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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1)
작성일 : 17-10-02 14:44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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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벽면을 따라 돌아 스티로폼 박스가 세워진 곳을 지나쳤다. 길바닥에 닿는 발이 이상한 박자로 따닥, 딱, 따닥하고 심장 고동과 엇갈리는 소리를 내고 제 몸뚱이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고요를 가르고 내뱉어지는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공기에 간헐적으로 퍼져들었다. 소리, 소리가 정신없이 귓가에 휘몰아쳤다.

 

 와르르. 어깨에 부딪힌 상자가 무너져 내리면서 바닥을 뒤덮고 통. 퉁 하면서 가볍게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와그작. 단번에 짓이겨지는 소리에 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연이어 스티로폼 박스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한 콧노래의 리듬에 맞춰 전해져왔다. 밤거리를 단숨에 찢어내는 소리는 '그것'의 발끝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뿐 사뿐히. 발뒤꿈치를 들고 살짝 뛰면, 와그작.

 

 [저기 가는구나.]

 [저기에 뛰어가고 있구나.]

 

 음조의 큰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멜로디가 일정하게 반복되고, 연기처럼 흩날리는 검은 글귀가 지독하게 제 등을 넘어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가는구나.]

 [저기에 뛰어가고 있구나.]

 

 [내 앞에서 어른어른.]

 [손에 잡히게 아른ㅡ아른.]

 

 가사 없는 콧노래소리가 부드럽게 그의 그림자를 쫒았다. 괴물은 잠깐 멈춰 서서 빈이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손이라 불리는 것을 슬쩍 뻗어보기도 했다. 빈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써늘한 냉기에 꺽, 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파드득 떨었다.

 

 차가움. 털이 쭈뼛 서는 한기. 자연스럽게 새하얗게 시린 사슬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르다. 괴물은 천진난만하게, 또 난폭하게 제 뒤를 점령하고 있었다. '절대로.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뒤를 돌아볼 시간에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란 말이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세뇌시키듯이 단아가 반복해댔던 소리가 제 속에서 윙윙 소용돌이쳐 들어갔다.

 

 미드워커가 된 지 거의 2주일. 처음에 얼떨떨했고 신기했고 분명 재미있었다. 단아가 제대로 미드워커로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한 기간인 4일. 빈이 실제로 4일 만에 해낸 것은 손끝에서 겨우 금빛 점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했다.

 

 ‘그거면 만사 오케이야, 임마. 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알아? 마력을 형상화해낼 줄만 알면 제대로 된 미드워커인거지. 넌 그나마 우리가 붙어 있어서 속성으로 된 거라고.’

 

 단아는 그 때 그렇게 말하면서 순살 양념치킨을 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김 콩’ 미드워커 기념일-이라는 쓸데없이 커다랗고 화려한 현수막이 천장에 걸린 ‘과학탐구 동아리실’ 안에서 말이다.

 

 ‘점을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건 말이지, 곧 ‘선’을 그릴 수 있다는 거야. 그럼 그게 ‘인’으로 이어지고 ‘마법’이 발현되는 거야. 미드워커가 된다고 바로 이걸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재능과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

 

 단아가 난잡하게 테이블에 흘리는 양념소스를 닦으며 은랑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처음 마력을 형상화하는 날을 보통 미드워커로서의 생일이라고 불러. 제 2의 생일인 거지. 아주 특별한 변화가 생긴 날. 어, 굳이 비유하자면 여자들이 초경하는 거랑 비슷한가? 나름 신비하고 축하받을 일이고...’

 ‘그래. 첫 생리 축하한다, 아니, 미드워커가 된 걸 축하한다! 우리 김콩!’

 ‘이거 계속하다간 성희롱아냐?’

 

 저들끼리 깔깔거리던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빈은 고개를 저었다. 손에 땀이 흥건해 잘못하다간 손에 쥔 핸드폰을 놓칠 것만 같았다. 두 사람에게 연락하는 게 가장 현명한 답이겠지만 사실상 그들의 도움을 바라긴 불가능이었다. 여긴 시 외곽이다. 전태 6지구의 중심부에 사는 그녀들이 현재 시 외곽에 있는 자신을 도와주리라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자신을 쫒아오는 괴물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가 명확히 아는 괴물이라 봤자 실제로 마주한 ‘발케’라던가 흔히 볼 수 있는 ‘렘’ 정도뿐이었다. 은랑이 한 번 쯤 보라며 던져줬던 ‘괴물 대 백과사전’의 겉표지의 모습만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제기랄. 좀 볼 걸.

