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성현을 바라보는 동안, 성현은 뒤에서 뽑은 피뢰침을 소형선 앞쪽의 바다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깡!”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왼쪽만 저으세요!”
‘눈보다는 감각으로 암초를 피해가겠다는 건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배가 방향을 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텐데.’
소형선 인원들이 노를 열심히 저었지만 성현이 탄 소형선 앞으로, 첫 번째 거대 암초가 다가왔다. 선장이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워 방향을 틀기에는 늦었다. 이러다 부딪히겠어. 역시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다른 인원들 역시 선장과 생각이 비슷한지, 암초가 가까워질수록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이러다 부딪힐 것 같은데 속도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성현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정면을 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선장이 성현의 얼굴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뭔가 생각이 있나보군. 조금만 더 지켜볼까?’
우유부단 인원들이 서로를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괘, 괜찮을까?’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데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선장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괜찮은걸 거야.’
‘성현님, 믿습니다.’
그때, 피뢰침을 잡은 성현의 팔 근육이 쫙 갈라지며 한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근육이 성현의 팔에 생겨났다. 피뢰침을 잡은 손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뿌득!”
성현이 피뢰침으로 정면의 암초를 집었다.
“하압!”
“끼이이익!!!”
“출렁!”
“어어어!?”
“!!”
그러자 힘차게 전진하던 소형선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며 소형선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소형선의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후~”
‘허허, 아무리 10인용 소형선이라지만 피뢰침 하나 가지고 방향을 바꿀 줄이야. 힘이 도대체 얼마나 센 거지?’
선장이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성현과 팔씨름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하하, 이 나이에도 이런 생각이 들 줄이야. 역쟁 인원들이 재미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친구는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롭군.’
선장이 팔에 힘을 잔뜩 준 채, 자신과 성현의 팔뚝 굵기를 비교해봤다.
‘굵기는 내가 이겼어.’
‘환영, 환영, 진짜!’
“왼쪽으로, 오른쪽만 저어! 하압!”
“끼~~익!!”
그 와중에도 성현은 또다시 소형선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
.
.
.
“어! 다시 안개가 옅어진다.”
우유부단 인원 중 한 명이 옅어지는 안개를 보며 소리쳤다.
‘한 번도 실수 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조종할 수 있다니 재미있다는 말을 정정해야겠어. 징그럽군.’
선장이 기가 찬 표정을 지으며, 선미에 서 있는 성현을 쳐다봤다.
“이제 이브의 장난구간도 끝이네. 고생했어.”
“성현 님, 정말 대단해요!”
“후~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닐세. 정말 대단했네. 보통 뛰어난 조타수와 뛰어난 선원들이 있어도 저 구간을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자네는...”
선장이 배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슥 훑어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대단했네.”
성현이 선장의 칭찬에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 여러분들이 빠르게 제 말에 호응을 해주셔서 그런 겁니다.”
‘흐음, 겸손하기까지 하군. 저 정도 능력이 있으면 좀 까불대야 인간미가 있는데...’
성현이 자신의 노고를 소형선 인원들에게 돌렸다. 그러자 그들이 기다렸다는 듯, 성현의 말을 받아 겸손한 척 말했다.
“아니에요. 저도 성현 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푸하하~ 내 노 젓기가 대단하긴 했지!’
“돌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때 얼마나 가슴 뛰는지! 성현 씨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나의 빠른 반응 속도가 배의 방향을 잡고, 돌을 피해 가는데 큰 영향을 끼쳤지!’
“진짜! 성현 씨가 방향을 정하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어요.”
‘다들 모르겠지만 나는 저 사람이 배의 방향을 정하기 전부터 암초를 보며 방향을 예측하고 있었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장이 뭔가 찜찜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들이 왜 이러지? 이럴 자들이 아닌데. 그리고 이 흐리멍덩한 표정들은 뭐야? 제발 저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선장이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에 바닥을 쳐다봤다.
“응? 근데 아까보다 물이 좀 차오른 것 같지 않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뭐지?”
선장이 소형선에 물을 퍼내는 인원들을 쳐다봤다.
“여보게들, 물이 좀 찬 거 같은데?”
선장이 물을 퍼내는 인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
“여보게?”
선장이 불러도 아무런 답이 없자, 규완이 그들 중 한 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요?”
“털썩!”
그러자 규완이 손을 얹은 인원이 앞으로 스르륵 고꾸라졌다.
“아니?”
“어라?”
“으...”
옆에서 물을 퍼내던 다른 인원 역시 옆으로 쓰러졌다.
“털썩!”
“뭐, 뭐야? 이 사람들 갑자기 왜 이래?”
“규완! 그 친구 좀 일으키게.”
“네? 아, 아, 네!”
규완이 쓰러진 사람에게 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팡!”
“흐악!”
“무슨 일이야?”
“모, 모르겠어요. 일으켜주려고 이 사람을 만졌는데... 피, 피!?”
규완이 부축한 사람의 등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 나와 옷을 붉게 물들였다. 성현과 선장이 동시에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비켜보게!”
“쫙!”
선장이 피에 젖은 인원의 상의를 찢었다.
“으으...”
“이, 이것은!”
선장이 찢은 상의 사이로 빨갛고 투명한 풍선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선장님, 이게 뭐죠?”
“안개벼룩이네.”
“안개벼룩이요?”
