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인상을 찌푸릴 수 있는 대로 찌푸리며 작은 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걸 말하는 것 같은데, 저게 보인다는 건가?’
“자네 혹시 저쪽에 보이는 작은 점 말하는 것 맞나?”
“작은 점이요? 저, 점이 아닌데...”
“점이 아니라고?”
“네...”
“잠시 기다려보게.”
선장이 다시 한 번 점이 있던 부분과 그 주위를 죽어라 째려봤다. 하지만 선장의 눈에는 그저 작은 점이 조금 더 짙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흠, 자네, 혹시 시력이 얼마나 되는가?”
“시력이요? 훈련소에서 잴 때, 양쪽 다 6.0이었긴 한데, 사실 시력 재는 줄 서 있는 동안 외우고 재서 잘 몰라요. 헤헤.”
“음, 그래? 그럼 정확한 시력은 모른다는 건가?”
“네, 헤헤.”
규완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렇군, 혹시 특기가 시력은 아니지?”
“그렇진 않지만 시력이 좋은 편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요.”
“알겠네.”
규완의 옆에 있던 남자가 규완을 미심쩍게 쳐다봤다.
‘줄 서 있는 동안 외웠다고?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응? 자네 표정이 왜 그런가?”
“아, 아닙니다.”
선장은 규완의 시력이 그냥 좋다고 생각했지만 훈련소에서 시력을 쟀던 인원들은 규완의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시력을 잴 때, 30미터 거리에서 시작해서 글자 크기나 문양을 맞추는데 줄 서는 곳은 그곳에서 20미터는 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력 6.0을 받는 인원들은 전체 중에서 상위 5프로 안에 들 정도로 적었으며, 답은 옆에 있는 표지를 이용해서 교관에게만 보여주기에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할 수도 없었다.
“규완 씨!!”
“네?”
“손!”
“손이요? 제 손이 왜...? 헉!”
규완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히익! 서, 성현님 제 손 색깔이 왜 이렇죠!?”
규완이 시퍼렇게 변한 손을 들었다.
“흐악!!”
“흐악!?”
규완이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옆 사람을 쳐다봤다. 규완과 같이 물을 퍼내던 남자였다.
“왜, 왜, 왜 그러세요?”
“소, 손에 감각이 없어!”
선장이 규완과 옆 사람의 손을 보고, 급히 소리쳤다.
‘동상!?’
“이봐, 둘 다 얼른 물에서 손을 빼게!”
“네?”
“얼른!”
“네, 네!”
선장이 급히 다가와 규완의 손을 살짝 눌렀다.
‘역시.’
“어떤가?”
“아무 느낌 없는데요?”
“손가락을 움직여보게. 자네도 같이.”
“네.”
규완과 옆 사람의 손이 기계처럼 삐그덕 대며 어색하게 움직였다. 선장이 물에 손을 살짝 넣어봤다.
“윽!”
선장이 물에 넣었던 손을 바로 뺐다.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장의 손은 빨갛게 변해있었다.
“물이 이렇게 차가운데 자네들은 이것도 모르고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이, 이상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었는데...”
규완이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자네들 상태를 보니 꽤 높은 수준의 동상인 것 같은데. 이대로 계속 있다간 큰일날수도 있어.”
“크, 큰일이요? 어떤 큰일이요?”
“손을 잘라야 할 수도 있네.”
“네? 소, 손을요?”
규완이 자신의 손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장님, 제 손은 안 돼요! 제 백옥 같은 손을 보세요. 이걸 자르다니요!”
규완이 선장의 ‘손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진정하게. 이대로 계속 있다면 그런 거지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 언제부터 이랬나?”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까 추워지면서 손이 좀 간지럽다는 생각은 했는데...”
“추워지면서부터면 대략 5분 내외 인가? 음, 그나마 장기간 노출된 게 아니라서 다행이군. 우선 양손의 물기를 닦고, 손을 겨드랑이 안으로 집어넣게. 발은 괜찮은가?”
선장이 물기가 묻어있는 규완의 발을 보며 말했다.
“발이요? 헉! 그러고 보니 발도 딱히 감각이 없는 거 같아요. 잠깐만요. 신발 벗어 볼게요. 아니!?”
