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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눈 먼 나르시스트를 위하여
작가 : 야광흑나비
작품등록일 : 2016.5.8
눈 먼 나르시스트를 위하여 더보기

에브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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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삼일 앞두고 도망 친 남자. 나르시스트 오권혁(27세)
그런 남자에게 화가 나 있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여자. 평범녀 안나경(29세)

 
7.
작성일 : 16-05-18 09:12     조회 : 384     추천 : 0     분량 : 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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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나는 매달리고 그녀는 무덤덤한 날의 연속이었다.

 지나보면 내가 왜 이러나 싶은 그런 날이 반복되자 팬들은 팬들대로 불만을 토로하고, 나는 나대로 그녀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이전의 내 모습은 팬들에게 도도하고 자기애로 가득한 당당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난 그 모든 것을 모두 잃고 그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었다.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처럼 그녀에게만 반응하는 내 모습은 결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만을 해바라기 해 주는 여자를 원했던 나르시스트는 도리어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만만히 보았던 누군가를 해바라기 하는 시시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넌, 왜 나를 안 좋아할까?”

 “왜 그런 생각을 해요.”

 “항상 무덤덤하니까.”

 “좋아해요.”

 ‘이건 원래 내 포지션이어야 하는데…….’

 “정말?”

 “정말 좋아해요.”

 “아…….그래. 그렇다고 믿어주지.”

 언제나 난 벼르고 벼르다가 결국엔 항복하고 만다. 철저한 약자가 되어버린 나 자신에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만나 달라고 해도 바쁘다고 하고……. 바빠 봤자, 유명 연예인인 나보다 바쁘지도 않을 거면서.”

 “밥벌이 하는데 누가 더 바쁘고, 덜 바쁜 게 어디 있어요?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나는 이미 말도 놓았는데, 당신은 거리감 느껴지게 항상 높임말이지.”

 “그건 내가 편해서 그러는 거고요.”

 “일부러 거리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해요.”

 나는 분명 끊임없이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녀를 일부러 언론에 노출시키고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나르시스트라는 별명에 걸맞은

 나란 존재는 서서히 사라지고, 수도 없이 그녀를 의심하며 확인받으려는 나만이 남아버렸다.

 “정말 날 좋아하는 게 맞아?”

 “그렇다니까요.”

 “그래도 사랑은 아니겠지. 안 그래?”

 “아~오늘 또 왜 이러실까. 스케줄 없어요?”

 “없어! 아니, 있어도 없게 할 거야.”

 달칵.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매니저가 들어오면서 내게 마지못해 안겨있던 그녀가 도망간다.

 ‘남이 보는 앞에서는 애정표현도 하지 않으려 드는군. 저러면서 잘도 좋아한다고 하지.

 아니 근데, 저 새끼는 왜 이 타이밍에 들어와? 눈치 없이.’

 “혁이…….형?”

 “매니저 왔네요.”

 “어, 어? 왜! 뭔데?”

 눈으로 사정없이 눈치를 주지만 곰 같은 매니저는 여전히 눈치 없이 어기적거리며 들어온다.

 “형. 헤헤. 스케줄 가셔야죠. 오늘은 웹 드라마 촬영인 거 아시…….윽! 형?”

 “알았으니까. 잠깐 나가 있어.”

 매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허둥지둥 스케줄을 뛰어야 하는 처지에 어영부영 반년 가까이 헛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결혼하자.”

 “응? 무슨 말이에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 불안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불안하다니까?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날 진지하게 좋아해주지 않는 네가 너무 불안하다고.”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결혼하는 건…….”

 “나도 알아. 아는데!”

 ‘애처럼 떼쓰는 것 말고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쫓아다니고, 쫓아다니던 끝에 겨우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단계까지 갔는데도 완벽하게 그녀와 잘 지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매번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되는 날의 연속.

 웹 드라마와 음반 작업을 끝내고 난 후엔 중국에서 넉 달간 프로모션이 있기에 그동안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그녀는 언제나 시큰둥했고, 좋아한다는 말 이외에 더한 감정표현은 전혀 없어서 스스로 가장 싫어하는 남자의 모습이 되어가면서도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억지로 결혼까지 가려고 했던 것인데. 결혼이라도 하면 그녀가 어디에도 도망 갈 수 없으리라 믿었던 건데……. 결국엔 내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난 그녀가 완벽하게 날 사랑해주지 않는 이 상황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납득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왜 날 사랑하지 않지?

