 “충분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미안하지만 힘내주게.”

　 “괜찮습니다. 꼭 살아서 섬으로 갑시다.”

　 “그래.”

　 “촤악!”

　 성현이 남들 모르게 품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자 돌멩이에서 은은한 녹색 빛이 조금 흘러나오더니 성현의 몸에 흡수되었다. 성현의 안색이 단번에 좋아졌다.

　 “후~”

　 “가자!”

　 “네.”

　 성현이 탄 소형선이 아까보다는 느리지만 꽤 빠른 속도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선장님! 소형선에 물이 너무 많이 찼어요. 언제쯤 돼야 섬에 도착할 수 있어요?”

　 수통으로 물을 퍼내던 인원이 소형선에 찬 물을 보며 몸서리쳤다.

　 “하아~ 하아~ 조금만 기다리게! 성현, 자네 팔은 괜찮나?”

　 “아직까지 버틸 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성현이 선장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서, 섬이 보인다!”

　 “뭐!?”

　 규완이 정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선장이 규완의 말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봤다.

　 “지, 진짜다! 보인다!”

　 선장의 눈에 연해진 안개사이로 섬의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섬까지 약 500미터, 성현이 탄 소형선이 반 정도 가라앉은 상태에서 섬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젠장, 배가 가라앉아서 속도가 현저히 줄었어. 물 때문에 자세도 불편하고... 그래도 이제 곧이다.’

　 “후! 다들 힘내세!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선장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옆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네!”

　 소형선의 선미가 왼쪽으로 살짝 아주 살짝 돌아갔다.

　 ‘음? 갑자기 노가 무겁다.’

　 선장은 몰랐지만 사실 선장의 팔도 이미 한계를 넘어선지 한참 지난 후였다. 선장이 이를 악 물었다.

　 ‘아니, 여기서 포기할 순 없어!’

　 “흐압!”

　 소형선의 선미가 다시 정면을 향해서 돌아왔다. 성현이 선장을 쳐다봤다.

　 “후우~ 후우~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아~ 하아~ 뭐가 말인가?”

　 “방금... 아닙니다.”

　 “하아~ 하아~ 그래.”

　 소형선이 섬을 향해 다가갈수록 선장과 성현, 회복사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칠어지는 그들의 숨결과는 무관하게 소형선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후우~ 후우~ 선장님,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선장의 앞에서 노를 젓던 회복사가 죽어가는 낯빛으로 선장을 보며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어. 조금만 참게.”

　 선장이 턱으로 소형선 안의 물을 가리켰다.

　 “아... 네...”

　 회복사가 멍한 표정으로 다시 정면을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선장이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선장의 팔이 엄청나게 떨리고 있었다.

　 ‘하하, 그렇게 말했지만 이제 나도 한계인가? 겁나게도 떨리는군.’

　 “크으윽, 선장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예요...”

　 앞을 보고 멍하니 노를 젓던 회복사가 노를 놓쳤다.

　 “후우~ 후우~ 그래? 사실 나도... 그렇다네.”

　 선장 역시 손에서 노를 놓쳤다. 그와 동시에 성현도 손에서 노를 놓쳤다.

　 “하아~ 하아~ 팔이 이상하구만. 하아~ 하아~ 자네 혹시 내 팔도 좀 봐 줄 수 있나?”

　 “자, 잠시만요. 물 좀... 우웁!”

　 회복사가 바다에 토를 했다.

　 “웩! 우웩!!”

　 ‘아아, 끝났군. 하긴, 이렇게 계속해서 노를 저었는데 괜찮으면 그게 이상한거지. 그러고 보니 성현, 저 친구는 정말 이상한 친구야. 몸이 강철로 돼 있나? 도대체 혼자서 몇 명분의 일을 한 건지 모르겠어. 뭐 그래봤자 다 소용없지만 정말 대단한 친구야.’

　 선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현을 쳐다봤다.

　 회복사의 토기가 조금 가라앉자, 선장이 회복사의 상태를 살폈다.

　 “후우~ 괜찮은가? 이거 좀 마시게. 마지막 물이니. 아껴 마시고.”

　 선장이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물통을 회복사에게 넘겼다.

　 “네...에... 감사합... 우욱! 웩!!”

　 “풍덩!”

　 회복사가 물통을 건네받자마자, 바다에 흘렸다.

　 “앗! 마지막 물이...”

　 “정말 죄송... 욱!”

　 “휴, 아니네, 어차피 얼마 남지도 않았었어.”