신발을 벗으려던 규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왜, 왜 그러는가?”
“흑흑, 손이 얼어서 신발을 벗을 수가 없어요.”
“딱!”
“악!”
선장이 규완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자꾸 쓸데없이 소리 지르지 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놀랬잖은가. 이리와 보게. 내가 벗겨주겠네.”
“흑, 네, 죄송합니다.”
선장이 규완의 신발을 벗겼다. 그러자 손처럼 시퍼렇게 변한 발이 보였다.
“흐악! 바, 발도!”
“딱!”
“윽!”
선장이 규완의 머리에 꿀밤을 한 방 더 먹였다.
“조용히 있게. 거기 자네는 괜찮은가?”
“저, 저도 감각이 없습니다.”
“기다려보게. 내가 해주겠네.”
선장이 규완의 옆에 있던 남자의 신발도 벗겼다. 그의 발 역시 규완과 마찬가지로 시퍼렇게 변해있었다.
“흠, 큰일이군. 발까지 이런 상태라니.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할 듯한데. 치료할 방법이 없어.”
선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동상자들의 손과 발을 쳐다봤다.
“여기 혹시, 뜨거운 물 있는 사람 있나?”
“......”
선장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있을 리가 없지.”
“어? 어? 선장님, 물 차는데요?”
소형선에 물을 퍼내는 인원들이 동상에 걸려 물을 퍼낼 수 없게 되자, 소형선에 급속하게 물이 차기 시작했다.
“지, 진짜네. 저기 선장님, 이거 빨리 퍼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건드리지 말게. 지금 물의 온도로 예상하건데, 물에 손을 넣으면 20번을 채 퍼기도 전에 동상이 걸릴 걸세.”
“그, 그러면 어떻게 하죠?”
“......”
“우선은 최대한 피부에 물이 닿지 않게,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서 물을 퍼내게.”
소형선 인원들이 급하게 물을 퍼낼만한 것을 찾아봤지만 주변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수, 수통!”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규완이 수통을 보며 소리쳤다.
“저걸로 퍼내요!”
“난 아직 물이 남았는데?”
“나도.”
“수통 비어있는 사람 있어요?”
규완의 말에 소형선 인원들이 비어있는 수통을 찾았다.
“이... 멍청한! 한 개로 퍼서 언제 다 퍼내려고 그러나! 어차피 여기서 빠져 죽으면 그 물 다 소용없어! 빨리 마시던가, 버리던가 하고 수통 비우게!”
“네? 그러다 나중에 물이 필요하면 어쩝니까?”
“맞아요, 아까 피를 하도 빨려서 물이 없어도 죽을 거 같은데.”
“지금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선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럼 이렇게 하죠. 어차피 저랑 선장님 규완 씨는 수통을 들고 있지 않고, 다른 분들은 물이 많이 남지 않은 거 같으니, 한 명의 수통에 물을 다 모으고 나머지 수통으로는 물을 퍼내기로요.”
선장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 인원들이 계속해서 뭉그적대자 성현이 의견을 냈다.
“네! 성현 씨,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누구의 통에다 물을 모으죠?”
선장이 계속해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인원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 정말 마음 같아서는 저놈들을 다 바다 속에 밀어 넣어 버리고 싶군.’
“지금 얘기하시는 분 수통에다 모을게요. 다른 분들은 수통 주세요.”
“네.”
성현이 선장의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의견을 냈다.
수통에 물이 있는 인원들이 성현에게 수통을 주었다. 성현이 수통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자, 비어있는 수통 네 개가 모였다.
“다 됐습니다. 이제 물을 퍼내죠.”
“네.”
그렇게 안개 벼룩에게 피를 빨려 쓰러진 둘과 동상자 둘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 네 명이 수통을 하나씩 들고 물을 퍼내자 소형선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으으! 물에 안 닿으면서 퍼내려고 하니까 조금밖에 안 퍼져서 너무 답답하다.”
“그럼 손을 푹 집어넣어서 퍼게. 말리지 않겠네.”
이 와중에도 투덜대는 인원을 보며 선장이 비꼬는 말을 했다. 그러자 투덜대던 인원이 갑자기 정색하며 선장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아니, 선장님. 아까부터 말을 왜 그렇게 합니까? 내가 뭐 잘못했어요? 힘들다는 거 말도 못합니까?”
