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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러브인더퓨처
작가 : 물빛향초
작품등록일 : 2016.5.16

18세의 영웅소녀 유아영의 이야기.

 
2화 - Chapter-1.2 휴가를 허락받다! (1)
작성일 : 16-05-17 00:27     조회 : 354     추천 : 0     분량 : 1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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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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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고백을 받았는데 거절했단 말야?

 "응."

 -왜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고, 아영은 귀를 막았다. 그래도 울림 있는 목소리가 손을 뚫고 여지없이 들려왔다. 하긴, 머릿속에 울리는 것은 애초부터 귀가 문제가 아니니깐.

 

 -대답해봐. 궁금하잖아.

 

 아영은 꺼끌한 냅킨에 싸여있는 포크를 들며 말했다.

 

 "...내 맘이지. 꼭 남자가 다가온다고 사귀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난 이제 18세라고!"

 -수상한데. 항상 남자가 사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잖아? 그보다 난 네 취향을 잘 알고 있는데...

 "아, 시끄러워!"

 

 아영은 흰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 앉은 채로, 샐러드를 한 입 넣고 와작거렸다. 연한 노란색을 자랑하는 파인애플 샤벳을 뿌린 샐러드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녀는 두 번째로 뭘 먹을까 두리번거렸다. 눈앞에는 소면이 든 그릇과 수프, 넓다란 접시에 비해 다소 초라한, 주먹만한 전채요리를 포함한 코스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아직 메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영은 벌써부터 군침을 다셨다. 바닷가재 풀코스는 언제든 먹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끝내준다. 오들오들한 느낌에 감칠맛 까지..."

 -니가 미식가냐.

 "아, 왜 맨날 뭐라 그래? 맛있게 잘만 먹고 있구만."

 

 높낮이라고는 거의 없는 무미건조한 음성이, 퉁명스럽게 느껴진 것은 왜일까.

 

 -항상 그런식으로 합리화를 하곤했었지.

 

 2.2kg을 자랑하는 바닷가재 요리가 한 상 다시 나오자 그녀는 군침을 흘렸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들을 접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주홍빛의 가재 다리가 4개, 그리고 반은 양념700g짜리 가재 2마리였다.

 

 흰색에 가까운 연한 미색빛의, 속살을 드러낸 가재회에 레몬즙을 뿌린 아영은 한 젓가락을 들고 소스가 담긴 그릇에 듬뿍 찍었다.

 

 그녀는 한 점을 들고 씹기를 반복했다. 물어뜯듯이. 감촉은 훌륭했다.

 

 "으흐흐, 메인이다."

 -쯧쯧, 여유 넘치게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운동을 같이하는게 좋을 텐데. 최근 한 달 사이 운동량이 10.7%정도 줄어들었는데...

 "자꾸 그 난리를 치면 꺼버리겠어."

 -알았어, 알았다고.

 

 '그리고 바닷가재는 칼로리와 콜레스테롤이 낮은 편이다'라고 작게 항변한 아영은 잠깐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흰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하나, 의자하나, 거기에 앉아있는 것은 단연 그녀 혼자였다. 주위는 밝았다. 하얀 햇살이 테이블 주변에 들이쳤고, 그녀는 그런 햇살이 반사되는 눈부시도록 푸른 바다에 와 있었으니. 등뒤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마치 물방울 안에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갈매기 몇 마리가 날고 있었다.

 

 옅은 바람이 머리칼을 쓸어오는 것을, 아영은 충분히 만끽했다. 모든 것은 인공적이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보는 바다...바다와 하늘이 닿는 먼 곳의 수평선은 가짜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이다.

 

 -아름답군.

 "로봇이 그런 말할 때마다 가끔씩 깜짝 놀라는데."

 -나야 뭐. 인간의 감성마저 받아들일 수 있게 설계되었으니까. 감성지능이 있는 로봇이랄까.

 "감성, 힐링. 한 때 유행인 단어였지."

 -그래. 맞아. 지구가 어려울 때. 한창 공감을 얻던 단어였지.

