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악!”

　 “끄르륵!”

　 “죽기 싫어!”

　 규완이 물에 빠져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살벌한 표정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규완이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ㄹ으어! 줘!”

　 “?”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규완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러자 배의 한 쪽 구석에서 마비가 덜 풀려 말을 할 수 없는 선장이 움직이지 않는 입을 들썩 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선장님?”

　 “일! 으! 혀! 줘!!”

　 “네? 일으켜 달라고요?”

　 선장이 고개를 살짝 위, 아래로 움직였다.

　 규완이 선장을 일으켜 주자 선장의 눈에 물속으로 사라지는 5선의 모습과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선원들이 헬파이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규완이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흑,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장은 달랐다. 아직 마비가 풀리지 않아서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선장은 매섭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들을 끝까지 지켜봤다.

　 누군가 본다면 자신의 부하들이 죽는데 어떻게 저렇게 냉정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규완은 느낄 수 있었다. 선장의 몸이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떨리고 있다는 것을.

　 “헛! 둘! 헛! 둘!”

　 “촤악! 촤악!”

　 역쟁 인원들이 노를 저을수록 선장의 눈에서 5선이 점점 멀어져갔다.

　 “후~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 배가 거의 안 보이는데.”

　 이들이 노를 젓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이미 5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5선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도 있지만 성현이 탄 소형선이 꽤 빠르게 이브의 섬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5선과 이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고, 이들의 마음에 어느 정도 안정감이 들자 역쟁인원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휴, 이 정도면 됐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아직 모르니까 조금만 더 가서 쉬죠.”

　 “네, 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정말 그러게요. 설마 따라오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그러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일행 중 한 명이 방금 전 5선이 있던 방향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 괴물 밥이 안 되서 다행이다.”

　 규완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 사람들은...!!’

　 “아, 진짜 아슬아슬했어요.”

　 “그러니까요. 아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오기를 잘했어요.”

　 “다,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결국 참다못한 규완이 소리를 빽 질렀다.

　 “?”

　 “바, 방금 전에 저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어!”

　 “......”

　 규완의 타박에 방금 전까지 말을 하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우, 우리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그곳에 있던 사람을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

　 “......”

　 일행들의 눈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그 중 한 남자가 악에 받친 듯 규완을 보며 소리쳤다.

　 “그럼 뭘 어쩌란 말이야! 솔직히 방금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었는데? 나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너도 봤잖아! 그 거대한 함선들도 헬파이를 피해서 도망가는 걸? 그런 와중에 이 작은 배를 가지고 헬파이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자고!? 가면? 가면 뭘 어쩔 건데? 어!?”

　 “맞아! 너만 그러고 싶었는줄 알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고! 하지만 갔다가 내가 죽으면? 그럼 우리 가족은 누가 책임져 주는데? 네가 책임져 줄 거야!?”

　 “그래! 우리도 도와 줄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었다면 했을 거라고! 우리가 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 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한 번 말해봐! 우리가 뭘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그, 그게...”

　 규완이 악을 쓰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당황했다. 사실 그들의 말도 틀린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규완이 그들의 북받친 감정에 당황하는 사이 성현이 슬며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여러분의 말도 틀리지 않고, 이 분의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의 안녕보다는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오기 위해 노력해 준 저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고, 애도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현이 나지막하게 한 마디 한 후, 5선 방향을 향해 묵념했다.

　 “......”

　 “......”

　 소형선이 또다시 조용해졌다.

　 규완이 감동받은 듯, 성현을 가만히 쳐다보다 성현을 따라 묵념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들을 따라 묵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형선의 모두가 5선을 향해 조용히 묵념했다.

　 모두가 묵념 하는 동안 구석에 굳어 있는 선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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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의 안개다!”

　 “오, 그렇다면 이것만 지나면 이브의 섬이겠군. 좋아! 가자!”

　 “좋았어! 비켜라, 비켜! 섬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은 이 광호님이다!!”

　 이브의 섬을 향해 오는 동안 다소 차분해진 분위기의 역쟁 인원들이 이브의 안개를 보자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후하! 가자!”

　 “좋았어, 이브의 안개야 내가 왔다!!”

　 “쿠르릉!”

　 “응?”

　 이브의 안개에서 갑자기 노란빛의 불꽃이 튀더니 순식간에 번개가 만들어지며 제일 앞에 있던 광호의 소형선으로 날아왔다.

　 “번쩍!!”

　 “끄악!!”

　 뱃머리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광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같이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광호에게 다가갔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주위 사람들이 말을 걸었지만 광호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번개를 맞은 것 같진 않았는데...”

　 “그러게요. 맞았나?”

　 “비켜보세요. 제가 한 번 보죠.”

　 눈을 가만히 감고 있던 광호가 갑자기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났다.

　 “아, 깜짝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헉!”

　 광호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광호에게 다가가던 사람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넘어졌다.

