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연(連)
작가 : 빙그레미소
작품등록일 : 2017.8.26

엘프 엄마
오크와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그리고 그들을 받아준 노파
그들로부터 시작하는 판타지 드라마.

 
[2] 만남
작성일 : 17-09-18 18:27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422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폭풍우가 일던 밤이었다. 노파는 일찌감치 잠에 들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급하게 두드려댔다. 노파는 못 들은 척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끈질겼다. 잔뜩 성이 난 노파는 문밖에다 소리를 질렀다.

  “뉘쇼? 문짝 다 나가겠네!”

  대답은 없었다. 그저 문만 세게, 또 빠르게 두드릴 뿐이었다. 만약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노파가 경계심을 푸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파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세찬 바람이 피비린내를 몰고 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아욱, 이게 뭔….”

  노파는 인상을 찡그리며 밖을 살폈다. 그곳에는 벌거벗은 한 여자가 갓난아이를 품은 채 쓰러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여자는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다. 옷자락을 둘둘 감아놓은 왼손은 출혈이 심한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온 몸은 땀에 절어있었고 가랑이 밑으로는 차마 코를 막지 않곤 견딜 수 없는 참상을 하고 있었다. 고운 생김새에 귀가 뾰족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엘프인 듯싶었다. 노파는 엘프가 왜 이 숲에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 답은 엘프가 품은 아이를 보고 얼추 짐작이 되었다.

  아이를 본 노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주름이 진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희미하게 빛나는 어떤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러자 폭풍우 속에서 한 줄기의 바람이 방향을 바꿔 이쪽으로 날아왔다. 엘프와 아이의 몸이 바람을 타고 공중에 떠올랐다. 노파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그 뒤를 따랐다.

  문을 닫기 전, 노파는 다시 밖을 살폈다. 그녀가 오른손을 왼쪽으로 휘저었다. 폭풍우가 멈추었다. 숲이 멈추었다. 고요한 가운데, 나무와 땅속에 숨어있던 동물들이 밖의 변화를 감지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에 의한 착각이었다. 폭풍우는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다. 숲도 앙칼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동물들은 밖으로 나왔다가 보이지 않는 비와 바람에 호된 꼴을 당하곤 다시 몸을 숨겼다.

  노파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밖을 주시했다.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마법이 풀렸다. 폭풍우가 다시 몰아쳤다. 숲이 다시 움직였다.

 

 * * *

 

  여자는 노파의 집에서 꼬박 몇 주간 의식도 없이 누워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한 것을 떠나 피부인지 헝겊조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고, 불덩이 같은 몸의 열은 내리는 법 없이 펄펄 끓기만 했다. 노파가 마법의 힘을 빌려 여자의 잘린 왼손과 자궁 쪽을 지혈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자의 몰골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시든 몸을 닦아줄 때마다 갖은 상흔들이 나타나 노파의 가슴을 후벼 팠다. 곰팡이처럼 이곳저곳에 슬어있는 시퍼런 멍과 고름이 차서 썩어문드러진 상처,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발갛게 오른 종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여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마치 썩은 동아줄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운 나날이 지나갔다. 노파는 자신이 알고 있는 회복마법의 지식을 모두 동원해 여자를 돌보았다. 그녀의 정성 덕분에 여자에게 기생하고 있던 저주스런 상흔들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앙상하게 말라서 뼈만 보이던 몸에도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여자가 스스로 이겨내는 것뿐이었다.

  노파는 창밖을 보았다. 진한 먹구름이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았다는 듯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은 더 쏟아지겠다며 노파가 중얼거렸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노파는 아이를 눕혀놓은 방으로 향했다. 여자를 돌보는 사이, 아이도 마찬가지로 노파의 손길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무척 건강했다. 그래서 노파는 아이에게 푹 끓인 죽을 먹여주고 잠들 때까지 품에 안아주기만 하면 됐다.

  노파는 아이의 잿빛 피부를 볼 때면 근심에 빠지곤 했다. 그 때마다 아이는 노파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속에 들어있는 붉고 푸른 감정들을 헤아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노파는 여자와 아이를 들일 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무조건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이 살아있는 폭탄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아침마다 악착같이 숨이 붙어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점점 그녀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마치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노파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엄마가 그래야지.”