 "지금도 충분히 어렵다고. 적어도 놀고먹는 시대는 아니니까..."

 

 벌써 가재회를 반 넘게 비워버린 아영은 조용한 바닷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박거리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다보니 그 위를 걷고 싶어졌다. 그러나 대신 아영은 이렇게만 말했다.

 "실리아, 나 와인이 한 잔 마시고 싶어."

 -기다려봐.

 

 스스스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새 얼음이 가득 담긴 와인 냉동고 하나가 그녀 곁으로 소리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조류의 그것과 비슷한, 얇다랗게 위로 솟아있던 생기없는 은색 뼈대의 기계 팔뚝 하나가 그녀의 앞에 다소 거칠게, 검은 빛의 와인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영이 한기가 피어오르는 병을 보고만 있자 실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까 데 만돌리 모스카토 다스티.

 진한 노랑색의 스위트 스파클링와인. 각종 열대과일의 향과, 여러 꽃향이 적당히 어우러지며 적당하게 달콤, 상콤하고 유쾌한 산도가 입안에서 지속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걸로 할래?

 

 아영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꽃향과 열대과일'이라는 말이 귀를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파인애플같은 열대과일을 사랑했다.

 

 "좋아. 이게 어울릴 것 같아. 가격은?"

 -공짜야. 네가 쓰는 것, 입는 것은 전부 다. 여태껏 몰랐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으, 그 말 들으니까 부담된다."

 -네가 말하는 '그 인간'이 뒤에서 식충이라고 욕할까봐?

 

 아영은 솔직하게 긍정했다.

 

 "응. 난 '그 인간'이 무서워. 그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 차라리 내 매력에 홀랑 빠져버리면 좋을 텐데."

 -꿈 깨.

 

 아영은 입을 비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농담이야."

 -수틀리면 베어버려. 영웅 나으리.

 "흥. 사람이잖아. 사람을 벤 영웅이 어딨어?"

 -네가 최초가 될지도 모르지. 어쩌면.

 "꿈 깨."

 

 와인잔은 특이하게도 용이 입을 위로 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둥이에 병을 대고 기울이자 진보랏빛의 걸쭉한 와인이 서서히 잔을 채워갔다.

 

 "으. 데몬의 피같아."

 -와인앞에 실례로군.

 "음...그럴지도. 아쉽게도 탕이 없네."

 

 실리아의 대답은 짧았다.

 

 -식당이 고장났어. 미역국밖에 제공이 안 돼.

 

 아영은 입맛을 다셨다. 쯥쯥, 따끈한 국물이 뱃속에 에너지를 채우듯 채워주면 좋으련만, 그것만큼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오랜만의 식사인데...

 

 그녀가 메인 식사를 마치자마자 볶음밥과 함께 미역국 한 그릇이 나왔다. 탕을 추가할 수 없어 아쉬움이 더해졌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식사였다. 곧이어 나온 오렌지 2조각을 씹은 그녀가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쯤, 말을 꺼냈다.

 

 "...실리아, 내가 잘한 거겠지?"

 

 실리아의 음성은 주저하지 않고 들려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글쎄. 내가 볼 땐 잘 모르겠는데. 소년미를 가진 그 아이가 네 취향에 딱 맞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네 선택은 방금 문학적인 표현으로 '현명하지 못한'결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조용히 안 할래! 그런 말을 바란게 아냐. 난 그냥..."

 

 실리아는 왠지 피식 웃고 있을 것 같다, 씁쓸한 표정으로. 머릿속에 스친 아영의 생각은 그랬다. 왜지.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아영. 언제는 엄마처럼 굴어주길 원한다며? 아직도 생각나. '등짝이라도 때려줬으면', 그렇게 말했던 네가.

 "...시, 시끄러워!"

 

 아영은 버터구이가 랍스타 소스가 묻은 칼을 짐짓 난폭하게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자꾸 그런 소릴 하면 널 촥촥촥...이렇게..."

 -어이구,무서워라. 그런데 왠일이야? 맨날 알약으로 해결했으면서.

