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만 304년
푸른 바다. 오른쪽을 보든, 왼쪽을 보든 물 이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런 바다의 한가운데에 이상하리만치 짙고, 어두운 안개가 끼어있다. 안개로 다가갈수록 물의 흐름이 빠르고 거칠어지며 기괴한 물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끽?”
어디선가 어린 돌고래 한 마리가 작은 물고기를 쫓아 안개 쪽으로 다가왔다. 돌고래는 안개를 보며,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듯, 잠시 주저하지만 이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물고기의 쫄깃한(?) 움직임에 정신이 팔려 안개로 들어갔다. 물고기는 돌고래가 다가오자 어떻게든 돌고래를 뿌리쳐 보려고 버둥댔지만 수려한 돌고래의 움직임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물고기는 돌고래의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끼끼~♬”
돌고래는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돌고래의 아래쪽에서 소용돌이가 형성되더니 돌고래를 아래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돌고래는 깜짝 놀라 물보라를 일으키며 발버둥 쳤지만 소용돌이의 힘이 더 강한지 벗어나지 못하고 휩쓸려 물속으로 ‘끌려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돌고래가 사라지고 잠시 후, 소용돌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안개 속의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
안개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바다에 선수부터 선미까지의 길이가 40m에 이르는 거대하고 장엄한 나무배 9척이 바다를 가르며 안개 쪽으로 힘차게 전진하고 있었다. 그 배들에는 7대륙중 하나인 ‘거국’을 상징한다는 거대한 붉은 호랑이 문양의 깃대가 달려있고, 9척의 배들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배의 조타실에는 배의 주인만이 입을 수 있다는 ‘바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제로 님, 이브의 섬까지 40키로 남았습니다.”
“음, 응? 츄릅! 뭐라고?”
“이브의 섬까지 40키로 남았습니다.”
“아아, 그렇군, 하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어. 준비는 끝났나?”
“네, 역쟁에 참여할 인원 1000명과 그들이 타고 갈 나룻배 143척 모두 도착하는 순간, 바로 투입 할 수 있습니다.
“좋군. 바다 생물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탐색중이지만 현재까지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 아주 잘 돼가고 있어. 하지만 방심은 하지 말고 계속해서 경계를 삼엄히 해주게나. ‘이곳’은 정상이 아닌 곳이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좋아, 나가 봐.”
보고자가 바다제복을 입고 있는 제로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나갔다.
“음! 이제 슬슬 시작이겠군. 걱정이야.”
제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바라봤다.
“뭐가 말입니까?”
제로의 옆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던 부선장 로앤이 제로의 말을 받았다.
“무엇이기는 ‘이 곳’의 모든 것이 걱정이지.”
“걱정도 팔자십니다. 바다의 제왕 제로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면 지나가던 물고기가 웃습니다.”
“로앤... 난 너를 좋아하지만 넌 한 번씩 참 무서운 발언을 해... 제발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좀 하지 말게나.”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바다의 제왕 말이네. 육지에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바로 모가지야.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게나.”
“뭐 어떻습니까? 이곳에는 우리 밖에 없는데. 그리고 바다에서는 제로님이 제왕 맞지 않습니까?”
“하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만약에 육지에 가서 이 일이 문제가 된다면 난 모른 척 한다.”
로앤이 어깨를 으쓱했다.
현재 이곳의 선장 제로는 대륙에서 실력이 뛰어나기로 1,2위를 다투는 바다사나이로 바다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바다를 사랑하며 누구보다 바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땅에서는 한낱 실력 좋은 선장나부랭이일 뿐이지만 바다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륙의 왕과도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사나이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만큼 제로는 바다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어 봤으며 바다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또 제로는 바다에 나올 때,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곳이 있다고 하면 더더욱 신나고 즐거워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죽을 뻔 한 적도 많았고, 위험한 적도 많았지만 그는 언제나 살아남았고,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곳을 개척해냈다. 여담이지만 아무도 모르던 곳을 개척한 후의 기분은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한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마냥 즐겁지 않은 곳이 몇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지금 가고 있는 ‘이브의 섬’ 이었다.
“이브의 섬 매년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올 때마다 별로야. 섬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기계류는 다 먹통이고, 쇠는 조금만 커져도 섬으로 끌려들어가고, 기상천외한 괴물들은 짜증날 정도로 많아. 정말 그놈의 ‘해역 자유 이동권’만 아니었어도 이곳에는 절대 오지 않았을 텐데. 휴, 그런 거로 협박하다니 망할 왕 같으니라고!”
현재 이들이 가고 있는 이브의 섬은 약 삼세기 전 일어난 펙터와 네이처간의 전쟁에서 사용 된 전자 핵무기 ‘이브’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주 재료가 되는 광물이 있는 섬으로 정확한 명칭은 따로 없는 중립섬이었다.
이 섬의 위치 또한 모든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외교적으로 민감할뿐더러, 기후 또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이었고, 일 년 내내 안개가 껴 있어 내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다 그곳에 있는 이브의 재료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전자파를 뿜어내고 있어 아무리 뛰어난 과학력을 가진 나라라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곳이었기에 마의 섬이라 불리며 그 누구도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브의 재료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로님, 저보다는 제로님이 더욱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어때! 듣는 사람도 없는데!”
그 선원에 그 선장이었다.
“하아~ 벌써 안개가 보이는 것 같아.”
제로가 정면을 보며 인상을 썼다.
