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아까보다 많아졌다!! 설마, 피 냄새를 맡고 모이는 건가?’

　 성현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그리고 팔을 밖으로 꺼내 손에 피를 묻혔다. 그러자 공중에 떠다니던 안개벼룩들이 성현의 팔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역시!”

　 성현이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엄청난 속도로 휘저었다.

　 “콰아아! 촥!!”

　 물속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형성되며 성현의 몸이 소형선으로 튀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몸에 붙은 안개 벼룩을 제거하고 있었다.

　 “촤악!”

　 “앗, 차가! 성현님?”

　 성현이 안개 벼룩을 털어내고 있던 규완에게 바닷물을 뿌렸다.

　 “촤악!”

　 “어풉! 갑자기 무슨 짓인가? 자네 제정신인가?”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피를 씻어내야 됩니다!”

　 성현이 계속 주변에 물을 뿌리며 주변에 묻은 피들을 씻어냈다.

　 “피를 씻어내라고?”

　 “네!”

　 “알겠어요!”

　 규완은 성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무작정 성현의 말에 따랐다.

　 ‘성현님이 씻으라고 했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규완이 소형선에 차 있는 바닷물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촤악! 촤악!”

　 ‘피를 씻어내라고? 아! 피를 보고 몰려드는 것인가!?’ “촤악!”

　 성현의 의도를 눈치 챈 선장 역시 규완을 따라 빠른 속도로 근처에 묻은 피들을 씻어냈다.

　 하지만 다른 인원들은 점점 더 패닉에 빠지며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벼룩을 제거할 뿐, 피를 씻어내지 않았다.

　 “피는 대충 씻어냈네. 몸에 달라붙어 있는 이 것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우선은 놔두겠습니다. 선장님, 그것보다는 다음 구역으로 가는 뱃길을 봐주십쇼. 최대한 빠르게 이 지역을 벗어나야합니다.”

　 몸에 붙은 벌레를 놔둔다고 생각하니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선장은 가타부타 말없이 성현이 시킨 대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알겠네.”

　 “흐악!”

　 “팡!”

　 “꺼져! 꺼지란 말이야!”

　 “모두 진정하세요!”

　 “으아아!”

　 “팡!”

　 성현이 계속해서 안개벼룩을 털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말렸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피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피를 사방으로 뿌릴 때마다 더욱 많은 벼룩들이 몰려들었다.

　 ‘이러다간 여기서 전멸이다! 할 수 없다!’

　 성현이 선장과 규완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선장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지금입니다!”

　 “좋았어! 이 친구들아 시원한 물로 정신 좀 차리고 오게. 하하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기뻐하는 선장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악!”

　 “흐악!”

　 성현과, 선장, 규완이 미친 듯이 몸을 털며 배를 피로 물들이는 사람들을 바다로 밀었다.

　 “뭐, 뭐야!”

　 “푸핫! 갑자기 무슨 짓이야!”

　 “이제 제 말이 들립니까?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쇼. 벌레는 놔두고, 몸에 묻은 피만 대충 씻어내세요. 그리고 최대한 빨리 이 구역을 벗어나서 벌레를 처리하겠습니다. 빨리 움직이세요.”

　 “?”

　 바다에 빠진 인원들이 ‘그게 무슨 개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그, 그러다가 이 벌레들이 내 피를 다 빨아먹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이동하자는 겁니다!”

　 이 상황에도 계속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시간을 잡아먹는 인원들을 보던 선장이 옆에 있던 노를 손에 들었다.

　 “이 망할 놈들! 3초 준다! 여기서 물귀신 되고 싶은 놈은 계속해서 그렇게 말대꾸하고 아닌 놈은 빨리 시키는 대로 움직여!!”

　 “헉! 씨, 씻겠습니다!”

　 선장이 노를 들고 내려칠 것처럼 협박을 하자, 대꾸를 하던 인원들이 재빠르게 성현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성현이 선장을 보며 엄지를 들었다. 선장도 성현을 향해 엄지를 들어주었다.

　 “자, 다 씻었으면 빨리들 올라와!”

　 성현 일행이 아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물에 빠진 사람들을 소형선 위로 건져주었다.

　 “헉, 헉, 사, 살았다.”

　 “죄송하지만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피를 더 빨리기 전에 움직이세요. 규완님이랑 옆에 있는 분은 소형선에 찬 물을 퍼내주시고, 중간 중간 쓰러져 있는 두 분에게 물을 먹여주세요. 그리고 선장님과 나머지 두 분은 왼쪽 노를 저어 주세요.”