 

 돌아온 아영의 대답은 짧았다.

 

 "스트레스."

 -그런가. 유리안이라는 소년이 네 취향이었는데 억지로 거절해서?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거절당한거 아냐?

 "아냐! 음...그러니까...한 번쯤은 '인간다운 식사'가 하고 싶기도 했어. 오랜만이니까."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영은 항상 식사를 캡슐 알약으로 해결했고, 음식을 먹지 않은지도 열흘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녀가 먹었던 음식이라고 해봐야 소프트 콘 아이스크림 정도였다. 1세기 전까지 유행했던.

 

 아니, 따지고 보면 그녀 자신 뿐만이 아니라 현대인은 대부분 그랬다. 아침 공복에 복용한 알약 캡슐로 세 끼의 식사를 건너뛸 수 있으니 그 편리성이란 주목할 만했다. 그것으로 인류는 1시간30분이라는 시간을 절약해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식도락을 잃었다. 그건 사실 또 다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상현실 안에서의 식사도 가능은 하지만, 아직 100퍼센트의 효과를 낼 수는 없다. 그래서 증강현실이 이를 대신한다. 식사는 실제로, 공간은 가상으로.

 

 알약의 이름은 오버밀9.7(overmeal9.7)이라고 했다. 세간에는 맛과 영양과 식감이라는 3대 요소를 잡았다고 했지만...

 

 ...맛은 없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도. 간편 식사여도 맛있고 즐겁다면 좋을 텐데.

 

 언젠가 매체에서 보았던 안경잽이 과학자의 주장이 생각났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먹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인류에게 입을 포함한 각종 장기가 남아있는 한.'

 

 그런 생각을 마칠 때쯤 머릿속에서 다시금 묵직한 실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년은 어떡할 거야? 순진해 보이던데. 괜히 마음에 상처라도 입은 것 아냐? 뭐라고 해명도 없이 '거절할게요'는 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아영은 나이프를 접시에 찍고 슬슬 흔들며 말했다.

 

 "알아. 하지만...어쩌면 그게 맞는 것 아닐까.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나도 바보는 아냐. 눈치채고 있었다고. 걔가 날 첫 시간부터 쳐다보는걸..."

 -가는 곳마다 인기가 만점이어서 좋겠는 걸. 하긴, 네 모습을 보면 인간 남성이 반하지 않는게 더 이상한 일일 거야. 네 관능적인...

 "죽을래! 안그래도 사람이 고민해서 대답한 건데 놀리기나 하고..."

 

 그러나 아영은 왠지 다음 순간 실리의 대답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예상한 그녀가, 사람의 마음마저 읽을 만큼 똑똑한 그녀가 내놓을 만한 대답을...

 

 -잘했어. 아영. 합리적인 결정이었으니.

 

 그 말을 들은 아영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말을 들었으면 그래도 뭔가 기운을 얻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이프를 잡은 손이며 어깨가 축 쳐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래. 너도 역시 잘했다고 말하는구나."

 

 아영은 씁쓸하게 마지막 남은 가재회 한 점을 집어들고 입안에 넣었다. 왠지 쫀득한데, 아까보다 달짝지근하지 않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었을까?

 

 -참, 그러고 보니 음성편지가 한 장 와 있었어. 여기서 들어볼래?

 "누구한테 온 거야? 구식이네. 왠 음성? 영상도 아니고. 설마 광고는 아니겠지?"

 

 아영은 눈을 가늘게 떴고 실리아는 한 차례 건조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방금 그 말 체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걸. 네가 사랑해 마지 않는 동생에게서 온 건데.

 

 '아, 정말?'이라고 외친 아영은 곧바로 외쳤다.

 

 "OFF."

 

 그러자 아까까지 펼쳐져 있던 바다며 하는 모든 풍경들이 사라지고, 각진 사각형의 방 하나만이 있었다.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그저 와인바 로봇만이 저 멀리서 이동해가는...

 

 아영이 말했다.

 

 "방으로 가자."

 -그래. 그래야 너답지. 알겠어.

 

 .......

