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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의 집 2층에는 미친 무언가 숨어있다.
작가 : 접견
작품등록일 : 2016.8.26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댁에서 지내게 된 류설하와 류진, 그 집, 2층에서 승강기를 발견한다.
(지구라면, 시계탑의 숫자가 13까지 있을 리 없고, 건물이 허공에 떠 있지 않으며, 바다가 하늘에 뒤집혀 있을 리 없다. 구름이 그 바다 밑으로 붕붕 떠다니고 있을리가 없다. 태양이 두 개일 리도 없다. 잔디 잎이 먼지처럼 붕붕 떠다니고 있을 리도 없다. )

 
2. 다행히, 계단에 딸린 승강기에는 담요가 있었다.
작성일 : 16-08-26 00:29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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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행히, 계단에 딸린 승강기에는 담요가 있었다.

 

 삐이걱.

 여자들이 먼저 집 안으로 발을 내딛고, 류진이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집 안은 문 여는 소리만큼이나 평범했다. 먼지만 약간 나풀거릴 뿐, 그저 여행 휴가를 조금 길게 잡은 노부부의 빈집 같았다.

 

 구조는 나무처럼 길게 이어진 복도에,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방이 있었다. 신발장 바로 옆은 지하와 이층으로 가는 계단이, 그 다음에는 화장실, 작은 방, 큰 방, 안방이 분리되어 있었다. 마지막, 복도 끝에는 거실과 부엌이 붙어 있었다.

 미정은 어스름한 집 안에서 벽을 더듬거리다가 전원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설하는 신발을 벗자마자 복도를 가로지르며 집 구경에 나섰다. 꽤 맘에든 모양이었다.

 

 “호오, 폐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 사는 집 같은데?”

 류진이 신발을 벗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감탄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여기, 3년 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선 삼촌이 와서 청소해 주거든.”

 미정이 거실로 들어서면서 답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류진은 신발장에 붙어있는 먼지를 검지로 스윽 닦았다.

 

 “허나, 먼지가 많은 건 부정할 수 없겠군. 네, 그렇습니다. 청소 만점이구요.”

 

 “야, 류진, 그럼 네가 청소할래?”

 

 “이번은”

 류진이 말했다. “며칠 묶을 거니까. 아흐레 정도랬나. 아니, 열흘이랬던가. 뭐가 됐든 간에, 아무리 귀찮아도 먼지 바닥에 누울 순 없지.”

 

 “아니, 내 말은 삼촌대신 매 달 와가지고 청소하란 거였는데.”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리한 건 피해갈 심상이었다.

 엄지손톱으로 튕겨서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거실 쪽으로 향했다.

 

 “그보다, 삼촌은 왜 이 폐가를 한 달마다 청소하는 거야? 번거롭게?”

 

 “그냥, 뭐. 할아버지 집이었으니까 하는 게 아닐까.”

 

 복도 중간 쯤 왔을까, 싶을 때 갑자기 그의 발에 무언가 톡, 걸렸다.

 ‘역시, 청소 제대로 안한 거 맞잖아’ 그는 생각했다.

 몸을 숙여 주워보니 자그마한 열쇠였다. 윤기 없는 은색에, 덩치에 비해 약간 무게가 나갔다.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할 만한 건 얇게 새겨진 S.R 이니셜 하나뿐이었다.

 

 

 거실에는 설하는 몇 번 손으로 톡톡 털어낸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미정은 수신오류로 회색화면만 나오는 브라운관 TV와 씨름하고 있었다.

 

 “미정 누나, 이거, 이 열쇠 본 적 있어?”

 

 “잠깐만,”

 

 “누나?”

 

 미정은 미친 듯이 텔레비전 옆면을 세게 때리며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간요법을 충실히 이행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겨우겨우 110번 타면서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다는 의지였다. 앞으로 본방송까지, 1분 남짓이었다.

 

 류진은 몇 초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눈에 불이 켜진 미정을 바라보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한 후에야 설하 쪽으로 질문 표적을 바꿨다.

 

 “설하, 너는? 혹시 이거 네 거야?”

 

 “내꺼 아니야”

 

 설하는 흘끗 보기만 하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데이터가 끊긴 탓이었다.

 

 “미정 누나, 이거 본 적 있냐고”

 

 하지만 대답대신 돌아온 건 오로지 텔레비전 뺨을 후려치는 소리뿐이었다.

