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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물의사 옥선생
작가 : 연지주자
작품등록일 : 2017.7.28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된 27살 설희. 그 곳에는 염라대왕 보다 더 무서운 수의사 옥 선생이 있었다. 특이하고 재수없는 이 남자, 근데 자꾸만 이 남자한테 눈이 간다.

 
24화 : 콩, 콩, 콩
작성일 : 17-09-05 22:58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4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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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콩. 콩.

  설희는 케이지에 머리를 세 번 가져다 박았다. 강아지 입원실에서 케이지 속에 든 곰곰이를 만나러 남들 보다 먼저 출근한 길이었다. 이마가 케이지에 부딪치며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충격이 모자라 다시 한번 머리를 가져다 댔다.

  콩. 콩. 콩.

  전날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설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다시 케이지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곰곰이는 그런 설희의 행동이 이상한지 큰 눈을 뜨고 깜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곰곰아 넌 좋겠다. 연애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돼서. ”

 

  어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 유설희씨, 당신이 너무 좋아. "

 

  옥 선생이 설희에게 말했다.

  내가 너무 좋다고?

  순간, 좋다에 다른 의미가 있나 생각했다. 설마, 여자로서 좋다는 건 아니겠지? ‘직원으로서’ 좋다. ‘세입자로서’ 좋다. 그런거... 아니야?

  그러나 아무리 둔하고 둔한 설희라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촉촉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며, 아랫 입술을 살짝 물고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옥선생의 표정은, 누가 봐도 고백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오피스텔 복도의 형광등이 깜박일 때마다, 그의 눈에서 빛이 쏟아졌다.

  옥 선생이 날 좋아한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키스도 하고, 밥도 먹으러 갔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이 하는 공상이었을 뿐, 언젠가 옥 선생이 자신에게 고백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 설희는 태어나서 좋아한다 고백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전 남자친구인 찬정과는 대학교 동아리 술자리에서 돌아가는 때, 찬정이 “야, 유설희, 우리 사귀자. ” 한 것이 사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는 누군가에게 고백 받은 적이 없었다.

  너무나 진지한 말에 설희는 그만 얼음이 되어 버렸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 너무 급작스러웠나? ”

 

  멍하게 그만 바라보는 설희를 보고 옥 선생이 살짝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나지막한 목소리. 반말에 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설희는 그런 옥 선생 때문에 심장이 떨렸다.

 

  “ 저, 저... ”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아 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설희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설희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전날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설희는 머리를 콩콩콩 케이지에 가져다 박았다. 아무리 당황하고 아무리 급작스러워도 정말 감사합니다가 뭐니?

  설희는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설희의 말에 옥 선생은 당황하기는커녕, 평소에는 짓지도 않는 따뜻한 웃음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옥 선생이 돌아가고 나서 설희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죽어야지. 죽어야지!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니, 최악의 답변이야.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지. 차라리 기절을 해버리지, 그게 뭐냐고!

  아무리 화가 나도 이미 옥 선생은 집에 가버린 이후였다. 창피함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오늘도 옥 선생을 만날텐데... 뭐라고 하지? 설희는 걱정이 되어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옥 선생이 올텐데, 옥 선생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가.

 

 

  * * *

 

 

  설희의 걱정과 달리 옥 선생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설희와 마주쳤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 빨리 왔네요? ” 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설희는 옥 선생을 바라보자 얼굴이 불타오르듯 빨개졌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데, 설희 자신도 차분하게 그를 보고 싶은 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 날은 옥 선생 담당의 강아지 3마리의 중성화 수술이 있었다. 수술의 조수로 들어간 설희는 살짝 안도가 됐다. 수술도중에는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것도 옥 선생에게 들키지 않을 터였다.

  수술이 시작되자, 옥 선생이 메스를 쥐고 아주 작게 상처를 냈다. 안에 기구를 넣어 고환을 적출한다. 그리고 재빠르게 상처를 봉합했다. 5분도 되지 않아 수술은 끝이 났다. 그 수술 시간 내내, 설희는 옥 선생의 빠르고 예민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길고 예쁜 손가락. 수술 장갑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하얀 피부에 섬세한 손이 옥 선생은 참 예뻐. 그러고 보니 예전에 키스했을 때, 그의 손가락이 내 뺨을 쓸어내려...

  유 설희. 정신 차려.

  설희는 숨을 들이쉬며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가 양 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수술 중에. 옥 선생은 너무나 멀쩡한데, 설희는 어째야 할줄을 몰랐다. 좋아한다는 것은 옥 선생인데, 왜 내가 이렇게 난리람.