이브의 섬, 바다 한 가운데에 위치한 신비의 섬으로 이 섬은 사시사철 주변에 안개가 끼어있고, 그 속에는 일정한 방향성 없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뇌격, 공중에서 압축되고, 압축된 물이 갑자기 떨어지는 물폭탄 등 바다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죽음으로 통하는 강력한 자연재해들이 안개 속에서 일정한 규칙 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뱃사람들은 이 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데 이 안개 근처에는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해양 생물들까지 많이 살고 있었다. 작게는 1미터 크기에 수백만 볼트를 사방으로 뿌리고 다니는 ‘전기 상어’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100미터 크기에 다리에 빨판 대신 가시가 달린 ‘가시 문어’까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하나하나가 사람 따위는 간식거리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위험했다.
“선장님! 전방 5km지점에서 미확인 거대물체 포착했습니다.”
제로의 이마에 심줄이 생겼다.
“하아~ 그럼 그렇지. 관찰병에게 정체 파악될 때까지 수시로 보고하라고 하고, 투석병, 검사, 회복사 위치로.”
“위치로!”
“제발 별거 아니면 좋겠는데...”
제로는 귀찮은건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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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진 어둡고 거대한 방.
방 안에는 무언가 빛을 내는 것이 유리병 안에 갇혀 방을 침침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것을 제외하면 방 안에는 어떠한 가구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조금 집중해서 자세히 보면 방의 구석구석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어 지금 이 곳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으... 답답해. 밖에 나가고 싶다!!”
방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체격이 매우 건장하고,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눈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 유독 삐쩍 마르고 순진한 눈망울에 조그마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나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
“저기요?”
“......”
“주무시나요?”
누워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규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안 주무시네. 안녕하세요. 전 ‘규완’이라고 합니다.”
“......”
“아, 긴장 된다. 느낌상 곧 도착할 것 같은데 혹시 긴장 되지 않으세요?”
“...닥쳐.”
“아~ 도착하기도전에 죽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그러기는 싫은데.”
“...닥치라고.”
“해양 생물이나 안개에서 죽는 사람도 많다던데”
“닥쳐, 이 새X야!”
“퍽!”
“으윽!!”
삐쩍 마른 남자보다 키는 작지만 두 배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규완의 등을 발로 찼다.
“씨X, 넌 눈치도 없냐? 안 그래도 긴장돼 죽겠는데 왜 설치고 지X이야!”
규완이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너 때문에 더러워진 내 기분은 어떻게 할 건데?”
“......”
규완이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덩치 큰 남자가 마른 남자 규완의 비굴한 모습에 더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분도 꿀꿀한데 잘 걸렸다. 너 이리와 봐.”
덩치 큰 남자가 주먹을 어루만지며 규완에게 다가갔다. 규완의 얼굴이 뱀 앞의 생쥐처럼 두려움에 물들었다.
“히익!”
“퍽!”
“빡!”
“악!”
남자의 주먹이 규완의 몸 여기저기를 사정없이 때렸다.
“퍼억!”
“쿵!”
“아악!”
규완이 남자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보통 이쯤이면 그만 할 법도 하건만 그는 규완이 쓰러지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규완에게 다가갔다.
“으으..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조용히 할 테니 이제 그만...”
“윽!”
남자가 규완의 배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손등으로 규완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찰싹!”
“이미 늦었어. 그러게 별거도 아니면서 왜 설치고 다니냐? 어!? 병X이면 입 닥치고 있으란 말이야.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아, 이제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네.”
“찰싹!”
“윽!”
“크, 옛날 생각난다. 그래, 너 같은 새X들은 처 맞아야 말을 들었지. 일어나.”
“조, 조용히 할게요. 용서..”
“매가 부족했나? 끝까지 말을 안 듣네.”
“뻑!”
“억!”
남자가 벌떡 일어나, 규완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규완이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여길 왔지? 어디에서 이런 놈을 보낸 거야? 역쟁이 장난인 줄 아나, 어? 야, 너 어디서 왔어?”
“커.. 흑... 컥, 죄... 송....”
“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여기 소풍 온 거 아니잖아?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자기 목숨 걸고 고생고생해가며 온 건데 도대체 뭐하는 거야? 어!?”
역쟁이란, 이브의 섬에 존재하는 ‘이브’라는 광석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으로 대륙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특출한 전투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추천이나 자원신청을 통해서 선출 돼, 특수한 훈련을 받고 그것을 끝까지 견뎌내었을 때,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 정도로 특수하며 어려운 임무였다. 특히 임무에 성공하거나 ‘살아서 사지 멀쩡히’ 전역을 한다면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커다란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임무의 난이도는 최상급이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훈련을 끝까지 견뎌내고 역쟁에 참가하는 인원들로 이브의 섬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으으...”
“후! 생각할수록 열 받네.”
남자가 쓰러져 있는 규완에게 달려갔다.
“넌 좀 더 맞아야 돼! 받아라! 내장 파괴 주먹~!”
“흐악!”
규완이 눈을 질끈 감았다.
“턱!”
“응? 넌 뭐야?”
남자의 큰 주먹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막혔다.
“그만 하시죠.”
“너 뭔데? 얘 친구냐?”
“아닙니다.”
“관계없으면 가서 잠이나 쳐 자”
“그럴 순 없습니다.”
“좋은 말 할 때, 비켜라.”
“......”
“하! 진짜. 천하의 김광호 많이 죽었네. 이런 멸치 새끼들이 개기고 말이야! 어!?”
광호가 규완을 도와준 남자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다다다다!”
“해양 생물 출현! 자세를 낮추고 충격에 대비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