  TV가 고집스럽게 회색화면만 토해내는 동안,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본방송이 내보냈고, 첫 장면은 여주가 회상으로 브라운관 TV 옆면을 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극적인 우연을 미정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한 없이 절망적으로 바뀌고, 이빨을 딱딱거리고, 컵을 일부로 깨뜨리고는 수전증 탓으로 돌리고 싶어 했으며, 콱, 미쳐서 가죽 신발을 뜯어 먹고 싶은 기분이 들 뿐이었다.

 

 “누나!”

 

 “...드라마를 놓쳐버렸어”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 고통에 젖어 있어서 마치 끔찍한 기관지염으로 죽어버린 사람이 되살아나서 물 한잔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설하는 거기에 꽤나 인상 깊었는지 데이터를 잡으려고 아즈텍 제물 제사처럼 위로 팔을 휘젓다가 멀뚱히 쳐다봤다.

 

 “...다운 받아서 보면 되잖아.”

 

 “안돼... 그건 신선하지가 않아. 유통기한 지난 바움쿠헨을 식빵처럼 뜯어먹는 느낌이라고..”

 

 식빵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단정 지어버린 음식 중에 하나였다. 그 외, 단정 지은 음식으로는 콩자반, 브로콜리 등이 있었다. 끔찍하다는 데에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입맛에 맞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는 위로라도 할 겸, 상상으로 여행 가방에 넣어뒀던 바움쿠헨 하나를 꺼내 먹었다. 한 입 베어 먹고는, 젠장, 날짜가 지나버렸잖아! 하고 뱉어 내긴 했지만.

 

 “텔레비전 고치면 되지 않을까.”

 

 설하가 의견을 냈다.

 류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멍청한 소리를 곧잘 하던 단세포 생물인 주제에 웬일로 옳은 소리를 하는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집 청소 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든 해 볼테니.”

 

 류진이 제안했다.

 설하는 그를 바라보며 한심한 소리를 곧잘 하던 완보동물인 주제에 웬일로 기특한 소리를 하는구나, 라고 말하는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정은 그딴 미소는 우주 저 편, 말머리성운에 내다 버리라는 듯이 힘없이 일어섰다.

 

 “다 됐으니까... 일단 청소부터 하자. 빗자루는 창고에 있으니까, 가져오고.”

 

 “아니, 그전에” 류진은 그 말을 무시하고 열쇠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누나거야?”

 

 “아니”

 그녀는 짤막하게 답했다. “뭐야, 그거. 너 여기 있는 물건 함부로 건드렸다간 삼촌이 뭐라 할 걸? 우린 여기서 얌전히 있어야....”

 

 류진은 방금 전, 브라운관 TV를 거의 박살내다시피 때리던 미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자신이 박살날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난 짐이나 꺼내와야겠다...”

 

 미정은 복도를 가로질러 집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류진은 좀 귀찮더라도 거실을 좀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게 집 구경 온 손님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렇지만 거실을 둘러본다 했지, 집을 둘러본다 한 적 없다. 그래도 어쩌다 보니 부엌까지는 가겠지만.

 

 “야, 데이터 안 된다.”

 

 설하가 아즈텍 제사를 재개하며 말했다.

 

 “시골이라 그런가”

 류진이 말했다.

 

 설하는 힘없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여기 말이야, 컴퓨터는 없지, 휴대폰은 먹통이지. 그나마 있던 TV는 수신이 안 돼지, 전자기기는 다 깡통이 됐다고. 아 진짜, 대체 뭐하고 살란 말이야?”

 

 “네, 놀랍게도 냉장고는 됩니다.”

 

 류진이 느긋하게 냉장고 문을 열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거기에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거 말고. 재밌는 거.”

 

 “전기 밥솥? 연기 나오는 거 구경할래? 요전번에 한 번 본 적 있는데, 이래봬도 꽤 근사하거든.”

 

 “너 죽을래? 맞고 싶어?”

 

 설하는 류진을 매섭게 째려봤지만, 그는 전자레인지를 안을 살펴보는 척하며 시선을 애써 피했다. 그녀의 눈빛에 맞았다가는 기세가 꺾일뿐 아니라, 괜스레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평화롭게 걷어 들이는 방법은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데이터 말인데, 그렇게 필요하면 위층엔 되지 않을까? 원래 이런 건 높이 올라가면 되잖아”

 

 그렇게 제안하자, 설하는 그제야 깨달은 듯이 손뼉을 쳤다.

 

 “아, 맞다, 그럼 같이 가 보자.”

 

 소파에서 일어나 류진에게 다가간다.

