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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연(連)
작가 : 빙그레미소
작품등록일 : 2017.8.26

엘프 엄마
오크와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그리고 그들을 받아준 노파
그들로부터 시작하는 판타지 드라마.

 
[1]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에서의 어느 하루.
작성일 : 17-08-26 21:49     조회 : 419     추천 : 1     분량 : 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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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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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서쪽 깊은 산속에 위치한 어두컴컴한 굴이다. 아침 해가 뜰 때면 굴 안에서 잿빛 피부를 지닌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굴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건 오직 그 괴물뿐이었다.

  괴물은 덩치가 매우 크고 성격이 사나웠으며 생긴 것도 흉악했다. 그것의 턱은 어떤 생명체의 뼈도 간단히 으스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고 강했다. 입의 양쪽으로는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도 튀어나와 있었다. 괴물은 오른손으로 거대한 도끼를 짊어지고 숲으로 나섰다. 세간에서 오크라 불리는 이 괴물이 굴에 돌아오는 건 자정 무렵의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괴물의 하루를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굴속은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캄캄하기만 했다. 괴물이 사라진 굴속은 흡사 평화로워보였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달랐다. 처음 들어오면 눈이 빛을 찾아 잠시 길을 잃고 말지만, 곧 어둠에 익숙해졌다.

  굴속은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싸늘해보이는 동굴 벽면에 온갖 종류의 고기들이 못에 박혀 매달려있었다. 들짐승들을 비롯해서 조류와 어류, 심지어 인간의 형태를 한 것까지 다양했다. 한쪽 구석으론 고기들을 손질하는 장소로 보이는 나무판이 있었다. 나무판의 곳곳에는 멍이 든 것처럼 핏자국과 곰팡이가 잔뜩 슬어있었다. 모서리로부터 피가 방울을 지어 떨어지고 아래에 웅덩이를 만든 것으로 보아, 괴물이 아침으로 무언가를 먹은 게 틀림없었다.

  나무판의 맞은편에는 괴물 외의 다른 굴속 일원이 죽은 것처럼 누워있었다. 긴 귀를 가진 여자는 흔히 엘프라 불리는 종족이었다. 그녀는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침상 위에 누워있었다. 그 모습은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피부는 아름답기는커녕 그녀를 병자처럼 보이게 했고, 이국적인 느낌의 눈동자는 그 색이 바래어서 의도적으로 꺾인 꽃을 떠올리게 했다.

  볼록하게 솟은 배는 만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녀의 상태로 보아, 모체로서의 역할을 두 번 이상 할 수는 없으리라.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벽에 매달린 고기들처럼 오크와 자신이 낳은 자식의 양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저항했다. 이곳에 끌려왔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오크를 죽이려고 시도도 해보고 탈출을 계획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점 불러오는 배가 그녀의 의지를 꺾었다. 매일 하던 기도도 이제는 관두었다. 어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던 이야기들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신께서 직접 만든 유일하고 무일한 종족이 우리 엘프이니, 우리는 곧 그의 자손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속으로 어른들과 신에게 침을 뱉었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짜증나리만치 움직여댔는데 최근에는 잠잠했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라는 듯 이따금씩 느껴지는 작은 미동이 그녀의 기대를 저버렸다.

  “쓸데없기는.”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 가증스러운 것에게 몰래 칼을 겨눈 일이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그 더러운 짐승의 씨를 결코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계속 다짐했다. 하지만 이 날이 오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약해졌다. 혹시라도 태어날 ‘새하얀 피부’의 아이가, 죽은 생선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것이 두려웠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잠은 지옥 같은 현실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피비린내 때문에 잠들지 못하던 순수한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지만 말이다.

 

 * * *

 

  꿈을 꾸었다. 그녀는 익숙한 숲에서 잠이 깼다. 그녀는 이곳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굴 같은 건 없었다. 오크도 없었다. 벽을 장식하던 고깃덩어리들도, 피비린내도, 거칠기만 하던 지푸라기도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집을 향해 달렸다. 그녀의 마음이 원하는 것만큼이나 집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저쪽 끝에 어머니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녀는 한걸음에 달려가 소리쳤다. “엄마!” 어머니가 여자를 돌아보았다. 놀라는 얼굴을 하는 것도 잠시, 어머니는 여자의 배를 보며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

  여자는 자신의 배를 보았다. 풍선처럼 부풀어 혐오스런 그 배를.

 

 * * *

 

  그녀는 욕을 내뱉으며 꿈에서 깼다. 아직 해는 중천에 있었다. 그녀는 밖을 내다보았다. 햇빛이 무척이나 강했다. 너무 덥고 습해서 그 심한 정도가 싸늘한 굴속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꼈다. 배와 허리와 골반을 비롯해서 여태까지 느꼈던 산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의 시야에 다리 사이로 양수가 터진 게 보였다. 보통 양이 아니었다. 오크는 아직 사냥을 나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당면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자신의 왼손과 벽을 단단히 엮어놓은 녹슨 쇠고랑을 최대한 끌어내 팽팽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숨겨놓았던 칼을 꺼내 오른손에 거꾸로 쥐고 자신의 하복부를 노렸다. 쇠고랑을 굳게 쥔 왼손과 닮아빠진 칼을 쥔 오른손이 떨림으로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주문을 외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난 안 죽어, 난 안 죽어, 네 놈이 나오는 대로 죽여주마.”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몇 년 전에 봤던 산모를 떠올렸다. 그녀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온갖 감정들이 그녀의 안에서 뒤섞여 그녀를 방해했다. 혼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불안과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뱃속의 이물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녀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양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극심한 고통에 온 몸이 삐걱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왼손이 녹슨 쇠고랑을 끊어지도록 세게 쥐었다. 칼을 놓친 오른손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온 몸이 땀에 젖어 끈적거렸다. 제정신을 차리기가 버거웠다. 자칫 기절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곳에 더 이상 이성을 지닌 생명체는 없었다. 단지 새끼를 낳으려 몸부림치는 한 마리의 짐승이 울부짖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 *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갔을 때, 굴속을 메우던 비명이 그쳤다.

