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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아이들
작가 : 어설트
작품등록일 : 2017.6.17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사자(死者)의 세계다.
동화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

 
7. 초대받지 않은 초대 (3)
작성일 : 17-09-26 01:20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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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엘리자베스는 흐트러진 치마를 정리하고 천천히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본디 오후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그루잠은 오늘만은 특별히 오전에 열렸다. 오후에 찾아오는 게 익숙한 단골이 없으니 가게는 텅 비어있었다. 평소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테이블 위는 깔끔했다. 늘 감돌던 사람과 술 냄새도 없어서 그 모습이 퍽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고요한 가게를 훑어보던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엎어진 솔의 뒤통수로 떨어졌다. 짐짓 인형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온새미로나 보살 필 줄 알았더니.”

  비취 성으로 가 희나리를 만나보겠다고.

  그 발상이 가소롭기도 하고 건방지기도 하다. 적어도 솔에겐 희나리를 말릴 자격 같은 건 없었다.

  “거긴 거기대로 끝난 게 아닐까.”

  푸른 눈이 이번에는 차일에게 닿았다. 그는 느긋한 동작으로 새로 받은 잔에 얼음을 담고 술을 따랐다. 서로 기댄 얼음이 미끄러졌다.

  “애초에 그들만 없었다면 본디 평화로운 곳이었으니.”

  “온새미로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는 말이지.”

  엘리자베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당신도 솔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그래서 이 사단이 난 건 주인님의 탓이라고?”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지만, 희나리가 한몫했다는 것엔 동의하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느 쪽을 선택할지에 제 3자가 끼어든 건 최선의 판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최선의 판단이라는 건 어떤 기로에 선 자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고.”

  “주인님은 누구보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온새미로에 남은 것이고요.”

  “당연히 그랬겠지. 그래서 줍지 않아도 될 책임을 뒤집어 쓴 거고.”

  차일인 픽 웃고는 입술에 술을 적셨다.

  “그 선택이 온새미로였든 다른 어디였든 뒷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일이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당연히 온새미로를 고르지도 않았겠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이 이야기는 이쯤하고.”

  물기 맺힌 잔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놓였다.

  “그래서 방해물까지 해치우고 날 보자고 한 이유는?”

  엘리자베스는 입술을 지그시 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인형은 망설였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는지.

  “주인님은 비취 성의 군주가 되셨습니다.”

  “그 아이 혼자 됐을 린 없고, 사람 일에 개입을 했군.”

  차일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차분했다. 수상한 목적 앞에 속을 감추는 것이 아닌 뻔한 이야기라도 들은 양, 따분해 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째서, 어떻게 됐는지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희나리가 보았다면 상처 받았을 차가움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무정함에 기가 질려 슬며시 눈을 돌렸다.

  “그래야 주인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목적이라 함은?”

  “그루터기 주민들의 정착입니다.”

  “참으로 소박한 소망이군. 그들이 그렇게 약속이라도 해주던?”

  비웃는 것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는 웃지 않았다.

  “그 땅이 어떤 땅인지는 알고서 간 건가?”

  “몰랐었습니다.”

  대답은 정직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를 하느냐, 마느냐 그딴 건 애초에 관심도 없어.”

  시선을 내리깐 채 차가운 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울림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조차 없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란 게, 그따위 변명이나 늘어놓고 싶었단 말인가.”

  차일의 시선은 줄곧 술잔에 가 있었다. 잔에 맺힌 물방울이 미끄러졌다. 녹다만 얼음들이 조금씩 뒤틀려 술에 잠겨간다. 변명이라는 말에 엘리자베스는 굳이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탑이 무너지든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습니다.”

  변명이든 부정이든 뭐라도 해서 주인을 지킬 수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었다. 인형의 소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주인님이 이 세계를 떠날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두면 세계를 떠날 수 있다?”

  차일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너는 이 세계를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군.”

  시리도록 차가운 미소였다.

  “한낱 인형 주제에.”

  엘리자베스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치마폭에 감춘 손을 꾹 쥐었을 따름이다. 차일은 탑에서 한두 마디 나눴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냉정하고 매정하며 차가웠다.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의 온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가 변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뿐이다.

  “그래서, 희나리는 곧 떠나나?”

  엘리자베스는 달갑지 않은 눈으로 차일을 바라보았다. 그도 어느새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펴고 앉은 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비웃음을 조금 담은 채.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서 하는 짓궂은 질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빛이 되어 떠나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온 그가 모를 리 없을 테니.

  “아주 작은 첫 걸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가 웃었는지도 모른다.

  “그 몸이 한낱 인형이 된 것처럼?”

 

 

 

 

  “하필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대화가 끝나고, 엘리자베스가 떠나기 전 차일이 물었다. 고요 속 침묵 같은 질문이었다.

  “믿지 못하는 자나, 거짓말을 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이유는 없겠지요.”