　 선장이 성현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세 명 다 말인가? 그럼 오른쪽 노는 누가 젓나?”

　 “제가 합니다.”

　 “뭐? 혼자서 말인가?”

　 “네.”

　 “쫙!”

　 성현이 옷을 찢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노 세 개를 주워 노의 끝 부분을 겹친 후, 중간 지점을 옷으로 꽉 묶어, 세 개의 노를 하나의 커다란 노로 만들었다.

　 ‘저걸 젓는다고?’

　 ‘저걸 저을 수 있나?’

　 모두가 성현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도 젓기 힘든 노를 세 개나 겹치고, 거기다 세 명분의 노 젓기를 혼자서 하겠다니.

　 “풍덩!”

　 성현이 소형선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앉아 노를 바다에 집어넣었다.

　 “성현, 아무리 자네가 힘이 세다지만 그건 무리네! 이봐, 자네 저쪽으로 가게.”

　 “네?”

　 “저 친구 앞으로 가라고.”

　 선장이 손을 들어 성현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네.”

　 선장의 앞에 있던 인원이 성현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아닙니다. 이쪽은 걱정 하지 마십쇼. 거기서 저으세요.”

　 ‘뭐야, 가야 돼? 말아야 돼?’

　 엉덩이를 들었던 인원이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어정쩡한 자세로 섰다.

　 “젓겠습니다. 하나, 둘!”

　 “촤악!!”

　 “어? 어?”

　 “쿵!”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인원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제자리에 다시 앉았다.

　 “뭐야!?”

　 성현이 노를 젓자 노 주위로 엄청난 물이 튀며, 소형선이 왼쪽으로 빙글 돌았다. 소형선 안의 모든 인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만큼은 베테랑인 선장조차도 어이가 없는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체구가 작지는 않지만 그다지 크지도 않는데 이런 힘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다들 뭐하십니까? 여기 계속 있을 겁니까?”

　 “아, 아니네.”

　 “그럼 빨리 저으십쇼!”

　 “아, 알겠네. 잠시 기다리게.”

　 “흡!”

　 “끼이익!”

　 선장이 남들보다 1.5배는 두꺼운 팔뚝으로 노를 힘껏 저었다. 소형선의 방향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후~ 좋아!”

　 “짝!”

　 선장이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리더니 앞을 향해 소리쳤다.

　 “이보게들 정신 차리게! 우리는 셋이고, 저 친구는 혼잔데 뱃머리가 이쪽 방향으로 돌게 만들 건가? 자네들 그 정도로 힘없는 약골들인가?”

　 “아, 아닙니다!”

　 “좋아! 죽을 동 살 동 저어서 저 친구가 우리를 상대로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 해주세!”

　 “네!”

　 선장이 성현을 보며 윙크를 했다. 성현이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럼, 구령 넣겠습니다. 갑니다. 하나, 둘!”

　 “촤악!”

　 “흐압!”

　 “하나, 둘!”

　 “촤악!”

　 “하나, 둘!”

　 “흐끼약!!”

　 “촤악!”

　 노를 저을 때마다 선장 앞의 인원들 입에서 기괴한 기합소리가 들려왔지만 소형선은 아까 와 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스운 것은 소형선이 빨리 나아갈수록 노를 젓는 인원들의 표정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망할! 내가 아무리 노 젓기가 전문이 아니라도 그렇지 이게 말이 돼?’

　 ‘왜! 왜 정면으로 가는 거야? 오른쪽으로 돌아!’

　 “하나, 둘!”

　 “촤악!”

　 “하나, 둘!”

　 “흐이약!”

　 “촤악!”

　 노 젓는 인원들의 기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형선은 더더욱 빠르게 정면을 향해 돌진했다.

　 ‘허참! 이 친구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 거지? 정말 힘이 대단하군. 후~ 지금까지 적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반성해야겠어. 돌아가면 지옥훈련시작이다.’

　 “흐압!”

　 선장이 구령에 맞춰 있는 힘껏 노를 젓자,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갔다. 선장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뱃머리가 정면을 향했다.

　 ‘이... 괴물딱지 같으니!’

　 “흐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광란의 경쟁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성현의 구령이 멈췄다.

　 “헥~ 헥~ 저기, 왜 구령 안 넣어요?”

　 “후우~ 후우~ 이제 좀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아, 헥~ 헥~ 그럼 잠시만 좀... 쉬어도 되나요?”

　 “네.”

