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역시!”
“그래. 우리끼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리 공격해도 상처 하나 안 나던데 뭘!”
“그래서 그 방법이 뭡니까?”
쥬드가 안달하는 역쟁 인원들을 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지금 당장 배를 떠나는 것이다.”
“예? 지금 배를 떠나라고요?”
“그렇다. 계획대로라면 우리가 안개 근처까지 너희를 데리고 가서, 소형선에 태워 보내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현재 5선은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래서요?”
“그건 말 안 해줘도 압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배를 떠나란 겁니까?”
역쟁 인원들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쥬드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5선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애초에 너희를 실어 보내려고 했던 소형선은 가능하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이용해서 섬으로 갈 능력이 있고!”
“여기서 섬까지 말입니까?”
“그렇다.”
“그게 가능합니까?”
“쉽지는 않지,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나라에서 인정받은 ‘초인’인 너희들이라면 시간 안에 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
역쟁 인원들이 쥬드의 말에 짜릿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제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 결정해라. 이곳에 남을 것인지, 자신의 힘으로 나아갈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더 주고 싶지만 헬파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그럴 시간 따윈 없다. 당장 결정해라!”
쥬드가 ‘자신의 힘’이란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 갑판의 중앙을 기준으로 선을 그었다.
“이쪽이 남을 자, 저쪽이 나아갈 자이다. 선택해라!”
쥬드가 선택을 강요했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선택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봤다.
“남으면 헬파이와 싸워야 하는 건가?”
“그건 말도 안 돼! 저 노련한 바다사람들도 못 하는걸 우리가 어떻게 해!?”
“하지만 헬파이가 꼭 여기 있으란 법은 없다고!”
“그래도 계속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하지만 섬이 저렇게 멀리 있는데 소형선을 타고 가기도 좀...”
“가는 건 문제가 없지. 문제는 혹시나 헬파이가 쫓아오거나 가다가 다른 해수를 만나면 어떻게 하냐는 거지.”
“젠장, 그건 그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군.”
쥬드가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썼다.
‘역시나 고민이 되는 건가? 하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들은 오죽할까?’
“휴~”
쥬드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쥬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쟁 인원들이 선택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불확실한 미래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 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이대로 헬파이만 나타나지 않아도 좋으련만...’
그때였다.
“시x, 난 간다.”
‘!?’
쥬드가 소리 난 방향을 쳐다봤다. 누군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선을 넘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있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난 간다. 내가 저딴 괴물이랑 싸우다 죽으려고 그 미x 훈련들을 버틴 건 아니거든.”
선을 넘은 이는 광호였다. 광호의 행동 하나에 주변이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말과 행동은 그들에게 충분히 파급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훈련소에 입대한 인원들은 모두 자기가 살던 곳에서 소위 ‘상위 10프로’ 이상의 운동신경과 높은 자존감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떨어질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훈련이 시작되자 사실은 전혀 달랐다. 그들의 반 이상이 훈련도중 하차를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훈련을 통과하고 이곳에 온 이들은 그것에 대해 굉장히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광호의 행동은 그들의 그런 부분을 자극했다.
“그래! 임무가 섬에서부터 시작되는 건데 섬을 밟지도 못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안 되면 되게 하라. 내가 거기 가서 배운 게 그거 하난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야 없지.”
“까라면 까라. 아니고?”
“뭐, 그게 그거지. 긍정적이게 생각하자.”
“그래! 긍정적이게 가자!”
“나도 간다!”
“나도!”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라는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모두가 선택을 끝마쳤을 때, 쥬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맙소사!’
역쟁 인원 전원이 나아가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적어도 열 댓 명은 남을 줄 알았는데...’
“어차피 위험한 거 알고 왔는데 여기 있어서 뭐하겠어?”
“못 먹어도 고!”
“내 인생은 내 손으로 만들어 간다!”
“빨리 출발합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왕좌왕하던 역쟁 인원들이 선택을 끝마치자마자 전의를 불태우며 쥬드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군. 이들은 나라에서도 알아주는 격투사들! 이 정도 상황에 굴복할 리가 없지!’
쥬드가 피식 웃더니,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선원들은 모두 들어라!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에게 내려진 임무에 대해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선택을 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닐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내 판단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우리에게 내려진 임무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들과 같이 소형선에 탑승하라! 추궁하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겠다. 알겠나?”