  노파는 여자의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차디찬 손을 쓰다듬고 있자니, 이전 상처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노파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 * *

 

  이튿날, 노파는 자신의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물건을 하나 꺼냈다. 자욱하게 쌓인 먼지를 훅 하고 불며 손으로 털어내자 보라색 정장을 차려입은 토끼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토끼와 흡사하게 생긴데다 귀가 축 늘어질 정도로 무척 긴 인형이었다. 노파가 쓴웃음을 지었다.

  “널 다시 깨울 날이 올 줄이야.”

  노파는 토끼인형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에서 나뭇가지로 마법진을 그렸다. 노파는 마법진의 중심에 인형을 놓고 작은 삽으로 흙을 퍼내 인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렸다. 마지막으로 노파는 무언가 잊은 게 없는지 생각했다.

  잠시 후, 집에서 나온 노파의 손에는 잘 익은 포도가 있었다. 노파는 포도를 옷자락 속에 숨겨놓고 마법진 앞에 섰다. 그녀는 간결하게 말했다.

  “그레빗, 일어나렴.”

  마법진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레빗에게 뿌려놓았던 흙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마법진 전체를 품고 있던 빛도 점점 그에게 모여들었다. 마침내 흙과 마법진이 모두 그의 속으로 사라졌다. 그레빗은 한동안 환하게 빛나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노파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법진이 잘못됐나?”

  그 때였다. 그레빗이 ‘츄!’ 하고 재채기를 했다. 뿌연 먼지가 튀어나와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레빗은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렸다. 노파가 뿌연 먼지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레빗은 화들짝 놀라 긴 귀 뒤에 몸을 숨겼다.

  “아이고, 나 때문에 놀랐나 보구나. 괜찮니?”

  그레빗이 귀 사이로 노파를 엿보았다.

  “혹시 내가 기억나니?”

  노파의 목소리에 그레빗이 다시 귀 뒤로 숨었다. 노파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아참!’ 하고 품에 숨겨놓았던 포도를 꺼냈다.

  “자, 네가 좋아하는 포도야.”

  그레빗은 포도라는 말에 한 쪽 귀를 쫑긋거렸다. 쫑긋거린 귀 아래로 초롱초롱해진 눈동자가 드러났다. 포도의 냄새가 나는지 조막만한 코도 움찔거리고 있었다.

  노파는 포도 알 하나를 그레빗에게 건넸다. 그레빗은 무척 조심스럽게 포도 알을 받아들었다. 그는 포도 알을 지그시 보더니, 부모의 허락을 맡는 아이처럼 노파를 올려다보았다.

  “먹어도 된단다.”

  그레빗이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포도 알에 입을 대고 안에 든 즙을 단숨에 빨아들였다. 그가 찌그러진 포도 알에서 입을 떼어내자, 보라색으로 물든 인형의 만족스러운 얼굴이 나타났다.

  “이제 진정이 됐니?”

  그레빗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나를 알아보겠니?”

  그레빗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노파를 유심히 보았다. 다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실은 네게 부탁할 일이 있단다.”

  그레빗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그레빗은 성격은 제멋대로이지만, 포도를 대가로 받은 일에 있어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노파는 그레빗에게 아이를 돌봐주길 부탁하고 곧장 약재실로 갔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는 약을 찾고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노파는 엘프 여자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누가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특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선 ‘과정’이 꼭 필요했다.

  동쪽 대륙에 있어야할 엘프가 어째서 서쪽 대륙에 있는 것인지.

  이 일을 누가 주도했는지.

  어째서 인간이 아닌 엘프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목적인지까지….

  그 때, 노파의 뇌리로 ‘전쟁’이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설마….”

  노파는 고개를 털었다. 멈춘 손을 움직여 다시 약을 찾았다. 그럴 리가 없다며, 그래선 안 된다며 그 단어를 애써 잊으려 했다. 마침내 찾던 약을 손에 넣은 노파는 한 걸음에 여자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약을 먹기 전, 여자의 손을 굳게 잡고 말했다.

  “내가 네 기억을 들여다보는 걸 부디 용서해주렴.”

  노파는 망설임 없이 약을 먹었다. 그리고 여자의 손을 잡은 채로 침대 옆 탁자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이윽고 노파의 눈이 완전히 감겼을 때, 노파의 정수리로부터 하얀 무언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개구리는 잠들어있는 엘프 여자의 머리맡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몇 번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여자의 이마에 뛰어들어 그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피부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 [3] 기억 속으로(비티 시점) 2017 / 9 / 18 3 0 4817   
2 [2] 만남 2017 / 9 / 18 204 0 4220   
1 [1]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에서의 어느 하… (2) 2017 / 8 / 26 419 1 530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