　 “휴, 번개가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니까 진짜 무섭네. 잘못하다 맞으면 그냥~ 꼬치구이가 되겠어. 진짜 피뢰침이 있어서 살았다.”

　 광호가 소형선의 후미에 튼튼하게 설치된 피뢰침을 쳐다봤다.

　 “엉? 근데 거기서 다들 뭐하는 거요? 어서 일어나요. 빨리 갑시다! 이러다 우리가 제일 늦게 가겠네.”

　 ‘이게 누구 때문인데!’

　 모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광호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오히려 그들을 보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그건 그렇고 다른 함선에 탔던 사람들은 다들 들어갔나? 망할 5선에서 늦게 출발했더니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가늠이 안 되는군.’

　 “휴~ 그래, 급할 거 뭐 있나? 살아 들어가는 게 중요하지. 그래! 우선은 들어가는 거부터 신경 쓰자.”

　 ‘들어가는 건 문제없겠지? 번개는 정말 운이 없는 게 아니면 괜찮을 것 같고, 남은 게 물 폭탄, 토네이도, 소용돌이, 암초, 환영정도인데. 그것들도 뭐 어느 정도 대비는 해뒀으니...’

　 광호가 뒤를 슬쩍 돌아봤다.

　 광호는 5선에서 소형선을 타고 출발하기 직전, 자신의 근처에서 출발하는 다른 소형선 인원들에게 힘내자며 인사를 하고 돌아다녔다. 친하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건만 광호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느긋하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그런 광호를 보며 남자답고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광호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이브의 안개에서의 자연재해를 잘 알고 있던 그는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 다른 소형선들에 몰래 수작을 부리며 돌아다닌 것이었다.

　 ‘여기는 정말 멍청한 놈들 밖에 없어서 다행이야. 흐흐.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소형선을 만지는데 아무런 의심도 않다니 말이야.’

　 광호가 뒤따라오는 소형선들을 보며 음흉하게 미소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여러분! 잠시만 멈추십시오!”

　 “?”

　 이브의 안개를 향해 열심히 다가가던 소형선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광호를 보며 하나, 둘 씩 그에게 주목했다.

　 “혹시 우리 말고 다른 함선에 탔던 인원들 기억합니까?”

　 소형선 인원들이 광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좋아. 시작해볼까?’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이는 것을 확인한 광호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저는 기억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버리고 간 것’을요!”

　 “......”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브의 섬을 떠올리며 열광하던 사람들이 광호의 말에 순식간에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해가 되십니까? 헬파이에게 공격당해 꼼짝도 못하는 우리를 ‘버리고 간 것’을요!?”

　 “......”

　 “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우리를 두고 간 다른 함선들을요!”

　 “......”

　 광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위의 분위기가 차갑다 못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미워하기 위해서 이 말을 꺼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그들만의 상황이 있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에 와서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그것은 바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우리를! 우리가 서로 도와서 무사히 섬까지 가자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브의 안개는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잘나도 혼자서 이곳을 지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가 돼야합니다!! 이곳까지 올 때의 우리가 단순히 그냥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면 5선에서 내린 순간부터는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입장에 처한 ‘미운오리새끼들’입니다. 여러분! 힘을 합합시다! 우리는 버림받았을지언정 혼자가 아닙니다!”

　 “...!!”

　 광호의 말을 듣고 있던 모두의 눈에 열정이 차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결연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어서 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편하게 온, 심지어 우리를 버린! 그 ‘비겁자’들에게 우리의 저력을 보여줍시다!!”

　 “옳소!! 갑시다!”

　 “그래! 그런 정 없는 놈들보다는 우리가 훨씬 낫지!!”

　 “옳소! 옳소!”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어서 갑시다!!”

　 “가자!!!”

　 광호 덕분에 역쟁 인원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하나로 뭉쳐졌다. 그리고 광호 때문에 다른 배의 역쟁 인원들과 이들과의 관계가 ‘버린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로 바뀌었다.

　 ‘흐흐, 단순한 놈들. 걸려들었어!’

　 “여러분! 이제 갑시다!”

　 “가자!”

　 “가자!!”

　 소형선들이 이곳으로 올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이브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근처의 소형선들을 부추긴 광호가 열심히 노를 젓는 중인 자신의 소형선 사람들에게 작게 말했다.

　 “멈춰요.”

　 “예?”

　 “멈추라고요.”

　 “네? 지금요?”

　 “그럼 지금 멈추지 저 안에 들어가서 멈추려고?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갑니다.”

　 “같이 안 가고요?”

　 광호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라는 표정으로 질문한 사람을 지그시 쳐다봤다.

　 “세우라고.”

　 “...네...”

　 광호의 소형선이 안개 앞에서 멈췄다. 그것도 모르고 주변의 소형선들은 광호의 소형선을 지나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잠시 후, 전체 소형선의 3분의2쯤이 들어가자 광호가 말했다.

　 “갑시다.”

　 “...?”

　 잠시 후, 광호의 소형선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소형선들 역시 광호의 뒤를 따라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