 왜 절박하게 날 붙잡지 않는 거지?

 왜?

 내가 부족해……?

 이대로는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멸해 버릴 것 같았다. 철저히 나를 부정하게 될 것만 같다.

 이 모습은 내가 아닌데, 이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건 나답지 않은데…….

 그녀가 날 찾으러 오지 않는 그 순간,

 결국 나는 절망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선 더 이상 숨 쉴 수가 없어.

 너의 그런 모습을 용납 할 수도 없어.

 날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매달리는 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다 버릴 거다. 모두 다.

 네가 찾아와 날 사랑한다고 무릎 꿇기 전에는 절대로 내 스스로 네게 나타나진 않을 거다.

  ***

 기획사에는 알리지 않은 채, 일정을 앞당겨 미국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중국으로 들어갔다.

 내가 말도 없이 잠적한 동안 한국은 이미 발칵 뒤집어져 있었고, 그녀는 꽤 많은 언론에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번번이 날 못난 놈이 되게 만드는 그녀를 향한 응징이라고 생각하면 그 안타까움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자업자득이다.’

 여전히 자기애로 충만한 과거의 나로는 돌아가지 못했지만 이전처럼 불안해져서 하루 종일 그녀 곁에 머무르고만 싶던 감정과는 다소 멀어진 듯 했다.

 한 달이 지날 즈음에 기획사에 중국 입국 소식을 알렸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녀를 보호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그녀를 마녀사냥의 제물로 만들겠다는 듯이 집요한 언론의 먹이로 던져 주는 회사의 태도에 반발하며 한국으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그땐 이미 중국 일정이 코앞에 다가온 뒤였다.

 당장 발을 빼려야 뺄 수 없었던 상황.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넉 달 간의 중국 프로모션이 끝나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을 땐, 예정에 없던 영화 스케줄이 끼어들었다.

 중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확 늘어버린 것이다.

 겨우 일정을 모두 소화 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무렵엔 상황이 완전히 걷잡을 수 없이 변해 있었다.

 “사라졌다고요?”

 “그래. 언론에 뚜드려 맞고 팬들에게 테러 당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가보더라고.”

 다른 기획사로 이직한 매니저를 통해 전해들은 소식은 참담했다.

 그동안 기획사가 손만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완전히 그녀를 마녀사냥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자근자근 밟았으며, 한동안 친척 집에서 폐인이 되다시피 했던 그녀는 최근 서울 역에 나타난 후로 종적이 묘연해졌다는 내용이었다.

 “형!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요.”

 “나도 최근에 안 거야, 인마!”

 “거짓말 말아요.”

 “거짓말? 나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근데 이거…….사실이야. 나도 회사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게 신물이 나서 그만 둔 거거든?”

 “자꾸 그런 식으로 일하는 거라뇨?”

 “뭐였겠냐? 적당한 때 봐서 스캔들 난 소속 연예인이랑 상대 찢어놓고 일반인인 상대방 미친 년 만드는 일이지. 가장 확실하게 연예인이랑 정리 시키는 방법 아니냐. 이쪽으론 눈도 못 돌리게 확인 사살을 시켜버리는 거지.”

 “그래서…….다들 동조 했대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 네 팬들까지.”

 “팬들도 아는 일이에요? 작정하고 덤벼들었다고요?”

 “그래. 팬클럽 임원인 애들 몇 명은 정말 작정하고 덤벼들었나 보더라. 하긴, 그동안 네가 그 여자한테 오죽 정신 줄을 놓고 살았으면 팬들이 그랬겠냐? 난 솔직히 팬들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내가 결혼 하려는 건데……. 내 인생인데, 그걸 그 사람들이 찢어놨다고요?”

 “그래.”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단지 그녀가 조금 힘들어질 때쯤 나타나 그녀에게 손을 내밀 생각이었는데, 주변에서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작정하고 그녀를 떼어낸 거란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줘 버렸고 그녀는 지금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거지?

 “다들 미쳤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아니, 사실 미친 건 나인지도 몰라. 차라리 날 사랑하라고 눈앞에서 윽박지르기라도 해야만 했어. 내 모습이 점점 못난 모습이 되어도 차라리 견디는 게 나았어. 그랬다면 그녀는…….그렇게 상처 받고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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