　 선장이 물에 빠진 물통과 함께 뭔가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회복사를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선장님, 포기한 거 아니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쉬었다가 저 분 회복하면, 선장님도 괜찮아 지실 거고, 그러면 다시 출발하면 됩니다.”

　 “하하... 그렇겠지? 그래. 좀 쉬세나.”

　 성현이 선장을 달랬다. 선장이 해탈한 듯 웃으며 소형선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

　 선장이 딱히 별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현은 선장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선장이 지금의 상황을 거의 포기했다는 것을.

　 “선장님, 코앞입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하하, 자네는 끝까지 긍정적이군. 하아~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게. 나도 그렇고, 이 친구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모두가 너무 지쳤어.”

　 삶을 갈망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던 선장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변했다.

　 “후우~ 후~”

　 사실은 성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바로 코앞인 곳을 가기에는 모두가 힘이 너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알지만 그냥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 팔로, 어깨로, 몸으로, 깡으로라도 억지로 노를 젓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네. 정말 몇 백 미터 안 남았는데... 평소라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물만 차갑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해 볼 텐데 아쉽군. 아쉬워.”

　 선장이 섬을 한 번 흘끗 보고는, 안개가 가득 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젠장, 이렇게 어두운 하늘을 보며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응? 뭘 죽어요? 이 사람들 다 왜 이래? 비켜요, 비켜. 이제 내가 저을 테니까.”

　 수통으로 물을 퍼내던 인원이 수통을 흔들어 보이며 선장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어필했다.

　 “...하하, 수통 자네. 노를 저을 줄은 아나? 미안하지만 혼자서는 노를 저을 수 없어.”

　 “하? 수통이라니요. 제 이름은 성수입니다. 그리고 무슨 소리예요? 성현 씨는 아직 저을 수 있는 것 같은데. 노도 선장님이 안 시켜줘서 안 저은 거지, 하면 잘해요. 나오세요. 제가 이 분이랑 같이 한 번 해볼게요.”

　 “그랬나? 알겠네. 그럼 얼마든지 해보게나. 그래서 섬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자네를 받들어 모시고 살수도 있어.”

　 “네, 그 말 꼭 기억하세요. 여기, 수통. 물 퍼내는 건 별로 안 힘드니까 물 좀 퍼내고 계시고요. 손 안 젖게 조심하세요.”

　 “하하, 알겠네~”

　 선장이 비키자 성수가 선장의 자리에 앉았다. 성수가 성현을 보며 말했다.

　 “저기, 이제 좀 괜찮아지셨어요?”

　 “네, 괜찮습니다.”

　 성현이 괜찮은 척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은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 갈까요?”

　 “네, 죄송하지만 구령 좀 넣어주시겠습니까?”

　 성현이 성수에게 구령을 부탁했다.

　 “제, 제가요?”

　 “네... 지금 말할 힘이 없어서요.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어요.”

　 “나도, 저을게요... 우웁...우..우... 꿀꺽! 크하! 가죠!”

　 앞에서 실컷 토악질을 하던 회복사가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도로 집어 삼키더니 노를 잡았다.

　 “좋아요. 다들 힘내십쇼. 갑니다. 하나, 둘!”

　 “촤악!”

　 성수가 구령과 함께 힘껏 노를 저었다. 소형선의 선미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응? 배가 왜 오른쪽으로 돌지? 내가 너무 세게 저었나? 아, 저 사람은 힘이 없지? 좀 살살 저어야겠다.’

　 “다시 해볼게요.”

　 “하나, 둘!”

　 “촤악~!”

　 성수가 노를 젓는 힘을 최대한 뺐지만 여전히 소형선의 뱃머리는 오른쪽을 향해서 돌아갔다.

　 ‘또!?’

　 “저기요. 제 앞에 계신 분, 저쪽으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회복사가 비틀대며 성현의 앞으로 이동했다.

　 “자, 다시 갑니다. 하나, 둘!”

　 “촥~!”

　 “......”

　 소형선의 뱃머리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돌아 섬 방향을 벗어났다.

　 ‘...이 사람들 더 이상은 무리다...’

　 “그냥 제가 혼자 해볼게요. 저기 선장님 도와서 수통으로 물 좀 퍼주세요.”

　 “......”

　 “아닙니다. 괜찮...”

　 “털썩!”

　 “성현!?”

　 어떻게든 노를 저으려고 아등바등 대던 성현이 맥없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