 

 사실 저를 쫒아오는 것의 형체도 보지 못했다. 자신이 본 것은 느릿하게 움직이던 검은 천의 움직임뿐이었다. 액체같이 바닥에 닿으며 주르륵 퍼지기도 하고, 살짝 들리면 모양이 잡히는 기이한 것이었다. 서늘하고 끈적끈적한 움직임. 어째서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인 확신이었다.

 

 괴물이다.

 그리고

 저것이 나를 발견했어.

 

 그리고 미친것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지금 떠올려야 할 것. 그건 생존을 위한 방법이다. 근래엔 두 사람과 자신 모두 중간고사 기간이라 두 번째 세계의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위주로 하는 터라 마법 공부는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전투의 가장 기본이 된다는 세 가지 마법, 칼날, 화살, 그리고 방패.

 

 그 중에서 빈이 배운 것은 칼날 마법뿐이었다. 그것도 아직 제대로 발현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이렇게 도망 다니기만 할 수는 없었다. 숨이 목구멍에 탁 틀어 막혀 뛸 때마다 기도가 터질 듯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허공에 손가락을 올렸다.

 

 '시각화시켜.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단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했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최면. 손끝에서 번지는 미약한 온기에 점점이 찍히는 금색의 빛. 하나, 둘. 그리고 셋. 온기는 자리를 키워나가고 명확한 빛의 시작점. 분명 너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곧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게 손끝에 둥근 윤곽이 잡히고, 빛이 허상 속 의식을 깨고 ‘진짜’가 되어 나타났다.

 

 성공이다!

 

 빈은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제 손길을 따라 금빛 선이 허공에 쭉 그려졌다가 달려가는 제 가슴팍에 부딪혀 사라졌다.

 

 ‘이제 칼날마법은 대충 감이 잡히지?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했어. 그런데 실제 전투 시에는 멀뚱히 서서 인을 그릴 시간은 없어. 보통은 이동 상태에서 인을 그려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달리면서 인을 그리면 제대로 안 그려져.

 

 미드워커가 허공에 손을 대고 인을 그리는 순간, 그 부분은 평면으로 인식 돼. 인이 그려지는 그 평면을 ‘개인의 차원(Individual Dimension)', 줄여서 아이디(ID)라고 불러. 모든 인은 같은 아이디에서 그려져야 제대로 된 모양새가 만들어지지, 연합이나 연계 마법의 예외를 두고 말이야. 그런데 달리게 되면 계속해서 인이 그려질 평면이 바뀐단 말이야. 그러니까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

 

 한 손가락으로 인을 그리면서, 나머지 손가락을 펼쳐서 ‘아이디’를 앞으로 밀어주는 거야. 인이 계속해서 같은 아이디 상에서 그려질 수 있게. 이해했어?’

 

 빈은 당장이라도 할 수 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곤 열심히 설명을 해주던 단아의 앞에서 반쯤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침을 흘리고 있던 저를 향해 곰과 같이 돌진해 두드려 패주고 싶을 정도다.

 

 물론 그 전에 단아가 ‘악! 이 새끼 또 자냐?’라고 하이에나 같이 눈을 번뜩이며 제 등짝을 갈기고, 은랑은 ‘남 말한다, 너. 너 중딩때부터 수업시간에 깨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 내가.’라고 말로는 단아를 타박하면서 발로는 제가 앉은 의자를 퍽 차댄다. 회상해보자니 제 모습이 조금 불쌍하다, 아니다. 저래도 싼 놈이다!

 

 괴물 같은 두 여자와 멋대로 시간을 껑충 건너온 자신에게 집단폭행을 당해도 모자란 놈이었다. 빈은 진심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집어넣어준 두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울고만 있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벌써 죽어버렸거나.