 

 그녀는 욕조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하얀 목덜미의 살결, 목 아래로는 반투명한 유리 욕조에 묻혀져 있었다. 욕조는 거대했다. 왠만한 승무원의 방 하나 정도 크기만큼, 간단하게 수영 자세를 해도 좋을 만큼.

 

 "수영장에 가고 싶다."

 -감사하게 여겨. 이만하면 극진한 대우잖아. "그거야 그렇지. 난 수영이 하고 싶다고 말한 거야, 실리(silly)(그녀의 이름은 실리아이지만 별명으로 실리라 부른다.)

 -어리석은, 그게 맞을지도.

 "무슨 뜻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만 해도 소행성 FE3200의 궤도를 바꿨어. 충돌각이었는데.

 

 아영은 한숨인지 모를 것을 토해냈다. 욕조 위의 새 머리 장식의 와인잔에는 검붉은 액체가 반쯤 차올라 있었다. 아영은 그것을 들고선 말했다.

 

 "인류는 나날이 발전하는것 같아. 이제는 소행성마저도 위협이 되지 않으니."

 -별로 기뻐하는 것 같지가 않네.

 

 그러더니 실리아의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기쁨 반, 슬픔 반'이 감지되었습니다. 인류의 진보를 기뻐하지 않다니. 가끔 네가 인간이 맞나 의심스럽다니까. 차라리 데몬족의 첩자라고 하면 믿었을 지도.

 "......그냥 넌 입다물고 있는게 도와주는 거거든?"

 

 그러나 실리는 보이지 않는 점을 한껏 이용할 줄 아는 로봇이었다.

 

 -누가 보면 영웅 성격이 이렇게 지랄-맞은 지는 잘 모를거야. 특히 그 유리안이라는 소년에게 네 폭력적인 행동들을 녹화해서 보내주고 싶은데. 아마 볼만한 광경일거야.

 아영은 허공에 비누거품 투성이인 주먹을 쥐며 외쳤다.

 

 "아오, 네가 만약 실존하는 생물이었으면 지금 당장 확 목을 비틀어버렸을 거야. 실체가 없는 걸 감사하게 여겨, 실리!"

 -그건 실례되는 말이야, 아영. 모든 로봇의 소망은 움직일 수 있는 육체와 자유를 가지는 거야. 특히 나같은 종류의 로봇에게는 말이야.

 "그래. 미안. 간곡히 말하건대 네 소망이 이뤄졌으면 좋겠어. 그러니 날 좀 내버려둬."

 -......

 

 ......

 

 

 -사랑하는 언니에게.

 

 언니, 3일의 휴가를 받았어. 이번에 데몬을 잡았거든, 그래서 진급하고 휴가를 얻었어. 그러니 축하해줘. 언니가 ‘이스크라(iskra)’함에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귀한 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살인적인 일정이 아니라면 한 번쯤 고향에 들르지 않을래? 난 고향에 있을 생각이야. 휴가는 2432년 4월11일 07시부터 2432년 4월 14일 20시까지야. 편지를 보면 답장해줘. 이번에 꼭 봤으면 좋겠어. 못 본지 벌써 2년 정도 지났잖아.

 

 12일이 기념일이기도 하고.

 

 “으이그, 얘는 꼭 마무리를 안하고 보내더라. 음성편지를 보낸 걸 보면 얘도 참 원시적인 걸 좋아한다니까.”

 -사돈 남 말하네.

 

 실리아가 말을 이었다.

 

 -갈건가?

 "응. 당연하지. 왜? 나도 휴가를 받았는걸. 문제될 것 없잖아."

 

 그렇게 말한 아영은 약간 들뜬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2년만이다. 설레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얼굴마저 잊어버릴 것만 같다...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신체능력이 80%로 저하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둬. 아직 회복이 끝난 건 아니니까.

 "그래. 고마워, 실리아."

 -이번엔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군.

 "흥. 나만한 사람 또 없지?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

 -그래. 확실히 난 전함의 모든 인간들과 대화하지만, 너 같은 유형의 인간은 처음이야.