  대답은 가시를 닮았다.

 

 

 

 

  “약이나 줘라.”

  엘리자베스가 떠난 뒤, 평소보다 일찍 문을 연 그루잠에 어리둥절하며 손님이 몇인가 들어왔다. 손님들에게 마실 것을 내어주고 돌아온 휴가 차일의 요구에 고개를 갸웃댔다.

  “무슨 약?”

  “그럼 나보고 이걸 들고 가라는 소린가?”

  차일이 턱으로 가리킨 건 불시에 습격당해 곯아떨어진 솔이었다. 그제야 휴는 차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닫고 웃었다.

  “수면가루를 해독하는 약 말이지?”

  문득 그는 얼마 전 차일이 새를 보내 해독약을 급히 받아간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그 대금도 치르지 않았다.

  “그거 다 떨어졌는데.”

  “이런. 이봐, 일어나.”

  못마땅한 소식에 차일은 인상을 구기며 솔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건드린다고 일어날 약이었으면 먹였겠나, 이 양반아.”

  “대체 얼마나 타 넣은 거냐.”

  “한나절 정도였나. 그리고 자꾸 약으로 재우고 깨우고 하면 무슨 부작용이 날지 몰라. 그냥 데려가게.”

  결국 차일은 내키지 않은 동작으로 솔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다. 보기보다 무게가 나갔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 새를 부르려던 차일은 흡족해 보이는 휴를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왜 웃나? 기분이 나쁜데.”

  “아니, 뭐, 아저씨라도 젊은 남녀 문제엔 간질간질 하고 그런단 말이지.”

  “이게 로맨스라면 무거워서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 따윈 안 할 것 같은데.”

  차알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말하자 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정말 그 아가씨 쫓아다녔나?”

  그제야 휴의 머릿속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찼는지 깨닫고 차일은 짜증이 치밀었다.

  “아깐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해서 입을 다물어줬지만, 이 녀석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럼?”

  “네게 이야기할 의무 따윈 없어.”

  “뭘 잊은 모양인데, 아직 값을 치르지 않았잖아. 약값. 값을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데 치르지 않는 건 뭐람?”

  차일의 얼굴에 경멸이 떠올랐지만 휴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능청을 떨어댔다. 휴가 받고 싶은 값이 있는 이상 무얼 해도 충당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말을 해주지 않으면 해줄 때까지 값 타령을 해댈 것이다. 어째서 이 지경까지 된 건지, 차일은 잠시 이난이 되어 진심으로 등에 업힌 녀석을 던져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숨만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난 이 녀석을 쫓아다닌 게 아니야.”

  “그럼 역시 남자였나?”

  “그 말도 참 마음에 안 들지만 부정할 순 없군.”

  “호오?”

  “내가 찾은 건 이 녀석 옆에 있었던, 나와 지나치게 닮은 어떤 소년이었다.”

  휴는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사실을 말했으니 값은 이만하면 됐다고 여긴 차일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휴가 입을 열었다.

  “저 아가씨가 살아있었을 때라는 이야기인가?”

  죽어서 만났다면 탑의 사자일 가능성이 높을 거고, 거기에 차일과 닮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가만히 숨어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일이 돌아보자 휴는 멋쩍게 덧붙였다.

  “정황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런 셈이지.”

  “그럼 정말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차일의 입매가 삐뚤어졌다.

  “글쎄.”

  그 표정이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또, 또 엇나가는군. 자네가 이난도 아니고.”

  자조적으로 웃는 차일을 보며 휴는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차일이 아무리 옛사람이라 한들 사람이 사람 틈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시간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오랜 시간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휴에게 차일은 자식을 낳는 기쁨도 모르고,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이 어떤지 모르는 그저 고지식한 애송이나 다름없다. 그의 나이가 휴보다 많을지 몰라도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 ‘살아있던’ 햇수는 휴만도 못하다. 그리고 그 햇수만큼 어른이란 존재는 서투르고 성급한 젊은이보다는 조금 더 느긋한 법이다.

  휴는 이 비관적인 청년이 하늘도 좀 봤으면 하고 바랐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차일은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비가 내릴 거라고 단정 짓는 불행을 기다리는 청년이었다.

  “그것 역시 ‘한 걸음’이 아니냔 소리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일은 잔소리라도 들은 양 짜증스레 쏘아붙였다.

  “이만큼을 보내고 이제 겨우 한 걸음이면 앞으로 수백 년은 남았단 소리군.”

  “시작이란 게, 어려울 때도 있는데 때로는 너무도 간단해서 말이지.”

  그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딘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긴 시간을 견디도록 만든 것이 비록 ‘공허’였다 하여도, 죽지 못해 사는 이 세계에선 그것을 끌어안아서라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죽은 삶의 찬란한 끝을.

  “그 다음부터 걸을지 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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