 

 죽음. 끝. 가볍게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것과는 달리 그 무게는 묵직했다. 어쩌면 자신은 이때까지 두 번은 죽을 뻔 했다. 처음은 학교에서 발케에게 쫒기던 날. 두 번째는 겨울 도서관의 협곡에서 떨어질뻔 한 것. 빈은 애써 생각을 떨쳐냈다. 토해내듯 뱉어지는 숨에 이를 악물고 칼날의 인을 그려내면서 모퉁이를 돌아 큰 길로 빠져나갔다. 바로 벽에 등을 붙여 완성된 칼날의 인을 고정한 채로 자신이 빠져나온 길목을 바라보았다. 와라.

 

 [내 앞에서 어른어른.]

 [손에 잡히게 아른ㅡ아른.]

 

 길목에서 구부정한 검을 글씨가 벌레가 줄지어 날아가는 것처럼 빠져나왔다.

 

 [어디에, 어디에 있니?]

 

 가사가 바뀌었다. 그는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은 채로 숨을 죽였다. 손가락을 쭉 뻗은 바싹 마른 검은 손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붕대로 감은 듯이 여러 번 무언가 질긴 것으로 감긴 손이었지만 손끝의 뾰족함은 숨기지 못했다. 뚝. 뚝. 그 손에서 시꺼먼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꺼진 담뱃불 같은 검은 연기를 피워 올렸다.

 

 곧이어 그것은 짧은 문자가 되었다.

 

 [어디]

 [어디,어디,어디,어디,어디,어디]

 

 전신을 씹어 삼키는 공포감에 눈앞이 점멸해가는 것 같았다. 빈은 숨을 버텨내지 못하고 컥, 컥, 대면서 한 손으로 제 목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어떤 맹렬한 적개심과 분노감이 차올랐다. 대체 내가 왜!

 

 내가 왜 이딴 일을 겪고 있지?

 

 공포에서 비롯된 분노의 칼끝이 제 속을 거칠게 휘저었다. 대상은 그녀다. 방금 전만 해도 저 스스로 고맙게 생각했던 여자. 눈물이 차오를 만큼 거친 감정이었다. 발소리도 없이 스륵 팔이 길의 정면을 향해 나아가고 그 팔에 내려앉은 검은 천 자락이 꾸물꾸물 바닥을 삼켜나가는 것이 보인다. 지금이다. 저 팔을 잘라내! 빈은 깜박깜박 흩어지려는 인의 마지막 획을 이어 검을 팔을 향해 휘둘렀다.

 

 -샤아악

 

 금빛에서 푸른빛으로 변한 마법의 칼날이 공기를 가르곤 사라진다. 바닥에 내려앉은 건 자그마한 천 조각. 잘라내졌어야 할 그 팔은 어디에도 없었다. 골목길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콧노래소리도, 검게 피어오르던 가사도 누군가 삭제버튼을 눌러버린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보이지 않는다. 볼 수가 없다. 빈은 차마 발을 움직여 ‘그 것’이 있어야 할 골목길을 바라보지 못했다. 사라진 건가? 문득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뚝, 하고 제 어깨 위에 떨어졌다.

 

 뚝. 뚝. 뚝.

 

 머리에 떨어져 눈가를 타고 볼로 흘러내린다. 어, 어. 입 밖으로 완성되어 빠져나가지 못한 단어가 멍청하게 반복되며 입천장으로 탁탁 부딪혀 내려왔다. 보지 마. 보면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 제 생각을 배반하고 절망마저 억누르는 공포에 마비된 얼굴이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위로 올라갔다.

 

 [아아.]

  [잡 았 다]

 

 콰앙!

 

 저를 향해 내려오던 괴물의 얼굴은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거칠게 터져나갔다. 얼굴이며 몸뚱이며, 옷자락, 그 모든 것이. 잘게 터져나가 곧 제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끔찍한 비였다. 입고 있는 야상위로 끈덕지게 내려앉는 서늘한 비였다. 이 모든 게 기운 빠지게 끝이 나버린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멍한 시선 끝에 아스팔트 바닥을 딛고 있는 하얀 맨발이 보였다. 뚝뚝. 옷자락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검은 빗줄기가 흐르는 손 끝. 그 밑으로 바닥으로 늘어트리게 잡고 있는 얇은 지팡이.