　 “아, 벌레 헥~ 헥~ 벌레 떼어야지.”

　 “후우~ 후우~ 아까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헉~ 헉~ 그러고 보니 벌레가 없네.”

　 “아, 빈혈.”

　 노를 젓던 인원들이 동시에 옆으로 쓰러졌다. 성현이 피를 빨려 쓰러진 인원들에게 물을 먹이는 규완을 보며 물었다.

　 “규완 씨, 그 분들은 괜찮습니까?”

　 “네, 아직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다행이네요.”

　 숨을 고르던 선장이 성현을 보며 물었다.

　 “후우~ 후~ 자네는 이걸 예상한 건가?”

　 “후우~ 후우~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어디선가 들은 게 기억났습니다. 특정한 구역에서 나타나는 녀석들이니 그 구역을 벗어나면 사라진다고요.”

　 “후우~ 후~ 출처는 확실한가? 이놈들에 대한 정보는 우리도 없었는데?”

　 성현이 선장에게 조심스레 속삭였다.

　 “후우~ 후~ 사실대로 말하면 화 내실지도 모르지만 정확하진 않았습니다. 도박이었습니다.”

　 “후우~? 도박? 그게 무슨 소린가?”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시도해 본겁니다.”

　 “후~?”

　 선장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는 듯,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도박? 그렇군. 도박. 풋! 도박이었어, 도박. 하하! 하하하.”

　 기묘한 표정을 짓던 선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성현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 이제야 자네가 인간 같아 보여서 말이야. 하하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네. 그래도 정산할건 해야겠지?”

　 “네?”

　 “딱!”

　 “윽!”

　 선장이 그 큼지막한 손을 꼭 쥐더니, 성현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이건 우리 목숨을 마음대로 도박에 건 대가라네.”

　 “하하... 죄송합니다.”

　 성현이 선장에게 맞은 머리를 빠르게 문지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할 필요까지는 없다네. 과정이야 어떻든 자네 작전이 성공해서 살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다음번에는 무작정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현이 선장을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장이 됐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어찌 보면 성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선장은 지금까지 성현이 보여준 괴물 같은 모습보다는, 허술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지금의 모습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허허~ 까딱하면 벌레 따위한테 피 빨려 미라가 될 뻔 했군. 뭐, 어찌됐든 살았으니 된 거긴 하지만.’

　 휴식을 취하던 인원들이 하나, 둘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제야 좀 살겠네. 으~ 근데 갑자기 추워진 것 같지 않아요?”

　 “그, 그러게요. 노를 너무 열심히 저어서 그런가? 으~ 추워.”

　 “아니에요. 실제로 추워졌어요. 하아~ 이 입김 봐요.”

　 “그러고 보니 주변 경치도 좀 바뀐 것 같고, 엄청 조용해요.”

　 성현 일행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주변에는 안개와 바닷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의 말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장님, 이건 왜 그런 거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또 다른 구역으로 들어왔다는 거 아니겠나?”

　 “하아~ 또 다른 구역이요? 이번에는 또 뭘까? 추우니까 이브의 겨울?”

　 “이브의 겨울? 하하, 재미있는 발상이구만! 하지만 이 구역에 대한 정보는 딱히 들은 적이... 있네! 다들 긴장하게나. 이곳은 이브의 엄청나게 춥고 위험한 겨울왕국이야”

　 일행의 농담에 해맑게 웃던 선장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 이브의 엄청나게 춥고 위험한 겨울왕국이요?”

　 “뭐야, 이 이름은? 왠지 엄청 위험해보여.”

　 “흐... 아직도 이런 구역이 남아 있다니 빨리 섬이 보고 싶다.”

　 선장의 말에 따라 일행들의 표정 역시 심각하게 변했다.

　 ‘큰일 날 뻔 했군. 또 괜찮다고 말할 뻔 했어. 이놈들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놈들이니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지.’

　“아무튼 다들 방심하지 말고 딱 가세! 음!?”

　 선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정면을 쳐다봤다.

　 “저기에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어디요?”

　 “저~쪽에 작은 점 같은 거 보이나?”

　 “지, 진짜다! 섬이야!”

　 규완이 정면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섬?’

　 규완의 외침에 소형선 인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면으로 향했다.

　 “어디요? 어디? 어디?”

　 “어디요?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아무것도 없구만. 지금 장난쳐요?”

　 “네? 지, 진짜 저기 있는데...”

　 “다들 잠시 비켜주겠나?”

　 선장이 다른 인원들을 밀치며 소형선의 선미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