“...?”
쥬드가 말을 끝마쳤지만 선원들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후배 항해사가 쥬드에게 살짝 다가와 속삭였다.
“내기하나 하시렵니까?”
“무슨?”
“선원들이 한 명이라도 갈 지, 안 갈지에 대해서요.”
쥬드가 잠시 농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훗! 재미는 없을 것 같군.”
“그렇죠? 그러게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셨습니까? 선원들 표정 안 보입니까? 나 같아도 어이가 없겠네.”
“쩝, 그런가?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나도 모르게 약해졌었나보군.”
“그러니까요. 욕먹기 싫으면 얼른 다시 하십쇼.”
“후~ 그래! 욕먹을 순 없지.”
쥬드가 재빠르게 다시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선원들은 들어라! 방금은 내가 잠시 정신이 어떻게 됐었다! 방금 전, 소형선 탑승 이야기는 잊어라! 만약 소형선에 탑승하려는 인원이 있다면 내가 목숨을 걸고 가만두지 않겠다!”
“하핫! 이제야 우리 항해사님 같네!”
“그러니까! 난 또 항해사님이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려서 정신이 이상해진 줄 알았어.”
“그러게 바다 사나이를 뭐로 보고! 항해사님! 우리는 원체 멍청해서 시키면 따르는 사람들 아닙니까? 다시는 그런 헛소리 하지 마쇼! 한 번 더 그런 소리 하면 진짜로 소형선에 타고 가버릴 거니까!”
선원들이 쥬드의 협박에 그제야 웃으며 맞장구 쳤다. 쥬드도 그들의 반응에 긴장이 풀리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크핫! 미안들하군. 근데 어쩌나? 이제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할 텐데! 내가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할리가 없거든! 자네들이야 말로 그런 소리 한 걸 후회하지나 말게.”
“하하하!”
쥬드와 선원들이 큰 소리로 한바탕 웃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역쟁 인원들 역시 그들 덕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일하자! 헬파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관측병과 최소한의 방어병력을 빼고는 모두 역쟁인원들이 무사히 이브의 섬으로 갈 수 있도록 소형선 탑승을 돕는다!”
“네!”
선원들과 역쟁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소형선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관측병, 상황은 어떤가?”
“아직까지 헬파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출항시켜도 되겠는가?”
“파도도 선선하고 딱 좋습니다!”
“좋다! 출항!”
“출항!!”
5선의 중문이 열리며 소형선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형선은 성인 최대 12명이 탈 수 있는 구조로, 안전을 위해서 한 대당 10명까지 탑승이 가능했다. 소형선들은 내려오자마자 이브의 섬을 향해 빠르게 전진했다.
“캬! 좋다! 가자!!”
“저기요, 빨리 타요. 우리도 가야죠.”
“네, 네, 죄송합니다. 어, 어, 좀 잡아주세요.”
“아, 거참.”
“죄송합니다. 근데 사람 더 없나요?”
“자리가 너무 비는 거 같은데...”
“없네요.”
“...인원 딱 맞는 거 아니었나? 왜 우리만 비지?”
“글쎄요.”
같이 승선할 멤버를 정하지 못해 뭉그적거리다 모두가 출발한 걸 보고 난 후에야 뒤늦게 부랴부랴 승선을 시작한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한 소형선에 모였다. 우선은 급하니 같이 타기야 했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불신의 기운이 가득했다.
‘멍청한 놈들 왜 아직도 못 타고 있다가 이제야 타는 거야?’
‘이런 놈들이랑 가게 되면 죽을 거야.’
‘아, 싫다. 왜 하필 이런 놈들이랑...’
‘다른 소형선 없나?’
“하아~”
“하아~”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한 숨이 터져 나왔다.
“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가야 할 거 같은데요?”
“그럴까요?”
“앞에 가는 사람들이랑 거리가 너무 벌어지기 전에 빨리 가죠.”
“아! 그러네요. 우리도 빨리 가요.”
“풍덩!”
“노는 누가 젓죠?”
“우선은 제가 저을까요?”
“그럴래요? 그럼 조금 있다가 제가 저을게요.”
“뭐가 어찌 됐든 빨리 가요.”
“아, 네.”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소형선은 타고 있는 사람들의 성격만큼이나 출발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촥!!!”