 

 “...괜찮니.”

 

 단아였다. 잠옷일게 분명한 목이 늘어난 반팔 원피스 차림의 단아였다. 자다 일어난 듯 잔뜩 헝클어진 머리위로 검은 비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베이지 색의 잠옷은 금방 더럽혀졌다.

 

 “선배...”

 “미성년자가,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는 거야.”

 

 살짝 끝이 갈라졌지만 담담한 어투였다. 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안도감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았다. 살았어. 그렇게 생각하자 꼴사납게도 울음이 터져나왔다.

 

 “흐어엉”

 “....하.”

 

 무릎에 얼굴을 박고 대성통곡을 하는 빈을 바라보며 단아가 낮게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머리칼에 붙은 이물질이 진득하게 손끝에 달라붙는다. 신경질을 낼 힘도 없다.

 

 설마, 했다. 전과 같이 선명하게 지켜보는 꿈. 여왕의 능력. 예지몽인지 현재 일어나는 일인지 고민할 시간 따윈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꿈의 장막을 찢고 눈을 뜨자마자 꿈에서 본 장소로 이동했다. 정말이지 간발의 차였다. 말은 담담하게 뱉어냈어도 손은 축축했다.

 

 살렸다. 살려냈어. 그건 마법과도 같이 안도감을 가진 단어였다.

 

 제 손으로 끌어들였던 이들과 원망하던 말. 책임지지 못한 것과 지켜내지 못한 것. 그로 인한 자괴감으로 도망치듯 내려놓았던 그 이름의 무게. 그러나 자신은 다시 돌아왔고 또 다른 삶을 이 경계선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니까 ‘김 빈’은 그녀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엉엉 소리 내어 우는 17살의 청소년을 달래야 할 상황이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항상 달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흑....흐엉......선배. 미안해요.”

 

 지팡이를 느슨하게 잡은 손끝이 작게 움직이다 말았다. 고마워요도 아니고 미안해요. 뜬금없는 사과였지만 단아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미안해요. 미안해. 그건 자신이 해야 할 말 이었다. 멋대로 널 끌어들여서 미안하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말을 해줬어야 했다. 괜찮니?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여전히 제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길게 뱉어내면서 억지로 소리를 뱉어냈다.

 

 “...충분해.”

 “흐어, 흐어엉”

 

 그 말에 빈은 또 다시 울음보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뚝. 그만 울고.”

 “엉엉엉엉어엉. 끄으읍.”

 “야.”

 

 단아는 한숨을 내쉬며 빈의 앞에 쭈그려 앉아 지팡이로 그의 옷깃을 푹푹 찌르며 말했다.

 

 “이봐요, 후배님.”

 “끅,끅,끅...컥. 후어어”

 “별 쑈를 다보겠네. 진짜. 넌 대체 어쩌다 ‘허밍’이랑 놀아나고 있었어?”

 “끅, ‘허밍’이요?”

 “그 괴물의 이름.”

 

 전 그냥 집 앞에 아이스크림 사러 나가던 길이었는데요. 말을 마친 빈이 또다시 곰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자 단아는 낭패라는 표정으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자신이 알기로 빈의 집은 자신과 같은 전태 6지구의 중심지다. 집 앞에 나갔던 그가 단숨에 이 곳, 시 외곽으로 왔다는 걸 설명할 길은 단 하나뿐이다.

 

 “끄,끄엉, 흑, 우어엉”

 

 콧물 흐른다, 너. 그 말에 빈은 야상 소매로 코를 슥슥 문질러 닦았다. 떫은 표정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단아가 잠깐 침묵하다가 미간을 팍 찌푸리며 야상 후드를 빈에게 푹 눌러 씌워 주며 말했다.

 

 “일어나. 일어나.”

 

 한참이나 징글맞게 운 게 민망하기 시작했는지 빈이 고개를 돌려 기침을 뱉으며 쭈볏쭈볏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쭈그려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는 단아에 그는 콧물을 킁, 하고 삼키면서 물었다.

 

 “선배, 안 가요?”

