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대는... 아까 우리보다 먼저 주변을 돌아봐주시려고 한 분들이 하시면 되겠죠?”
“......”
“하하, 아니면 설마 우리가 없는 아까는 하고 싶다가, 우리가 같이 있는 지금은 하기 싫다 그런 건 아니죠?”
사람들의 시선이 준영에게로 향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마십쇼. 여러분이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섬에 오자마자 정찰을 한다고 준비하고 계시기에, 능력이 그쪽과 관련된 분들인가 싶어서 부. 탁. 하는 거니까요.”
“......”
광호가 ‘부탁’이라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신나게 웃는 광호의 입과는 다르게 광호의 눈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눈이 전혀 웃지 않는군. 소름 돋는 인간. 후~’
준영이 언짢은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반대로 광호는 그런 준영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더욱 신나는 듯, 미소가 짙어졌다.
‘하하, 분한가 보지? 짜릿하군! 나는 너희 같은 놈들이 어쩔 수 없이 내 말에 따를 때의 그 분한 표정이 너무 너무 좋아.’
“좋아요, 좋아. 그럼 나머지는 여기부터 여기까지 본대,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후발대로 할게요. 정찰대 분들 짐 다 이리 주세요. 저희가 안전하게 들고 가겠습니다.”
광호가 정찰대를 정하자마자, 나머지는 대충 선을 그으며 정리해버렸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편해야 저희도 마음이 편해요. 짐 정도는 들게 해주세요. 그리고 몸이 가벼울수록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 쉽잖아요?”
“괜찮습니다. 짐을 들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준영이 짐을 주려고 하지 않자, 광호가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눈짓을 했다.
그러자 광호의 눈짓을 받은 남자가 바로 광호의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아, 그래요. 짐을 다 들고 어떻게 정찰을 합니까? 주세요. 짐은 저희가 잘 맡고 있을 테니. 대신 정찰 잘 부탁드릴게요.”
광호가 또 다른 남자를 보며 눈짓을 했다. 그 남자 역시 광호의 눈짓을 받자 바로 광호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니까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주세요.”
광호의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자식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하하, 설마 우리가 짐을 잃어버릴까 그러십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죽더라도 여러분의 짐은 꼭 지켜드릴 테니. 아니면, 뭐 정말 우리를 믿지 못하는 동료가 생각하는 건 아니죠? 하하.”
광호가 또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했다. 하지만 광호의 눈은 여전히 웃지 않은 채, 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개자식! 짐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다고, 도망 못 가게 하려고 별짓을 다 하는군!’
“...여기 있소.”
“툭!”
준영이 짐을 바닥에 내려놓자, 그 일행들도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광호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으으! 좋아, 좋아. 개기긴 어딜 개겨? 멍청한 놈들,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버려주마.’
“자! 그럼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움직일까요?”
“네!”
광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내자, 밝게 웃으며 주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광호 씨, 어디로 갈 겁니까?”
“우선은 이곳의 위치를 좀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길 찾는 능력이랑 관계된 능력 가지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네, 여기요.”
역쟁 인원들 속에서 5명의 사람이 손을 들었다.
“여기 앞에, 이쪽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네, 잠깐만요. 실례하겠습니다. 좀 지나갈게요.”
역쟁 인원들 사이에서 얼굴이 매우 작고, 목과 팔, 다리가 일반 사람보다 더 길쭉한 남자가 역쟁 인원들을 가로지르며 걸어 나왔다.
“여기 위치가 어디쯤인가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네?”
광호가 ‘무슨 소리야?’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 딱히 위치를 알려줄만한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고, 사람도 없는걸 보니, 애초에 도착했어야 할 곳과는 조금 다른 곳으로 온 것 같습니다. 하늘도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으니 위치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요. 우리 위치를 알려면 조금 더 숲 쪽으로 들어가거나 해안가를 따라 움직여야 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럼 숲으로 들어갑시다. 해안가는 우리의 위치가 너무 쉽게 파악될 수 있으니 숲으로 들어가요.”
“네.”
“자, 그럼 이곳에 이미 터를 잡고계신 선배님들과 합류하러 가봅시다.”
“갑시다!”
“예~!”
“정찰대분들? 그럼 정찰 잘 부. 탁. 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마시고요. 저희가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곧장 알려 주세요. 바로 도우러 가겠습니다.”
광호가 ‘부탁’이란 말과 ‘지켜보고’라는 말을 은근히 강조했다. 준영이 이제는 아예 포기한 듯, 광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뭐가 부탁이고, 뭐가 지켜 보고냐! 명령과 감시겠지.’
“하아...”
준영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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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촤악~”
소형선 하나가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안개를 가르며 빠르게 이동했다.
“하악, 하악.”
“너, 너무 추워.”
“으으... 손, 발이 따가워. 서, 선장님 언제쯤 여기를 벗어날 수 있나요?”
“후우~ 후우~ 하나! 둘! 하나! 둘! 후우~ 후우~ 다들 조금만 참게! 내 예상으로는 조금만 더 가면 될 거야!”
구석에 모여 있는 규완과 환자들이 팔로 몸을 감싸 안고 부들부들 떨며 널찍한 선장의 등을 바라봤다. 선장이 환자들을 안심시킬 겸 그들을 한 번 돌아보고는 소형선에 찬 물을 쳐다봤다.