 

 “뭐? 같이? 난 왜? 혼자가면 되잖아”

 

 “혼자 가기 무서워”

 

 슬슬 어두워지는 날에, 주인 잃은 집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그럼, 평소에 공포 영화는 왜 보는데”

 

 “으앙, 나 진짜 무섭단 말이야”

 

 설하가 류진의 팔을 붙잡으며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앙탈부리는 말투는 덤이다.

 류진은 이런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여우같은 여자, 라는 생각이 좀 더 확고해졌을 뿐이다.

 ‘방금 전까지 날 죽이려 했던 건 과연 어디 사는 누굴까.’

 그녀를 따라가느니 차라리 평생 쓸 일 없어 보이는 구자라트어나 배우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한 핏줄인 그녀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쓸데없이 소모적인 줄다리기일 테고 말이다. 하는 수 없이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정중히 팔을 내빼며 말했다.

 

 “알았어, 이거 놔, 놓으라고. 저리 떨어져.”

 '꺼져줘' 라는 말이 목까지 솟아올랐지만, 차마 내뱉진 못했다.

 

 “그럼, 같이 가주는 거지?”

 

 “마지못해 간다.”

 류진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복도 반대편으로 가서, 2층으로 향해 계단 난간대를 잡으며 올라갔다.

  류진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후 그 뒤를 따랐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 벽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감촉이 거칠고, 눈에 보기에도 지저분하다. 범죄 현장의 폴리스라인처럼, 누군가 이쪽으로 가는 길을 막아 놓았던 것 같았다.

 

 그때, 먼저 계단참을 돈 설하가 뭔가를 발견하고 놀란 듯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이거 뭐야!?”

 

 그 소리를 들은 류진은 덩달아 살짝 놀랐다.

 그가 여지껏 봐온 바,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데는 크게 두 가지경우였다. 하나는 아이돌 같은 인기 연예인을 TV나, 휴대폰으로 볼 때 가끔씩. 다른 하나는 그 연예인을 실제로 볼 때였다.

 류진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게단을 재빠르게 올라갔다. 아무리 그래도 죽어가는 저택에, 연예인이 깜짝 등장하는 건 평생 있을 리 없겠지, 하며 생각을 고쳤다.

 

 “뭔데 그래?”

 

 드디어 계단참을 돌자, 그녀가 소리를 질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중간쯤에 무언가가 막고 있었다.

 천막에 그려진 그림. 큰 그림이다. 입구를 다 채워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그림은 중세시대 렘브란트 풍의 검은 바탕의 초상화였다. 그 주인공은 약 60대쯤 되어 보였고, 날카로운 눈매에 풍성한 주황색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두 손에는 책 한 권을 받치고 고개는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눈빛은 어쩐지,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 으스스하게 기분 나쁜 그림이었다. 아마, 그녀가 비명을 질렀던 것도 그 눈빛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분은 누구죠? 새로운 제이와이피 아이돌입니까’ 류진은 차라리 아이돌이었으면, 하며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아니, 에스엠은 아닐 거 아냐.

 

 “저거 누군지 알아?”

 

 설하가 물어왔다.

 

 “모르겠는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안 나.”

 

 “뭔가 기분 나쁘다...”

 

 설하는 빨리 저 천막을 어디론가 치워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류진이 스스로 나섰다. (훗날, 그의 행동은 쌍둥이간의 텔레파시 기능 설에 힘을 실어주는 자료가 되었다.)

 

 “이런 거, 뭐, 간단하게 팟, 하고 걷어치우면 되지.”

 

 류진은 천막을 간단하게 팟, 하고 걷어치웠다. 오늘 들어 처음으로 말처럼 쉽게 풀린 일이었다.

 천막이 걷어지자, 그 위에서 한 달쯤 묵었던 먼지들이 마지못해 하며 날렸다. 먼지들은 좀 더 가만히 있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쌍둥이는 그 먼지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 천막이 걷어진 자리에 정신 팔려 있을 뿐이었다.

 

 바로, 엘리베이터,

 천막이 걷어진 자리에는 생뚱맞게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은빛으로 맴돌고,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하게 매끈했으며 테두리는 검은색에 으로 무늬를 준,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을 살린, 디자인이 아주 기가 막히게 뽑힌 승강기였다.

 

 “대체 왜 여기에 승강기가 있는 거지?”

 

 설하가 물었다. 류진은 엘리베이터를 한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

 

 “할아버지, 관절염이셨던가?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아냐, 치매였을걸? 근데, 관절염이든, 치매든 그게 다 뭔 상관이야. 세상에 누가 집 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냐고.”

 

 “나야, 모르지. 근데, 여기 이거.”

