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의 선장, 제로가 이브의 섬을 향해 가는 수 십 척의 소형선을 보며, 인상
을 구겼다.
“생각보다 많이 줄었어.”
“헬파이를 만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함선 한 척만 잃은 것도 많이 선방한 것입니다.”
“그렇지...? 함선 한 척이면... 그렇지...”
“애석하지만 그렇습니다.”
“5선은 확실히 침몰한 건가?”
“네, 관측병이 강한 충격에 의해 5선이 침몰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습니다.”
“정말인가? 정말 확실한 일인가? 그냥 멀어져서 안 보이는 건 아니고?”
“시야가 너무 뛰어나서 100미터 밖의 사람 눈동자 색깔까지 맞출 수 있는 관측병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혹시나 잠깐 헷갈려서 잘 못 봤을 수도 있잖아?”
“... 죄송하지만 그럴 일 없습니다.”
“제길! 강한 충격이라는 건 헬파이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휴~ 정말 없애버리고 싶은 놈이야.”
“공감입니다.”
“그래, 이런 말해서 뭐하겠나? 아직 우리도 무사히 돌아갈지 아닐지 모르는데 우선은 지금 할 일이나 해야지.”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그래. 역쟁 인원들 투입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모든 인원 투입이 끝났습니다.”
“그래? 역쟁 인원들 투입 끝났으면 빨리 다른 배에 신호 보내서 최대한 빨리 기지로 복귀하라고 전하게.”
“네.”
“그리고 우리는... 혹... 아니, 생존자 구출을 위해 5선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제로가 ‘혹시’라는 말을 사용하려다 멈췄다. 로앤이 제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5선이 있던 곳...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무슨 문제 있나?”
제로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로앤의 말을 끊었다.
“...아닙니다.”
부선장은 그곳에 생존자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헬파이는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배를 공격하는 생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생존자보다는 헬파이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그들을 두고 온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그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생존자가 있다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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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 저게 바로 그 소문의 이브의 안개?”
규완이 알록달록한 빛을 머금은 안개를 보며 설레임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번쩍!”
“콰쾅!!”
“흐악! 바, 방금 보셨어요? 바다에 번개라니...”
“네, 봤습니다.”
“번개는 비가 올 때 만 치는 건 줄 알았는데!!”
“대체로 그렇지만 구름이 있거나 기압차가 심한 곳은 거의 다 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번쩍!”
“쾅!”
“서, 설마 우리가 맞지는 않겠죠?”
“뒤에 피뢰침이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서 있으면 맞을 확률이 높아지니 자세를 낮추는 게 더 안전... 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성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형선에 있던 모든 인원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우, 우리끼리 저기를 통과할 수 있을까?”
“으... 보기만 해도 무섭다.”
“우, 우리 잠깐만 멈췄다 가요.”
“그럴까요? 조, 조금만 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지도...”
“네, 근데 저기서 무슨 소리 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으...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안이 안 보이니까 더 무섭네.”
성현이 탄 소형선이 이브의 안개 앞에서 멈췄다.
“우리끼리 가야하는 건가요?”
“그런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 걸 보니...”
“다 같이 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우리끼리라니...망했네요.”
“혹시 좀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은 없을까요?”
“아마 없을 걸요? 훈련소에서도 그랬잖아요. 일 년 중에 남동쪽 방면의 기후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변하는 날이 오늘이라고, 오늘이 아니면 들어갈 시도도 못 한다고.”
“그건 알지만 이게 안정적인 기후라니...”
“콰쾅!!”
“헛!”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모임답게 이브의 섬 최종관문인 이브의 안개 앞에서조차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는 그들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마비가 거의 풀린 선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예상으로는 지금 바로 들어가도 기후가 안정적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네. 지금 들어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들어가서 기후가 변한다면 우리가 섬에 무사히 도착할 확률은 1프로도 되지 않을 거야.”
“네? 진짜인가요?”
“내가 자네들이랑 농담할 군번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니지만...”
“내 말이 농이 아니란 걸 알면 빨리 출발하게! 굳이 나빠진 기후를 탐험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말이야. 혹시 정~ 겁이 나서 안 되겠으면 뱃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물론 죽도록 쉬지 않고, 며칠 동안 노를 계속 저어야 하겠지만 말이야. 아! 운이 엄청나게 좋아서 수많은 해수들을 요리조리 다 피해가기도 해야 하네.”
“그게...”
“난 뭐든 좋으니, 제발 빨리만 선택해주게나.”
‘휴~ 이런 자들이 어떻게 역쟁인원에 뽑힌 건지 알 수가 없군.’
“어, 어쩌죠?”
“어, 어쩌기는요. 빨리 들어가야죠.”
“콰콰콰쾅!!!”
“으음!!”
선장의 말에 들어가려고 하다가도, 번개만 치면 움찔하며 움직이지 않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성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개속의 재해에 대한 것들은 이미 우리 모두 배워서 알고 있고, 준비를 했지 않습니까? 물론 완벽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모두 뒤엎고도 남을 정도의 이점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우, 우리에게요?”
사람들이 성현의 말을 듣고 소형선 안,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들의 눈에는 성현이 말한 이점이라고 할 만한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저기... 죄송한데 우리한테 그런 게 있나요?”
성현이 질문하는 사람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바로 여기 있잖습니까?”
“어, 어디요?”
“이 분 말입니다.”
“...?”