 "나같은 유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칭찬이야.

 ......

 

 그녀는 흰 색, 직선으로 뻗은 복도를 뚜벅거리며 걸었다. 천정에서부터 하얀 빛이 바닥을 비추는 것이 조금 눈부실 정도로 밝았다. 먼지 하나 없는 청결하고 넓은 복도를 어느 정도 걸었을 때, 그는 죽은 청색 모자를 눌러쓴 구부정한 남자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렐.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섹시하군."

 "킥, 여전하네요. 다리를 쳐다보는 건 그만두시겠어요?"

 

 그의 옆에는 고장이 났는지 인간형 로봇 하나가 반쯤 누워 있었다. 인간형이라고는 하지만 순백의 특수 플라스틱인데다, 표정도 감정도 없는 그 저 두눈을 가진 로봇일 뿐이다. 그는 그 자세에서도 아영을 향해 경례를 했다. 렐이 말했다.

 

 “고장났어. 고치는 중이야. 이래봬도 청소로봇관리원이니까.”

 

 그는 자부심이 넘친다는 표정으로 아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자글한 그의 얼굴은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모습이었고, 면도마저 되어있지 않아 본래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먹은 것처럼 보였다. 렐은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얼굴엔 마가 끼어있어. 여전히. 조심하는 게 좋아."

 "지겹네요, 또 그런 소릴..."

 “농담이 아냐. 내가 이래봬도 사주 좀 볼 줄 알지.”

 "렐, 지금은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어쩌니 하던 시대가 아니라구요. 2400년이 반세기쯤 지나가고 있는 이 마당에..."

 "훗, 나의 사주풀이 실력을 무시하는 건가?"

 

 아영은 이제 됐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고, ‘토성의 기운이 어쩌네’하는 그를 지나쳐버렸다. 함장실이 이 길이 아니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 번에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지하로 갔다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함장실로 직행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3분쯤 지나 도착한 맨 끝의 함장실 흰 문은 역시, 굳게 닫혀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가까이에 서자 갑자기 밝은 녹색빛이 그녀의 몸을 한 차례 휘감았다. 회오리처럼.

 

 -바디스캔을 시작합니다.

 

 곧이어 아무 느낌도 없는 빛이 그녀의 몸을 조이듯이 더욱 세게 휘감았다. 아영은 미동도 없이 정지해 있었다. 길다면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 지나있는 시간은 10초 정도였다.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유아영 대령님.

 

 문이 열리고 그녀가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방 안에 있는 세 사람의 고개가 아영쪽을 향해 돌려지는 것이 보였다. 중년의 여인 한 명, 그리고 양편에 서 있는 남자 두 명이었다.

 

 "함장님."

 "아영이군. 어서와."

 

 깎듯하게 경례를 마친 아영은 다시 부동자세로 섰다. 군더더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이 묻어있었다.

 

 "이미 실리아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래. 저번에 받은 휴가를 사용신청했던데. 3일이었던가."

 “네. 부함장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오히려 다른 남자에게서였다. 올해 59세이지만 외모는 수려한 20대와 같은, 그러나 사사건건 방해하는 나머지 아영이 '그 인간'이라고 부르는...아영은 일부러 그쪽에는 시선을 길게 두지 않았다. 그리곤 함장을 향해 말했다.

 

 "라사라 함장님."

 

 라사라는 이해했다는 듯이 손목을 까딱거렸다. 그녀는 영롱한 푸른 눈을 한쪽만 뜨고서 말했다.

 

 "못 보내줄 이유가 없지요.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그러자 그 인간, 키큰 남자는 라사라를 흘끗 바라보며 입을 뗐다.

 

 "으음...함장님. 그럼 호위를 붙이는 걸로..."

 

 아영은 그 말을 단박에 잘랐다.

 

 "저 혼자 충분해요. 호위는 필요없어요. 가까운...기껏해야 4시간 정도 거리밖에 안되는 걸요. 부함장님."

 

 그러나 부함장이라 불린 사내는, 굳게 다문 입으로 고개를 수 차례 저었다.