 

 류진이 승강기 화살표 버튼 아래에 있는 열쇠 구멍을 보며 말했다. 은빛 열쇠가 딱 들어맞을 것 같은 구멍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복도에서 주웠던 그 열쇠였다. 구멍에 이리저리 쑤셔 넣어보다가 반대로 돌리자 시원스럽게 푹하고 박혔다. 류진은 침을 삼키고 열쇠를 돌렸다

 

 그러자, 엘리베이터 숫자 표시기에 불이 들어오고,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뱃고동 같으면서도 증기기관차의 경적과도 비슷했다. 소리가 멈추자 문이 날카롭게 열렸다. 안은 뿌연 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밑으로는 쇼케이스 냉장고처럼 연기가 스며져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앗, 뭐야?”

 설하가 놀란 듯 뒤로 주춤거리며 말했다.

 

 “냉방실인가?”

 류진이 말했다. “별로 냉기가 없는 걸 보면 아니군.”

 

 “할아버지께서 이런 걸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가?”

 설하가 말했다.

 

 “없었어, 할아버지는 집에 누가 오는 것조차 싫어했으니까 말이야. 심지어 자기 자식들도 말이야. 우리야 어렸을 때 이후로는 거의 보지 못했고.... 그러고보니 엄마도 스무 살 이후로는 2층은 안 올라갔었다는 데...”

 

 “음... 확실히 그랬었지 그게 이것 때문이려나?”

 

 그 둘은 잠시간 침묵에 휩싸였다. 둘은 어떻게, 뭘 해야 할지 몰랐고, 그냥 내려가서 짐 옮기는 거나 도와줄 걸 그랬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설하는 그 와중에도 데이터가 꼭 써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는지 말을 꺼냈다.

 

 “먼저 들어가 봐”

 

 “싫어.”

 

 “같이 와주겠다고 해준 사람은 너잖아. 약속은 끝까지 지켜줘야지.”

 

 “그건 네가 부탁한 거잖아. 그리고 애초에 왜 들어가려는 건데? 그냥 좀 있다가 누나라든가, 삼촌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류진은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말 안 해줄 게 뻔하잖아.”

 

 “왜?”

 

 “너, 이거 누구한테서도 들은 적 있어?”

 

 “있으면 왜 놀라겠냐.”

 

 “우리에게서 숨기려고 했던 거라고. 그럼, 그런 걸 말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아까 그 천막으로 덮어있던 거고.”

 

 “너, 논리가 이상해진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숨긴 건 아니... 컥”

 

 “아, 진짜 말 많네!”

 

 설하가 류진의 등을 밀었다. 그의 발은 억지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류진은 짜증이 듬뿍 올랐지만, 낙사 위험 때문에 포기하고 또다시 항복 선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올라갈게”

 

 “고마워”

 설하가 찡끗 웃으며 말했다.

 

 류진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머릿속으로 못마땅한 투로 여우같은 여자, 라고 다시금 외쳤다. 남을 위험 속으로 팔아먹으면 그렇게나 맘이 편할까.

 

 고요한 엘리베이터. 그깟 아파트나, 큰 건물에서 많이 봐왔던 흔한 승강기다. 어느 하나 두려움을 주는 요소라고는 없다. 차라리 좀 전의 그림이 더 무서울 정도였다.

 류진은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은 설하가 뒤를 잇는다.

 

 .

 

 본래, 안개나, 수증기 같은 무대 장치는 분위기를 신비롭고 꿈꾸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잘만 이용하면 중요한 장면을 고조시킬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전개상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는 물건들을 극적으로 등장시킬 수 있다.

 

 그들이 가는 곳도 그렇다. 그들은 연기 속으로, 승강기 안쪽으로 들어가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어쨌든 발견은 발견이었다. 그것은 바로,

 

 “담요다. 아니, 수건인가. 담요 같은데.”

 류진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핑크색 배경에 꽃무늬 담요. 길이는 약 일 미터쯤. 금방 빤 듯 보드랍고, 깨끗했다.

 

 “할아버지가 핑크색 좋아했던가?”

 설하가 물었다.

 

 “그런가 보네. 살아생전에는 스크루지처럼 괴팍하셨는데, 꽤 소녀감성이셨구나...”

 류진이 말했다. “뭐, ‘존중’은 ‘취향’이니까. 근데, 무서운 그림 뒤로 숨겨진 게 고작 꽃무늬 담요라니, 허무한데?”

 

 그때, 승강기 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들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재빠르게.

 닫히는 소리가 쾅하고 울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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