“이브의 안개에만 서식하는 놈들로, 평소에 안개 속에서 떠다니다가 생물의 몸에 붙어 피를 빠는데 이놈들이 피를 빠는 부위는 마취가 돼서 자신이 피를 빨리고 있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가 없지. 저 친구도 어서 확인해 보게.”
“네.”
“쫙!”
성현이 선장의 말에 따라 옆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옷을 찢었다.
“!!”
성현이 옷을 찢자, 그의 등에도 압력에 의해 눌려진 풍선처럼 넓게 펴진 형태의 안개벼룩 수십 마리가 투명한 몸에 피를 가득 머금은 채, 남자의 등에 착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피를 더 빨리기 전에 빨리 떼어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나도 잘 모르네.”
“그냥 떼어내면 됩니까?”
“나도 잘 모르겠네.”
“직접 해보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겠군요.”
성현이 안개벼룩을 떼기 위해 손을 갖다 댔다.
“팡!”
“!?”
별 힘을 주지도 않았건만 성현의 손이 안개벼룩의 몸에 닿자, 안개벼룩의 몸이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으...”
‘많이도 빨렸군. 그래도 떼어 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쉽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금방 떼어 내 드리겠습니다. 규완 씨, 혹시 모르니 물 좀 준비해주세요.”
“네!”
규완이 재빠르게 물을 가지고 성현에게 다가갔다.
“여, 여기요.”
“네, 거기 두세요.”
“팡! 팡!”
성현이 안개벼룩을 잡자 안개벼룩의 몸이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흐윽, 사람의 피가 내, 내 몸에...!!’
규완이 자신의 몸에 튄 피를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야! 서, 성현님을 도와드려야 돼, 이 정도에 약해져선 안 돼!’
“팡! 팡! 팡!”
“또, 또 도와드릴 건 없나요?”
“지금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성현과 선장이 빠른 속도로 안개벼룩들을 제거해 나갔다.
“후~ 다 떼어냈습니다.”
“팡!”
“내 쪽도 거의 다 끝났네.”
“조금만 더 늦게 봤어도 이 친구들 큰일 날 뻔 했어. 안개벼룩은 숙주의 피를 죽을 때까지 빠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
“그렇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안개벼룩이 이브의 안개에 서식하기는 하지만 우리 쪽 방향에서는 발견된 적이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선장이 차분하게 고민을 하는 사이, 규완이 성현을 부르며 비명을 꽥 질렀다.
“흐악! 성현님!”
성현과 선장이 동시에 규완을 쳐다봤다.
“아이고, 깜짝이야! 자네는 왜 또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가?”
“규완 씨, 무슨 일입니까?”
“미, 밑에!!”
성현과 선장의 시선이 규완의 시선을 따라 발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분명히 남자의 등에서 안개벼룩을 모두 제거했건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까보다 더 많은 수의 안개벼룩이 남자의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런, 어느 사이에?”
“서, 선장님, 목 뒤! 목 뒤!!”
규완이 계속 호들갑을 떨며 손으로 선장의 목을 가리켰다.
“뭐?”
선장이 목뒤를 만지자 ‘팡’ 하는 소리가 나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서, 설마?”
선장이 황급히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흐악! 선장님 등에 벼룩이!”
선장이 상의를 벗자, 선장의 등에도 안개벼룩 수십 마리가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아까와 다른 것은 그것들이 아직 피를 많이 빨지는 못했는지 그 크기가 작다는 것이었다.
“이런, 모두 옷을 벗어보게!”
소형선에 있던 인원들 모두가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그들이 옷을 벗자, 그들의 몸에서도 수많은 안개벼룩이 발견되었다.
“악! 언제 이런 게 내 몸에?”
“징그러워!”
“팡! 팡!”
“나 등에 있는 것 좀 떼 줘!”
“으으!”
“팡! 팡! 팡!”
소형선 인원들이 미친 듯이 안개벼룩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팔을 털어낼 때마다 안개벼룩의 몸이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후, 그들의 몸에 있던 모든 안개벼룩이 제거 되었다. 다만, 안개벼룩이 제거 되면서 피를 튀긴 덕분에 그들의 몸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피로 온 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것은 소형선 역시 마차가지였다.
“휴~ 그나마 아프지는 않네.”
“그래도 짜증나! 이게 뭐야?”
“기분 더러워.”
“그러게요.”
“아우, 이걸 어떻게 닦지?”
소형선 인원들이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팡!”
“어? 뭐야?”
“어, 저기요, 등에 아직 남아 있어요.”
“네? 아, 또 언제 붙은 거야!”
“팡!”
“어? 님도 있는데요.”
“아? 그러네요. 하 참, 느낌이 없으니까. 붙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네.”
“그러니까요. 게다가 투명해서 잘 보이지도 않으니.”
“팡! 팡!”
소형선 인원들이 다시 몸에 붙은 안개벼룩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등에 또 붙었어요.”
“그쪽도요.”
“아, 진짜! 다른 분들도 잘 보세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있을 수가 있어요.”
“어, 그쪽도 있어요.”
“그쪽도요.”
“팡! 팡!”
소형선 인원들이 또다시 붙은 안개벼룩을 제거하기 위해 여기저기 몸을 쓸어냈다.
“젠장!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어? 여기 아까 분명히 털었는데?”
“어, 달라붙는다! 엄청 많아!”
“갈수록 더 많아지는데요?”
“팡! 팡!”
“붙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 같아요.”
“으아아!”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소형선의 모든 인원들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쉬지 않고, 몸에 붙은 안개벼룩을 털어내고 있었다.
순간, 성현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