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완이 막힌 통로와 몰려오는 바닷물에 버티기를 포기하고 손에서 힘을 빼려는 찰나의 순간.

　 “규완 씨, 포기하긴 아직 이릅니다.”

　 “촥!!!!!!!”

　 규완의 뒤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규완과 선장의 몸을 벽 쪽으로 다시 확 밀어붙였다.

　 “켁!”

　 ‘무슨 힘이...!!’

　 규완과 선장이 갑자기 느껴지는 강력한 압력에 답답한 듯, 신음을 내뱉었다.

　 “물이 꽉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숨을 크게 들이 마쉬세요. 그리고 방으로 물 유입이 끝나면 저 구멍으로 나가겠습니다.”

　 규완이 뒤를 돌아보자 헬파이가 낸 구멍을 쳐다보고 있는 성현의 얼굴이 보였다.

　 ‘아...!’

　 성현이 자신을 바라보는 규완을 마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어째서 여기에... 충분히 도망갈 수 있으셨을 텐데.”

　 “궁금증은 여기서 살아나간 후에 풀도록 하죠. 물이 꽉 차면 선장님은 제가 모시고 나갈 테니 규완 씨는 무슨 수를 쓰든 저리로 빠져나갈 생각만 하십시오. 선장님,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호흡은 참을 수 있죠?”

　 선장이 눈을 아래, 위로 움직이며 깜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규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분과 함께라면 살 수 있어!!’

　 다 죽어가던 규완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방 안이 아주 조금의 틈을 남겨두고 바닷물로 꽉 찼다.

　 “준비하세요.”

　 “후~ 후~”

　 “지금!”

　 규완과 선장이 성현의 신호에 맞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스~읍!!”

　 “후~웁!!”

　 방이 바닷물로 가득 차며 성현과 일행의 모습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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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펑!!”

　 “젠장! 공격해!”

　 “쏴라!”

　 “쾅!!!!!”

　 성현과 규완, 선장이 바다 밑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바다 위에서는 성현과 선장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헬파이가 분풀이라도 하듯, 주위에 있는 함선들을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망할 헬파이 같으니!! 로앤, 현재 피해 상황은?”

　 9척 배의 선장 중 유일하게 ‘바다 제복’을 입고 있는 선장 제로가 9척의 배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피해를 입히고 있는 헬파이를 보며 분개했다.

　 “현재 5선이 하층부에 커다란 피해를 입고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6선, 7선, 9선은 큰 피해는 없지만 자잘한 피해를 계속해서 입고 있습니다.”

　 “그럼 5선은 움직일 수 없나?”

　 “거의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섬까지의 거리는?”

　 “약 30km정도 남았습니다.”

　 “헬파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5선의 선장이 갑각살을 이용해서 유일하게 헬파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현재 생사가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갑각살을 쓸 수 있는 인원이 그렇게 없나?”

　 “사용은 할 수 있지만 5선의 선장만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끄응... 그럼 배의 무기들은?”

　 “사용은 할 수 있지만 헬파이가 너무 재빨라서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맞춰서 잡는다 해도 시간이 많이 지체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달아나는 것입니다.”

　 제로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

　 “그게 부선장이 할 말인가?”

　 “저한테 그러셔도 없는 방법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끄응!”

　 ‘이대로 가다가는 제 시간에 못 맞춘다. 이대로 임무에 실패할 수는 없다!’

　 “후... 로앤! 모든 배에 비상령을 선포하라!”

　 “비상령 말입니까? 진심이십니까?”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빨리 포기하시는군요.”

　 “닥치고 빨리 해!”

　 선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네.”

　 갑자기 로앤이 주변의 공기를 마구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앤의 가슴이 신기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로앤이 그 상태 그대로 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제로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스으으으읍~!”

　 로앤이 들이마셨던 엄청난 양의 공기를 한 순간에 내뱉으며 소리쳤다.

　 “비상령!!!! 선!!!포!!!!!!!!”

　 로앤의 목소리가 반경 50미터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소란스럽던 함선들이 일순간 조용해질 정도로 로앤의 목소리는 컸다.

　 “피유우우웅~”

　 잠시 후, 제로가 있는 1선에서 적색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곧이어 다른 함선들에서도 빨간 연기가 순서대로 피어오르며 함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항해사님! 적색, 비상령입니다!”

　 ‘적색?’

　 현재 대부분의 결정권자들이 부재상태인 5선의 1급 항해사 쥬드가 비상령의 의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봤다.

　 ‘적색은... 각개돌파인데? 어째서 이 상황에?’

　 얼마 지나지 않아 쥬드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제로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제로님이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버림받은 것인가...”

　 쥬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쥬드의 눈에 다른 배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봐! 선장님 소식은 아직 없나?”

　 “아직까지 없습니다!”

　 “뭐라고!? 헬파이가 이곳에 있는데 왜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거냐!? 빨리 내려가서 확인 해봐!”

　 “네!”

　 그때, 때마침 바닥을 폐쇄했던 기관사가 헐레벌떡 갑판으로 뛰어올라왔다.