  진료를 보는 와중에도 설희의 동요는 멈추지 않았다. 재키라고 하는 커다랗게 예쁜 3살의 독일 셰퍼드가 내원해 옥 선생님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상담을 받는 도중, 옥 선생이 그녀를 바라보닸다.

 

 “ 설희씨, 미안한데 혈액검사 결과좀 가져다 줄래요? ”

 

  옥 선생이 설희에게 너무나 차분히 오더를 내리고 보호자에게 시선을 돌려 상냥하게 말했다.

 

  “ 보호자님. 재키가 밥을 많이 먹는데도 체중이 급격히 줄어 걱정이라고 하셨었는데, 검사 결과 췌장 분비 부전증 인 것 같습니다. 쉐퍼드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유전성 질환인데, 확실하게 검사하기 위해서는 tli테스트라고 해서 혈청중에 트립신 면역활성 물질이라는 것이 얼마나 있나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췌장 분비 부전증이요? ”

  “ 네. 췌장에서 소화효소들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많이 먹는데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살이 찌지 않아요. ”

  “ 위험한가요? ”

  “ 목숨이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만약 확진이 되면 평생 소화 효소를 먹이셔야 합니다. ”

 

  옥 선생이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목소리는 참 나긋나긋하고 듣기가 좋다. 잘 생기고 예쁜 입술이 보기 좋은 곡선을 그리면서, 가끔 보호자를 향해 짓는 미소가 너무 예뻤다. 그렇게 옥 선생이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보니, 옥 선생이 설희를 바라보았다.

 

  “ 설희씨. ”

  “ 네? ”

  “ 혈액검사 결과 부탁했는데? ”

 

  옥 선생의 질문에 설희는 눈을 크게 떴다. 옥 선생이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목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옥 선생이 시킨 일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던 걸 깨달은 설희는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올게요! ”

 

  보호자가 돌아가고 나서, 옥 선생이 인상을 찌푸리고 설희를 보았다.

 

  “ 유 설희씨. ”

 

  혼날게 틀림없다. 설희는 고개를 숙이고 떨어질 불호령을 기다렸다.

  사적 감정과 공적인 일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어제 물론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듣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인인데, 하루 종일 실수하고 그러면 어떻게해.

  그러나 옥 선생은 화가 아니라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 한숨이 바람을 타고 날라와 설희의 마음에 콕콕콕 박혔다.

  옥 선생님... 실망했구나.

  고백 같은 거 별것도 아닌데, 그것에 이렇게 심란해하고 기분이 붕붕 떠서 일도 못하는 나같은 여자는 옥 선생님 같은 완벽주의자에게 너무 실망스러운 존재겠지. 이제 싫어졌을 지도 몰라. 아니, 원래 좋아한 것 자체가 실수라고 생각할 지도 몰라.

  설희가 입술을 깨문 채 가만히 이어질 옥 선생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설희의 예상과는 달리, 옥 선생의 말투는 따스했다.

 

  “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럽니까? ”

 

  그의 말에 설희가 눈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 있었다.

 

  “ 내가 한 말이 부담 되서, 병원에서 집중이 안 됩니까? ”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프라이빗 한 일을 직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사람으로 옥 선생이 생각할 까봐 두려웠다. 대신 용기를 내 목을 쥐어짰다.

 

  “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부담...되지 않아요. ”

 

  그렇게 조심조심 이야기 하며 옥 선생의 안색을 살피자, 옥 선생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설희에게 말했다.

 

  “ 다행입니다. ”

  “ 뭐가요? ”

  “ 내가 유설희씨를 너무 좋아해서, 설희씨가 당황해서 오늘 실수하는 줄 알았습니다. ”

 

  설희를 좋아한다는 옥 선생의 말에 설희의 얼굴이 불타오르듯 빨개졌다. 귀와 목 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설희를 보자, 옥 선생이 미안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 미안합니다. 병원에서 하기엔 부적절한 말이네요. ”

  “ 아, 아, 아...아니에요. ”

 

  겨우 대답하자 옥 선생이 싱긋 웃었다.

 

  “ 앞으로는 조절해 보겠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좋아해본 게 처음인지라 조절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

  “ 네... ”

  “ 근데 설희씨. ”

  “ 네? ”

  “ 오늘 설희씨 참 예쁘네요. ”

 

  쏟아지는 옥 선생의 말에 설희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옥 선생이 뭘 말하는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뻣뻣이 서있는 설희와 달리, 옥 선생은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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