“으악!!”
출발한 지 5분도 안 돼,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소형선 옆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물을 뚫고 솟아올라왔다.
“뭐, 뭐야!! 해수!?”
“출발하자마자!?”
“젠장! 왜 하필 여기에!”
“푸하~”
“쿨럭! 푸헉, 컥! 컥!”
“사, 사람?”
“후~ 후~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아, 네.”
“당겨요!”
“읏차!”
소형선 옆에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온 것은 성현 일행이었다. 성현 일행은 소형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배에 빠르게 올라탈 수 있었다. 성현은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선장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선장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성현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켁, 켁, 선장님은 좀... 괜찮나요? 쿨럭! 쿨럭! 후~ 후~”
옆에서 급하게 숨을 고르던 규완이 성현에게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휴~ 다행이네요. 무조건 죽은 줄 알았는데... 거기서 살아나올 줄이야... 크흑!”
규완이 방금 전의 위급했던 상황을 떠올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이 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혹시 이 분은 천사가 아닐까?’
규완이 성현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성현은 말없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성현이 말없이 가만히 있자, 원래 배에 타고 있던 인원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이 뒤늦게 그들을 보며 감사인사를 했다.
“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니요. 당연한 거죠”
“그런데 다른 배들은 어디 있습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 다른 배들은 다 어딜 가고 우리만 남았지? 헬파이는 어떻게 됐나요?”
“아, 그게 ...여차저차해서... 각자의 힘으로 가게 됐어요.”
“흐아아아아아! 그럴수가아! 말도 안 돼! 저기, 그럼 우리 얼른 저 사람들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그렇죠?”
“그럼 빨리 가요! 아니다. 돌아가야 하나? 성현 님 어쩌죠?”
어느새 성현의 호칭을 님으로 바꾼 규완이었다.
“쾅!!!”
“흐악! 뭐야!?”
규완의 뒤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5선의 선체가 크게 흔들리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헬파이다!!!”
“어디냐!!”
“위치 파악이 안 됩니다!!”
5선에서 선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쾅!!!!”
“우지직!!”
“크악!”
“풍덩!”
“살려줘!”
또다시 5선이 크게 흔들리며 몇몇 선원들이 바다에 빠졌다.
“쾅!!!!”
“뿌지직!”
“막아!”
“어디야!”
“콰앙!!!!!!!!!”
“뿌지지지직!!”
“안 돼!!”
곧이어 5선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며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꼿꼿하게 굳어있는 선장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빠, 빨리 도망가요. 노! 빨리 노 저어요!”
“저, 저기 도우러 가야하지 않을까요?”
규완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무슨 수로요? 빨리 노나 저어요!”
“맞아! 우리 빨리 도망가요!”
“빨리 저어요!!”
“으쌰! 으쌰!”
“자, 잠깐만요. 아직 여기 자리도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라도 태워요.”
규완이 노를 젓는 사람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이거 놔! 저 사람들 도와주고 싶으면 너 혼자 따로 가서 도와주든가! 난 죽고 싶지 않으니까 가려면 너나 가!”
규완이 노 젓는 사람의 손에 밀려 넘어졌다.
“윽!”
“털썩!”
“자, 잠시만요. 조, 조금만 더 기다려...”
규완이 다시 일어나 말리려하자, 성현이 규완의 어깨를 살며시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하, 하지만...”
“ㄷ, ㄷㅗ으마ㅇ그아!!”
“네?”
어디선가 어눌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도으마ㅇ 가!!” “선장님?”
바닥에 눕혀져 있던 선장의 입이 움찔거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으망...!!”
“도망이요? 선장님, 선장님 선원들을 두고 도망가라니요?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실 수...”
규완이 도망가라는 선장의 말에 따지려다 선장의 눈에서 느껴지는 애통함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장님...?”
“콰아앙!!!!!!!!!!!”
곧이어 5선 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아!!”
규완이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자 5선이 헬파이의 몸통박치기에 의해 반 토막이 나며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헬파이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강력한 침입자를 물리쳐서 기쁜지 크게 포효했다.
“크라라라!!!!!!!!”
“사람 살려!!”
잠시간의 포효를 끝낸 헬파이가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5선의 생존자들 역시 5선과 함께 하나, 둘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