　 “오! 기관사! 선장님은 어디에 계신가?”

　 “아, 항해사님... 크윽, 항해사님... 선장님이...!!”

　 “선장님이 왜!?”

　 “헬파이에게 당했습니다...”

　 “뭐!? 그 분이 당했다고?”

　 쥬드가 기관사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분이... 당했다고? 그 강한 분이...?”

　 쥬드는 선장이 당할 거란 생각은 해본적도 없는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 뇌이며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쥬드가 그렇게 멍하게 서 있는 사이, 모든 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5선만이 바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는 상황이 되었다.

　 “항해사님, 정신 차리십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장님이 당해?”

　 “항해사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후배 항해사가 쥬드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선장님이...”

　 “짝!”

　 아무리 흔들어도 쥬드가 정신을 못 차리자, 결국 후배 항해사가 쥬드의 뺨을 때렸다.

　 “윽!”

　 “이제 정신이 듭니까!?”

　 “어...”

　 “선장님이 부재중이신 지금 선장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정신 차리고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 그래, 그래야지... 사용가능한 노 있나?”

　 “없습니다. 헬파이의 공격에 의해 노실이 침수됐습니다.”

　 “...돛은?”

　 “돛은 괜찮지만 이브의 섬 근처 해풍이 워낙 중구난방이라 해풍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재수가 없다면 돛을 펴자마자 돛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

　 “쥬드님!!”

　 쥬드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후배 항해사를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아...”

　 쥬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멀어지는 5선을 지켜보는 1선 선장 제로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미안하군.”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기분이 영 그렇군...”

　 “......”

　 “그런데 헬파이에 대한 준비가 이렇게 미흡했었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전 대륙을 뒤져도 헬파이를 잡을 수 있는 인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5선의 선장은 헬파이를 상대하는데 최고로 손꼽히고 있는 인원이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5선의 선장은 갑자기 왜 사라진 건가?”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아~ 그런가?”

　 “네.”

　 “알겠네.”

　 로앤은 더 이상 가타부타 말없이 자리를 피해줬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제로는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로가 점차 작아지는 5선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미안하다. 조금만 버텨다오. 꼭 돌아올 테니. 미안하지만 지금은 임무가 우선이다.’

　 모든 배들이 5선에서 멀어지자, 5선 안에 있던 역쟁 인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 어? 왜 갑자기 다들 흩어져?”

　 “뭐야? 무슨 상황이야?”

　 “언제 저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다들 어디 가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저기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겁니까?”

　 역쟁인원들이 선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쥬드님! 역쟁 인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쥬드의 멍한 눈빛이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빛을 찾기 시작했다. 정신이 돌아오자 쥬드가 자신의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젠장! 이 상황에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돛을 펼쳐야 하나? 헬파이랑 싸워야 하나?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선장님, 어서 돌아오십쇼!’

　 쥬드의 손에서 그의 머리카락 수 십 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그때, 쥬드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래! 각개전투!”

　 쥬드가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비장한 표정으로 갑판을 향해 걸어갔다.

　 “이봐, 역쟁 인원 전부를 갑판 앞으로 모아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많은 사람들이 갑판 앞으로 모여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니 갑판 앞은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쥬드 님,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인원 모두 모였습니다.”

　 “그래, 고맙네.”

　 쥬드가 눈을 살며시 감았다 뜨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후우~ 역쟁 인원 모두 잘 들어라. 지금부터 우리는 여기서 헬파이의 공격에 대비한다!”

　 갑판 앞의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조용히 해라! 너희들도 방금 전, 빨간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봤겠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이고, 다른 배들의 도움을 전혀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갑판 앞에 있던 역쟁 인원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쥬드가 그를 쳐다봤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비상상황인데 왜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겁니까?”

　 쥬드는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시선을 허공으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헬파이는! 지금도 이 밑 어딘가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헬파이의 공격에 의해 노실이 침수돼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고!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상황을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넘겨야 한다는 거다!”

　 “뭐!?”

　 “말이 돼!? 함선들이 다 모여 있을 때도 헬파이 한 마리를 어쩌지 못했는데 우리끼리 뭘 한다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돛, 그럼 돛은?”

　 “저 사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웅성거림이 혼란으로 번져나갔다.

　 쥬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역쟁 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가 비상령을 선포했던 로앤보다는 작았지만 충분히 주위를 정리할 수 있을 만큼 큰 성량이었다.

　 “닥쳐!!!”

　 주위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곳의 기상은 기상천외해서 돛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나의 말을 잘 들어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헬파이를 잡는다!”

　 “저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야? 미쳐도 제대로 미쳤군!”

　 “헬파이가 뭐 뒷산 짐승인 줄 아나?”

　 “지옥의 해수라고 불리는 헬파이를 우리가 무슨 수로?”

　 “아, 이럴게 아니라 그냥 돛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

　 갑판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쥬드가 그 모습을 보며 보일 듯, 말 듯 옅게 웃음 지었다.

　 ‘예상대로의 반응이군.’

　 “하지만! 무조건 싸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선택 안이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