‘3분의1정도 찼군. 그래도 이 정도 속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어. 생각보다 이동속도가 더 빠르다.’
선장이 배에 찬 물과, 배의 속도를 보며 희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물차는 속도도 느리고, 소형선의 진행속도도 빨라. 조금만 더 힘내게.”
“정말인가요? 다, 다행이다.”
“계산대로라면 곧 섬이 보일 걸세.”
선장이 규완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배의 선미가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응? 후우~ 후우~ 잠깐 멈춰!”
선장이 급하게 젓던 노를 멈추고,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팔에 문제가 생긴 듯, 자신의 팔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성현, 자네 괜찮나?”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성현의 손이 갑자기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선장이 급히 일어나 성현의 상태를 살폈다.
‘이런, 근육을 너무 혹사시켰어. 하긴 그렇게 계속해서 근육을 썼는데 몸이 멀쩡할 리가 없지. 미리 신경 썼어야 하는 건데 이 친구가 티를 안내서 전혀 몰랐어... 흠, 더 이상 노를 젓는 것은 무리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친구의 노 젓기가 아니라면 시간에 맞출 수 없을 텐데...’
선장이 배에 찬 물을 한 번 쳐다보고, 수통으로 물을 깔짝깔짝 퍼내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꼴꼴꼴~ 쪼르륵~ 꼴꼴꼴~ 쪼르륵~”
“?”
수통남이 순진한 눈망울로 선장을 마주 봤다.
‘하아~ 저놈으로는 무리다. 젠장, 정말 산 넘어 산이군. 이제 물 퍼는 걸 멈추고 다 같이 노를 저어야 하나?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무리야 섬에 도착하기 전에 소형선이 잠기겠지.’
“자네들, 혹시 이제는 좀 움직일 수...? 아니, 규완 저 친구들 갑자기 왜 저러는가?”
선장이 환자들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어, 어라? 이분들 갑자기 왜 이러지?”
선장의 시선을 따라 옆을 본 규완의 눈에,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은 채, 꼼짝도 않는 탈진자들이 보였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
“으으... 추워. 살려 줘.”
규완이 탈진자들을 부르자, 두 명중 한 명만 고개를 들 뿐,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선장이 다가와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쇼크 상태인건가?”
“쇼크요?”
“피가 부족한 상태에서 갑자기 체온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군.”
“그, 그럼 어쩌죠?”
“깨워야지.”
선장이 의식이 없는 탈진자의 입을 물로 적시며 그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
선장이 탈진자의 뺨을 한 대 더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자네 이대로 있다가는 죽어!”
“으으...”
“그래. 고개 들고 정신 차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조금만 버티면 섬에 도착할 테니 정신 놓지 말고 힘내!”
“으으으...”
선장이 동상자들을 보며 말했다.
“자네랑 자네가 이 친구들을 끌어안아서 체온을 높여주게. 그리고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 줘.”
“그, 그거면 되나요?”
“현재는 그거밖에 할 게 없군.”
“네.”
선장이 탈진자들을 동상자들에게 포개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선장이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이 덜덜 떨리는 팔을 꽉 쥐며 말했다.
“선장님, 이제 됐습니다. 갑시다.”
“괜찮겠나?”
“네, 괜찮습니다.”
성현은 괜찮다고 했지만 성현의 팔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선장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한 번 저어보겠나?”
“네.”
성현이 노를 들다가 노를 놓쳤다.
“이런...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졌습니다.”
“아닐세. 팔이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어. 괜히 무리하지 말게.”
“그렇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
선장이 말 안 해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저기요, 팔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
그때, 선장의 앞에서 노를 젓던 남자가 이제 좀 살겠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더니 성현에게 다가갔다. 선장이 그 남자를 미덥지 못하게 쳐다봤다.
‘이놈은 또 뭘 하려고...’
남자가 성현의 팔을 여기저기 더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음~ 이 정도면 음~ ”
“뭐하는 겐가?”
“아, 제가 마사지를 좀 할 줄 알아서요.”
“마사지? 설마 ‘회복사’인가?”
“배움의 단계지만 일단은 회복사긴 하죠.”
“뭐?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건가!?”
선장이 회복사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움의긴 한데 띄엄띄엄 취미삼아 배운 거라 5급밖에 안 돼요. 종목도 재활 쪽 말고는 거의 모르고요. 그리고 하는 것 보니까 재활 쪽 말고는 선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길래 가만히 있었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배움의면 기본적으로 병에 관한 것을 전반적으로 다 아는 거 아닌가?”
“전혀 아니에요. 대체로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회복사도 종류가 엄청 많아요. 특히 배움의 5급은 시작단계로 우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하나만 공부하면 딸 수 있어요. 그리고 아는 분야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급이 올라가고 최종적으로 배움의 1급이 되는 거죠. 그 이후에 시험을 쳐서 ‘평의’가 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병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 아는 회복사가 되는 거고, 그것보다도 뛰어난 천재들은 ‘신의’라고 불리게 되는 거죠.”
“음... 그런가? 생각보다 복잡하군. 아무튼 저 친구 팔 낫게 할 수 있나?”
“음, 글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