“뭐?”
무표정하게 물을 퍼내던 선장의 얼굴이 아수라 저리가라 할 정도로 험악하게 변했다.
‘헉!’
투덜대던 인원이 선장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눈을 깔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선장님, 진정하세요.”
성현이 재빠르게 선장과 투덜이 인원의 사이에 끼어들어 선장을 달랬다.
“선장님?”
성현이 선장과 투덜이 인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장의 시야가 성현에 의해 가로막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투덜이 인원을 노려보던 선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후우우~”
그러더니 금세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이제 괜찮아졌어. 어이, 친구 미안하네. 내가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흥분했구먼.”
“아, 아닙니다. 사, 상황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죠.”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정색해서 미안하네.”
“괘, 괜찮습니다. 제가 괜히 말대꾸해서 죄송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우리 화해하는 걸세.”
“네...”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장이 투덜이 인원을 보며 방긋 웃었다 다시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투덜이 인원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한 번만 더 대들었다가는 선장이 자신을 절대 소형선 위에 놔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조, 조심해야겠다.’
투덜이 인원이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고, 소형선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무, 물 찬다.”
“젠장! 수통으로는 역시 무리인가? 이러다 다 같이 죽겠네!”
성현이 배에 차는 물을 손으로 살짝 퍼봤다.
“규완 씨, 물이 언제부터 이렇게 차가웠는지 기억납니까?”
“그, 글쎄요. 안개 벼룩이 있을 때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다른 동상자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말했다.
“안개 벼룩 때까지는 괜찮았어요. 벼룩 털어낸다고 손을 썼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어요! 혹시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나요?”
“음... 잠깐만요.”
“네!”
선장이 성현을 쳐다봤다.
“그러면 안개 벼룩 구역을 넘어오면서 물이 차가워 진거군. 어떻게 할 텐가? 얼핏 보니 조금만 담그고 있어도 동상에 걸릴 듯한데.”
“그게...”
“촤악!”
“촤악!”
성현이 고민하는 사이, 갑자기 어디선가 물을 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장과 성현의 고개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규완 씨?”
“자네 뭐하는가?”
선장과 성현의 눈에 소형선에 찬 물을 손으로 퍼내고 있는 규완이 보였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가 좀 더 할게요! 굳이 다른 사람들까지 동상 걸릴 필요 없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서 다 같이 죽을 수도 없고요.”
“이런 바보 같은...! 자네는 좀 빠지게. 그러다 동상이 더 심해지면 정말 손을 잘라야 할지도 몰라!”
규완이 순간 멈칫 했지만 다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저만 좀 희생하면 되는데요 뭐, 이렇게 입김 불어가면서 퍼내면 좀 낫겠죠. 호~호~”
“촤악!”
“규완, 자네 정말...”
“으윽!”
물을 퍼내던 규완이 갑자기 손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규완! 괜찮은가?”
“네, 괜찮... 윽! 아요.”
규완이 식은땀을 흘리며 방긋 웃었다. 규완의 억지스러운 표정을 본 선장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다짐한 듯, 표정을 굳혔다.
“비키게! 차라리 내가 하겠네. 자네는 섬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아, 아니에요.”
“비키게! 아니!?”
규완을 밀어낸 선장이 규완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 그냥 파랗기만 하던 규완의 손에 어느새 수포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그만하고 저리 가게!!”
“네?”
“손에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더 이상은 정말 위험해!”
“하, 하지만...”
규완이 배에 차오르는 물을 쳐다봤다.
“됐네. 자네는 할 만큼 했어. 가만히 있게. 이제는 내가 하겠네.”
선장이 규완을 당겨 물에서 떨어트렸다. 그리고 규완의 손에 묻어있는 물기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윽!”
선장이 매우 조심스럽게 닦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손을 심장 위로 들고 있게. 조만간 더 심한 통증이 올 거야. 옆에 자네도 똑같이 하게.”
“네.”
선장이 규완의 손을 닦아낸 후, 물이 차오르고 있는 소형선 바닥 쪽으로 다가갔다.
“선장님.”
“왜 그러는가?”
“선택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