  굴속은 평소보다 역한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또한 잠시 동안이지만 침묵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깨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굴을 벗어나 산속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자를 각성시켰다. 그녀는 서둘러 아이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가랑이 사이로 흩뿌려진 양수와 피의 장막 속에 잠긴 아이를 보았다. 그녀를 닮은 금빛 머리카락 밑으로 오크답지 않게 뾰족한 귀가 솟아있었다. 생김새도 그들처럼 투박하기는커녕 갸름하고 예쁘장했다. 몸집도 자그마한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불행하게도 아이의 피부는 놈들의 그 증오스런 빛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피부색 따윈 더 이상 여자의 안중에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큰 소리로 울며 어미를 찾았다. 여자는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녀의 손에 칼은 없었다. 칼을 들어야겠다는 생각 또한 아이를 본 순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아이를 가슴에 품자, 아이의 울음이 멈췄다. 그녀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곳에 끌려와서 처음으로. 아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낀 그런 감촉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아, 내 아가.”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자는 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그녀로서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날들을 보낸 결과, 오크가 앞으로 두어 시간이면 이곳에 오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그녀가 옷을 뜯어 만든 요람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결코 놈에게 아이를 넘기지 않겠노라고.

  그녀는 밖을 내다보았다. 툭, 하고 빗방울이 여러 차례 떨어졌다. 곧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그것이 불행일지 다행일지, 그녀로선 이제부터 내릴 비가 자신과 아이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길 바랄 뿐이었다.

  여자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막 아이를 낳은 여자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도 어디서 이런 힘이 솟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볼 때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고 힘이 솟았다.

  그녀는 오른손에 칼을 쥐었다. 그리고 그 칼을 자신의 왼손에 가져다 대었다. 정확히 쇠고랑을 차고 있는 그 위치에.

  그리고….

 

 * * *

 

  “그래서요?”

  아이가 말했다.

  “잘랐어요?”

  “잘랐지.”

  노파가 말했다.

  “그리고 도망쳤어.”

  아이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아무래도 못 믿는 눈치였다.

  “말도 안 돼요. 저라면 못 했을 거예요. 아마 그 누구라도 못 했을걸요?”

  노파가 웃었다.

  “그녀는 가능했지.”

  “왜요?”

  “그녀는 엄마였으니까.”

  “어떻게요?”

  아이는 크게 몸짓을 하며 말했다.

  “마법을 썼나요? 아니면 엘프는 피를 많이 흘려도 괜찮은 건가요?”

  “그건 마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이였단다. 엘프도 피를 많이 흘리면 죽을 수 있지.”

  “그럼 어떻게요?”

  “그건….”

  노파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엄마가 되면 알게 될 게다.”

  “에이, 그게 뭐예요.”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발을 굴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노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엄마는 절 싫어하는걸요.”

  “엄마가 왜? 무슨 말이라도 했니?”

  노파는 나중에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에 물었다.

  “엄마는 항상 화를 내잖아요. 오늘도 그랬어요. 제가 활을 제대로 못 쐈거든요. 엘프면서 활도 제대로 못 쏜다고 혼났어요.”

  노파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아이의 양 볼에 손을 얹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누구나 잘 못하는 일이 있는 법이란다. 네가 활을 잘 쏠 수 없는 것처럼 엄마도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낼 때가 많아.”

  “저도 알아요. 그래도 속상해요.”

  “네가 이해해주렴.”

  “그럴 거예요. 엄마니까요.”

  “그래, 착하구나.”

  아이가 활짝 웃었다. 노파도 따라 웃었다.

  “저 엄마한테 가볼게요.”

  “그래, 엄마한테 이따가 좀 내려오라고 전해주렴.”

  “네~!”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2층을 향했다. 노파는 아이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툭, 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때렸다. 노파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곧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다.

  “그 날도 거하게 내렸었지.”

  노파의 뇌리에 엘프 여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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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애 17-08-28 19:38
 
빙그레미소 작가님^^ 1편을 봤는데 보면서 그녀한테 도망가라고 외치면서 읽었어요! 작가님 필력이 정말 깊이 빠져들어요 글의 흐름 끊김도 없고 정말 한편인데 스크린 예고편을 본것같았어요ㅎㅎ
소녀 엘프를 성장시키는 이야기인가봐요~ 노파는 어떤 관계일까요? 이번편에 엄마의 힘이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위대하게 보였어요! 필력이 정말 부러워요~
재미있게 실감나게 읽었어요^^*
빙그레미소 작가님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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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미소 17-08-28 21:30
 
운동하고 나와서 보니 좋은 말만 가득 해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XD
 아직 한참 부족한 실력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ㅎ
 린애 작가님의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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