 

 “자넨 항상 고집을 피우는 군. 항상 말하지만 자네는 공인이야. 멋대로 행동하면 안된단 말일세. 게다가 데몬과의 저번 싸움에서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잖은가.”

 

 아영은 한 차례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놈의 트집이란.

 

 "뭐가 안된다는 거죠? 제 몸 정도는 제가 지킬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긴 데몬들도 침투가 불가능한 구역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태양계 안쪽, 정확히는 해왕성 기지까지는 적이 침투할 수 없는 실드가 쳐져있는데,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보고서를 못낸건 UHES강의 때문이에요. 저도 강의를 녹화해서 보여주고 싶지만 교육부의 방침이 실제 강의를 원하는 걸 어떡합니까? 그리고 아직 마감 기한도 지나지 않았어요. 항상 그렇게 뭘 잘못한 듯이 몰아붙이시지만, 가람 부함장님이 그렇게 ‘세세하게’ 걱정해주실 정도로 미흡한 인간이 아니라구요, 전.”

 “......”

 

 아영은 불만스럽게 입을 내밀었고, 다시 라사라 쪽을 보았으며, 라사라의 곤란해 하는 듯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송곳니를 세운 날카로운 기운을 지닌 동물처럼 으르렁댔다.

 

 "그럼 쓸데없는 논쟁을 그만하죠. 전 가고 싶어요. 연합군의 의무 중에는 ‘개인의 자유보장’도 들어있지 않은가요?"

 "그건 그렇지..."

 "그걸 알고 계시다면 제 짧디 짧은 휴가를 반대할 정도로 어리석은 주장을 펼치시는 이유가 뭐죠?"

 

 가람은 순간 소매 아래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리석다, 그건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함장과 제2부함장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구태여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항상 신경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그녀의 말버릇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한 번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역시 라사라의 부드러운 음성이 둘의 사사로운 언쟁을 중단시켰다.

 

 "그래. 이런 일까지 날 세울 필요는 없네. 장기휴가도 아닌데다 아영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다녀와도 좋아."

 

 그녀는 한 번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경례를 했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편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금빛 도는 아영의 눈이 함장실을 떠나기 전, 신경질적인 눈으로 가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대로 통보는 해놓을 테니까요. 왕복 시간을 제외하면 겨우 이틀의 휴가에요."

 "흐음......"

 

 가만히 있다가는 또 무슨 소릴 들을 것만 같아서 아영은 홱 하고 고갤 돌려 나가버렸다. 다소 무례한 행동일 수 있지만 라사라는 그런 그녀를 웃으면서 쳐다보았고, 이윽고 문이 슈슈슈-소릴 내며 닫힐 때까지 보고 있었다.

 

 .......

 

 한가람, 전함의 제1부함장인 그는 크흠,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라사라를 보며 말했다.

 

 “함장님,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이처럼 무례한 태도가 지속되면 곤란합니다.”

 “그대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저는 둘이 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군요.”

 

 그러나 가람은 라사라의 말을 반쯤 무시하는 듯 말을 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녀에겐 일종의 구속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언제까지고 저렇게 활개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이번엔 올바른 경우라지만 저번 같은 경우에는 다소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위험에 빠진 동료들을 구할 수 있었죠. 이스크라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지만 결과론적인 사고방식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뜻은, 전술적인 의미에서는...”

 

 그러나 서울을 모르는 그녀는 다시 손목을 휘휘 내저었다. 목석같은 그와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을 계속 벌이는 것은 그녀에게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을 잘하시는 분이, 왜 아영이 앞에선 아무런 말도 못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저...”

 “아영에게 보고서 제출이 필요하다면, 그대에게도 필요합니다. 부함장은 ‘어떻게 하면 아영과 친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보고서를 제출해주세요.”

 

 옆에서 킥, 하고 웃는 소리가 한 차례 들렸고, 가람이 쏘아보자 그 웃음소리는 멈추어졌다. 얼굴이 붉어진 가람은 머쓱해진 나머지 뒷머리만을 긁적거리며 앞만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힌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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