 “야. 내 발을 봐.”

 

 맨발이다.

 

 “이대로 어떻게 걸어가? 네가 엎어갈 거 아니면 가서 삼선 슬리퍼라도 하나 사오거라.”

 “근데 선배는 그 꼴로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순간이동.”

 “아, 그렇구나....,네?”

 “잘 자다가 존나 이불 박차고 나와서 순간이동 해서 이 꼴이라구요, 후배님.”

 

 아니. 그런 게 있었어요? 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빽. 하니 소리를 질렀다.

 

 “...하. 스스로 발현되기 전까지는 일부러 설명 안 해주려고 했거든. 어느 정도 순간이동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있으면 오히려 처음엔 힘들어. 첫 순간이동은 ‘무의식’에 의존해서 깨우쳐야 하는 게 정설이라서.”

 

 미드워커들이 가진 고유의 능력인 순간이동의 처음은 무의식중에 두 번째 세계의 겨울도서관으로 가는 것이다. 순식간에 바뀌는 낯선 공간에 이질감을 느끼고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과 그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보통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미아들이 가끔씩 발생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경우도 생기기도 했다.

 

 “신생아 실종사건은 대부분 선천적인 미드워커들이야. 갓난아이들이 도서관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부모 품으로 못 돌아가는 일도 있고 후천적 미드워커들도 그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데로 이동되어서 영영 떠돌기도 하지.

 

 너 같은 경우엔, 스스로 미드워커로 각성한 게 아니라 내가 ‘세례’를 내린 경우인 데다가, 겨울도서관에도 미리 출입도장을 찍은 지라 그 쪽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아무 장소로 랜덤으로 보내진 거지. 그렇게 해서 바로 돌아왔어야 정상인데, 운 하난 더럽게 나쁘게도 괴물 앞에 떡, 하니 떨어진 모양이야.”

 

 “그럼 우리 순간이동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순간이동은 딱 하루 두 번이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데 남은 한 번을 막 쓰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일단 당장 네가 순간이동이랍시고 지랄하다가 실종될 거 같은데?”

 

 반박 못하겠지? 자자. 가서 슬리퍼나 사와, 이것아.

 

 손을 짜증스럽게 내젓자 빈이 울망울망해진 얼굴로 훌쩍대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너 지금 걸어가니?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야상 후드가 벗겨질 만큼 뛰어가기 시작했다.

 

 피곤하다. 눈가가 무너져 내릴 듯이 아파왔다. 단아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그대로 멈추었다. 서서히 새벽의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듯이 감각이 조금 조금씩 무뎌져갔다.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던 감각이 일순간 부드럽게 흩날린다. 파스스스 흩어지는 조각들 사이에서 그녀는 침묵했다.

 

 괴물의 육신이었던 것들이 모두 잘게 가루로 변해 어느덧 멀끔하게 사라진다. 언제나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발을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느릿느릿하다. 그러나 찰나의 사라짐에 파묻힐 뿐이다.

 

 전태 시 외곽. 6지구에서 버스로 40분 거리.개발이 중단된 건물들이 버려진 단지가 있는 곳. 고작 작년, 일 년 전. 늑대들의 소굴.

 

 “하필이면 여기일게 뭐람.”

 

 단아는 힘없이 중얼거리면서 무릎을 끌어 앉았다.

 

 ‘위험해지면 일단 순간이동으로 피하자. 알겠지?’

 

 그 날. 10월의 그 날. 꼼짝없이 갇혀버린 길에서 멈춰있던 그 때. 악몽과도 같은 늑대의 소굴에서 벗어났던 너는, 우리를 찾아 그곳으로 되돌아갔지.

 

 단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독한 환청이었다.

 

 ‘걱정 마. 넌 나에게.’

 

 너를 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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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9) 2017 / 7 / 26 275 0 4398   
18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8) 2017 / 7 / 26 268 0 5047   
17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7) 2017 / 7 / 26 265 0 4580   
16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6) 2017 / 7 / 26 264 0 4177   
15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5) 2017 / 7 / 26 285 0 4382   
14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4) 2017 / 7 / 26 273 0 4301   
13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13) 2017 / 7 / 26 249 0 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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