성현의 손이 소형선 안에 있는 누군가를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성현의 손을 따라 이동했다.
“선장님...이요?”
“네.”
성현이 가리킨 것은 방금 전까지 우유부단 인원들에게 역정을 내던 선장이었다. 선장은 성현의 갑작스런 지목에 살짝 당황했지만, 한 배를 책임지던 선장답게 성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갑자기 왜 나를? 무슨 생각인거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이 분의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네! 그렇습니다!”
규완이 아무런 생각도 없는 해맑은 얼굴로 성현의 말에 동조했다. 성현은 그런 규완을 보며 옅게 웃음 지었다.
‘저 분이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선장님은 엄청 대단한 분이 틀림없어!’
이렇듯 규완이 무작정 성현의 말에 동조를 하자,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금까지 성현의 말뜻을 알지 못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 안다는 듯이 입을 싹 닫은 것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선장님은 우리 대륙에서 뽑은 9명의 선장 중 한 분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나라도 아니고, 대륙입니다, 대륙! 여러분들은 지금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분 중 한 분과 같이 계신 겁니다.”
소형선 인원들이 선장을 바라봤다. 선장이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리고 여기가 어디입니까? 이곳은 바다입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규완이 또다시 성현의 말에 순수하게 동의를 했다. 성현이 처음에 질문했던 사람을 보며 되물었다.
“더 궁금한 거 있으십니까?”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선장이 있으면 뭐가 좋다는 거지? 이점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하지만 다들 아는 분위기고 혼자 바보처럼 질문하고 싶지는 않고...’
“아... 어... 네...?에!”
“알겠습니다. 당신이 바보도 아니고 이런 쉬운 사실 하나로 아는 척하는 것은 당신에게도 실례가 되는 사실이니까요. 혹시 아직도 우리의 이점이 뭔지 설마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
성현의 질문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언뜻 보면 다들 성현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이 입을 다문 이유는 다들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나만 모르는 것처럼 보일 순 없지.’
‘나중에 옆 사람한테 살짝 물어봐야지.’
‘이 놈들보다 바보처럼 보일 순 없어.’
“여러분, 그럼 출발할까요?”
“그, 그럼요.”
“그, 그렇죠. 가요.”
사람들은 성현에게 이브의 안개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문제 해결법도 듣지 않았건만 자신만만한 그의 모습과 선장의 명성에 ‘나는 모르지만 선장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그들에게 ‘뭔가 믿을만한 게 있다.’ 라는 생각은 그들의 우유부단한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애써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두려움을 의식 뒤편으로 밀어놔 버렸다.
“그럼 선장님, 명령 내려주시겠습니까?”
성현이 선장을 보며 말했다.
선장이 성현을 보며 씨익 웃었다.
‘명성을 이용하자?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알겠네, 모두들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게. 내가 이래봬도 인생의 반 이상을 바다위에서 보낸 사람이야. 위험한 것, 피해야할 것, 어지간한 건 다 알고 있지, 만약 이 곳의 모두가 내 말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인다면! 장담컨대 내가 자네들 모두를 섬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게 해주겠네.”
선장이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소형선 인원들을 쳐다봤다.
“오...”
“알겠는가!?”
“네!”
“좋아, 지금부터 우리는 저쪽에 안개가 최대한 얕은 곳으로 들어가겠네. 그렇지! 왼쪽 쉬고, 오른쪽 저어! 좋아, 잘하는군. 계속 이렇게만 해주게. 내가 기필코 자네들을 안전하게 섬으로 들여보내 줄 테니.”
“네!!”
선장의 ‘안전하게’라는 말에 소형선 인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성현이 탄 소형선이 이브의 안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잘 통하는군. 이들의 우유부단한 성향 때문인가? 만약 저 친구가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것이라면 저 친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한 친구겠어.’
‘역시 성현님!! 이 분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
그렇게 성현과 선장의 주도하에 성현(?)의 소형선이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으... 생각보다 더 어둡네. 귀신이 나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규완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봤다.
“안 보인다. 안 보여. 밑은 보이려나? 어라? 여기는 바다 쪽에도 구름이 있네. 애기 구름이다. 애기 구름~”
“쿠르르!!”
“피해!”
“쾅!!”
배와 바다 사이에 있는 작은 구름 속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순식간에 번개가 쏘아져 나왔다. 가만히 있었다면 분명히 규완이 번개를 맞았겠지만 다행히도 성현이 그 광경을 미리 보고 규완을 뒤로 잡아당겨 규완이 번개를 맞지 않을 수 있었다. 번개는 규완을 지나쳐 배의 피뢰침으로 빨려 들어갔다.
규완이 입을 벌리고 토끼 눈이 돼서 성현을 쳐다봤다.
“흐어어억 사, 살았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밖에서는 그래도 거리가 있어서 덜 위험했는데 이곳에서는 다르군요.”
성현이 자세를 낮춘 채 말했다.
“여러분, 번개가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니 다른 분들은 최대한 자세를 낮춰주십시오. 배의 방향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아, 나는 신경 쓰지 말게. 이 정도는 평소에도 많이 겪어봐서 별거 아니야.”
선장이 성현을 보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네, 알겠습니다. 규완 씨?”
모두가 성현의 말에 자세를 낮출 때, 규완이 선 것도 아니고 엎드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성현에게 다가갔다.
“뒤, 뒤는 제가 봐드릴게요. 혼자서 다 보는 건 힘들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망보거나 그런 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자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